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52)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52화
“1분 남았습니다! 다들 정리하고 준비해 주세요!”
많이 당황했는지 아무도 말을 못 꺼내길래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희가 이러고 있으면 진짜 큰일 나거든요. 빨리 뭐라도 생각해 봅시다.”
“그러게. 큰일이네….”
“…….”
다시 침묵.
얘들아, 말 좀 해봐.
사실 나도 원래는 쟤들처럼 가만히 있다가 그나마 믿음직한 사람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게 적성에 맞는 타입인데, 이 게임은 자꾸만 나의 외향성을 시험한다.
이러다가 게임을 클리어할 때쯤에는 완전 외향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서, 나중에 돌아가도 방에 혼자 못 있는 거 아니야?
이 와중에 스태프가 결정을 내리지 못해 미적거리는 우리 쪽을 바라보며 얼른 일어나라고 눈치를 줬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말을 꺼냈다.
“그냥 랩 들어간 것만 피할까?”
“그럼 보컬이랑 퍼포먼스 같이하는 것만 있잖아.”
“그렇지.”
“그거 놓치면?”
“더 열심히 해야지.”
“!”
[조원들이 포기하지 않는 당신의 말에 감명을 받습니다. 조원 전체 호감도 +5]실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하자는, 몹시 뻔하고도 지당하며 무책임한 말에 난데없이 무슨 감명이라도 받은 건지 조원들의 호감도가 올랐다.
“라온이는 평소에는 좀 아닌데 가끔 멋있어 보여!”
“데이야, 반대겠지.”
“아! 라온이는 가끔 멋있는데 평소에는 좀 아니야!”
“……그냥 조용히 하렴.”
조원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연습생들이 조별로 줄지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희는 쟤네 옆으로 가.”
스태프 한 명이 적당히 끝에 서려는 우리를 중간에 비어 있던 공간으로 보냈다.
모든 조가 팻말이 붙어 있는 벽 근처에 줄을 맞추어 서자, 혼자 조금 앞에 나가 있던 서찬빈이 크게 외쳤다.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짜아악! 큼지막한 손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낸 귀가 아플 만큼 큰 박수 소리가 왜 그가 슬레이트 담당이 되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 앞에 반듯하게 선 제나가 말했다.
“다들 잘 상의하고 정했나요?”
“네!”
아니요. 나는 속으로 답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말고도 미묘하게 침울한 기운이 감도는 조들이 몇몇 보였다.
붉은빛이 들어온 카메라 앞에 섰으니만큼 최대한 감추려고는 하지만, 곡을 정하기 전부터 어딘가 우중충하고 막막한 표정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조는 PD에게 경고를 제대로 받아놓고도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과가 어떻든 일단은 열심히 하자, 뭐 이런 식으로.
설마 결과를 아예 포기한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 믿는다.
“자, 그러면 이제 경연곡을 선택할 텐데요. 조 안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연습생과 낮은 연습생의 등수를 더한 수가 작은 조부터 앞으로 나와 선택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연습생들은 곡을 정하는 순서대로 서 있는 거였다.
조별 상의 시간에 제작진이 명단을 작성해서 계산해 둔 모양이었다.
가장 왼쪽에 선 최상위권 연습생들로 이루어진 조부터 앞으로 나가는 걸 보니 우리 차례는 뒤쪽에 가까운 듯하다.
설마 이런 식으로 순서를 정할 줄이야.
방출에 대한 압박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순서를 정할 때 순위를 활용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데뷔권인 징샤오와 서문결, 그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중상위권인 내가 있어서 내심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카일이 58등이라 생각보다 뒤로 밀렸다.
정확히 어떤 의도로 이런 방식을 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상위권의 우월감과 하위권의 자괴감을 동시에 자극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순서를 확인하고 얼굴을 붉힌 카일이 가장 뒤에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듯 사과했다.
“아냐. 괜찮아.”
“맞아. 신경 쓰지 마.”
나와 징샤오가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카일이 죄스러워할 일은 아니었다.
‘앞 순서였어도 어차피 복합 포지션을 골라야 했을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조인수 PD가 우리 조를 마음속에서 일찌감치 내버린 것 같았다.
하라면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겉으로나마 웃으면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무대와 방송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팻말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금 누가 귀를 내 머리에 가져다 대면 팽이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그다음 조, 앞으로 나와 포지션과 곡을 선택해 주세요.”
그러다 보니 벌써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미리 상의한 바에 따라 서문결이 앞으로 나갔다. 제일 아는 게 많다는 이유였다.
높은 벽 앞에 선 서문결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뒤에서 기다리는 우리도 팻말들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렇게 보면 뾰족한 수가 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보컬과 퍼포먼스는 인기가 많아 남은 것이 거의 없었기에 선택지는 한정적이었다.
[보컬: 기억해> [랩: 날것> [퍼포먼스×랩:_____> [보컬×퍼포먼스×랩:_____>PD가 그렇게 말한 이상 단일 포지션 곡은 못 하고, 복합 포지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뭐가 됐든 랩은 해야 한다 이거지.’
바로 앞 순서에서 [보컬×퍼포먼스> 포지션을 가져간 게 아쉽다.
복합 포지션 중에는 그나마 그게 우리가 할 만했는데.
“어쩌지?”
“그나마 퍼포먼스 랩이 쉽지 않을까…?”
“자, 경연곡을 선택해 주세요.”
제나의 재촉에 묵묵히 갈등하던 서문결이 손을 뻗었다.
[퍼포먼스×랩>나는 서문결의 손끝이 향하는 방향을 알아챈 순간 모든 판단을 마치고 외쳤다.
“형 그거 말고! 저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세라 다급히 외침과 함께 쭉 뻗은 내 손끝을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따라가는 수십 가닥의 시선들.
최종 보스 같은 위용을 뽐내는 팻말에 고스란히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것은 지금 진심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들이었다.
서문결을 비롯한 우리 조원들마저도 내 진의를 의심하는 기색이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어조로 말했다.
“형, 얘들아, 나 한 번만 믿고 가자.”
이전에 내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던 반요한의 낯에 순간 미묘한 빛이 흐르는 것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에는 허세가 아니다.
사실 좀 맞기도 한데, 아닌 게 더 많으니 아니다.
“왠지 라온이는 이런 거 할 때 돌발적인 상황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마이크를 내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제나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합숙 때도 반요한이 갑자기 손을 드는 바람에 즉석에서 일이 결정됐지.
“자, 그러면 서문결 연습생은 온라온 연습생을 믿으시겠습니까?”
제나가 큐 카드에는 없을 즉흥적인 멘트로 말마따나 돌발적인 상황을 한층 살려냈다.
“…….”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냐.
제나에게 향했던 서문결의 시선은 이제 나를 향했다.
툭.
서문결이 내가 가리켰던 종합선물 세트 팻말을 떼어냈다.
“믿겠습니다.”
됐다. 나도 모르게 움켜쥐었던 주먹에서 힘을 빼고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뱉어냈다.
남 일이라고 그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연습생들이 “오오” 하면서 추임새를 넣는 가운데 누군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믿는다는 말이 저렇게 멋있을 일이냐?”
그 옆에 서 있던 서찬빈이 처음 말을 꺼낸 연습생을 툭툭 쳐서 부르더니,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믿는다.”
푸흡. 순간 웃음을 참느라 볼이 부풀었다가, 다문 입술 사이로 공기가 빠져나갔다.
“아, 하지 마라!”
처음 말을 꺼냈던 연습생이 질색했다.
그러는 사이 서문결이 팻말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맨 앞에 서 있는 까닭에 팻말을 받아 든 징샤오가 중얼거렸다.
“이건 누가 하나 했는데 우리 하네.”
“샤오야, 우리 고른 거 후회하는 거 아니지?”
“에이. 그건 아니야.”
징샤오는 자기가 설마 그러겠냐며 한껏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는 봤다.
순간 흔들리는 녀석의 솔직한 동공을.
하하, 자식.
* * *
우여곡절 끝에 포지션과 곡 선정이 모두 끝나고, 조별로 자유 연습 시간이 주어졌다.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전에 나는 따로 마련된 공간에 불려가 인터뷰를 했다.
“아까 PD님이 따로 말씀하셨던 건 티 안 나게 해주세요.”
“네.”
“좋아요. 방송 나간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시선은 카메라를 똑바로 본다기보다 살짝 옆으로, 이분 어깨 너머 바라보면서 편안하게 대답하시면 돼요. 리액션 활발하면 좋고요.”
방송이 나간 이후 연습생들의 인터뷰가 소극적으로 변하기라도 했는지 당부가 길다.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작가가 물었다.
“왜 그 포지션을 고른 거예요? 다들 피하고 싶어 하던데.”
아니, 이 질문을 어떻게 PD 얘기를 못 하게 하면서 할 수 있지.
조금 억울해하며 내게 질문을 한 작가를 바라보자 자기도 민망했던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에이, 모르겠다.
나는 철판을 깔고 입을 열었다.
“제 머릿속에 그림이 하나 있어요.”
오늘의 컨셉은 화가다.
아주아주 큰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림이요?”
작가가 입 모양으로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지시했다.
“네. 뭐랄까.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말하자면… 단원 김홍도 선생님의 씨름 같은 그림이요.”
작가와 카메라 감독님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아직 조원들이랑 제대로 상의도 못 한 마당에 마땅히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던 나는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듯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기대하세요.”
시청자들을 향한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조인수 PD에게 하는 말에 더 가까웠다.
거기서 우리를 두고 보라고.
차마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방송에 내보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화제성을 가진 분량을 뽑아줄 테니까.
일종의 배수진이었다. 이렇게 질러놓은 이상 무조건 성공시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실패하면 편집 예쁘게 당해서 자기 주제도 모르는 놈 되는 거지.
만약 무대 망한 다음에 큰 그림 어쩌고 하는 인터뷰 나가면… 그날로 나는 죽는 거다.
실수 하나라도 하는 순간, 그 장면 3번 반복해서 보여주고 인터뷰도 앞뒤로 한 번씩 보여줄걸.
만일 성공하면 그럭저럭 할 말은 지키는 놈 되는 거고.
중요한 건.
‘사리면서 아무것도 안 하면 사라진다는 거지.’
안 그래도 이번에 탈락하는 연습생 수도 많은데.
작가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고 우리 조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니 다들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 왔어.”
“왔냐?”
“이제 말해. 무슨 생각으로 이걸 골랐는지.”
징샤오가 우리 근처 벽에 붙여 둔 [보컬×퍼포먼스×랩> 팻말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조원들도 징샤오의 말에 동조하는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일단은… 먼저 상의하지 않고 갑자기 저걸 하자고 해서 미안.”
“아니. 그거는 미안할 사람이 따로 있지.”
특유의 쾌활한 어조로 뼈 있는 말을 던진 데이가 짙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PD 생각을 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데이의 말을 들은 카일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설마 순위가 낮은 자신을 탓하는 소리로 받아들인 건가?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전에 징샤오와 나가세 리츠가 차례로 말했다.
“맞아. 사실 어차피 이거 아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남은 게 그랬으니까.”
“[뭔가 생각이 나서 이걸 선택했다면 별수 없이 다른 걸 선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좋은 거라고 생각해.]”
좋아. 일단 조원들한테 역적으로 몰리지는 않겠군.
“다들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럭저럭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말을 이었다.
“고마운 김에 더 말하자면, 사실 내가 믿은 건 결이 형이었어.”
내 뻔뻔한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서문결이 물었다.
“무슨 말이야?”
나는 의미심장한 표정과 은근한 손짓으로 조원들을 가까이 불러모았다.
“들어봐.”
약간의 허세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