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4)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4화
나는 며칠 동안 고수종 할아버지와 더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쿵짝이 잘 맞는다고 해야 하나.
할아버지는 나한테 이것저것 일을 시키는 편이셨다. 은근 힘이 들어가는 집안일을 잡다하게 하다 보니 체힘민도 소소하게 올랐다.
또 할아버지는 장기와 수다를 즐기셨다.
혼자 살다가 나라는 얌전하고 차분하고 싹싹한 말 상대를 찾았으니 얼마나 기쁘셨겠어.
그 덕에 멋쟁이 할아버지의 패션 철학을 열 번은 들은 기분이다.
현실에서 내 패션 철학은 패완얼이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패션계에 길이 남을 그 명언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하고 다녔지.
하지만 여기서 옷 거지같이 입으면 변명거리도 없다.
나중에 옷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다니는 거 할아버지한테 들켰다가는 저번에 결혼 안 한다고 했을 때보다 더 혼날지도…….
어떤 잔소리를 하실지 상상만 해도 무섭다.
또한 고수종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는 며칠은 이 세계에 대해 알아볼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게임 속에 떨어진 후 처음으로 큰 걱정과 불안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요 며칠뿐이었다.
우선 ‘온라온’에 대해 알아낸 것은 거의 없다.
학생증 외에 단서가 될 만한 유일한 소지품이었던 핸드폰은 포맷이라도 한 것처럼 깨끗했기 때문이다.
오는 연락도 픽하트와 관련된 이들밖에 없었다.
신상 파악을 위해 나름대로 몇 가지를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큰 성과는 보지 못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밖에 이 게임 속 세계에 대해 알아낸 사실을 요약하자면, 당연하게도 내가 아는 많은 것들이 이곳에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즐겨 듣던 노래, 온종일 몰두하던 게임, 혼자 눈물 콧물 흘리며 본 충견에 대한 영화…….
이 세계의 그 누구도 내가 아는 것을 모른다.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쪽은 전부 어딘지 낯익으면서도 실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모르는 프랜차이즈가 배달 앱에 가득했고, 하다못해 편의점이나 치킨집 이름까지도 달랐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이름이 유×브가 아니라 위튜브라니. 유명 SNS 이름이 인×타그램이 아니고 스타텔이라니.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같은 유명인의 면면 역시 전부 새로웠다.
게임 개발자는 이걸 하나하나 구상하고 설정한 건가.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천재가 아닐 수가 없다.
다만 현실에 있는 작품과 비슷한 것도 꽤 보였다.
예를 들어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한 현실의 천만 영화와 비슷한 줄거리와 분위기의 영화라거나.
어릴 적 혼자 밥을 먹으며 보던 아동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만드는 캐릭터들이라거나.
알면 알수록 기묘한 느낌이었다.
친숙하지 않은 기시감만이 가득한 세계.
‘아무튼 상식 없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정보 수집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엠스테이지’라는 음악 방송에 들어갈 하트 어택 무대 리허설 날이다.
주섬주섬 겉옷을 찾아 걸치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갈 때 현관에 내놓은 쓰레기 좀 버리고 가라.”
“넹. …악!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요. 허리 나갈 뻔했네. 할아버지는 나 없었으면 이거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떡해. 잘했겠지.”
“에이, 거짓말.”
“버릇없게 어른한테 거짓말이 뭐여?”
“저희 동갑인데요? 저 열여덟, 할아버지 일흔여덟. 용 띠동갑!”
“…내가 지팡이를 얻다 뒀는가.”
“다녀오겠습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내가 가출 청소년이라고 단단히 오해하고 계셨다.
가수가 되려고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거라고 사실에 기반한 설명을 해도 안 믿으시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 그냥 오해하시게 뒀다.
내가 가출했다는 할아버지의 믿음이 워낙 확고해서, 갈 곳 없는 플레이어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도록 [고수종] 할아버지의 AI가 프로그래밍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해봤다.
상당히 그럴듯하다.
2시간쯤 걸려 리허설이 있을 체육관에 도착했다.
스태프가 등급과 이름이 표시된 스티커 이름표와 함께 등에 B가 프린트된 주황색 조끼를 건넸다.
조끼를 입고 있던 옷 위에 걸쳐 입고, 같은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는 B등급 연습생들 쪽으로 다가갔다.
다들 긴장되는지 어려운 동작을 간단히라도 연습하고 있었다.
그중 늘 그랬듯 할당량을 끝낸 이후의 추가적인 연습에는 썩 관심이 없어 보이는 반요한을 발견한 나는 오면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형, 1분 PR 영상 어떻게 찍었어?”
“뭐, 그냥저냥.”
평소 세상만사 걱정 없다는 듯 슬슬 웃는 얼굴로 다니던 반요한은 미묘하게 차분한 낯으로 성의 없이 답했다.
답지 않게 왜 이래?
설마 이 자식….
“형, 긴장했어? 긴장해서 못 할 것 같으면 나한테 센터 넘겨도 괜찮아.”
나는 활짝 웃으면서 반요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반요한은 크게 질색하면서 내 손을 쳐냈다. 안 쳐냈으면 전에 보답으로 달아둔 포옹까지 하려 했는데.
[반요한이 이런 똥개 같은 녀석을 걱정하다니 잘 돌아가던 내 머리에 잠깐 이상이 생겼던 게 분명하다고 어이없어합니다. 반요한 호감도 +0 현재 호감도 +29]이 여우 같은 새끼가 남이 속마음 못 읽는다고 사람을 똥개라고 하다니. 넌 앞으로 여우 새끼다.
개스템에 여우 새끼. 게임 하다가 동물원 하나 차리겠다.
그런데 얘가 날 왜 걱정했지? 설마 며칠 전 일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나?
그런 거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뭘 봐?”
……저 새끼한테 미안한 마음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현실의 내 방바닥에서 굴러다니며 눅눅해지고 있을 강냉이에 미안해하자.
조금 뒤 연습생들이 한곳에 모이고 촬영 감독과 픽하트의 메인 연출, 조인수 PD가 우리 앞에 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 맡게 된 신재한입니다.”
뒤에 길게 이어진 촬영 감독과 조인수 PD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리허설 시작할 건데 무대 위에 서는 A등급부터 무대 아래에 서는 F등급까지, 완벽하게 맞추기 전까지 집에 갈 생각은 하지 마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완벽하게 맞으면 저희가 다 A지 왜 BCDF겠어요.’
그런 말이 혀끝에서 돋아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갑한테는 대드는 거 아니야.
무대는 하트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하트 모양 무대 4개가 뾰족한 부분이 안쪽으로 가도록 순차적으로 모여 마치 네 잎 클로버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조명은 전의 멘토 평가 때처럼 장밋빛이었다.
무대가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본 옆에 있던 전 묵혜성 반 연습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인다는 건 알았는데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저 위에서 춤추는 거 가능?”
목소리만큼이나 동공도 떨리고 있었다.
“걱정 마. 지구도 지금 돌고 있는데 사람들 멀쩡히 움직이잖아.”
“전 반장님아, 참 안심되는 말 고맙다.”
“이 정도야 뭘.”
조금 뒤 살구색 이어셋 마이크를 형식적으로 착용한 각 등급 연습생들이 제 위치로 향하고, 리허설이 시작됐다.
* * *
다시, 다시, 다시. 그리고 또 다시.
리허설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이건 거의 똥개 훈련이나 다름없다.
한 번만 제대로 춰도 힘든 걸 약간의 텀만 두고 계속하려니 따끔거리는 목에서 피 맛이 올라오는 것 같다.
댄스 브레이크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내일 녹화 때도 이러면 큰일인데.’
아까는 피로도가 70에 달했다는 경고성 알림도 왔다.
다 때려치우고 그냥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옆에 있는 다른 연습생들을 보면서 악으로 버티다 보니 의지도 오르더라.
중간에 휴식 시간이라도 주면 모르겠는데, 팔다리를 멈출 수 있는 시간은 촬영 감독이 끔찍한 “다시!”를 외치고 움직이는 무대가 원상태로 돌아갈 때뿐이었다.
부디 ‘다시’라는 말을 프로그램 금지어로 정했으면 좋겠다.
“거기 C등급 제일 왼쪽! 그래, 너. 박자 안 맞잖아! 다시!”
또다시 촬영 감독이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그쪽보다는 저쪽이 훨씬 틀렸거든요. 실수를 제대로 고쳐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틀렸다고 윽박만 지른다.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내 뒤쪽에서 “×발….”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수한 연습생보다는 적당히를 모르는, 혹은 고압적인 행위를 즐기는 촬영 감독을 향한 욕 같아서 다들 기꺼이 못 들은 척해줬다.
솔직히 욕할 만하지 않나.
참고로 나는 요즘 욕을 자제하는 중이었다.
정말 진심을 담아 욕을 해야 하는 순간에 개같은 필터링 때문에 못 하면 어떡해.
이를테면 비장의 한 발이랄까.
불만을 품은 것은 방금 욕한 연습생만이 아니었다.
다른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점차 불만이 생겨나는 분위기였지만 차마 나서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녀석은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실수 없이 잘하는 A나 B등급 연습생은 말만 안 했지 살려달라고 온 안면 근육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실수가 비교적 많은 C등급 연습생이나 지뢰밭이나 다름없는 D, F등급 연습생들은 다른 연습생들에게 미안하고 민망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중간부터 추는 B등급인 내가 이렇게 힘든데 처음부터 끝까지 춰야 하는 A등급은 얼마나 힘들까.
나름 체력도 꽤 올렸는데 진짜 더 하면 딱 죽을 것 같다.
이게 대체 몇 시간 째지?
시계가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체감상 서너 시간은 너끈히 지난 것 같고.
장밋빛 같았던 조명이 이제는 핏빛으로 보인다.
피로도가 몇인지 확인해 보려는 순간 반요한이 말을 걸었다.
“괜찮아?”
“어. 괜찮아.”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그런가? 당장 쉴 수도 없으니 사실 별 의미가 없는 대화였다.
다시 한번 괜찮다고 하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 옆에 있던 다른 연습생이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반요한의 표정도 비슷했다.
“야, 온라온 코피 나!”
그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코 아래쪽에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났다.
코피?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는데.
…라는 생각을 할 때였다.
[피로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피로도 대신 HP가 감소합니다. 휴식을 권장합니다. 피로도 관리에 유의하세요.] [피로도 관리 실패 페널티로 상태 이상: 출혈(부위: 코)에 걸렸습니다.]…진짜 이 개 같은 게임은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이쪽을 본 스태프가 깜짝 놀라 무전으로 상황을 알렸다.
[지혈하지 않으면 1분마다 HP가 5씩 감소합니다.] [상태이상: 출혈(부위: 코)로 인해 HP –5]미친 건가?
레벨도 오르고 체력도 오르면서 HP가 꽤 늘어 당장 어떻게 될 걱정은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코피 흘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진짜 미치겠다.
옷 소매로 무심코 코언저리를 누르려다가 몇 벌 있지도 않은 옷에 차마 피를 묻힐 수가 없어서 직전에 멈췄다.
옷 한 벌의 소중함을 이렇게 느끼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윽고 상황 전달이 됐는지 이러는 동안에도 A등급 무대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던 B등급 무대가 멈췄다.
주위에 있던 B등급 연습생들이 근처로 몰려들어 괜찮냐고 묻는 소리가 뒤늦게 귀에 들어왔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조명 때문인지 시스템의 특수 효과인지 시야가 붉다.
[지혈하지 않으면 1분마다 HP가 5씩 감소합니다.] [상태이상: 출혈(부위: 코)로 인해 HP –5]아, 알았다고. 두 번씩 말할 필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