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6
“계속 지껄여봐.”
파아아앗…!!
레녹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실험해보고 싶은게 아직 남아있거든.”
“아, 안돼…. 제발, 제발!!!”
콰지직!!
학회 (2)
“으, 그으윽….”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기절한 아치우드를 내려다보던 레녹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흐름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아치우드의 몸에 남아있는 마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그 마력의 움직임이 절반으로 뚝 줄어들었을 뿐.
말은 서슬퍼렇게 내뱉기는 했지만, 레녹은 어디까지나 여기서는 평범한 연구원의 신분이다.
영역을 실험하는 것과는 별개로, 뒷감당을 조금 신경쓸 필요는 있었다.
‘여기서 정말로 이 놈의 마력을 모조리 없애버린다고 해도 문제가 되겠지.’
이런 학회에 참가할 수 있을만큼 두터운 인맥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마법의 힘을 잃어버리는 것도 난감해진다.
아치우드가 조금만 깊게 생각해봤다면 레녹의 단언에 그리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누구라도 마력을 잃는다는 공포에 빠진다면 깊이 생각을 하기는 어렵겠지.
영역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기절한 아치우드를 흔들어 깨웠다.
아무리 공포심으로 억누른다고 하더라도, 입단속은 확실하게 시켜야 할테니.
어떻게 할까….. 레녹은 고민하다가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내고 씩 웃었다.
“아치우드.”
“……..마, 마력이…”
아직도 스스로에게 닥친 현실을 실감하지 못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마력을 절반 정도 남겨놓았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뭐?”
“혹시 모르는 일이잖나. 입을 조심하고 있다면, 사라진 나머지 마력 절반이 어느날 네 몸 안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
“……….”
그가 아무리 정신머리가 없어도 이 말을 못알아듣지는 않으리라.
물론 레녹은 그의 배배꼬아버린 그의 마력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 따위는 알지 못했지만, 거짓말 한번으로 그의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비참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아치우드를 내버려두고 미련없이 죽은 숲을 나섰다.
레녹은 대학생활에 귀찮은 방해물 하나를 미리 치워두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것보다는 지금 영역발동으로 알아낸 사실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자성영역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마력이 상당하군.’
이번 작전으로 적지 않음 마력의 상승이 있었음에도 마력의 소모량이 적지 않다.
영역의 효용성과는 별개로, 직접 전투에서 사용하기 부담스러울 정도.
크레이그와의 전투때처럼 단 한번의 마법으로 결판을 짓는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꺼내들기에는 부담이 많이 가는 능력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리스 같은 실력있는 마법사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을 어떻게 꺼내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까.
뭔가 그럴듯한 핑계를 떠올리면서 천막을 향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품안에서 다비가 입을 열었다.
[마스터.]“음?”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누군가라니….?”
다른 사람의 접근에는 단 한번도 이런 식으로 반응한 적 없던 다비가, 갑자기 말을 꺼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지금 레녹을 향해 접근하는 누군가가 특별한 무언가를 지녔거나.
혹은 그 ‘누군가’가 다비와 비슷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겠지.
답은 후자였다.
후웅!
부드러운 훈풍이 불어온다.
아치우드의 마법인가 착각하는 것도 잠시, 녹색의 따스한 기운을 끌어안고 내려앉은 바람이 구체적인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매의 형상.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뜬 정령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다, 레녹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일체의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말라붙은 여성의 목소리.
레녹은 직감적으로 이 말이 매 본인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게 볼 일이 있나?”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학의 연구원. 하지만 그 경이로운 재능은 온전히 가려지지 않는군요. 덕분에 당신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특정이라고?”
레녹은 그렇게 되물으며 가만히 팔짱을 꼈다.
애매하게 말하는 재주가 있는 상대다.
지금 레녹이 반의 신분으로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장 중요한 그 부분을 말하지 않고서도 레녹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으니.
굳이 당장 수긍할 이유는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어디까지나 교수님을 따라 학회에 참가한 연구원일 뿐이야. 재능이라는 건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군.”
적당히 시치미를 떼고 상대의 반응을 한번 더 지켜보는 것이 옳다.
최악의 경우에는 눈앞의 정령을 잡아 위치를 역추적해내야 할 수도 있겠지.
레녹이 차갑게 가라앉은 이성으로 이것저것 대책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 매가 가볍게 부리를 털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레녹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아뇨. 당신이어야만 합니다. 천견, 마드레아 팔시어의 마지막 유언을 들은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니까요.]“………”
그 순간 레녹의 눈동자가 더없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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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없는 고원.
아치우드가 기절한 숲과는 한참 떨어진 거리다.
누군가 접근하기만 해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만한 텅 빈 풍경.
여기라면 나중에 레녹이 숙소로 복귀한 뒤에라도 적당한 핑계를 대기에 충분하겠지.
레녹은 그의 어깨에 앉아서 날개를 파닥거리는 매를 쳐다보는 대신, 연초를 한대 더 꺼내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다음 세대의 ‘등대지기’가 바로 그쪽이라는 말이군.”
필레놈의 등대지기.
외해를 관측하는 사명을 수행하던 승천자가 레녹에게 유언을 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야 한다.
그녀만한 초월자의 전음을 엿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알았을때 처음부터 레녹을 잡아죽이러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모든 예상을 뒤엎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제 조모였습니다.]담담한 대답. 레녹은 그 목소리에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눈썹을 끌어올렸다.
“…..여기까지 와서 부정해봤자 쓸데없는 일이겠지. 그래서, 용건이 뭐지? 그 사람이 내게 무슨 말을 남겼는지 알고 싶기라도 한 건가?”
유감스럽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마드레아가 레녹에게 남긴 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페널티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너무나도 날카롭고 치명적인 말이었으니까.
그건 아마 하늘을 꿰뚫어본다는 이명을 가진 그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천견이 사망한 시점에서는 다른 승천자라고 하더라도 이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는 말이 된다.
그 사실을 고작 그녀의 손녀에게 이렇게 쉽게 오픈할 수는 없었다.
[….조모님께서는 언제나 스스로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셨습니다. 그 분의 유언이 단 한사람에게만 닿았다면, 제가 그 내용을 알 권리는 없는 법이지요.]“………”
[용건은 다른 쪽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승천자의 죽음 이후 ‘관측’이 무너져내리며 외해의 괴물들이 접근하는 이 상황에 대한 논의에 가깝죠.]“그걸 왜 내가 들어야하지? 나보다 더 강력하고 고결한 마법사는 얼마든지 있을텐데.”
[저는 조모님의 유언을 들을 자격이 없지만, 당신은 이 세계의 비밀을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더없이 차분한 그녀의 대응에 레녹이 입을 다물었다.
눈앞에 펼쳐진 싸늘한 광야.
이 순간만큼은 오직 이 풍경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지만, 레녹 역시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다.
이 세계의 밖에 존재하는 외해(外海)라는 거대한 암흑의 바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이곳을 주시하는 괴물들의 존재.
닫힌 세계. 알카이드. 승천자. 종말과 세번째 세상의 비밀.
드문드문 기억나는 이 단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 순간만을 기다려오지 않았던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첫 발걸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모님께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마법사라면, 틀림없이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터…. 지금 우리는 그런 이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펄럭..!!
레녹과 같은 풍경을 공유하던 매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긴말은 필요없겠지요.]창공을 점점 높이 솟아오르던 정령의 신형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그녀의 마지막 전언이 고원에 나직하게 내려앉았다.
[결정을 내렸다면 필레놈의 등대에 방문해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훨훨 날아 사라지는 정령의 형상을 보고 있던 레녹이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필레놈 자치령…. 그렇군.”
지금 학회가 열린 이 고원은 거대도시 발칸과 필레놈 자치령 사이에 위치한 무수한 평야들 중 하나.
왜 이제서야 차기 등대지기가 그에게 연락을 취했는지도 지금 이 상황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 터.
그녀는 그 모든 진실을 듣고 싶다면 자치령으로 찾아오라는 전언을 남기려고 처음부터 작정하고 정령을 불러냈던 것이다.
“하아…..”
문제는 지금 거대도시 발칸과 자치령의 분위기가 더없이 험악하다는 것이겠지.
레녹이 일하는 뒷골목에서 전쟁을 예상하고 있는것을 생각한다면, 두 지역간의 관계가 앞으로도 좋아질 일은 없어보였다.
그녀의 말을 한번 들어보기는 해야할테니, 언젠가는 자치령에 방문해야겠지만…. 적당한 상황과 시기를 잡지 않는다면 반의 프리랜서 생활까지 위태로워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최근에 에이전트와 함께 작전을 진행하기까지 했으니, 괜히 눈도장이 찍히기 싫다면 시정부의 심기에 거스르는 움직임은 조심해야 할 터.
결국 적당한 핑계 없이는 쉽게 자치령쪽으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뜻인데…
‘제니에게 도움을 구해야겠군.’
연초를 발로 비벼끈 레녹은 코트 자락을 탁탁 털어내고 걸음을 옮겼다.
아리스는 레녹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냄새까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자리를 비운 핑계를 대기 위해서라도 슬슬 돌아가야 하겠지.
레녹은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령이 사라진 자리를 힐끗 돌아보았다.
녹색의 바람이 다녀간 자리에는, 이미 메마른 고원의 공기가 그 흔적을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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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한 얼굴로 1일차 학회를 끝마치고 돌아온 아리스와 인사를 나누고 맞이한 다음날.
이론적인 논의만이 주로 이루어졌던 1일차와는 달리, 오늘은 실전적인 검증이 직접 이루어지는 날이다.
자연스럽게 레녹 역시 아리스의 뒤를 따라서 시연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 봐둬요.”
다른 사람의 눈에 들리지 않게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마침 이번 학회의 논의 주제가 꽤 고등급 마법의 응용과도 연관되어 있어서, 이론적으로 배울만한 부분이 있을거예요.”
“저도 학회의 테마가 무엇인지 듣기는 했습니다만.”
전장장악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술식의 시연과 검증.
이번 학회에서 내세운 주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 들었을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어제 필레놈의 새로운 등대지기를 만나도 난 뒤 레녹은 이 학회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하필 학회가 개최된 곳 역시 발칸과 자치령의 사이.
그리고 그 테마도 전장장악을 기조로 한 술식의 구현이라면.
이것은 발칸과 그 우호세력들이, 자치령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나저나, 리첼렌 교수도 별 일이군요.”
상념에 잠긴 사이, 레녹과 아리스의 옆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던 마법사가 말을 걸어왔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여성. 몸에서 풍기는 마력 역시 범상치 않다.
최소 5레벨 이상의 마법사. 한 분야의 전문가 소리를 듣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아리스의 뒤에서 묵묵히 걷고 있던 레녹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번 학회에 데려오신 것이 이제 막 마력을 각성한 듯 한 어린 친구라니…. 무언가 다른 뜻이 있으신지요?”
“…..바일라 연구소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리첼렌 교수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가망없는 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쓸데없는 희망을 안겨주는 일은 그만하시는게 어떤가 싶어서요.”
서슴없은 상대의 말에 아리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