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Blacksmith’s Game RAW novel - Chapter (102)
귀족 (4)
침대에 누워 있는 벨라는 뼈밖에 남지 않아 앙상해진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이불을 걷어 내자 야위어 버린 자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벨라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침실엔 오직 수련을 위한 도구와 갑옷, 날카로운 날붙이들만이 가득하다.
그러한 것들 중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옷이 있었다.
옷장을 열었다.
시장에서 몇십 골드를 주고 샀지, 아마?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깨끗한 옷.
화사한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꺼냈다.
그녀가 살면서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어 본다.
은빛의 기다란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눈동자. 야위었기에 되레 퇴폐적으로 보일 미모.
그리고 한때 검왕 바라드께서 주신 목걸이.
‘생일 선물이다, 벨라.’
무심하게 주셨던 에메랄드가 박힌 목걸이를 차 본다.
놀랍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이 생각보다도 너무 아름다웠기에.
그녀가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녀는 평생을 기사로 살아왔다. 한때 대장장이의 딸이었고 또 한땐 투기장에서 살았다.
자신에게 여자의 삶은 없었다.
‘이젠 족하다.’
벨라는 흐릿하게 웃음 지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 몇 분이나마 여자로써 살아 봤기에.
그녀가 한쪽에 잘 보관해 두었던 알약을 꺼냈다.
이 알약은 포로로 잡히거나 했을 시 목구멍 뒤로 넘기면 곧바로 즉사하게 된다.
바라드에게 구원받은 벨라의 충심은 엄청나다.
바라드가 죽으라면 실제 자결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이야기를 들었다.’
벨라의 기감은 하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라드가 무리해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원치 않는 일이다.
왕에게 기사란 쓰고 버려지는 일이 당연시한 일.
벨라는 오늘 저녁 이 알약을 삼킬 생각이다.
‘조금도 두렵지 않다.’
벨라는 작게 웃음 지었다.
기사로서 이는 참으로 숭고한 죽음이지 않을까?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왕이 좀 더 편안해지는 게 좋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왕께서 더 불편하지 않게 자신의 이런 모습을 들키지 않는 거였다.
벨라가 다시 옷을 갈아입기 위해 걸음하려 했다.
그때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현수였다.
***
현수는 확신했다.
‘벨라를 살리면 바라드 전하께선 그만큼의 것을 되돌려주실 거다.’
자신이 본 바라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성녀가 일평생 2회만 발할 수 있다는 성녀의 기도를 사용해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벨라의 침실로 걸어가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떠올렸다.
돌발 퀘스트: 죽음을 각오한 여인 때문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여인이라니?’
현수는 그 의미심장함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어떠한 것이 뇌리에 스친 현수가 벨라의 침실을 향해 뛰었다.
벨라의 침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현수는 평소와 다른 모습의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인 알약을 보고 직감했다.
잠시 당혹했던 표정의 그녀가 태연한 모습으로 그를 한쪽에 잘 두었다.
“전하껜 비밀로 해 주시겠어요?”
씁쓸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데리고 온 성녀가 와 있다고도 말했다.
되레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일입니다. 현수 님께서 성녀 아리아님의 은인으로 인식되었다니요. 이제 왕국의 귀족이 되셨으니, 그 힘을 이용해 왕국을 번영시켜 주세요.”
기사도.
그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목숨보다 나라를 위해라.
현수는 고집불통인 그녀를 보았다.
진퇴양난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불현듯 넬과의 대화가 스쳤다.
‘현수 님에겐 대장장이 기술 말고도 특별한 힘이 하나 더 있어요.’
‘특별한 힘이요? 그게 뭔데요?’
‘말을 잘해요.’
그래, 현수에겐 넬이 말했던 것 같은 힘이 있었다.
때마침 알림이 들려왔다.
[벨라는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나 당신이 아리아를 데려옴으로써 운명이 변할지도 모릅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벨라랑 나 관련한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될 수도 있다?’
현수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로서는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서 시작될 이야기가 있을 수가 있나?
‘일단 이건 뒤로하고.’
단지 현수는 이 고집불통 아가씨의 마음을 자신의 방식대로 돌려 볼 생각이었다.
***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로서 고작 나 하나의 목숨이 아니라 왕국의 번영과 왕의 평화를 바라는 건.
그랬기에 벨라는 한 치의 후회도 없었다.
그때 앞의 대장장이 사내. 그 남자가 물어왔다.
“……두렵지는 않습니까?”
그 까끌거리는 말이 벨라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든다.
그러나 최대한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기사입니다. 기사는 왕국을 위해 죽을 때 비로소 가장 행복한 안식을 맞이합니다.”
벨라는 최면을 걸었다.
나는 두렵지 않다.
기사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에 현수가 창밖을 봤다. 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밤의 차디찬 비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곧 봄입니다.”
벨라의 얼굴이 처참히 구겨졌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스스로 성녀의 기도를 거부하고 왕국의 안녕을 바라는 자신은 보지 못할 아름다운 봄.
자신은 보지 못할 봄을 말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나를 놀리는가?
“봄이 오면 나들이를 갈 겁니다.”
“당신…….”
그래, 고작 대장장이 사내가 어찌 내 마음을 알겠는가.
기사의 숭고한 마음을 이해하겠는가, 기사가 왕국을 위해 죽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날 벨라 경은 언제나처럼 전하 곁에 서 주셨으면 합니다.”
“……?”
아니었다. 벨라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 대장장이 사내의 눈을 들여다봤다.
처음 봤을 땐 애송이였다.
두 번째 봤을 땐 명검의 제작자였고.
다시 보았을 땐 영지를 구했고.
지금은 한 명의 귀족이 된 그가 말하고 있다.
그는 나의 죽음을 비웃고 기사도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기사이면서도 마지막으로 품은 여인의 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자신을 보듬어 주고 있다.
벨라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들판에 아름다이 피어난 꽃과 수풀들.
커다란 나무 앞에 선 바라드와 그를 보며 각을 맞추고 있는 기사들.
그들 사이로 걸어가는 은빛 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검을 찬 절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언제나처럼 바라드 전하께선 자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의 미소로 웃어 보이실 것이다.
전하와 함께 나란히 선 자신은 흔들리는 수풀들을 느끼며 언덕 너머 세상을 내려다볼 것이다.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벨라가 천천히 무너진다.
“당신처럼 멋진 꽃이 지는 게 말입니다.”
그는 멋진이란 말로 기사로서의 자신을 존중해 주었고 꽃이라는 말로 여인의 마음도 지켜 주었다.
결국 터지고야 만다.
“살고 싶습니다…….”
계속 살아남아 언제나 그렇듯 전하의 옆에 묵묵히 서 있고 싶다.
“살고 싶어요…….”
또 한 번씩 아주 기분 좋은 날.
몰래 이 드레스를 입고 시장에 나가 거닐고 싶다.
무너져 흐느끼던 벨라가 질문한다.
“왜, 왜…….”
대장장이 사내가 멋진 미소로 웃어 보인다.
“전하는 당신을 필요로 하니까요.”
그래, 벨라를 깨우치게 한다.
자신이 알약을 삼키고 죽는 것보다 살아남아 계속 전하의 곁을 지키는 것이 진짜 옳은 일임을.
뭣 같은 기사도란 것에 목매는 것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벨라는 이 순간 다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
그리고…….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그 스토리는 먼 훗날 목숨 바쳐 당신을 지킬 기사의 이야기입니다.] [기사 벨라가 또 다른 태양을 가슴속에 품습니다.]끝으로 현수는 나섰고 벨라에게로 성녀 아리아가 다가갔다.
닫히는 문 너머, 벨라는 그곳에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바라봤다.
그는 아리아를 데려와 병마를 치료해 줬으며 또 살고자 하는 의지까지 깃들게 해 준 사람이다.
이 순간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나의 전하만큼이나…….’
당신을 지키겠다는 다짐.
성녀 아리아의 기도가 시작됐다. 성 전체로 신성력의 빛이 가득히 뿜어져 나갔다.
그 따스한 기운은 벨라의 가슴속의 따스함과 닮아 있었다.
***
밖으로 나선 현수는 방 안에서 뿜어지는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을 보았다.
[그 스토리는 먼 훗날 목숨 바쳐 당신을 지킬 기사의 이야기입니다.] [기사 벨라가 또 다른 태양을 가슴속에 품습니다.]그리고 경이로운 알림을 상기했다.
‘벨라가, 우리 광명에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현수가 아는 벨라는 재능만큼은 이미 기사단장을 초월했다고 알고 있다.
고야드 왕국이 인정한 바라드 다음가는 강자.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선 광명을 성장시켜야겠지.’
바라드는 친우지만 좀 얄밉다. 그 누구보다 쉽게 주지 않는다.
‘이번에 얻은 보상은 가능성인가?’
그래, 그 보상은 바로 벨라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일 거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돈으로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녔으니.
그리고 아리아가 밖으로 나왔다.
“전 이제 교황님과 만나 사인검에 대한 값어치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성녀와 성기사들이 다시 떠났다.
그리고 현수에게도 사인검의 가치는 매우 중요했다.
‘남은 돈이 몇 억이더라?’
사실 현수는 저 사인검이면 남은 치료비를 모두 해결하고도 남는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현수에게 필요한 건 새출발할 수 있는 돈이다.
그도 평범한 남자였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삶을 갈구한다.
사인검에 대한 값어치는 그 삶에 대한 첫걸음이 되어 줄 거였다.
***
아레스교 교황청.
교황은 황제와 버금가는 힘을 가진 인물이다.
16대 교황 카르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성녀 아리아, 어찌 이런 단독적인 선택을…….’
아리아는 교황이 아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그런 아리아가 제 멋대로 성녀의 아이 벨리아를 출타시켰다.
그리고 더 황당한 것은 카르셀이 받은 전서구에 있었다.
‘사인검을 성물(聖物)로 지정하였으면 합니다. 아레스교는 해당 대장장이에게 줄 보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며 저는 30%의 값을 더 얹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카르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대장장이가 생명을 구한 은인이라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심지어 성물은 해당 교단을 상징하는 가장 성스러운 물건을 뜻한다.
‘사인검?’
어처구니가 없다.
아레스 신께서 내린 무기에 속하지도 아니한 그 검 따위를 성물로 하자니?
아리아가 머리를 다친 거일지도 몰랐다.
그는 다짐했다.
아리아에게 강하게 한마디 하겠다고!
그리고 그가 아리아가 건넨 사인검 확인을 시작했다.
“……제가 너무 단독 행동을 하긴 했습니다. 30%는 너무 심하긴 했었습니다.”
30%의 값을 더 쳐주겠다, 주관적 의견으로 결정한 아리아가 죄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에 카르셀이 말했다.
“맞네, 이 정도 아티팩트라면 더 쳐준다고 했어야지! 쩨쩨하게 30%가 뭐란 말인가!”
“……예?”
아리아가 당황했고 카르셀은 그녀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교는 어떻게든 현수란 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10% 더 쳐주어 40%의 값을 더 주는 걸로 합세.”
교황과 아리아, 대장장이들이 함께 그 값어치를 매겼다.
가격을 매긴 그들 역시 실로 감탄했다.
“검 한 자루에 이 정도 값을 매기게 될 줄이야.”
“하지만 충분한 값이에요.”
카르셀은 아리아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서구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현수가 찾아왔으며 놀라운 표정으로 답례금을 받아 갔다.
***
한국은행.
은행원 이다솜이 여느 때처럼 창구 업무를 보고 있었다.
띵동-
경쾌한 알림 소리와 함께 다솜은 걸어오는 한 청년을 봤다.
‘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키가 무척 컸고 비율이 좋은 남자였다.
나이는 기껏해야 23? 24?
“입금 내역 확인 겸 통장정리 좀 하려고요.”
다솜은 평소처럼 기계 안에 통장을 넣었다.
지이이잉-
통장정리와 입금 내역이 통장에 써내려진다.
보통 이 정도 나이대의 분들의 경우 잘 모으면 천만 원, 없어도 백만 원 정도는 가지고 있다.
통장정리가 잘되었는지 확인한 다솜이 놀랐다.
16억 원이란 거금이 방금 입금되었기 때문이다.
‘환전금?’
다솜은 크게 놀랐다.
하지만 은행원으로서 뚜렷한 내색은 하지 않고 내밀었다.
그 통장을 청년이 한참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다 보냈다…….”
알 수 없는 말에 다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 창구에 있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빚이 있었나 봐? 축하하네, 다 큰 사람이 울긴.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잖은가.”
그에 청년은 밝은 미소로 답했다.
“맞아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습니다.”
다솜도 거들었다.
“축하해요.”
그리고 청년은 눈시울을 훔치곤 행복한 미소로 은행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