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7
25. 세 개의 비기
우직! 뻥!
두 개의 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나이 열다섯.
인생사 제일 험악하다는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왼손에 흑염룡을 감고 그러진 않았지만.
“아, 짜증 나.”
어머니와 대화 중에 말실수를 했다.
곁에 계시던 아버지가 엄하게 말씀하셨다.
“유광익, 말버릇이 그게 뭐냐.”
“아니, 좀 내버려 두셔도 되잖아요.”
뭐 대단한 일로 그랬으면 어머니도 이해해 주셨을지도 모른다.
부끄럽게도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며칠째 놀다가 늦었고.
일찍 오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알겠다고 대답하는데도 몇 마디 더하시길래 한 마디 뱉어 버렸다.
그럴 때가 있다.
실수인 걸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걸 부인하기 위해 더 강하게 나갈 때가 말이다.
철이 없던 시절에 하는 실수다.
“저 좀 내버려 둬요.”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고 그날 저녁은 걸렀다.
나가서 밥 먹을 용기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광익아.”
어머니가 날 불렀다.
“오늘은 학교 안 가도 된다.”
“……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대신 엄마랑 얘기 좀 하자.”
하루 만에 난 반성했다.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엄마, 어제는…….”
“아니, 입으로 말고.”
“……네?”
“체육관으로 와. 비워 놨으니까.”
이게 뭔가 싶었다.
그때 처음으로 난 어머니를 링에서 마주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 신경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니, 나쁜 걸 넘어서 모든 운동에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날 위해 집 근처 체육관에 맡기셨다.
복싱 체육관이었고 대형 복싱장은 아니어서 사람이 많진 않았다.
오전 열 시쯤이었나.
새벽 훈련에 매진하는 형들도 없고.
트레이너 아저씨만 있었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 아들 많이 컸네. 어제 뭘 잘못했는지는 몸으로 배우자.”
어머니의 훈육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한 대 맞았을 때는 이러지 말라고 했고.
몇 대 더 맞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반항했다.
물론 내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패륜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하도 맞다 보니 절로 주먹이 나간 거지.
그렇게 맞았다. 몇 대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용케 어디 부러지지 않고 얼굴이 팅팅 붓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히 아팠다.
로우킥에 맞은 허벅지가 아렸고 훅에 맞은 머리가 울렸다.
“아이고, 어머니, 애를 개 잡듯이 잡으면 됩니까!”
트레이너가 놀라서 말렸다.
“괜찮아요. 우리 애 그렇게 약하게 안 키웁니다. 그리고 잘못했으면 맞아야죠. 요즘 애들 놔두면 큰일 나요.”
단호한 어머니.
싸움 잘하는 어머니.
주먹과 발을 기가 막히게 쓰는 어머니.
새로운 어머니와 영접한 난 그날 처음으로 요단강 중간쯤에서 사공과 이별한 뒤, 다시는 개기지 않았다.
가출? 했다가 잡히면 진짜 뼈도 못 추릴 거다.
거기에 부모님은 날 정말 극진히 사랑하셨고 그걸 여실히 느낀 나다.
순전히 내 잘못이었기에 인정했다.
맞을 짓 했다고.
그것도 무작정 때리신 것도 아니다. 진짜 대련이었다.
내가 배운 바를 펼치는 거고 어머니는 할 수 있는 걸 하셨다.
하하하.
그래도 치사했어요.
어머니가 변신족이라는 건 몰랐잖아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반항과 함께 돌아온 훈육에서 난 커다란 벽을 느꼈다.
그때 당시 나는 나보다 서너 살 많은 형도 때려눕혔었다.
변신족도 불멸자도 아니었지만, 난 꽤 재능이 있는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못 이기겠더라.
순전히 실력으로 발렸다.
고통과 함께 상념과 과거의 기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난 내 몸을 점검했다.
왼쪽 팔이 덜렁거렸고 앞에 선 작자가 서너 명으로 보였다.
뇌가 흔들렸다.
자각하는 순간 불멸의 회복력이 내 몸을 정상으로 만들었다.
흔들렸던 뇌가 돌아오고.
눈앞에 선 작자가 보였다.
이름 이중봉, 시발 팀장.
“우리 신입, 어디서 좀 놀았다며?”
무기 없는 맨주먹의 한판 승부.
불멸자끼리니까 할 수 있는 룰이다.
솔직히 내가 가볍게 이길 줄 알았는데.
“왜? 이레귤런데 개발리니까 막 분하고 그러냐? 시발, 요새 애들은 어른 보기를 물로 보나.”
난 방금 일어난 일을 복기했다.
시작하기 전에 우미호는 최대한 버티라고 했고.
상대방 세컨이었던 정아 선배는 ‘병신 만들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덤볐다.
스텝 두 번에 거리를 좁히고 잽을 넣었다.
팀장이 피했고 난 반사적으로 콤비네이션을 꽂았다.
용케도 다 피하는 걸 봤다.
한 방만 걸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틈을 보이고 때렸다.
그러니까 같이 때렸는데.
나만 이 모양이 됐다.
다시 복기다. 더 디테일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지?
내 몸에 생긴 일과 그 순간을 떠올리자 알 수 있었다.
때리는 순간 팀장은 손을 펼쳐 팔뚝을 잡아챘고 난 균형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팀장이 내 팔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때렸다.
뭐로?
자세를 유추했다. 팔꿈치다.
느낀 건 두 개다.
엄청 빠르고 깔끔하다.
“어때?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냐? 더 해야지? 우리 시발 신입.”
팀장이 말했다.
“후우우.”
숨을 골랐다. 그래, 내가 너무 얕봤다.
불멸과 변신의 박투다.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했다. 오만했다. 방심했다.
자세를 다시 잡자, 팀장이 빙그레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진짜 기뻐서 웃는 그럼 미소다.
“다시 갑니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임했다.
근데 아까 뭐라고 했지? 이레귤러?
아, 불멸 이레귤러.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었다.
불멸이지만, 내 몸은 아주 튼실하니까.
불멸이지만, 힘이 세고 튼튼한 혼혈.
특별한 혼혈, 팀장은 그걸 비아냥거린 거다.
자세를 잡고 스텝을 밟고 거리를 좁혔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단숨에 짓쳐 들어가지 않는다.
퉁퉁.
잽을 뻗고 내 거리를 유지한다. 대인 격투의 기본은 거리 싸움이다.
팀장은 실실거리며 피했다.
그게 또 배알이 꼴리기는 했지만, 심리전도 싸움이다.
참는다.
탁. 탁!
주먹과 손바닥이 오간다.
“오, 신입 좀 한다.”
“팀장님이 좀 봐주시네.”
주변에 떠드는 소리도 무시.
“넌 왜 여기 있냐?”
팀장이 물었다.
이건 무시하기 힘든 물음이다.
“뭐가요?”
“돈 때문에?”
연봉 육천오백, 무시 못 할 액수지.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순 없다.
그저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빠른 길.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기도 바쁘다.
감각을 곤두세웠다.
“어설퍼.”
팀장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난 상대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었다.
당해 본 거다.
불멸 비전 기척 죽이기.
상대가 인지되지 않기에 자연스레 움직임을 놓친다.
집중!
감각을 곤두세우고 인지 범위를 좁혔다.
아래에서 위로 뭔가 올라온다. 난 고개를 젖히며 몸을 틀었다.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짧은 올려 차기다.
올려 차고 내려오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피하고 반격을 계산하는 순간 팀장은 어느새 본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아니면 같잖은 영웅 심리냐?”
말은 왜 자꾸 거는 거냐.
대답 대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뭐지, 왜 이 양반 나보다 빠르지.
솔직히 변신족의 힘이라면 내가 더 빠르고 강한 거 아닌가?
아니지, 이건 지금 생각할 게 아니다.
상대가 오랜 시간 훈련하고 단련했다면 변신의 육체와 버금갈 수도 있겠지.
불멸, 변신 양쪽 과외 선생이 말했었다.
이제 난 기초를 쌓은 거라고.
심화 과정을 가르치고 싶은 눈치였는데 그때는 시간이 없었다.
그럼 어쩔까?
얌전히 질까?
그래, 인정한다. 시발 팀장은 S급 격투 능력을 갖춘 거다.
인사 명부로 봤던, 그저 알파벳 한 글자라고 생각했던 그 S가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와닿았다.
“돈, 영웅 심리도 아니면, 뭐야, 여기서 활약해서 여자애들 환호라도 듣게? 그럼 연예인을 해야지.”
말하며 달려온다. 기척이 없기에 반응이 느렸다.
난 선택했다.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상대하는 법은 있다.
난 그렇게 했다.
숨을 참고 첫 일격을 끝까지 주시했다.
불멸의 동체 시력이 상대가 내민 무기를 잡아챈다.
손바닥 밑, 단단한 부분이 턱을 노렸다.
이건 맞으면 골로 간다. 그러니 비켜 맞자.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틱, 찌이익!
오른쪽 볼이 긁혔다. 볼을 넘어 안구도 건드렸다.
화끈한 통증과 오른쪽 시야 반쪽이 검게 물들었다.
뼈를 주고, 뼈를 깎자.
불멸이니까 할 수 있는 전법이다.
맞으며 양팔로 상대를 끌어안았다.
뜨거운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흐른다. 곤두세운 촉각이 그걸 여실히 느끼게 했다.
그리고 잡았다.
양팔로 단단히 상대를 안았다.
꽉 껴안은 형국이다.
날 때리려면 상대도 내 거리 안에 들어와야 한다.
발이 빠르고 날쌔다고 해서 몸이 유령처럼 상대를 통과하는 건 아니니까.
맞으면서 잡으면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힘이라면 내가 우위다. 그건 확실했다.
잡은 채로 내가 물었다.
“팀장님은 왜 여기 있습니까?”
난 꿈이 있고 그걸 이룰 거니까 여기 있는데, 그럼 당신은?
“새끼야, 그것도 모르냐?”
몰라, 자식아.
“사명감이다.”
팀장이 말을 이었고 난 팔뚝에 힘을 줬다.
상대는 불멸자다. 전신을 으스러뜨려도 살겠지.
인정사정 안 봤다. 변신족으로 변하며 달라진 근섬유 다발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괴력을 줬다.
우두둑.
“아퍼. 자식아.”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쩍!
그리고 다시 뇌리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타격음, 그것도 둔탁한 타격음,
스테레오로 머리를 울리는 소리다.
이건 또 뭐야.
양팔이 나한테 붙들렸는데 뭘 한 거야?
눈앞이 까매진다. 암전이다.
고로 난 정신을 잃었다.
* * *
“오, 음. 팀장님, 그거까지 쓴 겁니까? 신입한테?”
옆 팀 대리다.
“자식아 너였으면 털렸어.”
중봉이 말하고 부러진 팔을 대충 맞췄다.
“이거 완전…….”
괴물이네. 라고 말하려는 걸 참았다.
보는 눈이 많고 듣는 귀도 많다.
“팀장님.”
뒤에서 김정아가 다가왔다.
“어, 얘 의무실로 데려가. 반나절은 뻗겠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세컨하라고 했던 우미호다.
그녀의 얼굴에 글자 네 개가 보였다.
인사고과.
“그래, 잘 처리해 주마.”
상황 봐서 적당히.
팀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부러진 팔과 금이 간 갈비뼈가 회복되길 기다렸다.
새끼, 더럽게 무식하네.
“그래서 평가는요?”
지금 이들이 한 건, 외부 보안 3팀 전통의 신입 죽이기다.
한 번 붙어 보고 기도 꺾고 배울 거 배우라고 한 단계 높은 세계도 보여 주는 그런 거.
“평가라.”
중봉은 말을 아꼈다.
특수종의 육체는 개발하는 거에 따라 다른 효율을 보인다.
중봉의 격투 S급 능력은 자신의 몸을 그리 개발했기에 얻은 평가였다.
그 과정에서 중봉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잠재력, 의지, 투지 따위를 종합해서 느끼고 평가하는 자신만의 기준이다.
‘이런 새끼가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김정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더 배워야 한다.
몸을 다루는 법과 다양한 상황에서의 전투 능력, 필요한 건 많다.
그런데 그걸 배우지 않고도 자신에게 비기 중 하나를 쓰게 했다.
“씁.”
팀장은 말을 아꼈다.
진짜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새끼가 제대로 배우면 뭐가 되는 거냐?’
기척 죽이기 기습은 피하고.
노림수는 자신이 가진 걸 이용해 받아친다.
싸우는 수준이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고 자란 것 같다.
그것도 어설픈 구타가 아니라 제대로 맞으며 배운 거다.
상대가 이 신입을 키우기 위해 공들였다. 불멸의 육감과 직감은 그걸 알아챘다.
본래 자신이 쓰려 했던 비기는 하나다.
감각 교란.
상대의 감각을 흔드는 파장을 뿜는 거다. 본래라면 이거 하나만으로 신입은 바닥을 구른다.
며칠 전에 정기남이 제 팀 대리와 대련에 이거 때문에 옷깃 하나 못 건드렸다고 들었다.
‘그 새끼가 최고라며.’
다들 그랬다. 올해의 신입 중 가장 밝게 빛날 별이라고.
순혈 중에서도 유명한 혈통 중 하나를 이은 놈.
그런데 지금 이 혼혈을 상대하면서 대리급도 아닌 자신이 세 개의 비기를 썼다.
감각 교란, 기척 죽이기, 기척 속이기.
“팀장님?”
“아주 제 팀장 한 대 때려 보려고 독이 올랐네. 이 새끼.”
말하며 중봉은 인상을 썼다.
표정 감추는 건 중봉의 특기였다.
그와 반대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다.
이 새끼 난 놈이다.
구경하던 이들 중 중봉이 세 개의 비기를 쓴 걸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은밀했다. 그런데도 놀랐다.
“올해 신입은 뭔가 박 터지네.”
누군가 말하고.
“쟤 혼혈이라며? 중력 제어 훈련도 탑이라던데.”
또 누군가 말한다.
미운 오리 새끼.
광익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평가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