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5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53화
내 계획을 들은 조원들은 다행히 선선히 찬성을 표했다.
사실은 ‘선선히’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내 예상 이상으로 반응이 뜨거워서 놀랐다.
내내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한 덕분에 머리에 올랐던 열이 어느 정도 식은 내가 봤을 때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았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우리 라온 천재다!”
이런 식으로 막 띄워주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별로라고 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꿈과 희망을 잃게 만드는 조별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떠맡은 서문결 또한 괜찮을 것 같다면서 동의했으니 일단 작은 언덕 하나는 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내게는 넘어야 할 산이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
“형. 나 할 말이 있어.”
“해.”
“귀 좀.”
나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우리를 촬영하는 카메라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서문결이 순순히 귀를 내주었다.
“사실 나 지금 아무것도 기억 안 나.”
누군가 들을까 봐 하도 조심하느라 서문결에게도 겨우 들릴 만큼 나직한 속삭임이었다.
“…뭐가?”
나는 가슴에 붙인 프로듀싱 스티커를 툭툭 건드렸다.
“안무 짜는 법이나, 기획하는 거. 트루 나오면서 다 까먹었어.”
그렇게 간단하게만 말하고 흥미로운 낌새를 감지한 카메라가 가까이 오기 전에 아무 일도 없던 척 떨어졌다.
말이 오가지 않는 몇 초 사이에 수려한 얼굴이 ‘온라온’을 안쓰러워하듯 서서히 슬픔에 잠겼다가 이내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을 보니 상황상 길게 말하지 못했음에도 내 의도대로 알아서 잘 이해한 모양이었다.
시스템 보고 기분 나쁘다고 해놓고서 사람 마음을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는 나도 나다.
착한 사람 붙잡고 못 할 짓을 하는 기분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왜 몇몇 빙의물 소설 주인공들이 기억 상실이라는 변명을 애용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갈수록 사기꾼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매 순간 모든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어쨌든 내 거짓 사정을 드물게 눈치 좋게 이해한 서문결이 조원들 앞에서 편곡이나 안무는 자신에게 온전히 맡겨주지 않겠냐고 묻고, 나머지 조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아까 서문결이 그랬던 것처럼 “믿겠습니다!” 하고 외침으로써 내게는 꽤 난감했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내가 그래도 컨셉이나 전체적인 흐름을 잡기는 했으니 너는 프로듀싱 스티커를 받아놓고 한 게 뭐냐는 말은 그래도 좀 덜 나오지 않을까.
“이거랑 아까 그걸 섞을 건데 앞부분에는 랩이 들어가야 해서, 나 말고도 적어도 한 명은 더 랩 파트를 해야 해.”
조별로 지급된 패드로 위튜브에서 두 가지 영상을 찾아 보여준 서문결이 덧붙여 말했다.
“두 명이면 한 사람당 부담이 적어져서 더 좋고.”
서로 눈치를 보던 조원들이 서문결을 제외하면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바라봤다.
지금 한국인이면 다 한국어 랩을 잘한다, 이거냐?
“알았어. 내가 해볼게.”
그래도 내가 너네보단 낫겠지….
“그럼 나도.”
징샤오도 손을 들었다.
“너희 랩 가사 써본 적 있어?”
“아니. 그냥 랩을 해본 적도 없어.”
“회사에서 트레이닝 몇 번 받아본 적 있는데 잘하지 않고 써본 적 한 번도 없어.”
초보자 둘의 말에 서문결이 곤란한 듯 눈만 깜빡이다가 신중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말했다.
“나는 먼저 안무를 짜야 해서 처음부터 도와주기는 어려워. 일단 혼자 하고 있으면 나중에 봐줄게.”
“알았어.”
“라온이는 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말로 풀어낸다고 생각하고 해봐.”
“해볼게.”
그림을 글로 설명하라 이거지.
숙제라도 받은 기분이다.
“샤오는 가장 처음 부분을 해줬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대략적인 틀이 정해져 있으니까 백지에 쓰는 것보다는 쉬울 것 같아서 한 생각인데, 혹시 다른 의견 있으면 얘기해.”
“아니! 이 부분 마음에 들어.”
홀로 시선을 끌 수 있는 도입부라는 점과 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아까 그 말대로라면 우리 무대는 가사를 잘 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따로 있으니까, 둘 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해.”
나와 징샤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반부 안무는 한 시간 안으로 만들어 볼게.”
“가능해?”
사람인가?
“아마도. 예전에 구상해 둔 거랑 잘 맞을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안 그래도 시간도 부족한데 혼자 힘들 것 같아서 걱정됐는데.”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지는 않아.”
서문결의 어투는 언뜻 들으면 어조도 내용도 무심하게 느껴질 만큼 담백하다.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반요한이 나긋하게 지껄이던 자기계발서에 적혀 있을 것처럼 건실한 글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강한 신뢰감을 주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자존심이 강한 견성하가 서문결의 일상적인 허술함을 없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외면하면서까지 따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는 노래 들으면서 전체적으로 가사나 멜로디 외울게.”
데이가 카일과 나가세 리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응. 그리고 다들 잘 모르는 노래라 남은 파트를 정하는 건 그다음에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예스, 예스.”
“그럼 열심히 하자.”
“형 없었으면 우리 큰일 났다, 진짜.”
내 진심 어린 아부에 희미하게 웃고 안무를 짜기 시작한 서문결은 여전히 서늘하리만치 정적이었지만, 적어도 그간 내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문결, 아니, 결 형은 무대 준비할 때 제일 말 많이 해.”
옆에 엎드려서 종이에 단어들을 되는대로 끄적이던 징샤오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지난 경연 준비 때도 비슷했나 보다.
내 수준에 맞지 않는 라임이니 펀치 라인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일찌감치 포기한 랩 가사 초안을 쓰고 나니, 아까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퀘스트 생각이 났다.
서문결이 안무를 다 만들고 가사를 봐주기를 기다리는 지금이 아니면 따로 확인할 여유도 없을 것 같아 나는 퀘스트 창을 열었다.
[서브 퀘스트 [숨겨왔던 나의 재능>] [▶ 퀘스트 설명: 살면서 자신의 재능을 정면에서 마주할 기회를 얻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니, 애초에 진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내가 알 게 뭐야.
비슷한 논조의 쓸데없는 말을 건성으로 읽어 넘기다가 드디어 본론을 찾았다.
[그리고 당신은 말하자면, 선택받은 쪽입니다. 길었던 표류를 마치고 당신에게 걸맞은 천지로 돌아와 비로소 재능이 피어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본론을 찾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별나라에서 약 파는 소리나 하고 있다. 조금 더 넘길 걸 그랬나?
[숨겨왔던 당신의 재능 중 한 가지를 고르라면 단연…….]얼굴이지. 너무 숨기고 있잖아.
그런 의미에서 내 매력 좀 돌려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진짜 공략이 몇 배는 더 쉬워질 텐데!
이야, 옆에 있었으면 한 대 쳤겠다.
만약 매력이 떨어졌다면 기겁을 하며 내 매력 당장 열 배로 돌려내라고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이제 와서 지혜가 고작 1만큼 떨어진 것쯤이야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서 더 버텼다가는 정말 망할 시스템이 지혜보다 더 소중한 스탯을 뭉텅이로 깎아버릴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퀘스트 설명을 마저 읽어내려갔다.
[단연 프로듀서로서의 재능일 것입니다.]진짜? 괜히 프로듀싱 스티커를 받은 건 아니라 이건가.
생각할수록 ‘온라온’은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스물세 살이 되도록 잘하는 게 얼굴이랑 게임밖에 없었는데 얘는 대체 몇 개를 이룬 거야?
만약 내가 빙의하며 능력치가 전부 초기화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서문결 정도의 인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시스템이 직접 확인한 재능을 발휘하지 않고 썩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둥 헛소리를 다시 또 한참 넘기고, 마침내 결론 부분에 다다랐다.
[창작에서 첫째로 중요한 것은 창작자 자신의 욕구입니다.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 하려면 먼저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졸작이든 뭐든, 스스로가 깊이 만족할 수 있는 곡을 만드세요. 그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만족 여부에 대한 판단은 당신에게 맡깁니다.▶ 제한 시간: 3년
▶ 확정 보상: 스킬 《???》
▶ 실패 시 페널티: 랜덤 스탯 초기화]
무슨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퀘스트가 다 있나.
이것저것 걸리는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제일 눈에 밟히는 것을 하나 골라보자면 제한 시간이었다.
아무렴 촉박한 것보다는 넉넉한 것이 좋기는 하다만, 3년이 웬 말인가.
자칫하다가는 3년이 지나도 여기서 못 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나는 나쁜 소식에 무심코 찡그렸던 눈살을 도로 폈다. 카메라가 근처에 있었다.
다행히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었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을 조각보처럼 이어붙여서 심각한 상황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방송국의 특기 아닌가.
‘어쨌든 이걸 안 할 수도 없고.’
재능이 있다는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 * *
1시간 뒤.
서문결은 공언했던 대로 전반부 안무를 완벽하게 완성해 왔다.
조원들의 노래 숙지도 어느 정도 되었고 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파트를 나누기 시작했다.
“센터, 저는 솔직히 저희한테 양심과 인륜이 있다면 결이 형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문결을 센터로 세워 무대의 퀄리티를 끌어올림으로써 그를 골수까지 뽑아먹겠다는 소리를 아름답게 포장한 내 의견에 데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인륜이 뭐야?”
“어… 사람의 도리?”
“도리는 뭐야? 닭도리탕할 때 도리야?”
“닭도리탕 아니고 닭볶음탕.”
오늘도 징샤오의 한국어는 섬세하게 빛을 발했다.
방송에서도 이런 점을 살려 징샤오를 한잘알, 즉 한국을 잘 알고 있는 캐릭터로 밀고 있었다.
자기는 한국 음식 중에 닭볶음탕이 제일 맛있다면서 만드는 법까지 배웠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징샤오를 보며 다 같이 한바탕 웃었다.
그러고 난 뒤에, 데이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도리가 뭔데?”
젠장. 지금쯤이면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정확한 뜻을 아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만 의미를 알았던 나는 에둘러 답했다.
“사람이면 지켜야 하는 거.”
“그럼 인륜은 사람의 사람이면 지켜야 하는 거?”
“……너 지금 알아들었으면서 일부러 이러는 거지.”
“헷.”
“이 자식이.”
“나는 좋아.”
이야기가 또 다른 곳으로 빠지기 전에 나가세 리츠가 두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해 보이면서 동의를 표했다.
이제 나가세 리츠도 좋다는 말 정도는 한국어로 할 수 있었다.
“나도 결 형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뒤이어 데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이나 징샤오의 경우에는 센터 욕심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중앙에 서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부족함을 덮어주는 확신의 센터 서문결을 두고 그릇된 길을 갈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센터를 두고 붙어봤자 진다는 걸 알아서 그럴 수도 있고.
그리하여 서문결을 중심에 둔 경연 준비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이뤄졌다.
그러니까, 둘째 날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