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Dark Master become a Trash RAW novel - Chapter 60
제60화
그를 해치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방금 공격도 살수가 아니라, 발걸음을 멈추기 위해 바닥에 뿌린 거였다.
어쨌든 성가신 일.
“말해봐.”
“…내게 사과할 생각 없어?”
“…….”
“난 네가 내게 저질렀던 모욕을 아직도 참을 수가 없어.”
크리스는 침묵했다.
‘크리스티앙, 이놈은 도대체 무슨 대형 잘못을 저질렀던 거야.’
소녀의 에메랄드 눈동자가 잔뜩 독기를 품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통 가벼운 원한이 아닌 눈빛.
‘바쁜데,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가야 하나. 내가 저지른 잘못은 아니긴 하지만.’
그런데 크리스는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잠깐, 마리사라면 이번에 누명을 써서 희생당할 운명이잖아.’
이번 탐사 때 암흑 마가의 탐사대는 몰살당한다.
그때 누명을 쓰는 게 마리사다.
그녀는 양손이 잘리고 양 눈, 혀가 뽑히게 된다.
‘뭐, 어떻게 되든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진행될 암흑 마가와 극독 마가와의 사건들을 생각하면, 극독 마가의 중요 인물 중 한 명에게 빚을 지게 해 자신의 호구로 만들어 놓으면 좋으리라.
그러기 위해서 크리스는 말했다.
귀를 후비며 최대한 성의 없는 태도로.
“사과. 됐나?”
“…….”
마리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넌… 정말 최악이구나.”
“사과해 달라고 해서 사과해준 건데? 뭘 더 구질구질하게 이야기해 달라는 건지 모르겠군. 우리는 이미 서로 끝난 사이인데 혹시 아직도 약혼 사이라 착각하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크리스는 싸늘하게 웃었다.
“날 너무 얕본 것 아닌가?”
“…뭐?”
“겁도 없이 혼자 날 찾아오다니. 널 여기서 쓰러뜨리면 이번 탐사는 우리 쪽의 승리겠지.”
마리사의 얼굴이 변했다.
지금 크리스는 여기서 그녀를 제압하겠다는 거였다!
‘제압해 놓으면 누명을 쓸 일도 없겠지.’
이번 탐사 때 마리사의 무죄를 입증할 방법은 간단했다.
알리바이를 만들면 된다.
어떻게?
제압해서 꽁꽁 묶어 가둬놓으면 된다.
크리스는 나름대로 큰마음으로 하는 배려였지만, 마리사는 분노하여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다 하, 웃음을 흘렸다.
“그래, 지금 우린 적이지. 후회하게 해주겠어.”
마리사의 보석 같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반짝였다.
“지난번 내게 저질렀던 모욕까지 말이야.”
지지직.
그녀의 몸에서 독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한 종류의 빛깔이 아니었다.
총천연색이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그만큼 다루는 독기의 종류가 많은 거다.
‘소만독(小萬毒)이라 불릴 만하군.’
크리스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수없는 독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 붙여진 별명이다.
서녀로 태어났음에도, 직계로 인정받고 유력한 차세대가 된 이유.
“마지막으로 네게 기회를 줄게.”
그녀의 에메랄드 눈동자의 빛깔이 변하였다.
찰나 탁한 붉은색으로, 백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으로, 또한 녹색으로.
끌어올리는 독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눈빛.
“지금에라도 내게 무릎 꿇고 사과해. 안 그러면 넌 내 독물에 한 줌 핏물로 변하게 될 거야.”
섬뜩한 경고.
크리스는 귀를 다시 후적 팔 뿐이었다.
“말 많네. 극독 마가는 입으로 싸우나? 입만 시끄러운 연합 놈들 같군.”
“!!”
마리사의 얼굴이 표독해졌다.
파앗!
그녀의 손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냥 마기가 아니었다. 진청색의 마기는 곧 희뿌연 안개로 변하였다.
무형의 마기를 독으로 변환하는 경지, ‘마독(魔毒)’이었다!
3성 이상에 이르러야 사용 가능한 흑검에 대칭하는 경지.
마리사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어서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들을 꺼냈다.
역시 독극물들이었다.
그것도 보통 독극물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극독으로 꼽히는 독들.
아직 그녀의 경지로는 여러 개의 독을 한꺼번에 마독으로 구현하는 게 어려워 암기술로 던지는 거다.
파창!
그녀가 던진 유리병은 허공에서 깨져 기체로 변해 그대로 크리스를 덮쳤다.
크리스는 무려 다섯 종류 이상의 독에 휩싸이게 되었다.
마리사는 냉랭히 말하였다.
“이제 너는 지옥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될 거야.”
마리사가 사용한 독들은 곧바로 즉사하는 종류는 아니었다.
대신, 시간을 두어 끔찍한 고통에서 몸부림치다가 천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잔혹한 독들이었다.
하나도 아니라, 무려 다섯 종류의 독에 당했으니, 크리스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되리라.
“당장 내게 사과해. 그러면 해약을 줄 테니.”
“…사과, 라. 싫은데?”
여전한 대답.
마리사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사과해! 안 그러면 넌 죽게 될 거야!!”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허세를 부려봐야…!!”
그때, 독의 연무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난 크리스의 모습에 마리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땅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멀쩡했다.
태연한 척하는 게 아니다.
독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어, 어째서?”
“아… 그게.”
크리스는 피식 웃었다.
“해약을 미리 만들어 먹었거든.”
“마, 말도 안 되는!!”
한 종류도 아니고 무려 다섯 종류의 독이었다.
그리고 극독 마가의 비전 독의 해약을 어떻게 구해서 미리 먹는단 말인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들어봤어?”
“뭐, 뭐?”
“비슷하게 무슨 독에든 듣는 만독 해독약 같은 걸 한 번 만들어 봤는데, 잘 듣네?”
말도 안 되는 해명.
하지만 반쯤 사실이었다.
‘의념이 담긴 독도 아니고, 이런 물리적인 독의 해약을 만드는 거야 간단하지.’
극독 마가의 독은 여러 경지로 나뉜다.
‘물리적’ 성질의 독.
‘마법적’인 효과가 깃든 독.
‘의념’이 깃든 독.
‘이적’을 일으키는 독.
그중 마리사가 만든 독은 물리 독이었다.
물리 독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하는 독이었지만, 크리스가 보기에는 어린애 같은 수준이었다.
당연했다.
“내가 사실 의술에도 일가견이 있거든.”
과거.
크리스는 수많은 직업을 가졌다.
용사의 전 동료이기도 했고.
거대 집단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수많은 직함 중 이런 게 있었다.
의사.
아니, 정확히 말하자.
그냥 의사가 아니었다.
그의 의술은 지극히 뛰어났다. 신의라 불리며, 성자라고 추앙받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원래는 그저 평범한 명의 수준이었지만, 멸망의 시대 때 이어진 하나의 기연으로 그는 독보적인 의술을 지니게 되었다.
수많은 의술 명가 중 최고로 꼽히는 곳이자, 연합 7대 명가 중 하나.
또한, 극독 마가의 천적이라 불리던 가문.
‘의선(醫仙) 명가’의 마지막 제자이자, 27대 문주.
그게 크리스의 과거 직함 중 하나였다.
* * *
– 넌 진짜 미친놈이야.
과거, 용사 일행에게 숱하게 들었던 소리.
용사 일행뿐이 아니다.
크리스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의 재능을 보고 저렇게 이야기하였다. 정말 미친 재능이었으니까.
– 네가 검술이나, 마법을 익혔다면, 세상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텐데.
그들은 숱하게 한탄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불행히도 검술, 마법을 익히지 않았다.
얄궂은 우연은 아니었다.
크리스는 사정상 검술과 마법을 익혀서는 절대 ‘안 되었다’.
그가 검술과 마법을 익혔다면, 크리스가 태어났던 원래 가문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다. 무조건 척살했을 거다.
덕분에 크리스는 검술과 마법에는 일부러 눈과 귀를 닫고 살았다.
‘거지 같은 핏줄.’
크리스는 피식 실소했다.
사실 과거 크리스는 누구보다 귀한 혈통을 타고났다.
온 대륙을 통틀어도 그보다 귀한 혈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저주 같은 혈통이었다. 거지 같게도.
대신, 그는 수많은 잡기를 익혔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다.
뒷골목을 떠돌다 어쩌다 보니 배우게 되었다.
남들이 하는 양을 어깨너머로 지켜보기만 해도 그는 금세 전문가 이상의 솜씨를 발휘했으니까.
의술은 그중 하나였다.
의술은 다른 잡기보다는 깊게 익혔다.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돈이 되니까.’
나름대로 번듯하게 대우받으며 살 수 있는 직업이었다.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만약, 1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예 의사로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혈의 마왕이 일으킨 1차 대전은 그의 인생을 끔찍한 격랑으로 밀어 넣었다.
수없는 일을 겪었고, 그러다가 우연한 인연을 만났다.
– …미친. 하, 왜 너 같은 놈을 이제야 만나게 된 거야. 이제 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의선 명가의 단 하나 남은 생존자.
의선 명가는 한때 연합 7대 명가라 불리며, 온 세상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가문이었지만, 사혈의 마왕의 살육을 피할 수는 없었다.
26대 문주였던 그녀는 크리스와 만났을 당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은 상태였다.
실제로 그녀는 크리스와 만난 후 딱 일주일 후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크리스에게 짐 아닌, 짐을 맡겼다.
[…이제 네가 의선 명가의 27대 문주야.]의선 명가의 비기가 담긴 서책을 건네준 것.
완전품은 아니었다.
원본은 총 45권이었는데, 멸문당할 때 유실되어 그중 크리스가 받은 건 15권밖에 되지 않았다.
3분의 1도 되지 않는 분량.
심지어 비기를 가르쳐줄 스승도 없었다.
일주일간 그녀는 시름시름 앓으며 사경을 헤매느라 거의 어떤 가르침도 내려주지 못했으니까. 모두 독학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는 이 악조건 속에서도 대단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
‘의선 명가의 고유 치유력인 의선 기공을 얻는 건 실패했지만.’
대신, 그가 얻은 건 의술적 지식.
크리스는 대륙 최고의 의술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극독 마가의 독?
아무리 마리사가 소만독이라 불리며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의 독이다.
얼마든지 해독할 수 있었다.
단, 물리적 수준의 독에 한해서라지만, 거의 만독 해독약 수준의 해약을 만든 거라 재료를 마련하는 게 어마어마하게 비싸긴 했다. 그 문제는 돈주머니 루이나를 털어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마, 말도 안 되는….”
크리스는 힐끗 시선을 내렸다.
마리사가 주술적 밧줄에 꽁꽁 묶여 제압되어 있었다.
‘…충격이 컸나 보군.’
장기인 독이 먹히지 않으니 결투의 승패야 뻔했다.
물론 극독 마가가 지닌 힘은 독만이 아니다.
대륙 최고 수준의 암기술 또한 지니고 있었지만, 크리스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무, 무슨 수를 쓴 거냐?!”
“음, 별것 없는데?”
크리스는 마리사의 짐을 뒤지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차피 물리 독의 원리는 크게 자극성, 마비성, 신경성, 출혈성, 과민성, 부식성, 괴사성 등등을 벗어나지 않잖아. 그러니 각각의 원리 모두에 한꺼번에 길항작용(antagonist)을 하는 해약을 만들면 간단하지.”
마리사는 멍한 얼굴을 하였다.
저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인간의 신체 생리학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의선 명가의 비기에도 크리스가 쓴 해약의 내용은 없었다.
의선 명가의 비기를 참고해 크리스가 새롭게 창조해낸 해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