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35
이별선물
남궁세가 사람들의 방문 후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마교 교주의 사망 소식과 함께 반란으로 새롭게 교주자리를 차지한 사내의 위명이 중원을 강타했다.
그리고 무림맹 인사 담당자인 남궁명의 말처럼 강호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저 교주가 바뀐 것 뿐 아닌가요?”
“그리 간단치가 않다.”
내 질문에 신투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전대교주인 명왕 은진천은 온화한 성격으로 마교의 본거지가 위치한 신강에 머물며 굳이 황실이나 중원무림과 척을 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교주가 된 칠천수라는 호전적이고 잔혹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지. 결코 현재의 권세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다.”
“그렇군요···.”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구나?”
“그래 보였나요?”
이미 엿들어 알고 있던 사실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난 이때까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새로운 마교주의 취임이 평화롭던 내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폐관···수련이요?”
“음.”
“그러니까 희야가 세가로 돌아가야 한다구요?”
“그렇단다.”
간만에 조가장을 방문한 제갈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비보였다.
당사자에겐 미리 언질이 있었던 걸까, 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는 우희를 대신해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칠천수라가 교주직에 오른 뒤 석 달이 채 안 됐건만, 벌써부터 신강과 청해 부근에서 충돌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당초 세가나 무림맹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지. 맹에서는 싸움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천무학관’의 개설을 추진 중이다.”
저번에 엿들은 그거구나.
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신이 설명을 이어갔다.
“또 얼마나 많은 협객들의 피가 흐를지···. 그렇기에 학관을 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각 세가나 문파마다 후학 양성에 공을 들이기는 하나, 이런 다양한 고수들의 조언을 한 자리에서 얻기란 힘든 법이니.”
“중소문파나 일인전승되는 유파에는 특히 도움이 되겠네요.”
내 대답에 제갈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그대로다. 또한 후기지수들에게도 인연을 쌓으며 무림의 미래를 도모하는 장(場)이 되겠지.”
그렇게 학관 탄생의 배경을 설명한 그는, 비로소 우희가 세가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입에 담았다.
“헌데 그러자면 말이다. 우선 가문의 절기부터 먼저 몸에 익히는 것이 순서 아니겠느냐.”
“아···.”
“현재 우리 뿐 아니라 여러 문파와 가문이 학관이 개설된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지. 게다가 너도 알다시피 희아는 유년기의 대부분을 이곳에 보내지 않았느냐.”
“맞아···요.”
“너도 적양권 선배를 스승으로 모셨으니 알게다. 스승의 유무가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희아 또한 재능이 출중하다고는 하나 홀로 수련하는 것이 가문의 어른들로부터 지도를 받는 것만 하겠느냐.”
그 말을 듣자 괜스레 죄책감이 솟아올랐다.
그녀가 잃어버린 시간의 원인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정작 나는 그녀의 호의에 기대어, 가족과 우정, 성장이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움켜쥐고서 말이다.
자책하는 내게 제갈신이 쐐기를 박았다.
“학관이 정확히 언제 개설될지는 알 수 없으나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의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말이다.”
생존.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읽은 나는 우희를 붙잡으려던 욕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겉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벌써부터 마음이 허전해서.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제갈신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달랬다.
“당장 헤어지란 것은 아니다. 너희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있어야지. 우리 또한 수련의 효율을 높일 진법과 영약들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그러니 올해가 다 가기 전까지 두 사람 모두 마음의 준비를 마치거라.”
“올해요···.”
그의 말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해가 바뀌기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4개월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그것조차 없는 것보단 나았다.
자리에는 나와 우희를 비롯해 부모님과 신투 조손도 함께였으나, 그들 중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오랜 침묵 끝에 우희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휘 가가. 나랑 같이 가주면 안 돼?”
“쯧. 희야, 억지 부리지 말거라. 너희들의 이번 수행에 쓰일 기문진은 기밀 중에서도 기밀이다. 그리고···.”
우희를 엄하게 꾸짖은 제갈신의 목소리가 곧 작게 사그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입술이 조그맣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뒷내용은 전음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분명했다.
곧 무슨 말을 들었는지 우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짚이는 건··· 워낙 많았다.
신산심적공을 비롯해 우희가 세가의 어른들 몰래 내게 전수해준 무공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무슨 말이 오갈지 예상이 갔기에 내 얼굴 또한 덩달아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설교로 예측되는 전음이 모두 끝난 뒤에도, 우희는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럼 폐관수련 끝나고 학관에 같이 가는 건···.”
“이 녀석이 그래도! 장주와 부인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구나. 가휘를 무림의 일에 끌어들이자는 말이냐!”
“저··· 입학은 가능한가요? 전 무가의 아이도 아닌데.”
혼나는 우희가 안쓰러워 급히 나서자 제갈신이 그제야 언성을 낮췄다.
“전쟁은 고수들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럼···.”
“아마 시험을 치러 등급별로 반을 나눌 게다. 어쩌면 무공이 조금 부족한 정도는 기부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 전쟁에는 많은 돈이 필요한 법이니.”
“그러면 입학생의 질이···.”
“수준미달인 녀석들까지 받기야 하겠느냐. 물론 적양권 대협께 사사한 너라면 무리 없이 통과할 테지만···.”
말끝을 흐린 그가 우리 부모님이 계신 쪽을 바라봤다.
나 역시 아까부터 말없이 듣고만 계신 두 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내 마음 같아서야 우희를 따라 학관으로 가고 싶었다.
자식의 입대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심정이 이러할까.
오래도록 친구로, 남매로 지내온 그녀를 멀리 떠나보낼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러나 이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우희를 걱정하듯, 지금 날 바라보는 부모님의 심정 또한 그러할 테니.
우희에게 무가의 후계로서의 의무가 있듯, 나 역시 상가의 적자로서 슬슬 후계교육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오가는 중이었다.
결국 결정은 부모님의 몫.
내 간절한 눈빛을 읽은 것일까? 마침내 어머니께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여셨다.
“···위험하진 않을까요?”
“아직 배우는 입장인 학생들에게 그리 위험한 임무는 맡기지 않을 겁니다, 부인. 더구나 가휘는 무가 출신도 아니니, 학관을 졸업한 뒤에는 조가장으로 돌아오면 될 일입니다. 가업을 이어 보급에 힘쓴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제갈신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이제 보니 그도 내가 우희를 곁에서 보필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어쩌면 좀 전에 떼를 쓰는 우희에게 버럭한 이유도, 혹여 질녀에게 미운 털이 박힐까 먼저 나서서 꾸짖은 것일지도.
한편, 제갈신의 대답을 들은 부모님께선 깊은 수심에 잠겼다.
고민이 많으실 게 분명하다. 그러나 두 분 역시 나만큼이나 정에 약한 사람들이었다.
수년을 딸처럼 돌봐온 우희의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두 분께선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다.
“가보는 게 어떠하냐.”
“가가.”
“상인으로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인맥 아니겠소. 명문정파의 후기지수들과 우정을 쌓을 기회가 그리 자주 오는 것은 아니지.”
나직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달랜 아버지께서 슬며시 제갈신을 바라봤다.
“또 제갈신 대협께서 위험하지 않을 거라 하지 않소. 잘 신경써주실 거라 믿소.”
“물론입니다, 장주.”
“그리고 휘아에게도 할 말이 있다.”
아버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우리는 아직 젊다. 벌써부터 후계 걱정에 네가 가고 싶은 길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가업을 이을 사람은 소희도 있고 말이다.”
“아버지.”
“소희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네가 우리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네 동생을 기르다보니 알겠더구나. 네가 나이에 비해 얼마나 의젓한 아이였는지. 얼마나 우리를 배려해주었는지. 그러니, 가끔은 부모 노릇 좀 하게 해주거라.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휘아. 아버지 말씀대로 너무 우리 눈치 보지 않아도 돼.”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등을 밀어주신 가운데, 묵묵히 듣고 있던 신투도 한 마디를 보탰다.
“직접 전선에 나가는 것은 반대이나, 학관에서 배움을 쌓는 정도는 나도 말리지 않으마.”
“사부님.”
“집에서 하는 수련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 또래 아이들과 절차탁마하는 것도 진귀한 경험이 될 게다.”
-이곳은 내가 지키고 있을 터이니 너무 걱정 말고 다녀오거라.
격려와 동시에 들려온 전음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에 이어 스승의 허락까지 떨어졌으니, 더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가겠습니다. 희야, 우리 같이 가자.”
“정말이지, 가가?”
“나도 널 혼자 보내긴 싫어.”
나와 우희가 눈빛을 교환하던 그 때, 어디선가 뾰족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도 갈래요!”
“빈아.”
“나도 갈 거예요, 할아···아빠. 집에서 하는 수련만으론 한계가 있으니까.”
“허허··· 내가 한 말이 발목을 잡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우희의 외숙께서 주신 제안을 괜히 거절한 꼴이구나.”
“사부님, 이렇게 된 거 함께 가시는 건···.”
내 말에 신투가 손사래를 쳤다.
“되었다, 그냥 농담이니. 언제까지 너희들 수발을 들란 말이냐.”
-그리고 인석아, 내 나이를 생각하거라. 너를 가르치는 것만 해도 뼈마디가 쑤신 마당인데 사서 고생을 하란 말이냐? 일 없다.
퉁명스럽게 말한 그는 이어서 약빈에게도 나와 같은 다짐을 받았다.
“너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조가장에 의탁했는지 명심하고, 객기에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네, 아빠!”
그렇게 약빈 역시 덩달아 학관행이 결정됐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제갈신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들 벌써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갔구나. 아직 정확히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학관에 대해 보다 정확한 소식이 도착하거든 곧장 전해주마.”
“감사합니다, 대협.”
이날을 기점으로 우희는 물론이고, 나와 약빈의 수련 역시 한층 엄격해졌다.
***
“마교놈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강호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으윽, 네!”
“빈아는 왜 대답이 없느냐?”
“으···. 했···어요.”
내 옆에 나란히 엎드린 채 팔을 부들부들 떨던 약빈이 이를 악물며 간신히 답했다.
우릴 베고 누운 신투는 그제야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어디 까지 했더라··· 아, 언제나 사람을 조심하거라. 객잔에서 잠을 잘 때도 일 푼의 긴장을··· 어허, 누가 팔을 펴라고 했느냐?”
“으으-.”
“할아버···지.”
“둘의 균형이 맞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야.”
단순히 수련의 강도만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여태까지의 수련이 전투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바뀐 수업은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신투는 권각술이나 신법 외에도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음가짐이며 온갖 잡다한 무공과 지식들을 전수했다.
은신, 추적술, 역용과 축골공, 기관 장치의 해제를 비롯해 심지어 자물쇠 따기나 분근착골과 같은 고문법까지.
그에게 배운 것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런 것도 배워야 되나요?”
“익혀두면 다 쓸 데가 있을 것이다.”
한편, 우희 역시 제갈세가에서 붙여준 고수로부터 무공을 전수받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같은 장원에 지내면서도 실제 얼굴을 마주치는 건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한 시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얼마 되지 않는 소중한 시간마저 서로의 무리(武理)를 교환하는 데 사용됐다.
그렇게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약속의 날이 도래했다.
우희와 인연을 맺은 지 6년만의 일이었다.
이별의 날 아침, 우희는 눈물과 함께 내게 푸른빛이 감도는 실팔찌 하나를 건넸다.
“천잠사로 짠 팔찌야. 내가 만들었고, 진식도 내가 새겼어. 머리가 맑아지고 무공을 쌓는 데 보탬이 될 거야.”
“안 그래도 바빴을 텐데···. 고마워.”
“응. 손 줘봐.”
약빈이 보는 앞에서 내게 팔찌를 채워준 그녀가, 이번에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나도 해줘.”
내 것과 똑같이 생겼으나 색깔만 붉은빛인 팔찌를 본 시청자들은 호들갑을 떨기 바빴다.
[양뽈락 : 커플팔찌 너무 귀엽곸ㅋㅋ] [yoyo4422 : 휘 가가 자기 꺼라고 찜했자너ㅋㅋ]······.
난 약빈을 비롯해 여러 증인들 앞에서 그녀에게 팔찌를 채워줬다.
“이렇게 묶으면 돼?”
“응. 튼튼한 거니까 끊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절대 풀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내게 다짐을 받은 그녀가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휘 가가.”
“응?”
“쟤랑 나보다 친해지면 안 돼.”
평소의 여유는 어디 간 걸까.
정작 헤어질 때가 다 되어서야 약빈을 의식하는 우희의 모습에 난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뭐야.”
“으응, 빨리 대답해.”
간만에 느껴보는 어린아이다운 투정에, 난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괸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부탁 하나 더 있어.”
“뭔데?”
“···잠깐 고개 숙여봐.”
나는 속삭이는 그녀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너 또 뽀뽀하려고 그러지.”
“맞아. 나 지금부터 가가 입술에 뽀뽀할 건데 오늘도 피하면 엉엉 울지도 몰라.”
“야, 치사하게 그런 게······.”
“······흐흣, 나 갈게.”
“안 피하면 안 운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웃어 보인 그녀가 도망치듯 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민망함에 잠시 뒤를 돌아본 나는 소희의 눈을 가린 채 미소 짓는 부모님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뒤, 우희를 실은 마차가 출발했다.
난 마차를 따라 한참을 달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잘 가.
장원에서 한참을 떨어진 길가에서 몸을 돌리자, 뾰로통한 얼굴로 따라 나온 약빈이 보였다.
“빨리 와! 수련 안 할 거니?”
“갈게.”
당분간은 얘한테 엉덩이를 걷어 차여도 위로해줄 사람도 없겠구나.
벌써부터 느껴지는 빈자리와 더불어 약간은 쓸쓸함을 달래주는 약빈의 존재에 쓴웃음을 머금은 채, 난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