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3화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는 연습생도 있었지만 나는 녹음 쪽이 더 흥미로웠다.
따뜻한 물을 종이컵에 받아와 홀짝이며 군데군데 비어 있는 소파에 앉아 녹음하는 것을 구경했다.
“여기는 좀 더 시원하게 앞으로 내뱉는 것처럼 불러볼게요. Heart a-ttae-ttae-tack! 이렇게.”
“네!”
시스템창이 뜬 것은 정하늘이 16번째 연습생에게 지시하는 걸 듣고 그 부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였다.
[노래: Heart attack – 노래 목록에 등록되었습니다.]과연 노래 목록에 하트 어택이 새로 생겼다.
애초에 나는 시스템의 도움 없이 이미 보편적인 의미의 숙지를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조금 더 일찍 성공하지’ 하는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니 그냥 잘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 *
그 상태로 3시간쯤 대기했다.
중간에 정하늘이 쏜 샌드위치도 먹었다. 맛있었다.
다시 1시간 정도 대기한 뒤에야 내 차례가 왔다.
“온라온 연습생 들어가 주세요.”
“네!”
“편하게 해요.”
“네.”
헤드셋을 끼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고요한 공간에 혼자 있으니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고음 하이라이트가 아닌 이상 특별히 부르기 어려운 것도 없어서 정말 편하게 불렀다.
일단 다 불렀는데. 정하늘은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케이. 괜찮은데….”
괜찮은데…?
그런 불안한 연결 어미로 끝내지 말고 얼른 다음 말을 해주세요.
“메인 파트 한번 불러 볼래?”
“메인이요?”
뜻밖의 말에 몇 초간 눈만 깜빡이다가 반문했다.
정하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평가 영상 볼 때도 온라온 씨 분위기가 이 노래에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는데 메인 파트를 주기에는 좀 인상이 약한 감이 없잖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직접 들으니까 느낌이 확 사는 것 같아서,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괜찮죠?”
“네!”
다른 파트 연습을 안 한 것도 아니고. 까짓거 한번 해보죠.
게임은 일단 박아보는 거라는 마음가짐을 새삼 되새겼다.
어떻게 불러야 할까.
작곡가가 일부러 이렇게 시켜볼 정도니 좀 전에 불렀던 것보다는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새삼 가사를 떠올렸다.
‘Heart attack’이라는 제목답게 부르자.
진홍색 목소리로 열렬하게, 치열한 호흡으로 간절하게.
당신의 마음을 있는 힘껏 공격하는 건 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해 잊히는 것 또한 나일 테니.
[정하늘이 묘하게 취향을 저격하는 당신의 음색에 빠져듭니다. 정하늘 호감도 +2 현재 호감도 +2]그런 간절함을 소리에 담기 위해 ‘내 얼굴 돌려줘’ 혹은 ‘집에 보내줘’ 따위의 생각을 하며 불렀는데 옳은 선택이었나 보다.
“아, 좋아요. 그다음도 한번 해볼까?”
“해보겠습니다!”
[정하늘이 당신의 음색에 점점… 점점… 빠져듭니다……. 정하늘 호감도 +4 현재 호감도 +6]“2절에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여기 다음 줄까지 해봅시다.”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그대 선택은 완벽할 테니 너무 늦기 전에 내 손을 잡아줘.”
[정하늘이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 합니다. 정하늘 호감도 +8 현재 호감도 +14]“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지? 트루 출신이랬나? 녹음해 본 적 있어요?”
“감사합니다. 많이는 안 해봤어요.”
저 밖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트루 엔터 오현진의 눈치를 남몰래 살피며 답했다.
‘대형에서 3년을 버텼는데 한 번쯤은 해봤겠지. 아니면 말고.’
다행히도 정하늘은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을 상기했는지 자세히 묻지 않고 수고했다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믹싱 과정에서 이렇게 녹음한 게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녹음 부스를 나왔다.
내 다음다음 순서인 나가세 리츠가 웃으면서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어색한 문장에 일본인 특유의 올망졸망한 이모티콘까지 붙어 있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리츠도 잘해, 어… 파이팅.”
“응. 파이팅.”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질 때가 되어서야 37명의 녹음이 모두 끝났다.
누구보다 피곤해 보이는 정하늘이 연습생들을 앞에 두고 마무리 말을 했다.
“오늘 정말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으셨고, 무대 녹화도 오늘처럼 열심히 해요.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체로 조용하던 스튜디오가 각자 짐을 챙겨 나가느라 부산스러워졌다.
녹음을 마친 연습생은 먼저 보내도 됐을 텐데. 그러지 않는 게 픽하트 제작진다웠다.
맨몸으로 온 나는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둔 패딩만 집어 들고 나갔다.
누군가 내 팔을 잡은 것은 그때였다.
돌아보니 오현진이었다.
말로 부르면 되지 뭘 또 잡아?
배려 없는 행동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도 떨어뜨릴 뻔했다.
미끄러지는 핸드폰을 간발의 차로 꽉 쥔 나는 까닭 모를 꺼림칙함에 짧게 물었다.
“왜요?”
“은규 형이랑 도경이 온댔어. 오랜만에 얼굴 보고 가.”
얘 왜 말 놓지. 사석이라 그런가?
호감도가 그 모양인 것치고는 친근한 태도를 보이는 오현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그제야 오현진은 힘주어 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았다.
나는 다른 연습생 몇 명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생각에 잠겼다.
‘은규 형’이나 ‘도경’은 ‘온라온’이 트루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연습생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굳이 얼굴을 보고 가라 말할 정도면 꽤 친했나? 아니면 원래 같은 회사 다닌 사람들끼리는 예의상 이러는 건가?
방에 틀어박히느라 그나마 있던 대인 관계도 대부분 끝장난 게 워낙 오래전이라 이런 일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쨍한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따라와.”
톡을 확인하던 오현진이 그렇게 말하고는 앞서 걸어갔다.
조금 걸어가자 좀 전에 들은 이름이 머리 위에 떠 있는 남학생 둘이 보였다. 그들도 나를 발견했다.
“회사 나가더니 얼굴 좋아 보이네?”
“오랜만이다.”
나는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을 속으로 읽었다.
이은규, 한도경.
대단한 수준으로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아예 일반인 같지도 않은 남학생 둘이 나와 오현진을 맞았다.
말을 놓을까 높일까 갈등하다가 그냥 놓기로 했다. 이렇게 따로 보자고 할 정도면 놓아도 큰 문제는 없겠지.
“오랜만. 잘 지냈어?”
일상적인 안부 인사를 했을 뿐인데 이은규와 한도경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혹시 못 지냈냐?
잠시 뒤 웃는 얼굴을 해 보인 이은규가 답했다.
“아, 당연히 잘 지냈지.”
“다른 애들도 너 많이 보고 싶어 해.”
“그래? 나도 보고 싶다고 전해줘.”
이 게임이 미연시라면 호감도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질 이유가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도경이 당신이 술이라도 마신 건 아닌지 의심합니다. 한도경 호감도 -4 현재 호감도 -41] [이은규가 당신이 머리를 다친 건 아닌지 의심합니다. 이은규 호감도 -4 현재 호감도 –42]뭔데?
오현진보다도 호감도 상태가 심각했다.
이렇게 싫어하면서 왜 굳이 찾아와서 보고 싶다고 한 건지.
사람 마음 참 어렵다.
아니면 ‘온라온’이 생긴 것답지 않게 깡패짓하다가 쫓겨났나? 그래서 호감도가 망했나? 내가 너희 괴롭혔니?
단 두 마디만 했을 뿐인데 한도경과 이은규는 확연히 당황한 것 같은 눈치였다.
옆에 말없이 선 오현진은 두 사람에게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지만 굳이 나서지는 않았다.
그때, 거리의 가로등이 깜빡이는 소리를 내며 하나씩 켜졌다.
네 사람의 그림자가 거대한 괴물처럼 길게 늘어진 광경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네랑 더 얘기하면 안 될 것 같다.’
타당한 이유는 없는, 단지 감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 가리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 소속사 놈들한테 크게 덴 이후로 이런 쪽 감은 제법 날카로워진 편이다.
그런 내 판단을 인정한다는 듯이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예민한 직감으로 올바른 판단을 했습니다. 직감 +1]내 정보창에 직감 스탯이 새로 생겼다.
잘만 쓰면 사기 스탯이 될 것 같은데, 올릴 스탯이 많아지는 건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다.
잘못하다가 레벨만 오르고 제대로 하는 것 없는 잡캐 되지.
그때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한도경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내 어깨에 자기 팔을 두르며 말했다.
“우리 지금 저녁 먹으러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
호감도 -41 주제에 어디서 친한 척이야.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빼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이만 가 볼게.”
“어, 어어. 그래. 가 봐.”
굳이 불러내기까지 한 것치고 녀석들은 나를 순순히 보내줬다.
단지 나를 의심한다는 문구와 함께 호감도가 다시 떨어졌을 뿐이다.
대체 이 몸 주인이 뭔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호감도가 저렇게까지 막장으로 떨어져 있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냥 망한 대로 두자.’
지금은 게임 초반이니까 플레이어의 불안감을 십분 조장하는 떡밥을 던져 놓는 단계고, 메인 스토리 진행되면서 알아서 풀리겠지.
얻은 건 직감 스탯뿐인 석연찮은 만남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기다리는 사람은 물론 고수종 할아버지인데.
– 나갔다가 갈 데 없으면 오든가.
…이 말 하나 믿고 진짜 가도 되나?
‘그냥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냐고 쫓아내시면 어떡하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연히 다시 들어갈 생각으로 캐리어도 두고 나오기는 했지만.
어차피 밤이 깊어지고 아무것도 없는 내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기어들어 가겠지만.
‘만약에 왜 또 왔냐고 하시면…….’
괜히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타야 하는 버스를 세 번쯤 그냥 보냈을 때였다.
시려서 주머니에 넣은 손에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고수종 할아버지였다.
[올때..휴지 사와라..3겹으로..]휴지! 중요하지!
문자를 읽자마자 벌떡 일어나 문이 막 닫히려는 버스를 향해 달리며 외쳤다.
“아저씨! 저 타요!”
빵빵하게 돌아가는 히터 덕분인가. 한기가 들던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 * *
“저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내가 그랬잖아. 이상하다고.”
한도경의 말에 오현진이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켠 이은규가 온라온의 언행을 떠올리며 말했다.
“한국말 ×나 늘었던데. 그동안 뭐 한국어 학원이라도 다녔나.”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바뀐 수준 아니냐.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확한 추측을 해낸 이은규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햄버거를 씹던 오현진에게 눈을 돌렸다.
그럭저럭 잘생긴 얼굴에 악의가 어린다.
“아무튼 오현진 네가 잘 지켜봐. 그 새끼 사고 안 치나.”
“알았어.”
“믿는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