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8
26. 기준
쓰러진 뒤 2시간, 튼튼한 변신의 육신과 활발한 불멸의 재생력은 타박상이나 흔들린 뇌를 금세 제대로 돌려놨다.
“완전 깨졌네.”
절로 혼잣말이 나온다.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이렇게까지 머리가 울리는 걸 보면 일반인이 맞았다면 확실히 죽을 정도의 타격이었다는 거다.
뇌세포가 순간적으로 오천 개는 타 버렸을 거다.
근데 인간의 뇌세포가 몇 개나 되지.
아니, 난 불멸자니까 특수종이고 특수종 중에서도 혼혈인데 그럼 내 뇌세포는…….
“짜증 나.”
잡스러운 생각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 건 아니다.
어머니한테도 수없이 졌고, 변신족 각성 전에는 여기저기서 져 봤다.
그런데도 짜증이 나는 이유는 왜일까.
뭐에 당하는지도 모르고 쓰러진 게 얼마 만이지?
눈을 감지 않아도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이 떠올렸다.
분명 양팔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뭐로 때린 걸까.
솔직히 보이지 않았고 느끼지도 못했다.
느끼지 못했다는 건 기척 죽이기를 이용한 것 같은데, 뭐냐고 대체.
모르면 물어보면 그만이다.
벌떡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내가 일어난 곳은 휴게실, 그것도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쓰도록 만든 방음 시설 튼튼한 1인 휴게실이다.
불멸의 사무실에 의무실 따윈 없다.
아니, 있긴 했다. 6층인가를 통째로 쓰는 정신의학과.
그쪽에 심리상담사와 정신의학 전문, 그것도 특수종 전문 의사가 있다고 했다.
그들이 처맞고 쓰러진 불멸자를 돌볼 일은 없으니.
내 앞에 선 사람이 의사일 확률은 없었다.
휴게실 앞, 익숙한 뒤태다.
“어? 벌써 일어났네?”
방귀태다.
“여기 왜 있어?”
“너 쓰러진 거 구경하러.”
말하며 실실 쪼개는 얼굴에 원투를 꽂을 뻔했다.
참자. 농담에 정색하는 건 진짜, 지이이인짜 폼이 안 나니까.
“다 봤으면 가.”
“혹시 어디 문제라도 있으면 돌보라고 동훈 대리님이 보냈다. 뭐 이리 까칠해?”
“뭐가. 난 평소처럼 부드러운 유광익이다.”
“까칠해, 지금 말투가 졸라 까칠해.”
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당장 내 머리를 후려친 것의 정체를 밝히러 가야 하니.
“하여간 멀쩡하면 나도 일하러 간다.”
귀태 형이 먼저 톡톡 뛰듯이 사라졌다. 바쁜 와중에 내 곁을 지켜준 건가.
그렇다면야, 괜히 가시 돋친 말투로 대한 걸지도 모른다. 아, 몰라. 나중에 미안하다고 한번 하자.
사무실로 향했다.
보무도 당당하게.
패자의 슬픔은 잊고 도전자의 패기로.
언젠가 다시 도전해서 그 면상에 하이킥을 꽂아 줄 거니까. 내 포지션은 도전자다.
“일찍 일어났네?”
“튼튼해.”
팬더와 얼음 공주가 날 반겼다.
시발 팀장은 신중하게, 정말 더없이 신중한 태도로 종이접기를 하는 중이었다 팀장은 회사에 반쯤 놀러 오나 보다.
척척 걸어가서 앞에 서니.
“우리 시발 신입, 튼튼하기도 하네. 벌써 일어났어?”
팀장은 그리 말하면서도 나한테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종이접기에만 집중했다.
“뭐였습니까?”
궁금한 건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어머니한테 처맞을 때도, 맞고 나서 그 기술을 그대로 다음에 써먹곤 했다.
이제는 머리가 다 굵어져서 전과 같은 대련은 없지만, 그래도 열여덟 전후로는 많이도 어머니에게 두들겨 맞았다.
그 모든 대련이 변신족 육체 컨트롤 단련법 중 하나라고 하시기도 했고.
힘을 허투루 쓰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팀장을 바라봤다.
알고 싶다.
간절하다.
아마 카메라로 지금 날 찍는다면 불꽃을 품은 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뭐가?”
“마지막 그거, 저 기절시킨 거, 몽둥이라도 숨겨 놓은 겁니까?”
내 몸은 튼튼하다. 얼마나 튼튼하냐면, 변신족 선생이 어지간한 통나무로 머리를 후려쳐도 기절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질문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질문 두 번째다.
알고 싶다. 간절하다.
다시 눈빛 발사.
팀장이 손가락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든다.
“마지막 그거?”
어째 얼굴에 웃음기가 어려 있는 것 같다.
“알고 싶어?”
뭐지, 뭘까 이 기분은.
알고 싶다. 그리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쉬이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육감이 주는 경고? 아니다.
이 기분은.
실실실.
웃는다. 팀장이 웃었다. 그것도 입꼬리만 말아서 웃는다.
놀린다. 분명히 놀린다. 알려 달라고 해도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정신이 들었다.
이 팀장이란 놈은 절대로 순순히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요. 그냥 한번 물어봤습니다. 이기셔서 기쁘십니까?”
“난 언제나 승리에 목말라 있지.”
미친 팀장.
“네. 가 보겠습니다.”
“응, 가.”
배실배실 웃는다. 후려치고 싶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야, 신입.”
“네. 신입 사원 유광익.”
“여기가 학교냐? 물어보면 내가 아, 우리 꽝익이 대가리에 든 게 없어서 내가 알려 줘야겠구나. 이럴 줄 알았냐?”
알았다고 새끼야, 안 물어본다고.
“아닙니다.”
대강 답하는데.
“알아내서 보고서 가져와.”
팀장이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받은 투철한 가정 교육 덕분에 난 몸을 돌려 알겠다고 답하고, 감사하다고도 말했다.
아, 처절한 예의범절이여.
그래, 저 작자는 나의 상급자이자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이며, 후배를 괴롭히는 사디스트에 욕쟁이다.
존경은 못 해도 존중은 해야지.
모니터에 눈을 돌리니, 깜빡이는 알림창이 보였다.
사내 메신저다.
아, 아까 귀태 형에게 너무 까칠하게 대했는데 사과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메신저를 열었다.
귀태 형한테 온 메시지였다.
절규하는 이모티콘에 ‘패배자…….’란 세 글자가 남아 있었다.
이 새끼가.
타다다닥.
타자에 불이 붙도록 두드렸다.
이 새끼 방귀태야, 너였으면 0.1초 만에 천국 문 노크했어.
요단강에 푹 빠져서 익사했다고.
[방귀태] 응응. 그래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루저.이 새끼가.
놀리는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면 지는 거다. 난 무시했다.
그 뒤로도 요새 엄청 바빠서 메신저도 제대로 못 보는 요한이 축하한다고 말해 줬고.
자기밖에 모르는 우미호도 바보란 두 글자를 남겨 줬다.
다 죽어 버려.
정기남도 알았겠지. 아, 몰라.
일이나 하자.
근데 내가 할 일이 있던가.
외부 보안 3팀은 출동이 없으면 일이 없다.
한두 시간만 있으면 퇴근이었다. 운동할 마음도 안 생기고.
외운 거, 그러니까 이제까지 배운 것 중에 실습 가능한 것들 시간 날 때마다 내려가서 해 보라고 했으니 그거라도 할까나.
이거 어째 월급 루팡이 된 기분이네.
갖가지 장비는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좋다고 했다.
그거라도 하자, 그리 마음먹은 순간이다.
“너 담배 안 태우냐?”
팬더 대리가 말을 걸었다.
“네.”
굳이 왜.
불멸자의 폐는 영원불멸 튼튼하니까 다들 담배는 필수 기호품으로 안고 산다.
하지만 난 그 냄새가 싫다.
재떨이 냄새, 지독하다고.
변신족 각성으로 발달한 후각은 아무리 닫고 있어도 그 매캐한 향을 잡아챈다.
옆에서 피우는 거야 그러려니 하고 견디겠다만, 직접 피워서 내 몸에서 냄새를 풍기는 건 절대 싫다.
“소셜 스모킹 몰라? 좀 배워라.”
“하실 말씀이라도?”
“따라와.”
팬더 대리가 의자에서 일어나 착착 걸어갔다. 덩달아 몸을 일으켜 따르려는데 뒤통수가 가려웠다.
뒤를 돌아보니, 팀장이 언짢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보였다.
“얘도 알 건 알아야죠.”
“찬스도 안 썼는데 힌트는 왜 주고 지랄이야. 시발.”
팬더 대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으며 답했고.
팀장은 들리는 걸 알면서도 혼잣말처럼 말했다.
난 다 무시하고 팬더 대리의 뒤를 따라갔다.
승강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던 팬더는 대나무 대신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뻐끔하고 흰 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걸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수습 3개월, 3개월 뒤에는 정직원이 약속됐지. 그럼 그 3개월 동안 평가는 누가 할까?”
대뜸 묻는 말이다.
“회사에서 하는 거로 압니다.”
“회사가 사람이냐?”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 회사는 사람이 아니니 평가를 하는 사람은 있다. 그런 말이었다.
“각 팀 팀장이 그 사원의 적성도를 판단하고 보고서를 올리지. 그건 곧 고과에 반영되고,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거다.”
추상적으로나마 알던 얘기였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고 들어와서 설명으로만 들었던 얘기.
새삼 이동훈 대리 입에서 들으니 피부에 와닿는 기분이었다.
이 말이 피부에 확 와닿는 동시에 소름이 돋는다.
“제 평가를 그럼 팀장님이 하십니까?”
물었다.
“그럼 누가 할까? 내가 하리? 내 의견도 들어가긴 하겠지.”
팀장이 내 평가를 좋게 할까? 지금까지 상태로 봐서는 절대 좋게 안 줄 것 같은데.
“우리 팀장님 스탠스는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같았어.”
믹서기.
생각만 하고 말은 안 했는데.
“믹서기 알지?”
대리가 말했다.
타이밍이 기가 막혀서 독심술이라도 하는 것 같다.
“우리 팀장님은 신입 싫어해.”
“포기하란 겁니까? 그 평가가 안 좋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쯔읍.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대리가 입을 연다. 말하는 와중에도 흰 연기가 공중에서 흩어졌다.
“부서이동 될 거고, 초반 입사 평가는 그렇게 굳어지겠지.”
난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 시험을 봤고 면접을 봤다.
장원 급제, 그러니까 수석 합격을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최소한 변별력을 보는 시험에서 아는 게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다음은 오티.
난 거기에서 등수 놀이보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거 때문인지, 아니면 화림 사장이 변태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일로 사장에게 찍혔다.
그 오티 이후, 진짜 회사 생활이 시작된 거고.
기록에 남는 평가는 이거부터일 거다.
수습 평가, 또는 입사 평가라 불리는 것.
다들 입사한 뒤에 왜 그리 아득바득 일하나 했더니.
왜 아무도 이런 건 말 안 해 주는 거냐?
아니, 최근에는 나도 너무 바빴다.
그게 아니었다면 요한에게 물어봐서 알 수 있었을 내용이다.
아니구나. 이건 회사 선배, 그러니까 사수가 말해 주는 거다.
“너 눈치 빠르니까 대충 알지? 각 팀에서 평가하는 기준이 다 달라.”
그래서 요한이고 귀태고 말해 줄 수 없었을 거다.
“김정아는 애가 너무 딱딱해서 설명에는 영 재주가 없으니까 내가 대신 말해 주는 거다. 모른 채로 끝나면 좀 가혹하잖아?”
선의? 아니, 의무다. 알려 줘야 하는 일인 거다.
“바쁘니까 짧게 말해 줄게. 우리 팀장님은 기준이 있어.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만의 기준이 있지.”
자기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건 진즉에 눈치챘지.
보면 딱 알지, 그게 어디 정상적인 상태입니까.
“하나, 팀장님이 주는 숙제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둘, 이런 숙제 외에도 시험이 몇 번 있을 건데, 그건 미리 말해 주지 않는다.”
“지금 하신 말씀은…….”
팬더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맞아, 동기한테 물어보는 건 네 자유인데, 그걸 팀장님이 모르겠냐? 그러니까…….”
“자력으로 알아내란 거군요.”
대리의 말을 내가 끝맺었다.
“알았으면 됐다.”
툭툭.
팬더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꽁초를 툭 던져서 재떨이에 골인시켰다.
재주 좋네.
날 지나쳐 걸으며 팬더가 말했다.
“팀 옮기고 싶으면 미리 말해. 지금 옮기면 팀장님도 별말 안 하고 금세 옮겨 줄 거다. 사장님이 뭐라고 했든 간에, 여기서 괜한 고생 하지 말라고.”
난 사장님 인사 조치로 이 팀에 들어왔다. 그걸 물려주겠다는 소리다.
팬더가 내려갔다.
난 가만히 선 채로 고개를 들었다.
빌어먹을 서울 하늘.
오늘도 스모그가 가득 꼈네. 쾌청한 하늘이면 얼마나 좋을까.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팀을 옮겨?
그래, 나도 이쪽 팀이 막 미친 듯이 사랑스럽진 않다만.
“호락호락.”
그리 넘어갈 순 없지.
날 지켜 줬던 등.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적어도 이런 일쯤은 웃으며 넘어갔을 거다.
나도 그럴 것이다.
숙제든, 시험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나는 외부 보안 3팀의 팀원이었고, 고작 팀장이 별나다는 이유로 팀을 옮기고 싶진 않았다.
하물며 이중봉 팀장.
실력만은 진짜 중의 진짜다. 심장이 뛰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나온다.
나도 미쳐가나.
나 왜 이게 재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