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5
그 중국이 아니야? (1)
비누를 품에 안은 채 내원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날 발견한 시녀들이 저마다 살가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 왔다.
“공자님, 아침부터 어딜 그리 바삐 가셔요?”
“넘어지시면 아야, 해요~.”
“오늘은 불장난 안 하세요?”
“오늘은 안 했어. 어머니랑 아버지는?”
“밖에 짐 들어오는 거 확인하러 가셨어요.”
인간의 적응력이란.
불과 얼마 전까지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시녀들의 인사에 제법 능숙하게 대꾸한 나는, 분주히 발을 놀려 밖으로 향했다.
잠시 뒤, 대문을 빠져나오자 너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여러 사람을 지휘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전생한지 벌써 5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부모님으로 여기기엔 너무나 젊은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싼 인부들의 눈빛에서 두 분을 무시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 하나, 둘 하면 들어. 하나, 둘!”
“읏짜!”
“조심해서···. 장주님! 이건 어디에 실을까요?”
“저쪽 진영상가의 마차에 실으면 되네.”
아기 때 추측했던 대로 우리 집은 꽤나 명망 높은 상인 가문이었다.
그렇다고 무슨 국내 몇 대 기업이니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곡성 조가장이라 하면 양양에서도 나름 손꼽히는 상가라고 했다.
참고로 조가장이 위치한 양양 곡성현은 호북성에 위치한 마을이었는데, O튜브에서 중국 지도를 검색해 본 결과, 한국까지는 더럽게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가장의 업태는 간단히 말하자면 도매업으로, 타 지역의 여러 상가 및 표국과 상단을 꾸려 서역에서 상품을 들여오면, 지역 상인들이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가는 형식이었다.
그 외에도 서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나치는 각 지역의 특산물들 역시 조가장의 주력 상품에 포함되었다.
때문에 우리 집 대문 앞은 언제나 물건을 떼러 오는 인근 지역 상인들의 마차와 인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참고로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난 것도 서역 행에서 돌아오던 길이라고 했다.
들개 떼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던 여인을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혼인까지 이르렀다고.
하긴, 안 그래도 외모가 빼어난 두 사람이 흔들다리 효과라는 버프까지 받았으니 호감이 안 생기는 게 이상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이 믿고 따를 만한 집안 어른의 부재였다.
둘이 혼인할 때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던 할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나기 2년 전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지금은 두 분 모두 양친이 안 계신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부부는 어린 나이에도 수완을 발휘하여, 아직까지도 별다른 문제없이 조가장을 이끌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만든 수제 비누가 두 분께 도움이 되길 바랐다.
“어머니, 아버지.”
마침내 득실득실한 인파를 넘어 부모님 곁에 다다르자, 일꾼들을 지켜보던 두 분의 얼굴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휘아, 여긴 위험하니까 오지 말래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온 게지. 물건은 얼추 확인했으니 이만 들어갑시다, 교은.”
엄마를 향해 남자가 보기에도 멋있는 미소를 날린 아빠가 허리를 숙여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나는 아빠의 목에 매달리며 배시시 웃었다.
울 아빠 숱이 풍성한 것을 보니 탈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품에 넣어둔 비누가 그만 바닥으로 쏙 미끄러진 것은 그 때였다.
투둑-.
“뭐지?”
“휘아, 네 거니?”
엄마가 비누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묻자 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만들었어요. 근데 물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 아들이 뭘 만들었는데 이러지?”
“그러게 말이오.”
두 분은 내가 만든 비누를 으레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 여긴 듯 흐뭇한 미소를 교환했지만, 그것도 본채에 도달할 때까지 만이었다.
곧 주방에서 물과 기름을 떠온 내가 비누칠로 기름을 씻어내는 모습을 보이자, 둘의 얼굴에 가득했던 미소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세목제···? 이걸 정말 네가 만들었다고?”
“휘아야, 솔직히 말해야 돼.”
“그냥 장난치다 만든 건데···.”
왜들 이러지? 너무 놀라서 그런가?
마냥 기뻐하실 줄로만 알았던 부모님의 심각한 얼굴에 나도 덩달아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은 아빠가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몇 가지를 더 물어왔다.
“네가 가끔 주방에 들러 화생유, 채자유 따위를 얻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그것들로 만든 것이니?”
“네.”
“음···.”
아빠가 침음을 흘리는 사이, 이번에는 엄마가 나를 추궁했다.
“휘아, 이걸 아는 사람이 또 있니?”
“···아니요.”
“그래. 혹시 더 만들 수 있니?”
“네. 돼요.”
“그럼 엄마, 아빠 앞에서 한 번만 더 해볼래?”
그렇게 말한 엄마는 아직까지도 고심 중인 아빠에게도 눈짓을 보냈다.
“같이 가 봐요, 가가.”
“···그럽시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떠밀리듯 뒤뜰로 향한 나는, 엄마, 아빠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비누를 만들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춤거리며 작업대 앞에 선 나는, 지난 두 달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공정에 따라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잿물부터 내리는 게 순서였지만, 다행히 어제 쓰고 남은 것이 있어서 그 부분은 생략할 수 있었다.
10여 차례의 여과를 마치고 걸쭉하게 졸여둔 잿물에,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낸 비율대로 세 가지 기름을 섞어 뭉근하게 교반시키자 곧 가수분해 반응이 일어나며 크림 상태의 비누가 만들어졌다.
난 거기에 콩가루 한 줌을 넣고 골고루 섞은 뒤, 틀에 부어 아빠에게 대령했다.
“됐어요.”
“벌써?”
“식기만 하면 돼요.”
“이렇게 간단하게···.”
간다-안?
아니, 내가 이거 만들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간단’이라는 말을 좌시할 수 없었던 나는 두 눈을 부릅떴지만, 비누에 정신이 팔린 부모님은 아들의 그런 눈길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두 사람이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10분이 더 지나서였다.
“이 일은 당분간 비밀이오. 휘아도 당분간은 얌전히 있거라.”
“아빠 말씀 들었지?”
“아··· 네···.”
그렇게 난 비누 만들기에 성공한 당일, 비누 만들기를 금지 당하고 말았다.
아빠가 이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뒤였다.
날이 어스름해질 무렵 세 식구를 한 데 모은 아빠는 나를 의자에 앉히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 나흘간 네 엄마와 함께 네가 준 세목제를 사용해보았다. 효과가 좋더구나. 지나칠 정도로.”
아빠의 감상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엄마가 말을 받아 이었다.
“아빠와 얘기를 나눠보고 네가 만든 것의 가치가 우리 가문이 독차지하기엔 너무 무겁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서역에서 새로이 들여온 세목제로 위장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함께 상단을 꾸리는 다른 상가가 있는 이상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제갈세가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제갈세가?
내가 아무리 중국 역사를 몰라도 제갈량은 알지.
간만에 듣는 익숙한 단어에 눈을 빛내는 사이, 아빠의 설명이 이어졌다.
“제갈세가는 명문정파이며 대대로 황실에 인재도 많이 배출한 명가란다. 그들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세목제로 얻을 이익의 절반을 포기한다 해도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다행히 사흘 전에 보낸 서신에 오늘 답장이 왔더구나.”
“뭐라던가요, 가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소. 이르면 모레쯤 출발할 것이오.”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대대로 호북에서 장사를 해오며 그들의 눈 밖에 난 적이 없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 휘아. 엄마, 아빠 말이 어렵지?””
대화를 주고받던 부부가 멀뚱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난 맥락은 이해했지만 드문드문 모르는 낱말이 섞여 있던 탓에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널 부른 것은 한 가지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양해요?”
“너는 이것을 우연히 만들었다 했으나 남들마저 그리 생각할지는 알 수 없다. 난 혹여나 제갈세가나 다른 무리들이 아직 어린 너를 탐내지는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때문에 제갈세가에 보낸 서신에는 네가 아닌 아비가 세목제를 만들었다고 거짓을 적었단다. 이해해 줄 수 있겠느냐?”
아빠의 말인즉,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비누를 만든 것으로 말을 맞춰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보아온 아빠는 결코 자신의 명성을 위해 어린 아들의 공을 가로챌 위인이 아니었다.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고맙구나. 우리 둘은 조금 더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가서 자 보거라.”
“네-.”
곧장 방에 돌아온 나는, 그 길로 항아를 호출했다.
곧 첫 만남에 비해 부쩍 성장한 17살 항아가 생긋거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왜 부르셨어요, 도련님? 맛있는 거 주시게요?”
“항아, 혹시 제갈세가 알아?”
“그럼요, 도련님. 구파일방 오대세가 모르세요?”
“그게 뭔데?”
내 질문에 오히려 항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소림사 모르세요? 태산-북두!”
“소림사는 나도 알아.”
“그럼 무당은요? 저희 호북에 무당파도 있는데.”
무당은 점보는 사람이고.
“아미!”
코리안 아미···.
내가 연달아 고개를 젓자 항아도 덩달아 고개를 갸웃했다.
“왜 모르시지?”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어떻게 알아!”
“그래도 도련님, 제가 안 가르쳐 드려도 아장아장 잘 걸으시고, 대소변도 잘 가리셨는데? 이렇게 말씀도 또박또박 잘 하시고. 의젓하시고.”
그러면서 내 양 볼을 쿡 꼬집는 모습이 도무지 고용주를 대하는 시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태도였다.
그렇게 내 얼굴 이곳저곳을 조몰락대던 그녀는, 이내 자신이 아는 구파일방에 대한 지식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녀가 내뱉는 말들 대부분이 내 기준에는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조 부인을 모시는 아이 중에 소월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걔는 어릴 때 하늘을 나는 고수를 봤대요.”
“아잇, 거짓말 좀.”
“으잉? 왜요오, 진짠데.”
“그래서, 넌 무공을 본 적 있어?”
“아니, 저는 없지만요···.”
아, 얘가 나 어리다고 호구로 보네.
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항아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맨날 입만 열만 거짓말이지.”
“아, 진짠데에.”
“됐고. 요즘 석단 형이랑은 어때?”
“아,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코맹맹이 소리를 내던 항아가 갑자기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변명하건 간에, 이미 시녀들 사이에는 항아가 자신보다 네 살 많은 몸 좋은 청년과 썸을 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 나 빼고 다들 가는구나. 아, 난 언제 가아-.”
“저희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난 다 알아.”
“조그만 공자님이 뭘 알아요!”
인터넷과 TV에 물들지 않은 이 세상 사람들은 현대인들에 비해 상당히 순박한 부분이 있었다.
곧 6살 꼬마의 놀림을 참다못한 17세 항아가 삐쳐서 방을 떠나자, 나는 침대에 누워 O튜브 검색창에 ‘무공’을 입력했다.
그러자 두 가지 상반된 영상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한 쪽은 항아의 말마따나 하늘을 날아다니고 손에서 장풍을 쏘는 고수들이 나오는 허황된 드라마였고, 다른 하나는 격투 대회에서 종합 격투기 선수한테 사정없이 털리는 소림사 고수를 촬영한 영상이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신빙성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지.”
다만, 항아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제갈세가가 대단한 권세를 누리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양양에서 알아주는 상인인 우리 아빠가 그들에게 품은 경외심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아빠가 어련히 잘 하실까, 하면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사람이 돌변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괜히 비누에 손을 댄 걸까? 이게 없어도 먹고 살기는 충분한데.
혹시나 아빠가 제갈세가에서 안 좋은 일을 겪지는 않을까 우려한 나는, 내일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 제갈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