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5)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5화
저쪽 무대 위에서 춤추던 A등급 연습생들을 비롯한 다른 등급 연습생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쭉 빼고 이쪽을 봤다.
“무슨 일이야?”
무전을 받고 온 촬영 감독과 조인수 PD가 무대 아래에서 이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옆에 있던 스태프가 설명했다.
“라온이가 많이 피곤한가 봐요. 코피가 났는데 잘 안 멈추네.”
지금은 스태프가 급하게 무대 아래에서 던져준 티슈로 코를 막듯이 누르고 있었다.
“피 봐.”
“이거 계속해도 되는 거야?”
연습생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소곤거렸다.
누가 들으면 피를 입으로 토한 줄 알겠다.
코를 막아 맹맹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들 그렇게 심각해?”
“심각한 건 너고. 지금 비주얼만 보면 곧 죽을 환자야.”
인상을 찡그린 반요한이 새로 뽑아 준 흰 티슈에 피가 금세 번지는 모양새가 보인다.
이제 보니 처음에 코를 급히 감싸 쥐었던 손에는 피가 넓게 말라붙었고, 발밑에는 내가 흘린 피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다른 애들이 쉬고 싶어서 괜히 과장되게 반응하는 줄 알았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진짜 심각한가?’
휴지를 가져다주면서 나를 안쓰럽게 보던 스태프가 물었다.
“라온아, 계속할 수 있겠어?”
못 하겠으면 안 시킬 거예요?
그런 말이 혀끝까지 나올 만큼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
촬영 감독이 마뜩잖은 어조로 타박했다.
“라온이 너는 이렇게까지 상태가 안 좋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컨디션 관리도 실력인 거 몰라?”
애초에 적당히 휴식 시간을 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닌가.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유순하기 그지없다. 저쪽은 갑, 나는 을.
“죄송합니다….”
[특성 ‘천생가련天生可憐’의 효과로 다수의 마음이 약해집니다.]촬영 감독과 조인수 PD의 표정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데 이거 좀 사기인 것 같아. 측은지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더니.
이때다 싶어 더 아프고 힘든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바로 옆에 있던 반요한은 ‘뭐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이런 알림이 떴다.
[다수의 인물이 현재 상황과 당신의 외모가 시너지를 이루는 연기에 넘어갔습니다. 연기력 +2]내 외모가 불쌍해 보인다는 거 아닌가.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아무튼 이런 돌발적인 상황을 촬영 감독이나 조인수 PD도 아예 무시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말이 잘못 퍼졌다가는 연습생 혹사시킨다고 기사가 날 수도 있다.
먹잇감을 찾은 기자에 의해 코피 하나도 얼마든지 더 심각한 일로 둔갑할 수 있었으니까.
대중의 관심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에 큰 오점이 생길 여지를 남길 바에야 좀 쉬게 하는 편이 낫지.
과연 촬영 감독이 지시를 내렸다.
“20분 쉬다 다시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한 몸 바쳐 얻어낸 휴식이다. 소중히 여겨라.
이러다 누구 한 명 쓰러질지 모른다는(예를 들면 나) 경각심이 들었는지 촬영 감독은 그 이후로 휴식 시간만큼은 꼬박꼬박 줬다.
피로도는 리허설을 하면서 100이 되기 직전까지 쌓였다가 조금씩 떨어지고, 다시 쌓이는 것을 반복했다.
상태이상이라는 쓰레기 같은 페널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이상 나는 틈날 때마다 상태창을 열어 피로도를 확인했다.
피로도가 95까지 차는 걸 보고 몇 번이나 기겁했는지 모른다.
“얘들아, 내일도 이렇게만 하자.”
만족할 만큼 연습생들을 쥐어짜는 데 성공한 촬영 감독이 말했다.
“수고하셨고 컨디션 관리 잘하고 내일 봅시다.”
나를 슬쩍 흘기기는 했으나 리허설 초반에 댄서 역할을 맡은 F등급 연습생들이 우는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조인수 PD도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 * *
다음 날 사전녹화를 위해 찾은 체육관은 어제와 비교도 되지 않게 분주했다.
미리 받은 문자에 체육관 안에 있는 임시 메이크업실로 가라고 되어 있어서 갔더니 먼저 온 연습생들이 바쁘게 스타일링을 받고 있었다.
단체 의상은 다양한 스타일의 교복이었다.
내가 받은 것은 차분한 네이비색 블레이저였지만 김준우는 일본어로는 가쿠란이라고 하는 옛날식 교복을 받았다.
가슴 쪽에는 금화살이 관통한 체리색 하트 배지를 하나씩 달았다.
흰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는 다 똑같았는데 목에 한 것은 또 여러 종류가 있었다.
붉은색 넥타이를 한 사람이 제일 많이 보였고, 같은 색의 보타이, 리본 타이와 같은 것도 꽤 보였다.
나는 아예 가늘고 긴 리본 끈으로 된 넥타이를 스타일리스트가 해주었다.
의상을 입은 다음에는 메이크업을 받았다.
인원이 많아서, 그리고 아직은 순수해야 하는 연습생이라서 진짜 무대화장처럼 짙고 화려하게 해주지는 않아도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개스템아, 호박은 아니거든? 덜 익은 수박이거든?
얼마나 나아졌나 싶어서 거울을 봤는데 흐리던 인상이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화장이 굉장히 잘 먹었다며 감탄했다.
화장 하나 했다고 매력이 거의 2배가 되다니. 2배가 됐는데 아직도 한참은 덜생겼다니.
“준비 다 된 연습생은 나와서 대기할게요!”
조금 뒤 100명의 연습생이 준비를 모두 마치고 예의 그 하트 무대 위아래에 있는 자기 자리로 향했다.
자리 배치는 어제 리허설을 하며 다 정해둔 터였다.
제나를 비롯한 멘토들도 왔다.
무대 위에 선 우리를 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저들끼리 대화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담았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넓은 체육관에 귀 아픈 음악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어제보다 옅어진 장밋빛 조명을 받으며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후 삼백 번은 췄을 것 같은 춤을 추고, 입 모양으로 노래를 불렀다.
너와 눈을 맞추고
네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난 너의 심장을 노려
Heart a-ttae-ttae-tack!
곡이 끝날 때쯤 고개를 드는 안무에서 무수히 많은 꽃가루가 우리를 향해 하늘하늘 떨어지는 것을 볼 때는 순간, 작고 선명한 환희가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그대 선택은 완벽할 테니
너무 늦기 전에 내 손을 잡아줘
뻗었던 손을 거둘 때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는 성취감이었을까.
동시에 이건 단지 게임이라는 생각에 아주 약간, 정말 조금 슬픈 마음이 들어 미소가 흐려졌다.
그걸 자각하자마자 다시 표정 관리를 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연습생들을 찍고 있었다.
어떤 샷이 잡힐지 모르니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됐다.
“좋다! 진작에 이렇게 하면 됐잖아.”
촬영 감독의 너그러운 말에서 어제만큼 힘들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챈 연습생들이 숨을 고르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촬영은 10번 정도 반복된 이후 끝났다.
그래도 본방이라는 생각에 촬영마다 최선을 다해서 기력 소모는 어제와 비슷했던 것 같다.
무대 촬영이 끝난 걸 확인한 무대 앞쪽으로 가까이 다가온 멘토들이 마이크를 들고 차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고생 많았다. 이제 시작이다. 너희 아이돌 같다. 앞으로 더 잘해라, F등급 울었다며.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A등급은 자기가 제일 위에 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그러다 마이크를 잡은 제나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누가 힘들어서 코피까지 흘렸다며.”
“온라온이요!”
혜성 반 연습생들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런 건 대답 안 해도 돼 새끼들아….
“라온이야? 어이구, 고생했다. 그래도 체력 관리는 잘해야 해. 알았지?”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하다. 촬영 감독이 했을 때는 그렇게 듣기 싫던 말이 제나가 하니까 의미 있는 충고처럼 들렸다.
빛제나에게 공손히 알았다고 답하자 그녀는 웃으며 다른 연습생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했다.
연습생들도 감격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여러분은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그래도 다들 너무너무 잘했어요. 대견하다, 정말. 그동안 모두 고생 많았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첫 번째 과제가 끝났다.
* * *
바로 다음 날, 연습생들은 픽하트를 방송하는 채널인 뮤직박스 본사가 위치한 상암 ALT 센터 앞으로 모였다.
100명의 연습생이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첫 행사인, 미니 팬미팅을 위해서였다.
연습생들은 어제와 같은 교복을 차려입었다.
오늘은 명찰도 받아서 가슴 쪽에 하트 배지와 함께 달았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연습생의 이름을 알 수 있도록.
한 번 데뷔한 경험이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연습생에게는 팬이랄 것도 없었지만, 일단은 팬미팅이라는 행사답게 와준 팬들에게 뭐라도 들려 보내는 게 도리였다.
그 준비를 위해 우리는 손바닥만 한 카드에 손편지를 썼다.
이 카드는 제작진이 준비한 종이 가방에 간단한 기념품과 함께 담아 팬에게 줄 예정이었다.
책상이 부족해서 평평한 곳에서라면 어디에서든 연습생들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예 맨바닥에 엎드려서 쓰는 녀석들도 보였다. 옷이 더러워지는 걸 신경 쓰기에는 공간이 너무 부족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 연습생들은 번역기 앱을 켠 핸드폰을 옆에 두고 느리게 글자를 따라 그리고 있었다.
저렇게 해서 2장은 쓸 수 있을까 싶지만,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거겠지.
잠시 뒤 스태프가 돌아다니며 5분 안으로 정리하고 이동해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연습생들의 손이 한층 바빠졌다.
내가 3번째 편지를 다 썼을 때 시간이 다 되었다.
스태프들이 연습생들이 쓴 편지의 개수에 맞춰 픽하트 로고가 그려진 종이 가방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각자 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본사 건물을 돌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다녔다.
100명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모습은 정말 어지러웠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잠시 현타가 왔지만 그냥 학교에서 단체로 방송국 구경을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픽 유어 하트 3 연습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층까지 인사를 다 돈 후에야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도 전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괜히 들리는 것 같았다.
자연히 산만해지는 연습생들을 앞에 둔 스태프가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등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연습생들은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네!” 하고 우렁차게 답했다.
그들의 시선은 닫힌 유리문 너머를 향해 있었다.
유리문 밖으로 중앙에 공간을 둔 채 세워진 펜스와 그 밖에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보였다.
당연하게도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여자였다.
손에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사다리에 올라가 옆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위쪽으로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유리문 밖에서 연습생들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장은 더 시끌시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