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17)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17화
이렇게 정리된 걸 보니 나나 그 애나 제법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기 나열된 사건 중 일부는 그 애의 벅찬 종적이었고, 또 다른 일부는 내일을 이어받은 나의 자취였다.
나는 오랜만에 그 세계의 음악이나 영화, 게임 같은 것들이 아닌, 나의 삶 자체를 온전히 떠올렸다.
“……하.”
한순간 누가 숨구멍을 막은 것처럼 답답해졌던 가슴은 뒤이어 나의 내일을 살고 있을 녀석을 떠올리자마자 놀라울 만큼 맑게 개었다.
나는 이곳을 떠날 때와 같은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한 번 포기하며 끊어져 버렸던 삶을 혼자서 어떻게든 연결하고 있을 녀석을 떠올렸다.
뭐라도 해 보려는 노력으로 유×브 채널을 운영하던 것과 별개로, 내가 바깥일을 엉망으로 방치해 둔 채 내게 가장 따뜻한 공간인 방구석에 틀어박힌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애는 아무리 안락하더라도 결코 그 좁은 곳에서 멈춰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그렇고.
내가 겪은 일이 얼만데, 이런 게 뭐가 대수인가.
그날 밤 나는 되뇌고 또 되뇌었다.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 * *
다음 날.
퇴원하기 전에 이영민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두 번 정도 보러 갔는데 갈 때마다 죽은 듯이 자고 있어서 별다른 얘기는 못 해 봤다.
내가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 마침 이영민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던 간호사가 나를 조금 안쓰러워하는 눈길로 보며 이영민의 상태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잠깐 일어나서 식사하시는 시간 말고는 거의 주무세요. 그래서 그런지 경과도 무척 좋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자기 몸을 스스로 망가트린 이영민이 정말 저러고서 잠에 빠져 있는 건 아닐 것이고.
관리자라는 건 원래부터가 불가해한 존재였기에 나는 그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고 돌아갔다.
알아서 하겠지.
문득 래리 녀석이 저번에 임기라는 게 끝날 때까지 접촉할 수 있는 지적생명체는 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 공간에서 이영민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현실로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건 궁금하니까 어떻게 된 건지 나중에 물어봐야지.’
바로 그날, 나는 퇴원했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내게 퀭한 얼굴을 한 곽상현이 말했다.
“차를 바로 밑에 준비해 두기는 했는데 근처에서 대기타는 기자들이 좀 있어. 부딪치지 않고 통과하는 건 어려울 것 같고, 경호원분들이 막아주는 사이 문 열어주면 바로 들어가.”
곽상현의 말에 보호받는 대상은 든든함을, 불의를 품고 다가오는 사람은 불편함을 느끼게 할 체격의 경호원 두 명이 내게 가벼운 고갯짓을 해 보였다.
“네.”
이번 일로 회사는 급하게 경호 인력을 별도로 보충했다.
그리고 이번에 고용한 경호원은 이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오르카의 모든 스케줄을 전담 경호하는 것으로 계약이 되어 앞으로 항상 방송 스케줄을 가든, 행사를 하러 가든, 나와 다른 멤버들을 따라다닐 예정이었다.
사실 이제 와서 경호 인력을 충원하는 건 너무 늦고 내가 음악 방송 출근길에 플루토 팬들에게 밀려 넘어졌을 때부터 경호원을 고용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팬들 사이에서는 다수 나왔었다.
유감스럽게도 회사 자체가 아이돌은 처음이라 그런지 작은 일에서 미숙하고 허술한 부분이 꽤 많았다.
이번 일로 이메일이나 전화, 심하게는 팩스 항의까지 심상치 않은 양으로 받았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오현진과 있던 일은 내 잘못이 크다.
내 무모한 행동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을 회사에 미안한 마음이 적잖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병원에 있을 때 화장실 앞까지 따라오셨던 건 좀 과보호 같은데요.”
내 집을 챙기던 곽상현이 경호원들을 대신해 타박하듯 대답했다.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그 사달이 난 건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냐.”
곽상현의 반박에 지은 죄가 있는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곽상현의 예고대로 어떻게 알았는지 병원 건물에서 주차장으로 나가는 입구 근처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기자 몇이 보였다.
기자들은 내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득달같이 뛰어왔다.
모자랑 마스크를 써서 얼굴도 미리 가렸는데 나인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누가 봐도 연예인이라고 광고하는 것 같은 모자랑 마스크 때문에 알아챘나?’
다행히 경호원이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지는 그들의 진입을 제때 차단했고 그사이 나는 재빨리 차에 탈 수 있었다.
“벨트 하고.”
“네에.”
평소에는 차에 타자마자 트는 음악도 안 듣고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향해 곽상현이 물었다.
“정말 숙소로 바로 가도 되겠어?”
저건 벌써 퇴원해도 괜찮겠냐는 말이라기보다는, 한국에 있는 본가가 부산에 있어 지금은 인근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는 가족들부터 보러 가지 않아도 되겠냐는 말에 가까울 것이다.
“괜찮아요.”
사실은 원래 퇴원할 때 어머니와 아버지도 함께 올 예정이었는데.
두 사람 다 각자 분야에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있을 만큼 유명인이고 나한테 특출나게 잘생긴 외모를 물려주신 분들답게 외양 자체도 눈에 띄는 편이라.
괜히 조금 전처럼 어슬렁거리던 기자 눈에 띄면 일이 사소하게 더 복잡하고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나중에 회사에서 따로 보자고 미리 메시지로 말해 둔 바 있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지…….’
전화를 건 어머니는 혹시 자기들이 찾아가는 게 싫은 거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뜻 침착하게 들리는 말소리가 약간 떨린 것을 알아차린 나는 싫다고도 좋다고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애가 미처 두고 간 감정은 갑자기 흐른 눈물과 함께 모두 비워버렸지만, 내가 과거로부터 부득불 들고 온 감정은 여태 그대로였다.
당신 같으면 어떨 것 같냐고 쏘아붙이듯 되묻고 싶은 울화도 있었고, 사실은 와주어서 기뻤다는 약간의 반가움도 있었고, 대체 과거와 뭐가 얼마나 바뀌었길래 내게 그렇게 다정하냐는 허탈함, 진작 누릴 수 있던 박탈당했다는 것에 대한 울적함,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제로에 대한 강렬한 분노…….
그 밖에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어느 하나만을 쉽게 분리해내기 어렵도록 진득하게 혼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엄밀히 말해 나를 슬프고 한스럽게 했던 당사자는 아닌 저 사람들에게 내 응어리진 마음을 푸는 게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쉽사리 해소할 수 없는 침묵 뒤에 어머니는 내 뜻은 알겠으니 퇴원할 때 연락이라도 달라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때도 대답을 못 했는데.
‘보내야 하나…….’
나는 안전벨트를 쥐어뜯듯 만지작거리며 한참 고민한 끝에 메시지를 보냈다.
[나] [저 퇴원했어요]답은 금세 돌아왔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그래. 퇴원했다고 무리하지 말고 나중에 보자.]솔직히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내 행적을 알리는 이런 것 하나하나가 무척 어색하다.
초등학생 때도 잘 안 했던 짓인데.
아마 혼자 알아서 잘하는 형도 이런 건 안 했을걸?
그러니 저 사람들도 그만큼 어색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전화나 문자로도 이런데 이 상황에서 얼굴 보면 얼마나 불편하겠어?
적어도 오늘 오지 말라고 한 건 잘한 거다.
곽상현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그래…?”
“네. 숙소 가서 멤버들이랑 되도록 빨리해야 하는 얘기도 있거든요.”
나를 걱정하는 듯한 마음이 얼굴에 훤히 드러난 곽상현을 향해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딘지 기이한 면이 있는 가족 관계에 대한 변명만은 아니다.
곽상현은 더 파고들지 않았다.
“요한이 화 많이 난 것 같던데.”
“안 그래도 그래 보이더라고요.”
“그거 너무 신경 쓰지 마. 걔는 원래 옛날부터 속이 좁았어.”
곽상현이 기껏 가벼운 험담으로 풀어준 차 안 분위기는.
“죄송해요.”
내 사과로 단번에 묵직이 가라앉았다.
그날 내가 고집 끝에 나간 방송을 정상적으로 마친 것도 아니고, 방송 도중에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문까지 다 퍼졌으니.
비록 사과는 늦었지만, 잘못했다가는 내 실책을 책임자인 곽상현이 다 뒤집어쓸 뻔했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지 않았다.
곽상현도 그날 내가 막무가내로 부렸던 고집을 훌훌 넘기는 게 아니라 마음에 얼마쯤은 담아두고는 있었는지, 미묘한 눈으로 나를 흘긋 보았다.
이내 “후.”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쉰 곽상현이 말했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냐. 그놈이 죽, 나쁜 놈이지.”
함께 차에 타고 있는 경호원들 눈치를 룸미러로 흘끔 살핀 곽상현이 말을 바꾸었다.
원래는 죽일 놈이라고 하려던 게 분명하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감했다.
“그건 그래요.”
아마 세상 사람 대부분이 저 의견에 동감할 것이라 자부할 수 있다.
내 갑작스러운 태세 변환에 곽상현이 어이없어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렇다고 네가 그건 그래요, 하면 안 되지. 더 반성해.”
“그거랑 그건 별개죠. 내가 죄송할 게 뭐가 있냐면서요.”
다시 느슨해진 분위기로 곽상현과 말을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를 나선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쩐지 오랜만인 것 같다는 감상도 잠시.
“라온아!”
“몸은 어때?!”
아까 병원에서 마주친 기자들처럼 숙소 건물 앞에서 무턱대고 기다리고 있던 사생들을 보자마자 ‘아, 내가 숙소에 오기는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였다면 좋게 좋게 대응했을 텐데.
대낮부터 이러고 있는 당신들만 아니라면 내 상태가 훨씬 낫다는 걸 말해줄까 말까 고민하는 나를 보면 지금 내가 얼마나 저들을 얼마나 떨떠름하게 여기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번에 사생들이 존재 자체를 꺼리는 이영민은 없지만, 경호원들의 활약으로 나는 무사히 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잠시 뒤.
숙소가 위치한 층에 도착했다.
같이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은 곽상현이 혼자 내린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조금 이따 다시 올 테니까 잘 풀고 연락해라. 너무 기죽지 말고.”
“네. 고맙습니다. 이따 봐요.”
심호흡과 함께 4:1을 각오한 나는 비장하게 숙소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