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283
280. (외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래서, 미리 말하는데. 다들 민간인 조심하자고.”
말끔하게 가르마를 타 머리를 빗은 남자가 말했다.
앞에 모인 몇몇과 눈을 마주친 가르마 남자는 아주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폈다.
그 눈이 한 명에게 머물렀을 때다.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되돌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혼자 나서서 머리통에 구멍도 나지 말고.”
목소리가 작다. 중얼거림에 가까운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이곳은 불멸자가 모인 집단, 불멸특수대였으니까.
말을 끝낸 남자가 손을 휘저었다.
다들 흩어지란 표시에 누군가가 중봉의 어깨를 잡았다.
“네, 신입사원 이중봉.”
대답 없이 손가락 까딱.
따라오란 말에 그 뒤를 졸졸 따라가니, 옥상이다.
주변을 대강 둘러본 남자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칙.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시다가 뿜는다.
나도 한 대 피워도 되는 건가?
중봉은 고민했다.
“야, 우리 중간만 하자, 좀.”
직급은 대리, 중봉의 사수이기도 했다.
눈매가 조금 치켜 올라간 순혈 불멸자다.
본래라면 바로 윗 선배가 사수가 되지만, 중봉은 순혈 불멸자였다.
불멸특수대에 입사하니, 순혈이 혼혈을 무시하는 기조가 있었다. 그걸 눈치 못 채면 불멸자 타이틀을 떼야지.
혼혈 사수가 순혈 후배를 가르치는 일은 없었다. 순혈 무리는 들어오는 신입 중 순혈만 제 후배로 받아들였다.
알량한 알력 싸움이다.
중봉은 그리 생각하기도 했다.
일반인과 특수종의 전쟁.
특수종 전쟁이라 불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지도 이제 겨우 5년이 넘지 않았나.
그런데도, 사람은 아직도 편을 가르고 싸운다. 편 가르기를 관두고 하나가 되자며 만든 캠페인 노래가 TV에서 줄곧 나오는데도 이런다.
그런데 뒤에서는 특수종끼리도 서로를 배척하고 선을 가르니, 이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
“중간 몰라? 네 이름이 하봉이냐? 아니잖아. 중봉이잖아. 새끼야, 상봉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중간만 가자. 중봉이 시키야? 요즘 분위기 살벌한 거 몰라?”
사수, 대리의 말에 중봉은 눈을 내리깔았다.
“왜 지시를 안 따르냐고.”
“시정하겠습니다.”
“똑바로 좀 하자. 아오, 어디서 저런 고문관이 들어와서.”
틱.
대리가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옥상 출입구를 나선다.
중봉은 그 기척이 밑으로 완전히 내려가는 걸 감지한 뒤에야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 시발.”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중봉은 머리를 칭칭 동여맨 붕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거기서 뒤로 물러났어야 했나?
작전에 나갔다가 혼자만 머리가 터졌다.
이게 두 번째다. 이전에는 팔이 부러졌다.
의욕 과다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자기는 재능이 좀 떨어지는 건지도 모르고.
보육원에서 특수종 각성이 된 이후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렸는데.
뻐끔.
속이 답답해서 줄담배를 피웠다.
“선배 욕도 하고 아주 간이 부었네.”
그때 들린 말에 화들짝 놀란 중봉은 담배를 놓쳤다.
툭 하고 담배가 떨어지고, 뒤를 돌아본 중봉의 눈에 귀를 간신히 덮을 정도로 짧은 머리칼의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는 옥상 출입구 위쪽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다리를 달랑 내밀어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석팀 김희주요. 1급 사원.”
말하며 눈웃음을 보인다. 물론 중봉은 웃을 수 없었다.
“사수한테 욕한 거 아닙니다.”
변명에.
“진짜?”
분석팀 여자가 되묻는다.
“네.”
“아닌 것 같은데.”
“진짭니다.”
“풉.”
그 말에 왜 웃는 건지.
“귀엽네.”
분석팀 여자는 그렇게 말하곤 옥상 출입구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좋아요. 못 들은 거로 해 줄게요.”
여자가 돌아서 나간다. 나가는 여자를 보면서도, 중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못했다.
아무도 없지 않았나?
아까 여기 오자마자 사수가 주변 기척부터 감지하고 입을 열었는데.
누가 보고 있으면 사수의 말투는 나긋나긋한 편이다. 제 이미지 관리에 투철한 인간이니까.
누가 있었으면 그렇게 말했을 리 없었다.
그럼?
‘기척.’
자신도 느끼지 못했고 제 사수도 느끼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중봉은 황당했다.
‘기척을 감춰?’
아무리 작정하고 더듬이를 세우진 않았다지만, 어떻게 순혈 불멸자 둘의 감각을 속였을까?
다시 사무실로 내려와 인명록을 살폈다.
분석팀 김희주.
“허.”
중봉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미쳤냐?”
사수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근처에 있던 선배 몇도 눈살을 찌푸렸다.
불멸자는 예민하다. 특히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더 그런데.
그 사이에서, 작전 나가서 멍청한 짓을 한 신입사원이 혀를 찬 거다.
중봉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눈치가 없어서 한 짓이 아니다. 그만큼 놀랐기 때문이지.
김희주는 혼혈이었다.
그게 놀라웠다.
순혈의 감각을 속이는 혼혈이라니, 이게 되나?
호기심이 생겼다.
“출동이다. 민간인 구한다고 너무 나서지 마라. 괜히 그러다가 우리만 다치지.”
다른 선배가 말한다.
“이중봉 따라와.”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이때 즈음, 일반인과 특수종의 관계는 꽤 나빴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특수종을 납치·감금해서 죽이려는 일반인은 많았고.
반대로 민간인을 상대로 범죄를 시도하는 특수종도 많았다.
거기에 어스 블랙홀의 변형 타입이 나타나기도 했고.
일이 많은 나날이었다.
“네.”
작전은 실종된 남편을 찾아달란 거였다.
“쿼터 이하예요. 피가 섞였어도 그게 얼마나 된다고.”
눈 밑이 퀭한 여자였다. 혼혈 변신족과 결혼했고, 그 변신족의 정체가 발각.
누군가 그 작자를 납치한 거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네.”
작전에 임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 사람을 찾았다. 찾긴 했는데 남은 건 하반신뿐이었다.
그리고 납치도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어스 블랙홀에 휩쓸렸던 모양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경찰과 불멸특수대가 합동으로 처리한 작전이었다.
전보다 커진 문.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이걸 ‘게이트 확장팩’이라고 불렀고.
과학자 무리는 진지하게 어스 블랙홀 비대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한 주 동안 중봉은 김희주와 꽤 가까워졌다.
계기는 단순했다.
“어떻게 한 겁니까?”
“뭘?”
“옥상에서요.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아하, 그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중봉이 달라붙자, 김희주는 말했다.
“노오오오오오력하면 돼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진심인데.”
김희주가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게 불멸 비전 기척 죽이기라는 걸.
중봉은 그걸 나중에 배웠다.
이후에도 둘은 가까워졌고.
“결혼? 호박씨를 까다 못해 씹어 삼켰구나.”
선배의 축하가 있었다.
“혼혈이랑?”
순혈주의에 물든 또 다른 선배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순혈 각성을 했으면 그 피를 이을 것이지.”
그리 중얼거리는 말에 주먹을 날리진 않았다.
중봉은 아내 될 사람에게서 배운 게 많았다.
순혈과 혼혈의 문제는 곪은 상처다.
시간이 흐른다.
중봉은 꽤 행복했다. 아내의 전투 능력은 형편없었지만, 재주가 많았다.
사람을 보는 눈이 좋았고 서글서글한 성격에 인기도 많았다.
순혈이나 혼혈 따위 따지지 않는 순혈 중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이들도 꽤 있었다.
물론 승리자는 중봉이었고.
중봉은 많이 배웠다.
“혼혈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거지?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어.”
아내의 입버릇이었다.
보육원 출신의 운 좋은 순혈 불멸자.
이중봉은 제 출신을 잊었다.
노력했다.
자신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아내가 그걸 증명했으므로.
자신도 그리했다. 증명했다. 승승장구였다.
능력을 입증했다. 인정을 받았다. 기척 죽이기를 비롯한 기예를 갈고 닦았다. 기회가 되면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네가 이중봉?”
“네.”
1세대의 영웅, 남명진이 직접 부를 정도로.
인정받았다.
기뻤다. 많이 기뻤다. 뿌듯했다. 남명진은 한 번 부른 거로 끝내지 않았다.
“내 미래를 들어 볼 텐가?”
사장은 자신의 미래를 공유했다.
화합.
모든 특수종이 참여하는 특수종 부대.
유일여단을 대신하는 도심을 지키는 단체.
꿈이 컸다. 중봉은 그 꿈에 감화됐다.
“순혈과 혼혈의 간극도 좁히지 못하는 늙은이의 헛소리로 보이나?”
“아니요. 아닙니다.”
중봉은 답했고 남명진은 웃었다.
평온한 나날이었다.
불멸자의 육체는 재생한다.
죽음이란 단어와 가장 먼 곳에 있는 특수종이다.
이 세상도 그와 같지 않을까?
다친 곳은 아물면 된다.
순혈과 혼혈의 간극도.
“다 같이 웃고 잘 지냈으면 좋겠네.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툭하면 아내가 뱉은 말이다.
변신족과도 꼭 사이가 나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물 것이다. 언젠가 그리될 것이다.
아이를 낳았다.
“내 아이야?”
“그럼 내가 남의 아이를 낳았을 것 같아?”
중봉은 그 말에 웃지 못하고 아이를 바라봤다.
꼬물거리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으니까.
아직 실감이 나진 않았다.
살아 움직이는 인형 같아 보이기도 했다.
쭈글쭈글하고 못생긴 인형.
“아빠가 됐으면 사랑을 담아서 바라보라고.”
아내가 핀잔을 줬다.
“노력할게.”
“노오오오오력해라.”
둘은 웃었다.
시간이 흐른다.
아이는 쑥쑥 자랐다. 중봉은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딸 바보가 됐다.
“나보다 딸이 더 좋지?”
아내의 물음에.
“반반.”
이라고 답할 정도로.
“이 새끼가?”
아내는 프라이팬을 던졌고, 중봉은 그걸 멋지게 잡아챘다.
그리고 비극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휴즈 게이트가 터지고.
서울 곳곳에 테러 수준의 인베이더가 쏟아졌다.
중봉은 싸웠다.
이게 제 아내와 아이를 지키는 일이었으므로.
그리고 청기사가 나왔다.
러시아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운이 나빴다.
네임드는 천재지변에 비유할 만했으니.
청기사는 홀에서 빠져나와 날았고, 인류는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는 날아서 한곳에 떨어졌다.
운이 나빴다.
중봉의 집이었다.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와 이제 막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있던 집.
“야, 정신 차려.”
짝.
선배가 뺨을 때렸다. 중봉의 눈빛은 흐릿했다.
“청기사는요?”
“북한에서 제압했다. 간신히 쫓아냈다.”
“쫓아내요?”
“그래, 그게 한계였다.”
눈가가 매서운 선배는 말은 사납지만, 속은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홀로 남은 중봉을 챙겼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제 집에 있던 자리에 크레이터를 봐도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제 집을 부수고 짓이긴 인베이더가 딱히 무슨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 터였다.
중봉은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알았기에, 순수하게 화를 낼 수 있었다. 분노할 수 있었다. 복수를 다짐할 수 있었다.
네임드가 천재지변이라고?
아니다. 실재하는 놈이다.
잡는다. 반드시, 죽인다. 반드시.
그리 살았다. 화림에 복귀했다.
“돌아왔구나.”
선배가 그를 반긴다. 선배도 이번 일이 꽤 힘들었는지.
“나 은퇴한다.”
그리 말했다.
2011년, 휴즈 게이트 사건.
화림의 불멸자 중 수없이 많은 특수종이 죽었다.
불멸자는 쉬이 죽지 않는다.
몸이 산산이 찢기거나, 정신이 죽지 않으면 재생한다.
산산이 찢겨 죽거나, 눈앞에서 일어나는 참극에 절망한 불멸자가 죽었다.
정말 많이도 죽었다.
민간인 피해, 특수종 피해를 합산한 숫자가 연일 갱신될 정도로.
위령비를 세울 곳이 부족할 정도로.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중봉은 화림의 핵심 멤버가 됐다.
다만.
“새로운 팀을 꾸릴 기회라고 본다네, 난.”
남명진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전의 중봉은 없었다.
그는 오롯이 복수를 연료로 태워 살아남은 도구였다.
청기사가 죽인 건 제 아내와 아이뿐만도 아니었다.
동료, 동료도 수없이 죽였으니.
화림이 개편됐다. 중봉은 남았다.
이후, 제 팀에 온 이들을 갈궜다. 정신이 무너지면 불멸자는 죽는다.
그걸 또 볼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다 변신체 동훈을 만났다.
그냥 두면 저리 살다 죽을 놈.
세상이 뭔지도 모르고 죽을 것이다.
제 아이가 그러하듯 그리 죽을 놈.
두고 보기 어렵다.
세상을 알고, 살아 보고, 그 뒤에 제 갈 길을 정해야 한다.
동훈을 거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꺼져.”
이리 말해도 동훈은 떠나지 않았다.
중봉의 목표를 눈치챈 그는 3팀의 일원으로 남았다.
네임드를 죽이는 법만 종일 연구하고 있으니, 눈치채는 거야 쉬웠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게 없겠습니다. 그리고 청기사가 총알 몇 발 맞는다고 죽지도 않을 겁니다. 연구팀을 갈궈 보세요. 외계인이라도 잡아 와서 답을 줄 겁니다.”
동훈이 자신을 도왔다.
그리 살았다. 청기사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가슴 속에 뜨거운 연료, 복수라는 걸 품고.
“프로메테우스 소속? 아니면 비켜요. 죽입니다.”
이후, 김정아를 만났다.
몸을 엉망진창으로 쓰는 친구다. 그러면서 일반인의 몸으로 특수종을 잡았다.
노력이다.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다.
약과 훈련을 병행했을 것이다.
혼혈로 태어났다고, 자신의 한계를 쉬이 정하지 않은 아내와 같다.
“목표는?”
“프로메테우스를 죽이는 거요.”
김정아는 복수자였다.
이중봉은 말릴 수 없었다. 자신 또한 똑같은 삶을 살면서 어떻게 말릴까.
다만, 길을 제시할 수는 있었다.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한 길.
“자살이 목표라면 그러다 죽고, 아니라면 따라와라. 그렇게 평생 살아도 프로메테우스는 못 죽인다.”
김정아는 자신의 뒤를 따라왔다.
화림은 그사이 많이 변했다. 다양한 훈련 방법을 도입했고.
순혈과 혼혈의 사이도 꽤 괜찮아졌다.
다만, 사장이 바라는 유토피아 같은 그런 화림은 아직 멀었지만.
화림에는 비약 연구도 있었다.
김정아는 그곳의 실험체이자, 가장 우선 혜택을 받는 사람이었다.
일반인이지만, 불멸특수대에 입사한 가장 특이한 케이스.
김정아는 그리 남았다.
이 친구는 제 둥지를 떠나서 이곳에 남을 수조차 없었다.
순혈과 혼혈을 떠나 일반인이다.
다들 쉬쉬하며 멀리하기도 했다.
김정아는 상관하지 않았다.
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다.
신입 사원 몇 명을 받아 가르쳐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휴즈 게이트가 한 번 더 터지면 죽는다. 그런 놈을 회사에 남겨 둘 수는 없지 않나.
“네 별명이 믹서기다.”
휴즈 게이트 때부터 살아남은 동기가 말했다.
뭐라고 부르든 무슨 상관일까.
그리 청기사를 기다리며 살았다.
수도자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복수를 꿈꾸는 수도자.
그러다 웬 미친놈이 회사에 들어왔다.
“이게 반성문이냐?”
진짜 기도 안 찰 만큼 미친놈이었다.
“이제 눈도 침침하세요? 은퇴하실 때가 됐나 봅니다.”
저런 말을 진심을 담아 말하기에 그를 또라이라 부르고, 그의 이름을 유광익이라 하니.
“죽자, 오늘 널 죽이고 은퇴할란다.”
중봉은 그 신입을 갈궜다.
신입도 자신을 갈궜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즐거움인지.
광익은 하나를 보면 열을 배우는 천재였고.
진짜 미친놈이었다.
아내는 제 한계를 두지 않았고, 언제나 진심을 담아 말했다.
광익도 그랬다.
“아, 진짜.”
진심으로 자신의 앞에서 저리 불쾌한 티를 내곤 했다.
상당한 수준의 미친놈은 분명하다.
그리 살았다.
시간이 흐른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도 중봉은 지치지 않았다.
청기사를 죽이는 법은 계속 업데이트됐다.
버는 돈을 연구 집단에 지원했다.
그들은 청기사를 연구했다.
네임드 하나를 죽이기 위한 연구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단군 그룹의 지원도 받는다.
청기사를 죽일 수 있으면 당장 내일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청기사가 나왔다.
누군가 그에게 지금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전혀’라고 답할 것이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청기사를 향한 원망, 절망, 살의만이 그를 살게 했으니.
그는 그 원료를 태워 청기사의 품에 부식 폭탄을 터트렸다.
범위에 있는 모든 걸 갉아 없애는 탄.
청기사를 죽이되, 자신도 살 수 없다.
기척 죽이기로 뒤를 잡아, 이리할 수 있는 불멸자가 또 누가 있다고.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흘리기.
애초에 강격을 비껴내는 걸 훈련한 이유가 무엇인가.
청기사의 공격을 받는다는 가정이었다.
물론 금방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변신족도 청기사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낼 수는 없으므로.
공감각 강화.
제 오리지널 기술.
그건 맹랑한 꼬맹이 놈에게 전했다.
그거로 됐다.
기척 죽이기야, 제 아비한테 더 잘 배우겠지.
아내와 아이, 동료와 친구.
동훈, 정아, 광익.
모든 얼굴을 뒤로 흘린다. 이제 끝, 마지막, 주마등의 빛이 꺼진다.
그리고 빛이 꺼지기 직전.
그림자 하나가 우악스럽게 그 빛 사이로 끼어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이었으며.
그 검둥이는 제 팔을 잘랐고 제 몸을 감쌌다.
미친놈. 꺼져, 나가라.
이건 제 것이다. 복수를 위한 것이다. 자신도 여기서 죽으면 끝나는 거다.
저 부식 폭탄에 휘말려 죽으면 끝나는 이중봉 주연 영화의 끝.
또라이는 그걸 두고 보지 않는다.
폭발이 일며 중봉은 눈을 감았다. 머리가 흔들리며 곧 정신을 잃었다.
“미친 양반.”
꿈을 꿨다.
아내와 아이가 살아 있는 꿈을.
“설마 울어요?”
라는 질문을 들었다.
혼미한 정신이 제자리로 찾아온다.
중봉은 눈을 떴다.
천국과 지옥, 또는 그 중간 어디쯤.
이런 곳에도 LED 전등은 있었다. 전등 불빛에 눈이 아팠다.
“깼어요?”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동훈이었다.
“나만?”
짧은 질문이다. 중봉은 마지막 순간을 잊지 않았다. 중간에 끼어든 검둥이도.
자신을 구하려고 달려들었다면 무사하진 못하다.
동훈은 중봉과 눈을 마주하고 입술을 떨다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