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5
이런 모욕을 감내하고서라도 어떻게든 그녀의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은것일까.
그 집념을 생각한다면 그가 레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뻔해보였다.
“할 수 없군요. 저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진 아치우드를 비롯해, 열차에서 내린 다른 마법사들 역시 일제히 아리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앞서 성곽의 무리쪽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옆에서 보고 있던 레녹도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명한 싱클레어 마탑 소속에, 젊은 나이에 6레벨에 도달한 마법사, 거기에 시정부 직속 대학의 석좌교수.
하나만 가지기도 어려운 능력과 배경을 지닌, 명백한 양지의 엘리트.
“저는 그럼 먼저 가볼게요. 일정이 짧은터라, 바로 회의가 시작될 거예요.”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캐리어를 레녹의 손에 들려주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
수행원 역할이라고 했으니, 뭐 이런 거겠지.
지구에서도 연구실에 소속된 대학원생이라면, 다들 비슷한 처지였지 않았나.
가진 바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납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레녹은 그녀의 캐리어를 따로 마련된 개인 저택에 가져다두고, 그는 거기서 좀 멀리 떨어진 수행원들의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이서 저택 하나를 사용하는 구조. 이미 그 말고 다른 이들은 전부 도착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짐을 풀고 있던 다른 세 명이 일제히 레녹을 쳐다보았지만, 이내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하루 뒤에는 평생 볼 일이 없을 사이다.
레녹도 말없이 짐을 풀고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오늘 있을 회의에 레녹이 참석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루정도는 마음 편하게 쉬어간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그것보다는 돌아가는 길에 아리스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역에 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일단 아리스가 영역을 사용할 줄 아는지부터 관건이겠군.’
6레벨 이상의 마법사들 중에서도 재능을 타고난 이들만이 사용가능하다는 자성영역.
레녹은 크레이그와의 대결 도중에 영역을 전개하는 방법을 깨달았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고위 마법에 대한 정보제한이 걸려있는 와중에, 지금의 레녹에게 관련된 자료를 얻을만한 창구는 대학밖에 없다.
크레이그가 사용했던 영역의 위력을 생각하면, 잘만 사용할 시 레녹의 수준보다 더 강한 적을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아보였다.
레녹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이, 느닷없이 저택의 문이 활짝 열렸다.
쏟아지는 날카로운 마력의 기세에 자연스럽게 숙소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범상치 않은 수준의 마법사가 분명했다.
쏟아지는 햇살을 뒤로 한 채, 파블렌 아치우드가 레녹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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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이런 날이 올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담하게 행동에 옮길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가진 원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레녹을 밟아놓아야겠다고 생각한건지.
어느쪽이든 지금 이 상황을 피해가기는 어려워보였다.
그리고 레녹 역시 굳이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라면 다른 놈들에게 쓸데없는 방해를 받지는 않겠지.”
아치우드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성곽의 폐허에서 한참을 떨어진 고원. 차가운 바람에 시든 나무들이 무성한 죽은 숲.
이미 한껏 마력을 끌어올린 그가 레녹을 향해서 손을 들어올렸다.
그 대담한 손짓에 레녹이 눈썹을 들어올리자, 아치우드가 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안심해라. 얼굴은 건드리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대답만 들려준다면, 짧게 끝날거야.”
“………”
“원래라면 이렇게 거친 방법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하지만 때로는 직접 손을 쓰는게 가장 효과적일때도 있지.”
아치우드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너처럼 낯짝이 두꺼운 놈들을 상대로는, 이게 제일 빠르더라고.”
“나도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
“학교 선배에게 존댓말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건가?”
아치우드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레녹이 말했다.
“이번 학회에 인맥을 사용해가면서 따라온 목적이 이거였나?”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지.”
아치우드의 표정을 보니 거기까지 계획한 건 아닌 것이 확실해보였다.
하긴, 레녹이 아리스를 따라 출장을 나가기로 결정된 것이 바로 어제 일이다.
그걸 생각하고 따라붙을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다면 아치우드의 이번 행동 역시 굉장히 즉흥적인 결정이라는 의미.
레녹이 판을 뒤집기는 너무나도 쉬워보였다.
“좋아. 여기서 있었던 일은 교수님에게는 비밀로 하지.”
품안에서 연초를 한대 꺼내물자, 아치우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대학에서는 담배를 꺼낸적도 없으니,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대신 좀 오래 상대를 해줘야 할거다.”
실험해야 할 능력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니.
레녹은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느릿하게 발 아래로 내뻗었다.
일대의 숲을 통채로 끌어안듯이 감싸올리면서 자신을 주변으로 통채로 성질변화를 시전한다.
마력을 사용해서 주위의 공간을 통채로 점유하고 발동하는 성질변화. 따지자면 공간 전체의 성질을 뒤바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레벨 마법사의 전유물인 성질변화 기술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성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핵심.
내려찍었다.
영역발동.
위이이이잉!!
레녹의 것과는 다른 상당히 이질적인 마력이 두 사람을 뒤덮고 순식간에 근방을 침식한다.
그 크기는 대략 반경 10m.
순식간에 레녹의 사정거리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치우드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차라리 잘됐어.’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며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수준차이가 현격한 마법사.
영역의 효과에 대해 실험해보기에는 딱 좋은 상대가 아닌가.
크레이그와의 전투에서는 상대의 술식을 막아내느라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가능성을 테스트해보는 것.
굳이 아치우드를 따라 이 먼 곳까지 레녹이 걸음을 옮긴 이유였다.
아치우드는 그런 레녹의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껏 끌어올린 마력을 양 손에 들고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아까부터 계속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데, 자기 처지를 언제 깨닫는지 나도 궁금하기는 하군.”
[풍랑(風狼)]휘이이잉!!
휘몰아치는 바람이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구체적인 형상으로 변한다.
대기의 기류를 쓸어담고 웅크렸다 고개를 펴고 일어난 늑대의 모습.
“팔다리의 힘줄을 물어뜯기고 난 뒤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크르르….!!]곧바로 레녹을 향해 달려든다.
바람계열의 고유마법. 그것도 소환의 개념을 어느정도 섞은 술식인가.
대기의 기류를 이용하는 그 방식은 흥미롭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영역을 펼친 상태에서 상대가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이빨을 한껏 벌리고 달려들던 바람의 늑대가, 레녹의 눈 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달려들던 그 자세 그대로 멈춰버린 모습.
단 한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레녹의 대응에 아치우드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뭐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
‘역시 그렇군.’
확실하다.
안 그래도 강력했던 레녹의 마력간섭능력이, 영역 안쪽에서 극도로 증폭되고 있었다.
이것이 다른 영역들도 동일한 특징을 지니는지, 아니면 레녹이 가진 고유한 특성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한번 신경을 돌리는데 사용하던 마력간섭을 이런 식으로 써먹을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마치 마력을…. 직접 지배하려는 것만 같은데.’
퍼석! 퍼석!
멈춰있던 바람의 늑대가, 그 자리에서 조각조각 분해되어 대기에 섞여 사라진다.
아치우드는 어떻게든 마법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그가 사용한 마법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흩어지는 바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겠지.
침묵하던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리스 리첼렌이 널 정말 아끼나보군.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아티팩트를 쥐여주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그 말에 레녹이 피식 웃었다.
“한참 고민하고 생각한 답이 겨우 그건가?”
“이 빌어먹을 자식이….!!”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건 그도 직감했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꽁무니를 빼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뿐이다.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이를 악물고 다른 마법을 구현해서 그대로 레녹을 향해 쏘아냈다.
[격동(擊動)] [계람(階濫)] [와풍(蝸風)]레녹으로서도 처음 마주하는, 기이하면서도 유동적인 움직임을 가진 각양각색의 마법들.
허공에 존재하는 대기의 흐름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기 때문인지, 시전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데다 마력전개도 아치우드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다.
이것이 바람계열 고유마법이 가지는 특성일까.
처음 얼굴을 건드리지 않겠다느니하던 말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레녹은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마법을 조각조각 해체해버렸다.
퍼버버벙!!
흩어져가는 바람 사이로 엿보이는 아치우드의 멍한 얼굴.
레녹은 손을 들어올려, 거기 담긴 그 보잘것없는 마력원에까지 감각을 내뻗었다.
닿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영역 안쪽에서 레녹이 느끼고 수용하는 그 모든 것들은, 모두 온전히 레녹의 손 안에 있었으니.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더듬는다.
아치우드라는 마법사의 내면을 구성하는 심상을 휘어잡고, 그대로 비틀었다.
우드드드득!!!
“그극, 으으윽….. 카하아악!!”
온 몸을 지탱하던 기둥이 부러지는 감각이겠지.
아치우드는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발버둥쳤지만, 몸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붕괴를 막을 방법은 알지 못했다.
레녹은 천천히 걸어 쓰러진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는 이미 어떤 적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일은 확실하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레녹도 작정하고 일을 벌였으니, 그만큼 뒤처리도 중요한 법이었다.
“괜찮냐?”
“…..뭐, 뭐?”
“방금 이상한 괴물들한테 공격당했다 간신히 도망쳐왔잖아. 죽지 않은게 천운이군.”
“………”
“그래도 다행이야. 마력을 잃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다친건 아니잖아. 목숨이라도 건진걸 다행이라고 여겨야지.”
처음에는 미친놈을 바라보는 시선이던 아치우드의 얼굴은, 이내 레녹의 말을 깨닫고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지금 레녹은 그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설명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자, 잠깐….. 내가 잘못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레녹은 천천히 그의 가슴팍을 향해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마, 마력만은 안돼. 이게 도대체 무슨 짓거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