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11
우희가 온다! (2)
“신산심적공(神算心的功)?”
난 우희가 내민 서책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게 뭐야?”
“우리 가문 내공심법. 다른 문파 속가제자들이 배우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야. 머리도 맑아지고 내공을 모으는 속도도 빠르고.”
가문의 내공심법이라니, 이런 게 이렇게 쉽게 오가도 되는 물건이었나?
이름부터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서책에, 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런 걸 날 줘도 되는 거야?”
“응. 원래 세가의 은인에게 보답의 의미로 드리는 거라 외부인이 익혀도 아무 문제없어. 넌 나랑 매일 놀아주니까 줄게. 대신 외우고 나면 바로 태워야 돼.”
“왜? 다른 사람 배워도 된다며.”
내 물음에 우희가 눈을 데구루루 굴리더니, 이내 내 귓가에 입술을 붙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난 아직 어려서 무공을 반출하면 안 되거든. 이것도 세가에서 외워둔 거 어제 밤에 적은 거야.”
“이걸 다 네가 쓴 거야? 뭘 그렇게까지··· 근데 글씨 잘 쓴다, 너.”
내 칭찬에 우희가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비급을 다시 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긴 한데···. 내가 심법 때문에 내공을 못 익히는 게 아니라 아예 기를 못 느끼는 거라서.”
“스승이 나빴던 걸 수도 있잖아.”
“어?”
“내가 도와줄게. 동네 무관 따위보다 잘 가르칠 수 있어.”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가 어른조차 밑으로 내려다보는 오만한 천재란 것을.
하지만 그렇기에 더 믿음이 갔다. 혹시 우희라면 내가 내공을 익힐 방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난 한 가닥 기대를 품고 그녀의 제안을 승낙했다.
“배워볼게.”
“이리와.”
내 손목을 붙잡은 우희가 나를 책상으로 이끌었다.
이어서 내 곁에 바싹 붙어 앉은 그녀는 앙증맞은 손으로 비급의 첫 장을 펼쳤다.
人来自宇宙(사람 또한 우주로부터 비롯되니)
如果我能把星(하늘의 별을 몸에 품을 수 있다면)
自我照亮世界(스스로 천하를 밝게 비추리라)
北极星光網天地(북극성이 천하를 비추니)
七颗星也闪耀(일곱 개의 별 역시 밝게 빛난다)
天地混在一起(하늘과 땅의 경계가 허물어지니)
螭变成龙升天(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솟구친다)
······.
아, 세종대왕님.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비급을 빼곡히 채운 한자를 보자 벌써부터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 때, 우희의 목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다 외웠지?”
뭐, 인마?
난 말릴 새도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를 보며 입만 벙긋거렸다.
이것이 천재를 흉내 낸 업보?
미처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어진 사태에, 난 그새 세 번째 페이지를 펼치고 있는 우희의 손목을 다급히 붙잡았다.
“우희야. 나 심법 처음인데 해석해줘야지.”
“아···.”
우희가 다시 책을 앞으로 넘겼다.
이어서 그녀는 문장 하나, 하나를 되짚어가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앞의 세 줄은 이 비급이 창시된 배경이야. 만물이 우주에서 비롯되니 인체의 혈을 별자리 삼아 소우주를 담았다는 내용.”
“어, 응.”
“그 밑에부터가 구결이야. 북겁성광망천지, 여기서 북극성은 단전을 뜻해. 그리고 칠과성야섬요, 일곱 개의 별은 북두칠성을 의미하겠지? 각각 단전 부근에 있는 음교, 기해, 석문과 좌우로 각각 한 쌍을 이루는 대거, 사만의 일곱 혈을 뜻해.”
“아···.”
“용이 하늘로 솟구친다는 구절은 앞서 단전에서 뽑아낸 진기를 천돌혈까지 단번에···.”
우희의 해석이 길어질수록 내 확신도 깊어졌다.
응. 난 아무리 시간 많이 줘도 못해.
불러준 해석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별이니 용이니 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엔 내 중국 감성이 부족했다.
아마 우희의 도움이 없었다면 첫 문장에서 책을 덮었으리라.
“우희야. 그냥 기가 어떻게 흐르는지만 알려주면 될 거 같은데.”
“응. 천돌 다음에는 다시 대추를 거처 좌우 대저와 풍문···.”
수학 공식마냥 흘러나오는 구결을 듣자 그제야 들끓던 마음이 진정됐다.
아··· 주입식 교육 넘나 좋구요.
“아예 나머지 부분들도 다 그렇게 바꿔주면 안 돼?”
“왜? 그러면 우주가 된 기분을 알 수 없잖아.”
“아니,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알아야 해. 그리고 앞으로 다른 무공도 익히게 될 텐데, 그 때마다 나한테 비급 보여주면서 물어볼 거야?”
“어. 평생 물어볼 건데?”
“······.”
즉답에 당황한 우희가 입술을 오므리자, 난 나이 차이도 잊고 그녀를 졸라댔다.
“응? 알았지? 나는 너한테 수학 가르쳐주고, 넌 나한테 무공 해석해주고.”
“···알았어. 더 가까이 와봐. 다음 부분 알려줄게.”
“네, 사부.”
“흣.”
내 장난스런 포권에 우희가 미소를 머금었다.
난 언제라도 복습할 수 있도록 그녀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잠시 뒤, 기나긴 구결전수를 모두 마친 우희가 진기 유도를 위해 내 등 뒤에 손을 붙였다.
곧 곡성무관주 혁전보다도 한층 뚜렷한 기운이 뱃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딘지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은, 이내 신산심적공에 적힌 길을 따라 내 몸을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갈세가의 심법으로도 내 부족한 재능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매일 반 시진씩 총 열흘간의 수련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자 우희의 얼굴엔 초조함이 깃들었다.
하지만 난 그녀의 마음씀씀이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고마워. 앞으론 나 혼자 해볼게.”
“우리 아빠라면 알지도 몰라.”
“아니, 아니, 진짜 괜찮아. 지금도 충분해.”
난 우희의 양쪽 어깨를 덥석 잡았다.
이미 아빠가 초빙한 의원으로부터 재능이 없는 것일 뿐 신체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마당에, 거래처, 그것도 재벌가의 회장을 귀찮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우희가 돌발행동을 벌이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준 뒤에야 어깨를 잡은 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희는 나를 돕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한 눈치였지만, 내공이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배울 것은 잔뜩 있었다.
예를 들자면 무기술.
내공을 제외하면 현대 격투기가 정통 무술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지만, 그것도 맨손싸움일 때의 이야기였다.
칼을 든 상대에게 맨몸으로 덤비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O튜브에 검술 레슨은 있을지언정, 이곳에서 흔히 사용되는 도끼나 봉, 암기를 다루는 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난 우희와의 대련과 질의시간을 통해 이런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우희 역시 나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기존에 알던 지식은 물론 미처 몰랐던 지식들까지 배움이 적지 않았다.
“우희야. 항아가 그러는데 제갈세가에서는 섭선도 무기로 써?”
“응.”
“부채가 무기가 돼?”
“아무래도 무사 말고 문사도 많이 배출하다 보니까, 날붙이를 들고 다니는 걸 학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셔.”
한 마디로 이미지 관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럼 무사들 중에는 쓰는 사람 없어?”
“가끔 있어. 그런 분들은 보통 섭선 뒤에 철을 덧대거나 아예 철로 만들어진 철선을 써.”
“뭐야, 그게.”
반칙 아니야? 그 정도면 눈싸움할 때 돌멩이 집어넣는 수준인데.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우리 세가에도 가끔 머리 안 좋은 사람이 태어나거든.”
“아, 그게 비밀이야? 가끔 머리 안 좋은 사람 태어나는 게?”
“흐흣, 들어봐아-. 그런 사람들은 섭선 안쪽에 못 외우는 진법 같은 걸 적어두기도 해.”
부채를 컨닝하는 데 쓴다고.
뭔가 제갈세가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는 기분인데.
난 이런 실없는 대화들조차 전부 O튜브 채널에 저장했다.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기보다, 그저 어린 날의 추억을 기록하려는 의도였다.
우희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비롯해 항아와 석단 등 친하게 지내는 사용인들의 젊은 시절 모습 역시 ‘추억’이라 이름 붙인 카테고리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10년, 20년 쯤 지난 뒤에 보면 감회가 새로우리라.
볼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건 조금 쓸쓸하지만.
***
내가 우희와 수련에 힘쓰는 동안, 엄마와 항아 역시 꾸준히 홈트를 반복했다.
요가와 필라테스 등 각종 운동법을 전수하고 한 달이 지나자, 어느새 둘의 외형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몸의 군살이 사라지고 탄탄한 라인이 드러난 것이다.
아빠의 얼굴이 점점 해쓱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아··· 그러라고 가르쳐드린 건 아니었는데.
아니, 어쩌면 이 모든 일은 내가 우스갯소리로 동생을 갖고 싶다고 한 날부터 예견된 것일지도 몰랐다.
난 급히 O튜브를 켜고 남성에게 좋은 음식 몇 가지와 런지와 플랭크, 케겔 등의 운동법을 아버지께 전수했다.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웠니?”
“어··· 우희가 가르쳐줬어요.”
내 방에 있는 서책들을 사주신 게 다름 아닌 아버지이다 보니, 난 부득이 우희의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제갈세가란 이름은 우리 가족에게 프리패스나 마찬가지였다.
“과연 지식의 보고라 할 만하다.”
대충 둘러댄 말에 아빠는 크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다시 2개월이 흐른 어느 날, 엄마가 어딘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호출했다.
“휘아.”
“네?”
“휘아는 동생이 있으면 어떨 거 같아?”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더니 결국 생겼구나!
아니, 내가 태어난 이래 변함없는 두 분의 금슬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감조차 있었다.
역시 엄마, 아빠는 다 계획이 있구나.
나는 엄마의 임신 소식이 순수하게 기뻤다.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탓에 종종 두 분의 친자식이 아닌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동생이 태어난다면 그런 기분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설마 동생도 환생자는 아니겠지.
잠시 고개를 든 시답잖은 망상에서 벗어난 나는, O튜브를 켜고 임산부의 건강 관리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
엄마의 회임에 이어 한 가지 희소식이 더 있었다.
다름 아닌 비누 사업의 대성공이었다.
제갈세가의 이름을 달고 출시된 비누는 새로운 비누라 하여, 이곳말로 ‘신비조’라는 명칭이 붙었다.
세간에선 거품이 많이 난다 하여 ‘포비조’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며 대륙 중동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서민들이 부담 없이 구매할 만한 가격은 아니었으나 단향, 용뇌, 유향 등의 값비싼 향신료가 첨가된 기존의 비조단과는 비할 수 없이 저렴했다.
때문에 제갈세가가 위치한 호북성은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인들과 신비조를 구하려는 백성들로 매일같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비록 조가장이 비누의 생산을 맡았다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지만, 양양시 역시 호북성의 인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덩달아 기존에 조가장에서 판매하던 서역의 교역품들 마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니, 안 그래도 화목했던 우리 집은 요즘 들어 매일같이 축제 분위기였다.
“허허, 휘아가 우리 집안의 보배요.”
“휘아, 신비조가 아니어도 넌 우리의 보배이니 혹여 아버지 말씀 오해하지 말고.”
“알죠오. 두 분이 절 낳아주시지 않았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어요.”
“하하하! 누가 이 녀석을 6살로 보겠느냔 말이야, 안 그렇소 부인!”
“음- 우리 휘아. 제갈세가 아가씨랑 어울리더니 더 영민해진 것 같지 않아요?”
효도, 성공적.
립 서비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난 웃음을 그칠 줄 모르는 부모님 앞에서 한동안 재롱을 떨던 끝에, 지친 발걸음으로 우희와 항아가 기다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선 액체괴물을 이용한 놀이가 한창이었다.
“이거 봐. 갈대 대롱 넣고 불면 부푼다?”
“우와-. 신기해요, 아가씨. 머리가 타고 나셨나 봐요.”
“휘아가 가르쳐줬어.”
자랑스레 가슴을 내미는 우희를 보자 헛웃음이 절로 났다.
누가 그녀를 보고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한 제갈세가주의 딸을 떠올리겠는가.
우습기론 올해로 18세인 항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항아. 그거 애기들 갖고 노는 거라니까?”
“저보다 똑똑한 제갈소저도 이리 좋아하시는데 저라고 대수겠어요?”
“너 말 잘한다? 도대체 그게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대로 향한 나는, 눈을 감고 다음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비누는 이미 내 손을 떠난 지 오래였다.
사업 초기에는 아버지를 통해 말린 과일 껍질을 함께 태운 잿물이나 씨앗을 갈아서 만든 스크럽 등, 황실과 고관대작에게 납품할 고급 비누의 아이디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제갈세가의 재원들이 투입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른 이상 내 도움은 불필요했다.
난 비어있는 검색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뭘 만들면 또 한 번 대박을 칠까?
휴지···는 아예 만드는 법이 안 나와 있고.
아예 요식업을 해볼까? 치킨, 감자튀김 같은 건 만들기도 편하고 인기도 많은 것 같은데. 아, 소금이 많이 들어가서 안 되겠구나.
하얀 금(素金)이라는 말 그대로 이 시대의 소금은 유통 자체가 황실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는 귀중품이었다.
그 뒤로도 한참토록 머리를 굴려봤지만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우희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 귓가를 사로잡았다.
“휘아야, 근데 이건 왜 안 팔아?”
“어? 뭐?”
“액체괴수.”
“맞아요, 도련님. 한 번 장주님께 여쭤보세요. 이렇게 재밌는데, 액체괴수.”
항아마저 한 마디를 보태자 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자고로 돈은 코 묻은 돈이 제일이라고 했는데?
난 귀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환히 웃어 보였다.
“팔까? 액체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