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52
249. 공개 채용
살다 보면 놀랄 일이 꽤 일어나곤 한다.
긴 세월, 무려 80년을 살았음에도 그런 일이 가끔은 있다.
조금 전도 그런 일을 겪었다.
수억이 훌쩍 넘은 외제 차에서 내린 여자는 자신이 놀란 근원을 떠올렸다.
‘유광익이라.’
동시에 십이사도 중 하나가 보냈던 경고의 메시지도.
“보내는 신도마다 순교자가 되었네.”
불멸교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집단이다.
교주를 신과 동일시하고, 신성가(神性歌)에 교주의 이름이 버젓이 들어가서 모든 종교로부터 사이비 소리를 듣지만, 기본적으로는 종교 단체다.
물론 이들이 사이비 단체로만 세상에 나섰다면 테러 단체라는 이름이 붙진 않았을 터였다.
불멸교는 암살자를 길렀다.
암살자의 요람이란 별명이 붙은 집단이기도 했다.
여자는 우연을 가장해 광익을 만났다.
그저 흐르듯 지나치며 보긴 했지만.
‘재밌어.’
그녀는 불멸자다.
다만, 평범한 불멸자는 아니었다.
몸에 흐르는 피에 불멸에 주문이 섞인 특이 혈통을 타고났다.
여자 친구 있다고 말하며 스친 광익의 목소리가 귀에 남았다.
또각또각.
구두 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다.
걸음마다 그녀의 머리칼이 빛에 반사되며 다양한 빛깔로 변했다.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은발로, 은발에서 금발로.
머리카락과 동시에 동공의 색깔도 변했다.
까만 눈에서 푸른색으로.
그렇게 금발의 푸른 눈이 된 여자다.
“오셨습니까. 사도.”
사도라 불린 여자는 자신을 기다리던 무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여섯이다.
지금 ‘사도’라 불린 여자는 기분이 묘했다.
‘유광익이 변신한 자신을 알아본 게 분명하다.’
지난 수십 년간 어떤 불멸자나 특수종도 알아보지 못한 걸 간파했다.
‘파사의 눈?’
모든 주문을 꿰뚫어 보는 심안(心眼)을 파사의 눈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 생각하며 곧 내심 고개를 저었다.
고작 서른도 되지 않은 핏덩이다.
그런 핏덩이가 무슨 파사의 눈이란 말인가.
그럼 어떻게?
이 점이 흥미로웠다. 다음에 만나면 그 머리통을 쪼개서 뇌를 헤집고 싶을 정도로.
* * *
“……뭐하러 왔다고?”
작대기 선생이 물었다.
“병문안이요. 과일 같은 건 없나? 점심을 대강 먹었더니 배고프네요.”
말하며 병실 냉장고를 뒤졌다.
과일은 없고 음료수와 요거트 따위가 있었다.
줄줄이 꺼내 입 안에 넣었다.
달곰한 것들이 들어가니 위장의 허전함이 조금 가셨다.
냉장고 위에 바나나 두 송이가 보였다.
대강 네 개쯤 먹었을 때다.
“이게 병문안이냐?”
“선물도 가져왔잖아요.”
“홀로그램 마스크랑 연막탄?”
그 말에 난 바나나를 씹던 입을 멈췄다. 꿀꺽 입에 남은 걸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오다가 이상한 여자를 봤는데요.”
“봤는데?”
“그, 되게 이상하더라고요.”
느낀 바를 솔직히 말했다.
“칠십 대 할머니가 비키니 입고 서울 시내 한복판을 지나는 그런 느낌?”
불멸자로서의 육감과 직감.
변신족으로서의 예민한 후각.
거기에 돌혜민 덕분에 길러진 주문을 느끼는 감까지.
모든 게 더듬이라도 되는 양 반응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주문과 변장의 기술을 더해 얼굴을 가린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됐다.
“……바나나 그만 처먹어라.”
선생이 말했다.
바나나에서 손을 떼고 침대 앞에 앉은 채, 조잘조잘 떠들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과 새로이 개발한 기술 같은 이야기다.
작대기 선생이 이야기 중간에 날 노려보듯 몇 번 눈을 부라렸다.
“왜요?”
“아니다.”
그러면서 금세 눈을 내리깐다. 그러곤 생각에 잠겼다.
그리 이야기를 끝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시간이었다.
“너 진짜 왜 왔냐?”
“혼자 누워 있으면 심심할까 봐요.”
시간이 조금 남기도 했고.
말하고 문을 열었다. 새삼 돈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VIP 병실이라 넓었고, 복도가 복잡하지도 않았다.
허가된 사람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는 별개의 공간이 VIP 병동이다.
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작대기 선생이 말했다.
“이런 일 다시는 없을 거다.”
이런 일?
“치사하게 바나나 먹지 말라고 하는 거요?”
앞으로는 콩 한 쪽도 나눠 먹겠다는 걸까?
“미친놈.”
선생이 중얼거린다.
바나나가 아니라면 쥐어 터져서 병원에 실려 가는 걸 말하는 걸까나.
“어떻게 매번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해합니다.”
난 선생의 마음을 말로 어루만지며 나섰다.
노닥거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최소 세 시간 전에 와서 대기해 달라고 했는데 말이야.
걸음을 급히 옮겼다. 그리 병원에 나서서 차에 몸을 실으니, 갑자기 목에 강선이 감긴다.
반사적으로 왼손 검지를 목과 강선 사이에 넣었다.
근육에 힘을 주고 변신족 비전 철완의 요령을 손가락으로 썼다.
띡.
그럼에도 강선이 손가락과 목에 가는 혈선을 남겼다.
난 앉은 채로 오른 팔꿈치를 뒤로 휘둘렀다.
강선이 목에 감긴 순간, 상대의 위치와 모습이 절로 느껴졌다.
뒷좌석에 숨었다가 내 목에 강선을 감는 과정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꽝, 꿍!
팔꿈치가 정확히 상대의 머리통을 갈겼다.
피할 엄두도 못 냈을 거다.
강선이 감긴 순간, 팔꿈치를 휘두른 수준의 반응 속도였으니까.
그리 때리고 강선을 풀고 바닥을 차며 뒷좌석으로 몸을 돌렸다.
좁은 공간이다. 그 안에서 몸을 말아 움직였기에 묘기에 가까운 동작이 나왔다.
몸을 말고 의자 사이로 몸을 밀어 넣은 거다. 그렇게 뒤로 넘어간 난 주먹을 뻗었다.
머리통을 얻어맞은 놈이 급히 품에 손을 넣는 게 보였다. 놈이 손을 빼기 전에 내 주먹이 먼저 놈의 턱을 쪼갰다.
우직.
얼추 비껴 맞은 덕에 아랫니 몇 개가 털렸다.
핏덩이처럼 보이는 치아 몇 개를 외면한 채, 난 놈의 목울대를 쥐고 틀었다.
우드드득.
눈에 흰자가 휙 돌고 쓰러진다.
“후우.”
쓰러지는 놈을 보고 호흡을 한번 돌렸다.
하루에 암살자가 두 번이나 오네.
쓰러진 놈을 밖으로 빼내고 전화를 걸었다.
“팀장 누나, 저 또 잡았는데요.”
“또?”
경찰청 소속, 이지혜 팀장 누나다.
놀란 목소리였다.
“네, 애들이 부지런하네요. 아주 성실해요.”
불멸교는 암살자의 요람, 성지다.
이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이리 성실할 줄은 몰랐다.
“알았다.”
반쯤 죽여 놨지만, 상대는 불멸자다. 놔두면 깨어난다. 일일이 전부 상대할 수 없기에 잡는 족족 경찰에 넘기기로 했다.
난 차 밖에 던져 둔 놈을 폰 카메라로 찍고 지혜 팀장 누나한테 보냈다.
그리고 쓰러진 놈을 보며 얘들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오려나?
진짜 숨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힌 솜씨다.
기척과 숨소리, 냄새, 어떤 것도 없이 기척을 감춘다.
은신의 전문가란 이런 거였다.
일본에 나뭇잎 닌자랑 싸워도 할 만하겠다.
뭐, 내가 그 일본 닌자를 만나 본 적은 아직 없지만.
나뭇잎 닌자는 만화책에 깊은 영감을 지닌 어떤 특수종이 만든 단체다.
그쪽 닌자가 기가 막히게 은신술을 펼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잘하려나.
쓰러진 놈을 놔두고 창문에 피를 묻힌 채, 나섰다.
액셀에 발을 올려 밟았다.
부아앙.
창문을 반쯤 열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차에 남았다.
손으로 목을 쓸었다.
상처는 남지 않았다. 괜히 불멸자의 피를 이은 게 아니다.
재생력이 제 할 일을 했다.
부르르.
전화가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버튼을 조작해 받으니.
“오고 계시죠?”
몇 번 얘기를 나눈 목소리가 들렸다.
“네, 금방 갑니다.”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메인 PD였다. 에, 그러니까 오늘 8시에 하는 생방송 ‘세최특’의 메인 피디다.
제목에서 이미 말했지만, 그 생방송 메인 게스트가 나였고.
* * *
뿌직.
손에 쥔 바나나가 뭉개졌다.
자기도 모르게 힘을 줬었다.
나가며 광익이 한 말이 심장을 찢었다.
매번 이길 수 없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놈은 매번 이기지 않나.
자신을 거듭 놀라게 하는 미친 재능의 특수종이다.
광익이 한 말이 절로 머릿속에 되새겨졌다.
‘공간 장악.’
한때는 선배의 아들이자, 제자였던 아이다.
그 유광익이 이뤄낸 일? 물론 놀랍다.
하지만 오늘 들은 이야기만큼 놀랄까.
제자였던 아이, 지금은 소속된 기업의 대표는 이제 서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 공간을 장악하는 묘기를 부린다.
아주 일부의 특수종, 세계에서 손꼽는 능력자만이 한다는 공간 장악을 한단다.
기도 안 차는 말이었다.
‘그게 끝도 아니지 않나.’
그 재능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문을 파악하는 파사의 눈을 달고 있는 거로 추정되는 말도 했다.
괴물이다. 재능으로 똘똘 뭉친 괴물.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거라면.
‘그 성격.’
평범하지 않다.
주일호는 자신 앞으로 훌쩍 나아간 광익의 등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놔둘 것인가.’
물론 자신은 한물간 퇴물이 맞다.
전성기가 지난 불멸자다.
그렇지만, 이리 쉽게 쓰러지는 게 맞나?
그 한 명, 어느 조직에서 숨겨 둔 능력자로 파악되는 놈이다.
그 단 한 명에게 둘이 덤벼서 이리 침실 신세를 지는 게 맞는 걸까.
프라이드의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뒤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새로이 변하는 시대에서 가만히 서서 휩쓸려 가고 싶진 않았다.
주일호는 물티슈로 손을 닦아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다시 물티슈 하나를 뽑아 침대 위에 널브러진 뭉개진 바나나를 닦는데, 누군가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을 느꼈다.
“우리 퇴물이지?”
“난 아니지. 넌 맞고.”
“……진짜 성격 안 맞아.”
“내가 할 말을.”
장가희, 광익의 변신족 선생이다.
주일호와 장가희 눈이 마주쳤다.
“미안하다고 했고 바나나도 사 줬으니까, 나 대신 몸빵한 건 넘어가자.”
장가희가 말했다.
주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는 말은 아무 상관 없었다.
“나, 이대로 브라질로 갈 거야.”
“브라질?”
“그동안 너무 모니터만 보고 살아서 몸이 굳었어. 퇴물 소리 듣는 건 좋은데, 그 소리 입 밖에 꺼내는 애새끼들 주둥이에 주먹을 꽂아 주고 싶거든.”
둘이 함께 덤볐는데도 밀렸다.
한때는 1세대의 영웅과도 겨룰 수 있다고 자신했던 둘이다.
실력은 퇴화한다.
훈련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하물며 일선에서 물러난 뒤, 훈련을 그리 열심히 했던가.
가슴에 뭔가가 들끓는다.
“예전의 감을 찾으면 돌아올 건데.”
장가희가 말하며 다가왔다.
침대 옆에 선 그녀가 마저 입을 연다.
“그때까지 뒈지지 말고 몸 사리라고.”
“너나 조심해라. 브라질이면 ‘그쪽’에 몸담으려는 것 같은데.”
“몇 달만 몸만 풀고 올 거야. 예전 폼만 찾고 돌아올 거고.”
“너나 뒈지지 마라.”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허약해 빠져서.”
“허약? 무식한 변신족이 섬세함을 알 리가 없지.”
“섬세? 웃기시네. 소심한 거겠지.”
“성욕에 미친 강간 마녀로 변신하지 말고 갈 길 가라.”
“미친 새끼, 말하는 꼬락서니 봐.”
덕담이 오갔다.
이 순간, 최악의 관계였던 둘은 같은 마음을 품었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에게 쥐어 터질 수는 없다고.
“바나나 더 사 주랴?”
“내가 원숭이로 보이냐? 다른 거로 가져와.”
“명령조야, 아주.”
그리 말하면서도 장가희는 나가서 몇 가지 과일을 더 사 왔다.
다친 불멸자의 몸은 많은 영양소를 요구한다.
지금도 링거를 통해 영양 수액을 맞는 중이고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다.
그럼에도 계속 피로감을 느낀다.
재생에 많은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다.
주일호는 그 피로감이 일순간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 생각하며 리모컨을 들었다.
TV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그리 켠 TV.
입원한 뒤로 처음 켠 TV에 아까 병문안을 왔던 회사 대표가 보였다.
“뭐야? 광익이네.”
마침 장가희도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특집 방송 세최특, 생방송 중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죠. 연봉 1억 5천, 3년 근속 시 사옥 제공합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진행자로 보이는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눈에 보일 정도로 당황했다.
진행자의 말에 광익은 윙크를 했다.
찡긋.
“저 공개 구혼, 아니 공개 뭐였지?”
“공개 채용.”
광익의 옆, 눈 밑이 검은 이동훈도 보였다.
그 말에 광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NS 공개 채용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걸 들은 진행자가 ‘네? 공개 채용이요?’ 라고 되묻고.
TV를 보던 장가희가 입을 열었다.
“……미친 짓을 참신하게 잘하네.”
그 말에 주일호도 동의했다.
일반 사람의 상식 수준을 부숴 버리는 과격한 행보다.
근데 이상하게, 이걸 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장가희도 그랬는지, 피식 웃는다.
그리고 광익은 방송에서 당당히 외쳤다.
“학벌, 혈연, 지연 안 봅니다. 딱 이겁니다. 돈 많이 줄 건데, 아시죠? 우리 회사에 오면 목숨 걸고 다녀야 하는 거, 각오하는 사람만 오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돈 많이 줄 테니 목숨 걸고 일해 달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