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85)
새롬은 휴게실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봤다.
“아직 안 왔네.”
지성호와 면담을 하기로 약속하고 들른 장소.
너무 무서워서 매니저를 한 명 더 붙여달라고 했던가.
“어휴, 그런 게 뭐가 무섭다고….”
이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응?”
익숙한 노트북 위에 대본 한 부가 올려져 있었다.
템페스트 로고가 박혀 있는 걸 보니, 회사에서 프린트한 것 같긴 한데.
‘김진우 작가님 노트북.’
새롬은 대본에 쓰인 제목을 보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맨정신으로 지을 만한 제목이 아닌데.
“뭐지….?”
제목을 술 먹고 지으셨나?
「코드네임 030 : 마법소녀 Part. 1」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명 센스에 내적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템페스트 계약서 규정상, 제작사 대표는 전속계약 작가의 작품을 열람할 수 있었기에.
‘오늘 이거 안 보고 그냥 지나치면 잠 못 잔다.’
스르륵─
결국, 호기심이라는 욕망이 무릎을 꿇은 새롬.
한 장씩 대본을 펼치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
재밌는데, 왜 재밌는 건지 모르겠는 마음.
‘…. 단순해서 그렇구나.’
좋은 의미로.
매력적인 마법소녀가 기갑 전사들과 함께 공룡을 무찌르는 영화.
전 세계 어른이들의 마음을 후벼팔 법한 신박한 장르였으니.
‘몰입감이 상당한데?’
왜 이렇게 술술 읽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새 중반을 넘어 후반부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특히,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전투 장면이었다.
각성자의 순수한 마력으로 운용되는 10기의 기갑 부대.
한반도 최악의 던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룡형 괴수들.
S급 기간트와 변종 티라노의 격돌을 시작으로, 양측 군단 간에 치열한 전쟁이 펼쳐진다.
어찌나 묘사를 세밀하게 했는지, 기갑 로봇들과 공룡의 대결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으음….”
이 정도면 거의 웰메이드 판타지 소설 수준이다.
제작사 대표로서 제작비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으나.
“천억…. 투자할만 한데?”
거검이나 총을 다루며, 불을 뿜는 공룡을 상대하는 기간트 라이더들.
결국, 수적 열세에 밀려 한 기씩 작동이 멈추기 시작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에서 지원군을 필수가 아니겠는가.
한반도 최악의 던전 게이트를 직접 봉인하고 복귀한 마법소녀.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로한의 기마병이 도착하듯이.
-아씨, 킹받네.
비속어를 뱉은 마법소녀는 삐딱한 시선으로 공룡을 바라보며 기계팔, ‘코드네임 030’에 마력을 집중시킨다.
“음, 결말은….”
결말을 보며, 새롬의 눈에 묘한 이채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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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찰랑이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공룡을 학살하는 마법소녀.
한국을 구원한 대단한 업적을 세운 여인이 카메라 앞에서 하는 말은.
“여러분~ 오늘도 미미는 여러분의 곁에 있답니다! 데헷!”
서른 살 마법소녀는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카메라를 보고 윙크를 날렸다.
현존하는 각성자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S급 헌터.
단신으로 공룡을 가뿐히 사냥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우효오오오오옷!!!”
“미미! 미미! 미미!”
“미미 쨩! 사랑해애애!!”
한반도 최악의 던젼에서 쏟아지는 공룡들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리는 엔딩.
이어서 자연스럽게 크레딧이 올라가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쿠키영상.
후두두둑─
마법소녀에게 봉인된 한반도 최악의 던전.
한쪽에서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린다.
로봇형 갑주를 입은 새끼 티라노는 붉은색 눈에서 스산한 빛을 발산하며 포효를 터트렸다.
-끼에에에에─!
다음 시리즈에서 용갑합체 떡밥을 흘리고 영화는 끝이 났다.
─────────────
전체적으로 밝고 쾌활한 분위기의 영화.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어떤 시나리오보다 상업적인 대본이라는 것.
“김진우 작가님은 대체….”
묘사하는 분위기로 보아하니, 숨길 수 없는 특유의 문체가 눈에 띄었다.
‘마법소녀도 그렇고….’
공룡이든, 기갑물이든 성인 남성이 하나쯤 가지고 있는 로망이잖아.
“재밌어서 자존심 상해.”
새롬은 다시 한번 천천히 작품을 들여다보며 읊조렸다.
“흐음, 대체 이 대본은 뭐지.”
똑, 똑─
그때, 김진우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 작가님?”
“실장님, 왜 여기서….”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작품이 아닌 척하는 김진우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이런 작품을 기계처럼 뽑아내는 작가와 계약한 제작사는 얼마나 행운인가.
“작가님.”
“네.”
“제작하죠.”
“네?”
“이 작품, 성공시켜요. 반드시.”
“…. 가능?”
“네. 가능.”
김진우 작가의 첫 번째 영화는 그렇게 제작 단계에 돌입했다.
* * *
그날 저녁.
나는 방에서 유설아의 시집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내게 다가온 풀잎에게 말했다.”
어? 너는 숨을 쉬는구나.
나도 숨을 쉬는데.
풀잎은 그렇다.
지나치고 싶어도 지나칠 수가 없다.
“그냥 지나치지 그랬어요….”
아직 완성본도 아닌데 들켜버리니까.
이거 뭐,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정 실장님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말씀하신 대로 여민서 배우에게 대본 전달했어요]
[아직 무슨 역할인지는 모르고 자연스럽게 전달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송 감독님 미팅 때 저도 같이 갑니다]
“정 실장님…. 추진력 무엇.”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붓고 망하면 드라마로 쌓은 커리어 와장창 무너지는 건데.
‘시스템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게 대본만으로 되는 건 절대 아니라서 또 걱정이다.
그래서 더 대본의 완성도에 노력을 기울이고, 최대한 정밀하게 묘사하려고 했거늘.
끼이익─
답답한 마음에 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희정아?”
“어어어.”
소파에 앉아서 밥을 비벼 먹고 있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여배우랑은 거리가 멀다.
“역시 내 동생이야.”
“머어어.”
대놓고 시비를 털어도 대꾸조차 못 한다.
대충 비빈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는 모습이 왜 이렇게 짠할까.
“맛있냐.”
“우응.”
언어 능력을 상실한 듯한 불쌍한 희정이.
이 아이가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알까요?
토닥, 토닥─
희정의 어깨를 두드리고 덕담을 건넸다.
“요즘 오류동 팔남매 촬영 잘하고 있다며.”
“으으.”
“어떻게, 성 감독님은 좀 잘 해주셔?”
멈칫─
성 감독을 언급하자마자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떠는 희정이.
“…. 힘내.”
순정마초 때 성기훈 감독은 전혀 무서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예상컨대, 시스템으로 배우에게 맞춤식 대본을 썼기 때문일 터.
그에 비하면 지금 희정이는 맨땅에 헤딩하는 셈이니까.
‘오디션 붙은 게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잘했지.
* * *
다음 날.
송권수 감독은 어젯밤 정 실장에게 받은 대본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흠….”
과연, 스타 감독은 다른 건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읽는 듯 보였으니.
“좋은데?”
솔직히, 공룡과 기갑을 동시에 보고서 흠칫한 건 사실이지만.
독립 영화가 아니지 않은가.
무조건 상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결국 돈을 쓰는 주체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
그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수만 있다면.
잠시 후,
김진우와 정새롬이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송 감독은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본론을 꺼냈다.
“작가님, 주연으로 여민서 배우를 생각하고 계신다고요.”
“네.”
“흠, 묘사한 내용을 제대로 찍으려면 CG 스튜디오만 대여섯 군데.”
“음…. 많긴 하네요.”
“CG로만 800억을 써야 할 수도 있어요. 알고 계시죠?”
“…. 와우.”
모르시는구나.
“이 작품을 보고 딱 떠오르는 친구가 있더군요. 아는 동생인데.”
“네?”
“CG 전문가 중에 구성락이라고, 아마 김 작가님도 안면은 있으실 겁니다.”
“누구….”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CG 그래픽 담당하는 친구입니다.”
“아….”
“특히, 주요 장면은 그 녀석에게 맡겼으면 합니다.”
본건 아니고, 안젤라 지부장에게 듣기는 했었다.
한국인 중에 그를 따라갈 실력자는 없을 거라고 단언했으니.
“솔직히 저도 욕심이 생기는 작품이긴 합니다.”
“….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네요.”
“하지만 이건 템페스트가 혼자 독식할 수 있는 파이가 아니에요.”
송 감독의 말을 듣고 새롬이 입을 열었다.
“벌써 디지니 플레이 안젤라 지부장님께 대본을 보내드렸습니다. 검토 중이실 거예요.”
“…. 빠르시군요.”
“그렇게 되던데요. 누구랑 같이 일하니까.”
새롬은 진우를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
올 한 해 만에 네 작품을 쏟아내었으니,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그럼 빠르면 내년 초부터 제작을 시작할 수도 있겠군요.”
“에이, 아직 대본도 마무리 못 했는데요. 하하.”
“네?”
“아직 부족합니다. 제가 미술쪽은 약해서. 공부하면서 쓰고 있어요.”
“…. 허허.”
진우의 대답에 송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 정도면 충분히 연출자에게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김 작가님은 다르시네요.”
“음….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옮기고 싶어서요.”
영화 제작을 미팅 한 번에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
일단 이 정도 선에서 미팅을 파하고, 각자 헤어지기로 했다.
정 실장은 진우와 헤어지기 전에 말을 꺼냈다.
“작가님, 저는 혼자서 갈 데가 있어요.”
“네? 그럼 같이….”
“아뇨. 저 혼자요.”
“아하, 넵.”
“최대 투자사 만나고 올게요.”
“최대 투자사?”
“후흣.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새롬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디지니 플레이보다 중요한 투자사가 될 거예요.”
그녀는 차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현 천성 그룹의 실질적인 오너, 부회장의 저택.
무려, 일주일 동안 머무르며 바쁜 아버지가 만나주기만을 기다렸다.
* * *
어떤 여배우가 사는 집.
한쪽 찬장에는 봉사활동 중에 받은 물건이 산더미였다.
보육원 아이들이 선물해 준 조잡한 로봇이나 공룡 모형.
그런데, 마지못해 받은 물건들은 아닌 듯 보였다.
그 옆에는 값비싼 피규어나 건담 프라모델들도 여럿 놓여 있었으니.
“아니, 이 작품….”
여민서는 매니저에게 건네받은 대본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본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생각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가될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흑역사를 너튜브에 품고 살아갈 거라고.
“…. 이걸 나보고 하라고? 이거 꿈인가?”
딱 봐도 김진우 작가의 문체인데.
이거 일부러 멕이려고 쓴 거 아니겠지?
뚜루루루─
곧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이거 진짜 실장님이 주신 거 맞아?”
-응.
“장난으로 보낸 건가?”
-오히려 장난이 아니지.
“어?”
-우리 회사에서 천억짜리 영화를 찍는다는 소문이 있거든.
“…. 뭔 소리야, 천만 영화?”
-아니, 제작비 천억 영화!
“!!!”
여민서는 다시 작품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그 정도 돈을 투입했으면 애들 장난 수준의 영화는 아닐 테니.
꿀꺽─
침을 삼키고 자신이 마법소녀가 되는 상상을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던지는 마법에 로봇이든 공룡이든 터져 나간다면.
‘천억쯤 들어가면 말이 달라지지.’
한국에서는 절대 쉽게 나올 수 있는 제작비가 아니었으니.
「트랜스포밍」도 첫 시리즈에 1,500억 원 정도를 썼다고 들었다.
“설마 원탑 주연이 나야….?”
-음, 글쎄. 그러지 않을까?
“아닐 수도 있고.”
-그치.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만약에 내가 주인공이라면….’
천억대 작품의 원탑 여주인공.
실패했을 때는 오명을 뒤집어쓰겠지만, 만약에 성공한다면.
‘이거만 성공하면 다음은 할리우드….?’
꿈의 무대에 진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이 리스크에, 하이 리턴인 셈이다.
‘아니지. 정신 차려.’
서른 살에 마법소녀 영화 찍고 쫄딱 망해 봐.
평생 조카들에게 놀림받으면서 수치스럽게 사는 거야.
‘마음을 비우자고.’
마음을 편히 먹으니 작품을 작품으로 보게 되었다.
마법소녀가 로봇이랑 같이 공룡 때려잡는 영화….?
“…. 그게 왜 끌리는 거냐고!”
여민서의 집 한쪽에 놓여있는 각종 장난감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렸다.
* * *
아무리 템페스트 엔터의 이름값이 높이 올라갔다 한들.
발품을 팔아서 천억이나 되는 투자자를 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것도 영화 시나리오로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인지라.
“투자하지.”
바쁜 연말 시즌에 만나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은 기분이었는데.
“정말요?”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많이 컸어.”
“….”
아버지께 처음으로 인정받았다.
‘기분이…. 묘하네.’
그런데, 아버지가 뜬금없는 말을 꺼내서 새롬은 당황했다.
“방송국 하나만 키워봐.”
“네?”
“이번에 천성 그룹이 인수한 방송국 말이다.”
“아…. MDN 방송사.”
“확성기 성능이 너무 후져서.”
“…..”
공중파는 물론이고, JTBS나 TVM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한 케이블 방송사.
그래도 간간이 드라마 제작도 하며 1프로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곳이었으니.
“그 성능 좀 네가 키워봐. 다른 케이블 방송사처럼 만들 수 있겠느냐?”
“…. 거래인가요?”
“부탁이다.”
부탁이라니, 아버지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다른 케이블처럼 만들어달라는 게 어떤….”
“드라마 하나쯤 제대로 성공시켜 봐.”
“….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새롬의 자신만만한 대답을 듣고, 부회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시청률 20프로. 1년 안에.”
“….”
케이블에서 20프로의 시청률이라.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일 터.
‘할 수 있을까?’
JTBS에서 초대박났다고 알려진 순정마초도 마의 20프로를 넘지 못했으나.
그냥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못하겠느냐?”
“후우…. 해 볼게요.”
절대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1년 만에 김진우가 또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를 터였다.
‘김진우 작가님을 믿으니까.’
그냥, 그의 작품이라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영화 투자 건은….”
“비서에게 말해두마.”
“감사해요.”
* * *
시간이 흐르고, 12월 31일.
KBC와 MBS 연기대상 시상식이 동시에 열리는 날.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 저희만 믿으셔요.”
템페스트 엔터에 파견 나온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
두 분의 도움을 받고, 화장과 함께 멋들어진 정장을 차려입었다.
“오빠! 오늘 멋져요.”
“고맙다.”
효주의 칭찬과 함께, 곧바로 차로 이동했다.
‘MBS 공개홀.’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소.
시스템은 재능 있는 배우를 칼같이 인식할 테니.
‘어쩌면…. 오늘 시스템이 새로운 작품을 물어다 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