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18)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18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병원 냄새보다 훨씬 익숙하고 편안한 우리 숙소 냄새가 느껴졌다.
친숙한 공기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지만, 하나둘 나타난 얼굴들을 보자마자 도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왔어? 몸은 어때?”
가장 앞까지 마중 나온 강지우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내게 선뜻 말을 걸었다.
“괜찮아.”
“점심은 먹었어?”
“아직.”
“그럼 밥부터 먹자. 일단은 소화 잘 되는 걸로 해놨어.”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싸우든 뭐든 할 새도 없이 상에 둘러앉아 끼니 거르는 꼴은 못 보는 강지우가 세심히 차려놓은 늦은 점심을 꼭꼭 씹어먹어야 했다.
장인급 주부 강지우표 음식에 붙어 있는 소소한 특수효과들 덕분에 채 회복되지 않았던 몸이 식사를 하며 서서히 본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건 그거고, 이 체할 것 같은 분위기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 때문에 지금은 다들 얌전한 것 같지만.
상을 치우는 순간 병실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재개되리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라는 생각을 할 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견성하와 눈이 딱 마주쳤다.
“…….”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홱 피하는 견성하의 눈썹이 위아래로 살짝 들썩였다.
저 녀석이 이 타이밍에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단 하나의 사실밖에 의미하지 않는다.
“흐윽…….”
바로 참았던 울음보가 터지기 일보직전이라는 것이다…….
견성하가 울거나 울려고 하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보니 이런 신호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왜 우냐…?”
그건 그거고, 갑자기 우는 이유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 나는 얼빠진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는 걸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먹던 밥 계속 먹을 만큼 뻔뻔한 사람은 아니다.
다른 멤버들도 수저를 내려놓고 견성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문결이 건네준 물을 덜덜 떠는 손으로 겨우 받아 마신 견성하가 고르지 못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흐윽, 다 같이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게 좋아서…….”
“…….”
솔직히 밥 먹다가 울면서 저런 말 하는 건 반칙 아닌가.
여차하면 싸울 생각도 일단은 만만이던 사람 굉장히 미안해지게.
“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밥을 왜 같이 못 먹냐?”
“나는 네가, 미국으로 돌아갈 줄 알고오…….”
이 자식 내가 당장 한국 떠도 이해 가능하다던 SNS 글을 본 게 분명하다.
“야… 나 안 갈 거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 훨씬 괜찮으니까 울지 마.”
“너어, 흑… 너만 괜찮으면 다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서 눈을 슬쩍 피했는데, 다른 목소리가 능청스럽게 끼어들었다.
“일단 다이기는 하지.”
온화한 얼굴로 견성하가 우는 걸 잠자코 지켜보던 강지우였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반박이 들어오자 견성하가 살짝 당황하며 횡설수설했다.
“그래도 다, 다는 아니고… 대부분으로 해요. 영민이 형도 다쳐서 지금 입원했잖아요…….”
“그렇네. 성하 말이 맞다. 그래도 영민이 형 치료 잘 받고 계시다니까 대부분 괜찮은 걸로 하자, 그럼.”
그런 걸로 하자는 강지우의 허접한 마무리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 견성하가 발끈했다.
“뭐라는 거예요. 저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거든요…!”
“나도 농담하는 거 아니야.”
동생을 달래듯, 혹은 놀리듯 장난스럽게 말하던 조금 전보다는 한결 진지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대부분만 괜찮아도 우린 나름 선방하면서 살고 있는 거야. 솔직히, 살면서 모든 일이 괜찮을 순 없잖아.”
살면서 모든 일이 괜찮을 수는 없다.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어본 것 같은데…….
‘아.’
리얼리티 촬영하면서 반지 교환할 때 반요한이 했던 말이다.
나는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당시 드물게 차분하고 사려 깊던 반요한의 문장들을 기억해 냈다.
–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늘 괜찮을 수는 없는 거니까.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나나 다른 애들한테 언제든지 얘기해. 이제 같은 팀이고 가족이잖아.
친구는 닮는다더니.
새삼 왼손 검지에 끼고 있는 반지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니, 근데 저 새끼는 반지 어쨌어?’
견성하가 울든 말든 일찍이 자기 식사 마치고 태연하게 강지우가 미리 잘라놓은 복숭아를 아삭아삭 씹어먹던 반요한의 왼손 검지에 팀 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저번에 병문안 올 때도 없었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 보라는 듯 반지를 빼놓은 것 같은 녀석이랑 눈이 잠시 마주쳤는데 평온한 표정 아래 여전히 화가 나 있다는 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견성하는 내가 팀을 나가는 것보다 반요한이 내 얼굴 보기 싫어서 복학해 버리는 걸 더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아직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아니면 미리 알고 있던 건지.
이제 울음을 어느 정도 그친 견성하가 반요한은 신경도 쓰지 않고 강지우에게 가볍게 싫증을 냈다.
“뭔 소리예요.”
싫증보다는 언제든 자기 편이 되어줄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형에게 투정 부리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최종 보스도 길이길이 남을 명언으로 감화시켜 세계 평화를 이룩할 것 같은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견성하에게 물을 새로 따라 준 강지우가 이번에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괜찮은 것 중 하나가 막내가 무사하다는 거란 게 나는 정말,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응.”
“그리고 이제 안 괜찮은 것도 괜찮게 만들어 보자.”
강지우가 분명한 어조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같이.”
* * *
강지우가 리더답게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보란듯이 반지를 빼놓은 반요한이나 내가 서주원과 합의를 본 이후 본가에 다녀왔던 서문결과 진득하게 대화할 시간이 바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틀 동안 입원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만큼 외부에 대응하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난히 안쓰러워 보이는 눈물로 내 죄책감을 유발했던 견성하와는 어느 정도 관계를 푼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게 질투가 난다고 스트레이트로 고백했던 견성하는 수치스러워하면서도 의외로 자기 속마음을 내보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편이었다.
“미안해. 그때 병원에서 그랬던 건 내가 힘들 때 넌 나를 도와줬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 게 속상해서 화낸 거야.”
“아니야. 나도 미…….”
“넌 미안하다고 하지 마. 네가 힘든 걸 못 알아챈 내가 나쁜 거니까……. 내가 쓰레기야…….”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호된 자학이었다.
“알았으니까, 아니, 너 쓰레기 아니니까 그만 좀 울어…!”
그리고 저때 문 뒤에 허술하게 숨어서 다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견성하와 녀석을 열심히 달래는 내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던 강지우와도 간단히 얘기를 나눴다.
“솔직히 서운했어.”
“미안.”
“이젠 안 그럴 거지?”
“당연하지.”
살면서 계단에서 떨어질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내 흔쾌한 답변에도 강지우는 무언가 탐탁하지 않은 눈치였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반요한 걔는…… 내가 봤을 때 화는 어느 정도 풀린 것 같거든.”
“반지 아예 뺐던데. 나 때문에 뺀 거 맞지?”
부드럽던 강지우의 표정이 조금 찌그러졌다.
“자기 말로는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헛소리고. 다 걔가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어휴, 성하만도 못한 놈.”
곧잘 어울리는 친구에 대한 평가가 박했다.
“요한이 형이 내 단독 행동 때문에 우리 활동 차질 빚을까 봐 화난 건…… 아니지?”
“아니야.”
역시 그랬다.
만약 내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이후 활동에 애로 사항이 생길까 봐 저러는 거라면, 녀석이 여태 꽁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내 몸은 지금 멀쩡하니까.
“왜 화난 건지는…… 내가 말해주는 것보다는 너 혼자 힘으로 잘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그렇게 말한 강지우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너도 걔가 막말한 건 꼭 사과 받고.”
“응.”
때때로 내 상태를 묻는 서문결은 자기가 먼저 내가 충분히 여유로울 때 얘기하자고 말해준 바 있었고.
문제의 반요한과는 그런 말도 못 해봤다.
반요한도 반요한인데, 나도 다른 문제를 어느 정도 처리한 다음 맑은 정신으로 얘기하고 싶어서 녀석에 대한 접근을 삼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돌아다니는 반요한 사진이 찍히고, 손에 반지가 없는 걸 누가 발견해서 불화설이 나고, 그룹이 터지면…….
“하아…….”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작은 한숨 소리를 놓치지 않은 어머니가 물었다.
“아, 아뇨.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도 지금은 집중하자.
회사로 온 내 옆에는 부모님이 자리하고 있었고, 변호사와 반가을을 포함한 회사 직원 몇이 동석했다.
“일단 트루 쪽에서는 최대한 잘 풀어보고 싶다고 우리랑 일단 얘기부터 해보고 싶다는데, 그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일단 회사에서 잘라냈습니다만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시다면 편히 말씀해 주세요.”
이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고소할 거지?”
“네.”
회사에 오기 전 오현진을 고소하는 것에 대한 모든 고민을 마쳤던 나는 아버지의 물음에 간결하게 긍정했고 뒷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건 상대적으로 적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고소장을 접수하고 얼마 뒤에 경찰서로 가서 고소인 조사를 좀 받고.
다들 나보고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이미 큰 일을 지나와서 그런가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군가를 사적인 원한으로 고소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 다 해주는 좋은 여건에서 미리 한 번 경험해 보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쪽에서 오현진을 고소했다는 기사가 나자 트루 쪽에서도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곧장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였다며 맞대응했다.
그래도 오현진의 헌트레드나 안네를 비롯한 트루 소속 아이돌들의 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차라리 어디 숨어 있는지 모를 제로의 수작 때문에 나를 계단에서 민 오현진 한 명만의 문제였다면 녀석만 탈퇴시키는 식으로 상황을 어느 정도 모면할 수 있었겠지만.
트루 출신 피해자들에 의해 헌트레드라는 그룹 자체가 가해자 집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헌트레드의 국내 팬덤은 풍비박산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