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54)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54화
첫째 날, 서문결은 점심을 먹으면서도 안무 노트에 삼색 볼펜으로 선을 휙휙 긋더니 밥을 다 먹을 때쯤 안무를 끝까지 완성했다.
맨 뒷장에 점 두 개를 탁탁 찍고 그대로 끝났다고 말하던 서문결의 쿨워터 향 진동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저게 멋이고 간지다.
옆에서 밥을 먹으며 곁눈질로 그 과정을 지켜보던 다른 연습생, 특히 댄스 포지션 연습생들은 질린 표정을 했다.
문외한인 내가 봤을 때는 그저 좀 신기하게 느껴질 뿐이었는데 뭘 아는 사람들 눈에는 징그러울 만큼 대단한 짓이었나 보다.
“봐도 돼?”
“응.”
허락을 맡고 본 안무 노트는 이런 걸 처음 본 나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몇 페이지에 걸쳐 수많은 막대 인간들이 안무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보통 막대 인간이 아니었다.
엄지손가락보다 한참 작은 사람 하나를 그려도 내가 그리면 졸×맨이었고 서문결이 그리면 애니메이션 아트였다.
저번에 1분 PR 영상에서 했던 비누 조각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손으로 하는 일에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 인간 진짜 멀쩡한 자아 말고 다 갖췄어.
어쨌든 그 덕분에 나는 그림만 보고도 어떤 춤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쭉 보다 보면 어떻게 흘러갈지 머릿속에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고나 할까.
“라온, 그거 보면 뭔지 알아?”
“어. 완전 알겠는데?”
“오…….”
옆에서 같이 보던 카일이나 징샤오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걸 왜 모르지?
아무튼 나는 이해했으니 됐다.
그렇게 노트를 팔락팔락 넘기며 사람을 알파벳으로 나타내 전체적인 동선을 표시해 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안무 숙지 시도 알림이 떴다.
[안무: 서문결_17××××(임시) – 숙지하시겠습니까?] [Y/N]‘안무 노트만 봐도 숙지가 되는구나.’
당연히 Y를 눌렀다.
[안무 숙지 성공!] [안무: 서문결_17××××(임시) – 안무 목록에 등록되었습니다.]이렇게 바로 숙지하는 건 또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안쓰러운 수준의 내 지능·지혜로도 무리 없이 숙지 가능할 만큼 안무가 쉬웠다는 거겠지.
서문결은 전반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동작 위주로 안무를 구성했다.
춤 실력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징샤오와 이제 겨우 한국식 안무에 익숙해져 가는 나가세 리츠를 특히 배려한 듯싶었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얘네 날로 먹는 거 아니야?’라고 할 만큼 쉬웠지만, 일반인의 반응은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얼핏 보기에 잘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크고 임팩트 있는 동작들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었거든.
여섯 명이 군무만 제대로 맞춘다면 ‘대단하다’라는 반응은 아니어도 ‘멋있다’라는 반응 정도는 충분히 나올 법했다.
그렇게 안무가 확정한 다음에는 서문결이 카일과 징샤오를, 내가 나가세 리츠와 데이를 맡아 춤을 가르쳤다.
내가 그린 그림은 한두 명만 눈에 띄게 잘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화합의 정신을 발휘해 다 같이 잘하는 게 특히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스킬 하나를 획득했다.
[액티브 스킬 《주입식 눈높이 교육》을 획득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주입식 눈높이 교육》 – 열등반 반장부터 시작해 여러 학생이 당신의 손을 거쳐 간 지금, 이제는 교육자로서의 노하우가 제법 쌓인 것 같습니다.타인을 가르칠 때 학습자의 지능·지혜·의지가 소폭 상승하며 학습자가 당신의 말을 잘 듣습니다. 단, 배울 의지를 가진 학습자에게만 스킬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을 사용하는 도중에는 피로도 누적량이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 효과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스위치식 스킬입니다. (현재 상태 ON)]
처음으로 그럴듯한 스킬을 얻은 것 같기는 한데…… 이거 결국 내 피로도 갈아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스킬 아니야?
나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딴 놈이 받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기꺼이 열정적인 지도로 승화시켰다.
내 열의에 힘입어 두 사람은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흐억… 온라온라온, 이제 그만… 헉, 쉬자!”
“[살려줘…….]”
“여러분, 한국에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이제까지 겪어본 바에 따르면 쉬자고 말할 때 쉬는 윗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그대로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도 탁한 물이 되겠다는 거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이럴 때 쓰는 말 아닌 건 알겠어!”
“어허. 일어나서 후반부만 다시 해봅시다.”
“자기는 중간중간 쉬면서!”
그야 난 제때 안 쉬면 피로도 오버돼서 죽을지도 모르니까.
근데 너넨 아니잖아?
안 그래도 너희 가르치느라 내 피로도 쪽쪽 빨리고 있는데, 말이 많다.
“목소리 보니까 아직 할 만해 보입니다. 후반 스타트, 일어나서 원투원투 허이짜!”
둘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도 비척비척 일어나 내가 손뼉 치는 박자에 맞추어 몸을 놀렸다.
말을 잘 듣는다는 스킬 효과가 정말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잘한다, 잘한다, 아이고 잘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문결이 차분하게 카일과 징샤오를 굴리고 있었다.
서문결은 평소에는 인생이 걱정될 만큼 유유한 편인데 무대가 관련되니 사뭇 엄격해졌다.
고된 연습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음악 감독과 면담 시간을 가졌다.
음악을 우리가 직접 편곡하는 게 아니라, 생각한 방향을 알려주면 저쪽에서 우리 의견을 반영해서 편곡해 오는 식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연습생한테 시킬 리가 있나.
“……그래서 뒤쪽에는 이렇게 진행되면 어떨까 합니다.”
“괜찮네. 흠, 이거 진짜 괜찮다. 이거 먼저 하자고 한 사람이 누구지?”
“접니다.”
“머리 잘 썼네.”
“감사합니다!”
우리 순서가 마지막이었는지, 음악 감독은 내일까지 편곡을 마친 음원을 전달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난 것처럼 빠르게 자리를 떴다.
“칭찬받은 게 그렇게 좋아? 왜 그렇게 웃어.”
“좋지. 안 좋겠냐.”
물론 단순히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은 뒤 나와 징샤오는 서문결에게 아침에 써두었던 랩 가사를 검사받았다.
“잘했어. 이대로 하자.”
진짜 잘한 건지, 그 이전에 정말 이래도 되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굳이 고치지는 않았다.
어차피 백날 고민해 봤자 내가 머리를 고무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을 줄 만큼 좋은 랩 가사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은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
우리가 뭐, 내게 돈을 보여달라는 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 대신 곧바로 랩 연습을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조원들이 보는 앞에서 가사지를 보며 랩이라고 믿고 싶은 것을 했는데, 낯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관객들 앞에서 까탈레나 춤을 3분 동안 추는 게 덜 창피할 것 같았다.
지금 나랑 같은 걸 듣고 있는 게 맞는지 의아스러울 만큼 진지한 표정으로 내 랩을 듣던 서문결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지금 너무 경직됐어. 긴장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맞아. 긴장은 안 했어.”
“얘는 전부터 본 건데 긴장 진짜 안 해.”
데이가 맞장구를 쳤다.
“부끄러워하지 마. 처음 하는 것치고 정말 잘하고 있으니까 자신 있게 해.”
처음 하는 것치고 잘하고 있다는 건 그렇게 특별한 말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에게는 최고의 칭찬 중 하나다.
일단 뭐가 뭔지 잘은 몰라도 ‘내가 뭔가 소질이 있구나.’ 하는 우쭐한 기분이 들게 하잖아?
나는 목과 얼굴 근육에 들어갔던 힘을 느슨하게 풀고, 어깨를 쭉 폈다.
그 상태로 다시 한번 같은 부분을 반복하자 서문결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훨씬 나아. 발성이 좋아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려. 그리고 지금 톤 일부러 낮춰서 한 거 아니지?”
“응. 그냥 되는대로.”
[서문결이 당신에게 흥미를 가집니다. 서문결 호감도 +1 현재 호감도 +58]날렵한 눈매 사이의 검고 커다란 눈이 순간 반짝인 것 같았다.
강지우가 지난번에 나를 보컬 레슨실로 끌고 들어가기 전에 꼭 저런 눈빛을 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랩 레슨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때?”
다행히 서문결은 이렇게만 말하고 칭찬을 듣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징샤오의 랩을 봐주기 시작했다.
“샤오는 흐름은 좋은데 발음에 더 집중해. 입 크게 크게 벌리고 혀에 힘 똑바로 주면서 소리를 분명하게 내뱉는다는 느낌으로.”
“알았어.”
한 30분 동안 생초보 둘을 성실하게 가르친 서문결은 이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기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날이 훌쩍 지났다.
둘째 날도 크게 다를 것 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둘씩 나누어 연습하는 걸 멈추고 전달받은 음원을 틀어놓고 다 함께 안무를 맞춰봤다.
“우리 멋있는데?”
“[멋있네.]”
“그러게?”
솔직히 말하자면 삭막한 개인플레이 팀에서 1차 경연을 준비할 때보다 재밌었다.
혜성 반 생활을 할 때처럼 시스템이 우리를 한 그룹으로 인정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랬던 적이 있었다.
* * *
“나 이런 식으로는 못 하겠다고.”
우리 좋았잖아….
“그럼 하지 마.”
그랬잖아…….
“안 하면 되잖아!”
쾅! 카일이 연습실 문을 거세게 닫고 나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구석에서 우리를 찍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어깨를 움찔 떨 정도였다.
“이게,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잠시 뒤, 싸한 분위기 속에서 눈이 동그래진 징샤오가 얼마나 놀랐는지 안 쓰던 존댓말까지 쓰면서 물었다.
“그러게. 뭐 때문에 이러는데.”
나와 징샤오는 개인 인터뷰를 하고 조금 전에 함께 연습실로 돌아와서 아는 게 없었다.
눈치를 보던 데이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너희 인터뷰하러 가고, 우리끼리 먼저 맞춰보려 했는데 결 형이랑 카일 형이 파트 얘기하다가 갑자기….”
아니,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결이 형이 싸울 사람이 아닌데…?”
“라온, 너 지금 그러면 카일 형은 싸울 사람이라는 거야?”
발밑으로 기어 오는 지뢰 같은 데이의 말에 나는 펄쩍 뛰었다.
“아니! 그건 완전 오해야. 어떻게 내가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부디 그런 불미스러운 오해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구….”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결이 형은 요즘 세상에 드물게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라 내가 당장 파트 하나 달라고 해도 내가 잘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할 사람이라서 다른 것도 아니고 파트 가지고 싸웠다는 말이 안 믿기는데 여러분이 그 문제로 싸웠다니까 제가 일단 믿기는 하겠지만.”
“그….”
“근데 저 형은 안 싸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그동안 쌓여온 원한을 풀기는커녕 평화롭게 시나 읽고 있을 형인데. 싸우기는 누가 싸워. 절대 안 싸워. 차라리 저 형을 위해서 내가 싸워어어억!”
“…….”
“…….”
환장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