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62)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62화
이영민의 거대한 몸이 바닥에 그대로 부딪치며 층간소음으로 신고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의 큰 소리가 났지만 당장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비주얼적인 충격이 워낙 강해 이번에야말로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러기 전에 인형이 입을 열었다.
“접니다.”
외모와 같이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중성적인 목소리였지만, 짧은 말에도 녹아나는 숨길 수 없는 아니꼬운 어투 때문에라도 저것이 래리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이거 내 인생 장르 지켜준다고 생색내던 새끼가 장르 이탈시키고 있는데, 관리국에 항의 가능한 사유인가?
“말도 안 하고 무슨 짓인데?”
“괜찮아 보이시길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이영민에서 저것으로 갈아끼운 모양이었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얼마간 나더니 처참하던 인형의 상태도 한결 멀쩡해졌다.
“바로 고칠 수도 있고, 편하네.”
“저야 불편하기 짝이 없다고 느끼는 쪽이지만, 이런 점을 편하다고 여기는 관리자도 없지는 않은 편이죠.”
그렇게 말한 녀석이 다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리하더니 말했다.
“그럼 저는 이 인형을 처리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오래 걸려?”
“아뇨. 멀리 가지 않을 겁니다.”
래리는 쓰러진 이영민의 몸을 그대로 둔 채 나갔다.
나는 드디어 방을 제대로 둘러볼 틈이 생겼다.
일단 저 녀석의 능력 덕분에 벌레와 피를 비롯한 흉물스러운 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오피스텔은 내가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을 때와 그럭저럭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집주인한테 한 소리 듣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 집주인은 어머니던가.’
아무튼 여전히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서늘함은 괜한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데…… 편한 기분이면 이상한 거지.’
다 마시거나 마시다 만 술병들이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그사이에 취한 게 분명한 사생 두 명이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입구 쪽에 벗어놓은 옷과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들을 보니 이들이 아까 전 CCTV 영상에서 보았던 숙소 침입범들과 동일 인물인 것은 확실했다.
두 사람 다 숨은 멀쩡히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제로의 영향력에서 풀려난 이후로는 큰일 당하지 않고 자는 것일 터다.
죽은 건 아니라 다행이지만.
누가 깨우기 전까지 저 상태로 자고 있을 걸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다른 한 명은 어디 갔지?’
숙소 CCTV 영상에서 보았던 사생은 총 4명이었는데 오피스텔에는 래리가 빙의해서 사라진 사생을 포함하고도 3명밖에 없었다.
화장실이나 다른 방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제로 조종 풀린 다음에 정신 차리고 혼자 나간 건가?
영상에서 보았을 때 머리 위에 이름도 멀쩡히 떠 있었으니 제로에게 당한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관리자들이 아무 인간에게나 마음대로 빙의할 수 있었으면 굳이 ‘인형’처럼 귀찮은 걸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 여기도 경찰 불러서 CCTV 돌려보면 알겠지.’
문득 피로가 해일처럼 몰려와 나는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사생들 여기 있다고 상현이 형이랑 경찰한테 연락해야 하는데…….’
모르겠다.
나는 곳곳에 널브러진 술병들만큼이나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틀림없이 나를 좋아하는 내 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은 오늘 출근길에서 봤던 사람들이다.
오늘뿐만 아니라 며칠 전 쇼케이스에서도, 지지난번 주 음악방송 MC 출근길에서도, 그전 활동의 팬 사인회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이름을 힘껏 불러주던.
“……왜 그랬어요?”
그런 악질적인 일을 대담히 저지른 것은 제로의 영향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묻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를 물은 것은, 세뇌가 풀렸을 지금도 이곳에 계속 머무른 것이 그들 자신의 의지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며?
분명 깊이 있는 감정은 아니었겠지만, 분명 나를 사랑한다고 웃으면서 말하던 사람들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왜 그랬냐고…….”
당연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진 온라온은 그 뒤로 약 30초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더 오래 끌었다가는 근처에 있을 곽상현이 무슨 일이냐며 연락을 하거나 혹은 직접 올라올 것이다.
그전에 할 일이 있었다.
오피스텔을 나가 인적 드문 곳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CCTV에 찍히도록 인형을 조종하고 서둘러 이영민의 몸으로 서둘러 돌아온 래리는 바쁘게 움직이는 온라온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말끔히 태우고 정화했다고는 하나, 조금 전까지 송장이 핏물 고인 자리에 누워 있던 곳이다.
게다가 근처에는 여전히 술 취해 곯아떨어진 사생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성격 나쁜 관리자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온라온을 더 말리지 않은 것은 내부에 펼쳐져 있을 처참한 광경을 보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억지로 막아봤자 온라온이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 할 일을 할 수 있다니.
확실히 정신력 하나는 비범한 인간이라고 관리자가 평했다.
“뭐 하십니까?”
관리자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챈 온라온이 차갑게 답했다.
“……없어.”
“네?”
“편지가, 없어.”
문제의 진단서는 책상 위에서 발견되었지만,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자물쇠 달린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던 ‘온라온’의 마지막 편지가 없었다.
자물쇠가 아무렇게나 휘어져 뜯겨 나간 것을 보아 외부에서 억지로 힘을 가해 잘라낸 것 같았다.
정황상 제로가 가져갔거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사생이 가져갔거나 둘 중 하난데.
느낌상 사생은 아닐 것 같았다.
아무런 장비 없이 이런 식으로 자물쇠를 억척스럽게 뜯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사생이 아니라 차력사를 해야 했다.
그러니까 불꽃을 다루는 래리처럼 무언가 특별한 힘을 사용하는 제로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온라온은 판단했고 래리 역시 그에 동의했다.
래리는 관리자의 정신을 견딜 수 없는 일반인의 몸에 제로가 빙의하지는 않았을 거라고도 덧붙여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온라온은 텅 비어 있는 서랍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걸 왜 가져갔지?”
“사라진 물건은 그거 하나뿐입니까?”
“그걸 왜 가져갔을까?”
자신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편지에 대해서만 중얼거리는 온라온을 향해 래리가 내내 전화가 울리고 있는 제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저도 무척 궁금하지만, 아까부터 곽상현에게 연락이 와서, 슬슬 부르겠습니다.”
왜 이제 연락을 받았냐고 두 사람을 혼내려다가.
오피스텔에 있는 사생들을 본 곽상현은 거의 기절할 뻔했다.
저게 정상이지. 곽상현의 반응을 본 래리가 생각했다.
“너네는! 정말!”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연락할 생각을 못 했어요.”
말 그대로 핏기가 하나도 없는 온라온의 얼굴을 본 곽상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타 온라온이 미리 생각해 두었던 변명을 꺼냈다.
“사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저기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도망치는 바람에 놓쳤어요. 그 여잔지 남잔지 모르겠다던 사람이요. 그래서 더 놀라서…….”
곽상현은 아무 의심 없이 온라온의 변명을 들어주었다.
“괜찮아 너네 안 다쳤으면 됐어. 봐봐. 내가 혼자 갔으면 큰일 났을 거라 했잖아.”
“네…….”
“앞으로도 이런 일 있을 때는 혼자 갈 생각하지 말고 꼭 사람 불러서 같이 가라. 이런 일이 또 있으면 그것도 안 되는 거지만.”
이때 온라온은 생각했다.
앞으로 운신의 편의를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영민을 오르카 매니저로 다시 앉혀 놓아야 한다는 것을.
잠시 뒤 곽상현이 부른 경찰이 도착해 상황을 수습했다.
경찰들은 그때까지도 태평히 잠들어 있던 사생들을 억지로 깨워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사생들이 억울하다고, 온라온 데려오라고, 심지어는 멀쩡해 보이는 오피스텔에 시체가 있었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시끄럽게 외치는 통에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혐의가 명백해 체포는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사생 중 한 명은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참고로 사생 무리 하나가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싹 사라져서 경찰에 단체로 실종 신고되었다는 소문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실제로 실종 신고가 들어간 사생은 한 명뿐이었다.
“다른 두 명도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새벽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이, 아닙니다. 고생은 애들이 했죠.”
그동안 굳이 사생들 얼굴 보고 듣기 싫은 말 들을 것 없다는 곽상현의 충고를 따라 온라온은 차에서 쉬고 있었다.
현장에서 더 버티고 서 있기에는 체력 자체가 동이 나서 그런지, 래리가 제멋대로 능력을 빼 가서 그런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럴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던 은총도 지금은 먹통이었다.
“어휴, 정신없어.”
그때 곽상현이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셨어요? 어떻게 됐어요?”
“다 잡혀갔고, 나중에 너도 조사받으러 가야 할 것 같기는 해. 근데 그건 스케줄 봐서 내가 조정해 줄 테니까 일단은 신경 쓰지 말고 있어.”
“네.”
“저것들 이번에는 무조건 실형 받게 한다, 내가.”
“영민 형은요?”
곽상현과 함께 현장에 남았던 이영민은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사는 친척 집에서 자기로 했다고, 나중에 연락하겠다던데. 좀 이상하기는 해도 고마운 사람이야. 네 일 관련해서는 특히.”
곽상현이 이영민을 별로 싫어하는 것 같지 않으니, 나중에 꼭 끌고 와서 바지매니저로라도 앉혀 놓아야지 하는 온라온의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저 혹시, 그 사생들이 편지 같은 건 안 가지고 있었어요?”
“편지?”
온라온이 말하는 것을 평소 팬들에게 받고는 하는 팬레터로 알아들은 곽상현이 이 상황에 그런 생각이 나냐는 듯 되물었다.
“아뇨. 팬레터 말고, 원래 집에 있던 아는 사람이 준 편지인데요.”
온라온의 침착한 설명에 곽상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 그런 거야? 그런 말은 따로 없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볼게.”
“네. 감사합니다.”
어제 컴백 무대를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며 곽상현이 푸념하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얼마 뒤.
“형, 저 혹시…….”
출발 후 내내 조용하던 온라온이 곽상현을 불렀다.
애가 자는 줄 알았던 곽상현은 온라온의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 * *
새벽 2시 경.
오르카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던 에어리들의 휴대폰에 알림 하나가 도착했다.
[오르카(ORCA)가 라이브를 시작했습니다.오르카(ORCA): (소리 나지 않는 확성기 이모티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