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357
351. 퓨어 골드
“거기라도 뗄까요?”
아들이 없다면 딸이 둘이 되는 방법도 있다.
“징그럽다.”
아버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감을 있는 힘껏 드러낸 표정을 짓는다.
아들이 없다느니 하는 말이야, 반쯤은 장난으로 시작한 말이다.
나도 알지만.
이걸 그냥 장난으로만 넘어가면 아버지의 꽁한 가슴 한쪽에 낙인이 생긴다.
아들 새끼는 나쁜 새끼라는 낙인이.
“소자, 죄를 실감하였나이다.”
다른 사람 다 듣게 떠들 순 없는 노릇인지라 작게 속삭였다.
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죄는 후일 집에서 묻겠다.”
우리 가족은 잘 논다.
지금도 잘 놀았다.
정신없는 와중이니, 다른 사람이 우리를 주목하진 않았다.
일단 아버지가 전투에서 빠져나온 타이밍이 기가 막혔고.
할아버지한테 배운 언령이 제대로 사람들의 머리통에 진한 인상을 남긴 덕인 듯했다.
언령이 이만한 위력이었던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이 묘하게 어울린 덕이다. 게이트를 통과한 후, 전신 감각이 뒤틀린 이들을 향해 외친 거니.
고로 술 취한 놈한테 언령을 쓴 것과 같다.
그러니 잘 먹히지.
“그리고 너.”
아버지는 금세 진지한 말투로 돌아왔다.
말과 함께 내 눈을 바라본다.
“똑바로 말해라.”
그건 누군가의 고유 기술.
“누구한테 배운 거냐, 그 목소리.”
어머니가 나와 아버지 사이를 번갈아 봤다.
친할아버지를 데려왔다는 거, 어머니한테는 진즉 말했다.
두 분은 만나기도 했다.
마리도 안다.
하지만 나설 일이 아니니, 입을 다물겠지.
어쩌다 보니 숨긴 것 같다. 숨길 생각을 하나도 없었는데.
“다 늙은 불멸자를 하나 고용했는데 괜찮은 재주를 갖고 있더라고요.”
난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누군지는 알고?”
“이번 일 끝나면 만나러 오세요.”
아버지에게 내가 뭘 강요할까.
이대로 할아버지란 작자를 외면해도 좋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나서서 뭘 할 생각도 없다.
할아버지랑 아버지의 사이가 좋아진다고 해서 나한테 어떤 이득 따위도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히 했다.
“능력 있는 분이었어요. 아는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회사에 필요해서 데려왔다는 거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자.”
싱숭생숭하시려나.
일단 겉으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으시니,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락이다.
깍-!
까마귀 무리가 날아오다 말고 총알에 맞고 우수수 떨어진다.
전투 자체는 길지 않았다.
여기 모인 이들은 다들 한가락씩 하는 인간들 아닌가.
그런 특수종이 잔뜩 모인 곳이다. 믹서기라도 된 양 덤비는 인베이더를 갈아 버린다.
화랑이 날뛰고 러시아산 근육 덩어리가 열차 대형으로 인베이더 무리 가운데를 뚫어 버렸다.
중국 공안 부대는 무기를 다발로 쌓아서 썼다.
재주도 좋네. 몸 어디에 저만한 무장을 숨기고 온 거냐.
“불타오르고, 찢어지고, 터져 올라라!”
공안 부대 중 하나가 외쳤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묘하게 귀에 꽂혔다.
“주문인데.”
혜민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균형을 잃은 것처럼 내 팔뚝에 머리를 툭 기댔다.
“이건 진짜 빈혈.”
또 장난질은 아니었다.
저주 폭탄을 던진 뒤로 볼이 쏙 들어갔다. 수척해 보였다.
“뒤로 빠져 있어.”
혜민이 어깨를 잡고 슬쩍 어머니께 밀었다.
어머니가 혜민이를 잘 붙들었다. 쌕쌕 숨을 몰아쉰 혜민이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지간히 지쳤나 보다.
30분도 되지 않아서 달려든 인베이더 무리가 몰살당했다.
꽃밭 위로 놈들의 피가 흥건했다.
이제는 이걸 꽃밭이 아니라 피 밭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었다.
“……내가 왜 나섰지?”
“음, 갑자기 기분이 묘했는데.”
“이건 뭐지?”
몇 명 감 좋은 불멸자가 언령에 당한 걸 자각한다.
이상하다고 느낄 뿐이지, 당했다는 생각은 못 할걸?
아, 지금부터 이어질 상황에는 당했다는 생각이 들까나.
“이 전투에 참여한 거로 우리도 이곳 지분을 받아야겠습니다.”
공안 부대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작자였다.
그가 훌쩍 다가와 대뜸 말했다.
도둑놈 심보 보소.
슬쩍 한 발 걸쳐 놓고 여기에 손을 대시겠다?
“물론, 이후 이곳에 자리 잡기 위해 소모할 자원 투자도 본국 차원에서…….”
“잠깐만요.”
우미호가 나섰다. 게이트 통과 후 두통이 남았는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린 채다.
난 그걸 보며 팔짱을 꼈다.
내가 나설 것도 없는 일이다.
“싸워 달라고 부탁한 적 없었는데, 나선 건 그쪽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크릉, 이봐, 그럼 인베이더가 몰려오는데 그냥 맞아 죽으란 건가?”
저쪽은 러시아 쪽 지휘관인가.
까만 불곰 따위로 변했던 남자가 허공에 털을 흩날리며 사람으로 변한다.
금방 간신히 아랫도리만 가린 차림이 됐다.
근육의 단련 정도를 봤을 때, 꽤 하는 변신족이다.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가 남달랐다.
“알렉세이다. 러시아의.”
미호가 빤히 바라보자,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홍차위.”
중국 공안도 이름을 말하고.
그 타이밍에 협회 쪽 지휘관도 한 발 걸쳤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전투가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데려온 거 아닙니까? 노동력을 썼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협회 지휘관의 말투가 득의양양했다.
저들의 말은 전부 개소리였다.
“누가 싸워 달라고 부탁했나요?”
미호가 셋의 말을 잘랐다.
단두대의 칼날과 같은 말투였다.
“그럼 그냥 인베이더가 홀 입구를 덮치게 만들겠다는 거요?”
“그대로 뒀으면 인베이더가 여길 차지했을 건데? 그럼 이 홀의 자원을 수급할 수 있었을까?”
도도하고 오만하게.
턱을 든 미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대표는 세최특, 네임드 슬레이어입니다. 이깟 인베이더 따위.”
솔직히 말하자면 나 혼자 이거 다 해치웠으면 최소 한 달은 용썼어야 할 거다.
단숨에 소거하지 않으면 계속 몰려들었을 테니까.
한 달 동안은 여기에 발이 묶였을 테고.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아까 알렉세이가 말했듯이, 인베이더가 몰려왔으니 방어했다. 자위의 수단으로 싸운 거죠. 우리는 부탁한 적 없습니다. 소유권 주장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잘한다. 우미호.
“암, 맞는 말이지.”
뒤따라온 귀태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는데, 그 말소리가 꽤 컸다.
들을 사람은 다 들었다는 거다.
“정부에서는 뭐 말 없어요?”
슬쩍 아버지께 여쭈니.
“대통령께서 ‘세최특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라고 하셨다.”
통 크시네.
화이트홀이 있단 건 몰랐을 테니까, 그럴 수 있으려나?
알았다고 해도 안 말렸으려나.
한쪽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삼촌에게 다가갔다.
“바쁜 와중에 여기까지 행차하셨어요?”
“조카가 사고를 친 것 같으니, 수습은 해야지.”
저리 딱딱한 얼굴로 농담을 참 잘한다.
“단군에서는?”
“네 할아버지가 단군의 회장이시다. 이깟 화이트홀, 우리한테는 더 많다.”
삼촌이 가슴을 펴며 자랑하듯 말했다.
“많아서 좋겠네요.”
정부와 단군이 빠졌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 틈이 보이면 찔렀을 텐데, 틈이 안 보인다고 판단한 것 같기도 하고.
두 분 다 이 바닥에서 구를 대로 구른 분들이니.
고개를 돌리다 아는 얼굴을 봤다.
아니, 저 누나도 왔네.
미호의 말에 얼음이 된 그들을 두고 슬쩍슬쩍 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말소리가 들렸다.
“다 맞는 말 같은데.”
러시아 군인으로 보이는 남자다.
“근데 누가 먼저 쏘라고 하지 않았냐? 알렉세이 장군님이 시킨 줄 알고 한 건데, 아니잖아?”
“몰라 나도. 그냥 반사적으로 쐈지.”
미안, 그거 나야.
언령질이었어.
“누나도 왔어요?”
이지혜 팀장 누나다. 경찰 쪽 파견 인원이었다.
“가 보래서.”
“공무원 생활 힘들죠? 이직 생각 있으면 말해요.”
“……정말?”
농담으로 한 말에 왜 눈이 반짝여.
그 눈을 보며 농담이란 말이 쉬이 나오질 않았기에.
“정말. 새끼 걸고.”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팀장 누나가 손가락을 걸었다.
상황 정리는 이거로 끝이었다.
“그럼 들여보내 달라고 했으니, 들여보내 줬고 보여 줄 거 다 보여 줬으니 돌아가시죠.”
미호가 외부인은 나가라고 하자.
공안 부대장이 한 걸음 나섰다.
“말장난이 심하군. 그냥 돌아서라고? 직접 전투에 돌입해서 대규모 인베이더 무리까지 치게 하고?”
압박이다. 공안 부대장이 기세를 높였다.
거, 저 양반 말 참 안 듣게 생겼네.
툭툭 땅을 차고 가볍게 뛰어 미호와 부대장 사이에 섰다.
난 고금 불변의 진리.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배운 지혜를 꺼내 들어 말했다.
“꼬우면 덤벼요. 이기면 다 줌.”
The Winner Takes It All.
승자 독식이다.
공안 부대장은 날 보더니,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래, 말해라. 덤빈다고 해.
“안 꼽다.”
한참이나 날 노려보던 공안 부대장이 말하고 돌아섰다.
아, 안 꼬우셨구나.
“거기, 러시아 아저씨는?”
“러시아 땅덩이는 넓다. 넓은 땅에서 태어난 남자의 가슴은 또한 넓다.”
뭔 소리야.
러시아어다.
“저쪽도 안 꼬우시단다.”
언제 왔는지 팬더 형이 통역했다.
그럼 다음은 협회다.
“뭘 봐요?”
협회랑은 사이가 여전히 안 좋다.
판독기 사업 뺏겼다고 더럽게 징징거린다.
전뇌 공주 뺏겼다고 투덜대고.
툭하면 시비 걸고.
이세계 자원 갖고 장난질 치고.
태생이 징징인가.
“안 쳐다봤는데.”
협회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하지.
시간 되면 언제 그쪽 협회장 한 번 만나러 가야겠어.
교통정리 끝이다.
“자, 돌아가는 길은 이쪽.”
팬더 형이 능숙하게 사람을 이끌었다. 다들 원한이 사무친 것 같지만, 이 상황에서 뭘 더 어쩌려고.
다들 돌아간다. 발을 뗀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들의 어깨에는 힘이 없었다.
난 그런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즐거웠어요! 또 봐요!”
인사는 예의의 기본 아닌가. 난 예의를 지켰다.
공안 부대원 중 하나가 눈치 보며 손을 흔들다 뒤통수를 맞는 게 보였다.
내 팬이려나.
다들 물러나고 화랑도 삼촌 빼고 나가고.
아버지도 피닉스 팀원과 정부 사람을 내보냈다.
여긴 NS의 사유지다.
“우리가 아들을 깡패로 키웠네.”
“깡패면 어때요. 건강하게만 자라면 됐지.”
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속닥거렸다.
“다 들립니다. 저 귀 밝아요.”
“들으라고 한 말이야. 그래도 뭐든 주먹으로 해결하는 버릇은 좀 고쳐라. 무식해 보인다.”
아니, 그게 어머니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나요?
좋은 주먹 놔두고 왜 입으로 얘기하냐는 게 신조인 양반이 저러면 안 되지.
“큼큼. 누이, 그 말은 조금.”
옆에서 호응 삼촌이 헛기침했다.
“너 안 가니?”
“전 지금 화랑이 아니라 광익이 삼촌으로 있는 겁니다.”
정확히 하면 아버지와 삼촌도 외부인이다.
그러니 화랑의 지휘관 또는 피닉스 팀장으로 여기에 있을 순 없다.
“왜 이 아비를 쫓아내게?”
아버지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지금 쫓아내면 한 달은 집에서 아들이 아니라 딸로 살아야 할 듯싶었다.
“미호야, 가족이잖아. 가족.”
“공과 사는 분명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대표야. 딱딱하게 굴지 마라. 네 월급 누가 준다고 생각하냐?”
픽.
미호가 비웃었다.
억지로 들렸냐? 반은 억지지.
하지만 반은 계산인데.
너도 알지 않나?
어차피 여기에 있는 걸 전부 숨길 순 없다.
그럼 일부는 보여 주는 게 맞지.
그리고 보여 줘야 나중에 거래도 틀 거 아닌가.
협회랑 사이가 거지 같아진 바람에 그쪽 이세계 자원 수급하는 게 X 같아졌다.
그럼 그에 상응하는 거로 교환을 해야 하는데.
이제까지 NS에는 화이트홀이 없었다.
지금은 생겼지만, ‘아 우리 홀 하나 구했어요.’라고 말하면 다들 옳다구나 하고 거래하겠나.
물건 가지고 수작을 부리진 않는지.
사실 확보한 이세계는 맹탕인데, 어디서 빼돌린 물건으로 장난질은 치지 않는지.
확인하려 할 것이다.
즉, NS가 이세계 물건을 밖으로 꺼내 들면 보증을 서 줄 입이 필요했다.
그 보증으로 피닉스 팀장과 단군의 후계자라니.
차고 넘친다.
“갑시다. 그럼.”
우미호도 아는 이야기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봅시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주변에 있는 자원의 종류만 파악할 생각이었다.
“소형 핵이라도 들고 왔냐? 방사능은 없는데?”
아버지가 터진 자이언트 웜을 보고 말했다.
“아, 그 비슷한 거 터트렸어요.”
“근데 저 밑에 비었는데?”
아버지의 감은 날카로웠다. 나 또한 이제야 느꼈다.
웜의 밑, 텅 빈 공동 같은 게 있었다.
싸운다고 위에서 한바탕 난리 치는 바람에 여기저기 부서진 돌무더기나 흙, 뿌리 뽑힌 풀들이 쓸려 내려갔지만,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 밑.
황금빛 돌멩이 따위가 보였고.
“……와우.”
아버지가 감정을 드러내고.
“저거, 금?”
삼촌이 한순간에 감정 비슷한 걸 했는지, 반쯤 확신을 담아 말했다.
꽃밭 지상에 있는 것만 해도 꽤 괜찮은 수확이었는데.
웜 밑에는 더한 보물이 있었다.
금맥이었다.
이쪽 세계의 금맥이란 본래 세계의 금맥과는 의미가 좀 달랐다.
이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걸 하나 꼽으라면 누구나 광석을 말할 것이다.
축능석, 기생석, 발열석 같은 특이한 것들.
그중 현재 가장 구하기 힘든 금속이 매장된 땅이 눈앞에 드러났다.
이세계의 황금, 퓨어 골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