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7
“………”
“교수님의 연구실에 새로운 연구원을 들이지 않은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고 하던데…. 학생들에게 부질없는 자비를 베푸는 것도 슬슬 그만하셔야죠.”
상대방 역시 아리스와 비슷한 위치에서 일가를 오른 사람인지, 언동에 거침이 없다.
아리스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부터, 말하는 어조 하나하나가 굉장히 직설적이었다.
보아하니 예전부터 그녀와 어느정도 알고 지내는 사이에, 아리스가 꽤나 선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듯 하다.
언뜻 듣기에는 타박하는 것처럼 보여도, 거꾸로 생각하면 오히려 아리스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정도.
“그 재능이 심성에 소모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싱클레어 마탑에서도 계속해서 호출하고 있다던데, 이제 그만 고집을 꺾고 복귀하는게 어떤가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기 뒤쪽에 멀뚱히 서 있는 친구도, 적당히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직설적으로 찔러들어오는 바일라의 말에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하는 말의 기세만 들어보면 이 자리에서 당장 레녹을 내쫓아버리고 싶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으니.
“………”
레녹은 대꾸하는 대신 가만히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바일라의 시선을 흘려넘겼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아리스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런 말을 꺼냈을지 몰라도, 레녹이 보기에는 그저 저급한 시비에 불과했다.
오히려 레녹은 그녀의 체내에 흐르는 굉장히 이질적인 마력에 흥미가 생겼다.
다른 마법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마디가 군데군데 끊어져 있는 듯한 불규칙한 흐름.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이체질이 아니라면, 마법사로서 어딘가 망가져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마력흐름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아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구소장님. 에반은 제가 직접 그 능력을 눈여겨보고 제 연구실에 입실을 권유한 연구원이예요.”
“연구원이라고요?”
“마법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재능이 꼭 수준높은 마법사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그건ㅡ”
“그리고 저는, 제가 선택한 사람이 모욕당하는 꼴을 절대로 두고보지 않을겁니다.”
학회 (3)
단호하기 짝이없는 선언에 좌중에 나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리스는 주위에서 집중된 시선을 태연히 받아내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말했다.
“다른 분들도 명심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제 연구원에게 손을 댄다면, 저 역시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풍성한 금발을 한쪽으로 쓸어넘기면서 앞으로 휙 앞서나가는 아리스의 모습을, 모두가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그 당당하고 아름다운 태도에 아무도 이견을 내밀지 못하고 얌전히 길을 비켰다.
레녹은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뺨을 긁적였다.
철저한 거래와 이해득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레녹은 그 누구보다도 깔끔하게 인간관계를 관리할 자신이 있다.
손해를 보지 않고, 받은 만큼 돌려주고, 대가는 확실하게 받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대가없는 호의와 기약없는 믿음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가져가면서도, 다른 한쪽이 아랑곳하지 않는 이 기묘한 관계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혹시 나중에라도 이 순간에 대해 답을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레녹은 어떤 방식으로 응해야 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아리스가 보내준 신뢰만큼만은, 확실하게 보답을 해야 하겠지.
바일라를 스쳐지나가기 전 레녹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마력의 단절현상을 치료하는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죠.”
“…….방금, 뭐라구요?”
“목젖 아래쪽에 생기는 보랏빛의 멍과 뒤통수에 고여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마력. 왼쪽 소지가 충혈되면서 부풀어오르고 손톱이 자르기 힘들만큼 비정상적으로 단단해지기 시작하죠. 미묘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 걸음걸이…. 마력의 불균형이 신체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증거 아닙니까?”
“……….”
아리스와 함께 집요할 정도로 이론을 파고들었던 성과를 여기에서 써먹을줄을 몰랐다.
실제로는 바일라의 체내 마력 흐름을 꿰뚫어보고 그에 걸맞는 신체 이상현상을 역으로 추론해낸 것 뿐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레녹이 어떻게 보일지 눈에 선하다.
적어도 아리스의 연구원으로 있는 동안은, 레녹은 이렇게 철저하게 이론과 관련된 쪽으로만 두각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바일라의 입을 다물게하고, 아리스와 그녀의 관계를 역전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표정을 뒤로하고, 레녹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일라가 스스로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레녹에게 조언을 구하러 올까.
아니면 더 이상 이쪽에게 시비를 걸어오지 않는 선에서 그치게 될까.
이름난 연구소장에게 건강 문제로 빚을 지워둘 수 있다고 하면 그리 큰 손해는 아니다.
어느쪽이든 레녹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 분명했다.
시연장이 멀리 있지 않았다.
“여기는…..”
“전장장악술식을 시연해보기 위해 선정된 장소예요. 뭔가 거슬리는 점이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아리스의 질문에 레녹은 대충 말을 얼버무렸지만, 시선은 빠르게 아치우드를 찾았다.
마침 그도 이 장소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레녹과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그의 입가에 금이 살짝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슬쩍 시선을 돌리는 아치우드의 모습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기이한 우연이다.
학회의 시연장으로 선정된 이 숲은, 바로 어제 레녹이 아치우드를 기절시켜놓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죽은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형지물을 마음껏 바꿔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고, 술식의 위력을 시험해보기에도 적당한 장소였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가 토해낸 핏덩어리가 아직 여기 어딘가에 남아있어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다.
[그럼 곧바로 술식의 시연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도 너무 바쁘실테니, 딱 한가지만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일행의 가장 앞에 서 있던 가운을 입은 청년이 손을 들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그의 청명한 음색이 멀리 울려퍼졌다.
[전장장악술식, 특정범위의 공간을 점유하고 술식의 위력을 끌어올린다는 개념을 가지고 어제 밤새 토론을 거듭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어찌됐든 중요한 건 단 하나. 바로 그 술식의 증폭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것이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 몇차례 시연을 통해서 그 효용성을 산출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는 진전이 없을거라고 모두가 합의한 상황입니다. 길게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바로 시작하죠.]청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뒤에서 다른 이들이 빠르게 벌판 앞으로 나와 온갖 기구를 들고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움직이는 마력의 방향을 보아하니 특정한 장비를 이용해서 술진을 설치하고, 그걸 양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양인데….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군.’
정말로 자치령과의 전쟁에서 사용하기 위해 이러한 술진을 개발하는 것이라면 그 방향부터 틀려먹었다.
당장 레녹이나 크레이그가 사용한 자성영역조차 압도적인 효율성에 비해서, 환경구축술진이라는 그 특징 때문에 써먹기가 난해하게 느껴지는데 시도때도 없이 바뀌는 전장에서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한단 말인가.
철저하게 정돈된 전장.
서로가 정직하게 마법으로 이루어진 포격을 날리는 경기장이 아니고서야 큰 효과를 볼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여기 모인 마법사들에게는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까.
생각에 빠진 사이 시연이 시작되었다.
청년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술진을 설치하고, 그 안에 들어가 마력을 끌어올린다.
우우웅!!
제각기 수인과 영창을 맺은 그들이 일제히 죽은 숲을 향해서 마법을 내뻗었다.
레녹에게는 다소 생경한 풍경이지만, 저것이 다른 평범한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이겠지.
세 사람의 손에서 뿜어진 불꽃 세줄기가 술진이 펼쳐진 구역을 통과하는 순간.
콰아아아앙!!
불꽃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메마른 나무들을 깡그리 불살라버렸다.
“……..”
마법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증폭율이 상당하다.
방금전까지 회의적이었던 레녹의 의견을 한번에 뒤집어버릴 만큼.
주변에 서 있던 다른 마법사들도 의외였는지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셨습니까! 기대 이상이군요!! 이어서 계속 시연을 진행하겠습니다!!]흥분으로 떨리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 아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이건 이상하군요.”
“무슨 말이신지….”
“어제 학회에서 상정하고 있던 증폭률을 훨씬 초과하고 있어요. 이 정도라면 주최측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리가 없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주변을 살폈다.
“수작을 부리지 않았나 싶네요.”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앞에서 한껏 들떠서 소리를 지르는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번 학회의 시연 결과로 얻는 이득이 상당한지, 기쁨에 겨워 날아갈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 시연 결과에 무언가 수작을 부린 거였다면 저것보다는 좀 더 점잖게 표정을 관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 청년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기적을 즐기기에도 벅차보였다.
레녹은 한동안 마법사들이 마법을 들이붓는 구역의 위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탄식을 터트렸다.
“……아.”
마법사들이 전장장악술진을 설치한 위치가, 바로 어제 레녹이 영역을 펼쳤던 지역과 겹쳐져있었다.
공간을 통채로 장악하는 자성영역의 특성상, 사용했던 마력이 주변에 깊게 배여있을 수밖에 없는데 하필 딱 그곳에 술진을 설치했던 것이다.
지금도 저들의 발 밑에 레녹이 남겨놓은 마력이 배어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 남아있던 마력을 모두 흩어버렸다.
후우우웅…..
“어, 어엇?”
“마법이 갑자기….”
방금 전까지 활활 불타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당황한 마법사들이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지만, 아까와 같은 증폭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시연에 잠깐 차질이 생긴 모양인데, 금세 해결될 일입니다.]청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재빠르게 수행원들을 다그쳤지만, 결국 10분이 넘어가도록 기적은 없었다.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지는 청년의 모습. 기대하지 않은 성과에 기뻐한만큼, 좌절과 절망도 큰 법이다.
아리스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등을 돌렸다.
“에반, 가죠. 더 이상은 시간낭비군요.”
“알겠습니다.”
[기, 기다려주십시오!!]청년은 어떻게든 돌아서는 마법사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기껏 모인 학회의 의미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녹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자신이 한 일을 알아차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마력조작능력에 한해서는, 레녹의 솜씨는 이미 인지를 뛰어넘은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바로 뒤쪽에서 걷고 있던 아치우드가 그를 괴물을 보는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
처음 열차에서 내렸을때의 여유로운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초췌하기 짝이 없는 안색으로 레녹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
방금 레녹이 마력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만, 지금 이 일이 레녹과 연관이 있다는 걸 모를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레녹은 가타부타 입을 여는 대신, 그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아치우드.
아마 레녹이 어느 정도의 마법사인지, 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지.
그저 불안에 떨면서 입을 다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터.
레녹이 바라는 것도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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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순식간에 마무리되고, 제각기 다른 곳에서 모여들었던 마법사들도 각자 흩어졌다.
성곽 근처에 있던 낡은 역에서 새로운 열차를 잡아탄 레녹은 아리스와 함께 같은 객실에 앉았다.
“역시 시간낭비였어요.”
작게 한숨을 내쉰 아리스가 말했다.
“블라렌드 마탑의 주도라기에 혹시나 했지만, 역시 자성영역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군요. 이론적인 논의는 충분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마법사들의 수준을 일괄적으로 통일할 수 없다면 실용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아리스가 스스로 자성영역이라는 말을 꺼낸 순간을 레녹은 놓치지 않았다.
“자성영역이라 함은….”
“아, 아직 거기까지는 공부가 되지 않았나요?”
레녹의 자연스러운 질문에 아리스는 자성영역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6레벨 이상의 마법사. 그 중에서도 재능있는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되는 환경구축술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보다 높은 경지의 술식을 사용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시전자를 위해 만들어진 최적의 진지구축 개념이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한번 보는게 더 빠르겠죠.”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새하얀 손을 뻗어 허공에 내밀었다.
어딘가 익숙한 마력의 느낌에 레녹이 멈칫거리며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