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14
약먹는 천재마법사 214화
처방(1)
“저번에 만난 카르텔의 간부를 이렇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느닷없이 사장급이 나타나서 사태를 중재하는 바람에 일이 어려워졌을 뿐이지.”
마안으로 이올라를 완전히 제압한 시점에서 애초에 레녹은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죽여서 분을 푸는 것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산 채로 붙잡아 정보를 불게 만드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다만 이번과는 달리, 버질이 끼어들면서 사태가 유야무야된 것도 레녹이 이제서야 정토신해진언을 꺼내 들게 된 이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만한 고위 간부가 혼자 움직인다는 건 꽤 운이 좋았어. 최악의 경우 도로를 봉쇄하고 무력 부대를 상대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레녹의 심드렁한 말에 벨리타가 혀를 내둘렀다.
“기라드 오제트는 카르텔의 상위 간부들 중에서도 단독행동에 특화되어있는 학살자예요. 직접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그 독특한 외견과 기괴한 성격 때문에 여기저기서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니기는 하나 그 실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죠.”
“용병업계에서는 작전에서 적으로 만났을 때 피해 다녀야 하는 미친놈으로 잘 알려져 있지. 카르텔의 부장직에 선임된 이후로는 외부 활동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원래 이렇게까지 쉽게 허점을 내줄 만한 상대는 아니다.”
“흠…….”
두 사람이 하는 말은 차분했지만, 숨길 수 없는 감탄의 기색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감탄의 대부분은 레녹이 사용한 법구, 전토신해진언의 능력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레녹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성능이라면 틀림없이 더 윗급의 상대에게도 통하겠군.’
그동안 몇 번 시험 삼아 발동시켜 보기는 했지만, 실전에서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 더욱 만족스럽다.
카르텔의 협력 사업체들을 박살 내면서,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예비로 마련해 둔 계획이었지만 그동안은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그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레녹을 추적해 온 카르텔의 간부가 기라드가 처음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
더불어 그가 부장급의 일원이면서도 단독행동을 선호할 만큼 기이한 능력과 취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제대로 쓰러뜨려서 기라드를 제압하려 했다면 이것보다 수십 배가 넘는 시간과 자원을 들이부어야 했겠지만, 정토신해진언은 발동한 순간 특정 공간을 동결시키고 대상자를 통째로 구속하는 강력한 술식법구.
무려 천견 마드레아 팔시어가 승천자가 되기 직전까지 사용하던 물건인 만큼 그 위력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아마 기라드는 체내 마력의 성질 변화를 통해 피를 흘릴수록 육체 능력을 도핑하는 식으로 자신의 힘을 강화시켜 온 모양이었지만, 공간째로 저항을 차단하는 법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
레녹은 그런 기라드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말없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만한 실력자를 직접 공간계 법구로 구속해 보는 건 처음이다. 관련 현상이나 마력의 흐름을 잘 기억해 놓아야 해.’
정토신해진언을 발동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10여 초에 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만큼 완벽하게 상대가 당하는 케이스는 쉽게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같은 일은 일단 벨버처럼 철저하게 적을 힘으로 내리누를 수 있는 전력과 계획을 짜고 아티팩트를 미리 예열시켜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레녹이 간절하게 원하는 시간 계열 술식이나 아티팩트 대신, 공간 계열 유물이나 아티팩트가 손에 들어오고 있지만 레녹은 공간 계열 술식을 연구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각자 전혀 다른 계열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공간과 시간은 하나의 축에서 엮여 들어가며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축.
하나를 이해하면 다른 하나에까지 손이 뻗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반.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저는 놈이 반항하지 못하는 사이에 깔끔하게 죽여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기라드의 소지품을 경매에 내놓는 걸로 시작하는 걸 추천하지. 놈에게 원한을 가진 놈들이 꽤 많아서, 팔다리 한쪽을 떼서 팔아도 꽤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갱단이나 범죄 조직이 할 법한 말을 해대는 벨버의 정강이를 벨리타가 걷어차는 사이, 레녹이 결정을 내렸다.
“벨버의 제안도 재미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적당한 곳에 놈을 가둬두고 심문하는 걸 목표로 하지.”
레녹이 기라드의 머리채를 잡고 쥐어 올렸다.
멍하니 굳어버린 눈동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카르텔의 경영 대리인에 소속될 만한 고위 간부라면 틀림없이 알고 있는 것도 많을 테니.”
“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텐데요.”
벨리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놈이 상처를 흘리거나 다쳤을 때 더 강해지는 걸 생각하면, 물리적인 고문도 통하지 않을 거예요.”
확실히 정토신해진언을 벗겨내고 나면, 놈을 제대로 묶어두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리라.
“그건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레녹은 쥐고 있던 기라드의 머리통을 땅에 찍어 누르면서 씩 웃었다.
“마력 사용자를 고문하는 일에는 나도 일가견이 있으니까.”
* * *
후욱, 후욱!!
팔을 굽히고 땅에 몸을 바짝 붙인 버질의 상반신에서 땀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그의 몸에 묶여 있는 두꺼운 사슬이 근육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고, 막대한 부담감을 안겨다 주지만 버질은 묵묵히 운동을 계속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운동에 매진하는 그의 머리 위로 세 개의 시스템 창이 떠올라 있었다.
[1: SOUND ONLY] [3: SOUND ONLY] [4: SOUND ONLY] [4: 버질. 이야기는 들었겠지?]“…….”
[4: 기라드가 반이라는 마법사에게 아예 생포를 당했어. 이건 놈의 손에 그 정신병자가 죽은 것보다도 훨씬 큰 문제지.]“……그래서?”
[3: 야, 대답이 왜 그래?]언짢은 듯한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너희가 해결할 생각이라면 마음대로 해.”
[3: 뭐, 이 새끼야?]성조 높은 쌍욕에도 버질은 묵묵히 근육의 자극에 신경 쓰면서 대답했다.
“이번 일을 내가 맡고 있는 건 회장님께 보고가 올라가기 전까지는 책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회장님께 전말을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난 이 일에 직접 손을 쓸 생각이 없어.”
[1: 그게 무슨 뜻이지?]처음으로 1번이 입을 열자, 버질이 슬쩍 고개를 들고 웃었다.
“회장님은 내가 직접 보고를 올리기 전까지 제니스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으셨다. 하지만 분명히 먼저 손을 쓴 건 우리 쪽이었어. 그건 너희들 셋 중에서 먼저 저쪽에 시비를 걸기 시작한 놈이 있다는 말이겠지?”
[…….]“한 명인지, 두 명인지는 모르지만 세 명 전부는 아니겠지. 자기가 시작한 일은 직접 마무리 지어라. 이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해줘야 한다니, 정말 어지간하군. 설마 이제 와서 슬쩍 책임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제니스의 술집을 박살 낸 것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때 그 작전에 가담한 카르텔의 조직원들이 어느 쪽에 줄을 대고 있는지 확인해 보면 결론은 금방 나오게 될 터.
이올라를 구하기 위해 반과 직접 대면했던 그 날 밤 이후, 버질은 반과 직접 주먹다짐을 벌일 생각을 완전히 버린 지 오래였다.
“반이라는 마법사. 강해. 적어도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위험한 남자다.”
[4: 그래봤자 그냥 프리랜서 하나…….]“제니스를 비롯한 다른 놈들은 몰라도, 그만한 수준의 마법사를 쉽게 잡아 죽이기는 어려울 테지. 한번 지울 수 없는 원한을 박아넣은 뒤에는, 놈을 잡지도 못하고 지금 같은 일이 반복될 테고 그 손해가 어디 인사고과로 반영될지는 분명해지지 않나?”
이번에는 다른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문제는 카르텔 쪽에서 잃을 것이 훨씬 많다는 간단한 사실에서 기인한다.
카르텔 쪽에서 상대에게 입힐 수 있는 피해보다, 반 혼자서 이쪽에게 가할 수 있는 손해의 자릿수가 다르다는 것.
바로 이 관점을 카르텔에게 각인시키고 행동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 레녹의 의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해줄 수밖에 없다.
“차라리 놈들의 사업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뻗어 나가는 시점이라면 모를까, 손을 댈 시점을 잘못 골랐어. 누구의 실수인지는 몰라도, 대가를 치러야지.”
[3: 이 X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3: 너는 이름만 올려놓고, 우리 중에 실수한 놈이 해결하면 그럴듯한 명분이나 챙겨가겠다 이거냐?] [1: 메릴다. 그만해.]묵직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거친 욕설이 뚝 끊겼다.
1번이라고 적힌 모니터에서 말이 이어졌다.
[1: 버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일단 기라드는 명목상 내가 관리하던 사업체의 대리인이었으니, 먼저 내가 뒷수습을 하도록 하지.]“…….”
[1: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웃기는 일이군. 우리끼리 이렇게까지 의견통합이 되지 않는 일이 도대체 몇 년 만인지…… 거기에는 분명 네 도발적인 언동 역시 책임이 있다.]“인정하지.”
고개를 푹 숙인 버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지만, 그 시선을 알아차리는 이는 없다.
회의가 종료되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버질이 땀범벅이 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위에 가득한 운동기구 한쪽에 두꺼운 사슬을 던지듯이 걸어둔 그가 수건을 뒤집어쓰며 중얼거렸다.
“하필 이 시점에 제니스를 건드린 게 우연은 아닐 것 같단 말이지…….”
언뜻 보기에는 실수인 것처럼 보여도, 지금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절묘하게 반과 제니 쪽에 적절한 명분과 일방적인 이득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르텔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확실하게 깎아 먹는 방향으로.
제아무리 장대한 실수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손해가 누적된다면 그건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누군가 회장님에게 등을 돌렸군.”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결코 변하지 않았던 조직 내부 질서의 변동.
그건 버질의 입장에서, 카르텔에 저항하는 반이라는 마법사의 존재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 * *
[제니는 오지 못한 건가?]“……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제게 양해를 구하더군요.”
레녹이 카르텔의 사업체를 본격적으로 박살 내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니와 조든은 공식적인 거동을 더욱 조심하고 있었다.
특히 조든이 납치되어서 죽을 뻔한 뒤로, 두 사람은 드레이를 비롯한 용병단의 호위가 허술해질 수 있는 행동은 일절 자제할 수밖에.
제니는 레녹이 말한다면 이런 일에는 같이 동행하려 하겠지만, 레녹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래. 그건 조금 아쉽군. 마지막이 되기 전에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약선의 말에 레녹이 희미하게 웃었다.
“의원님이 그녀의 얼굴을 잊는 일은 없을 겁니다. 카이세의 기억 때문이라도 그녀를 기억하겠지요.”
[알고 있네.]약선은 빤히 레녹을 얼굴을 올려다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하지만 카이세의 혈육으로 자라 죽은 듯이 살아오던 그녀가 자네를 만나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씁쓸해진 레녹의 얼굴에 약선이 웃었다.
[뭐,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네. 자네가 도미닉 카바로를 재기 불능으로 만들어준 것 하나만으로, 내게는 이 짧지 않은 생에 충분한 기적이었으니.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니겠는가?]그렇게 말하는 약선의 얼굴에는 정말 한 점의 미련조차 없어 보였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와 교감하던 무수한 환자들을 떠나보낸 것인가.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만들어진 굴레 속에서, 그녀의 시간은 결코 움직이는 일 없이 과거에 묶여 있을 뿐.
의술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모든 순간의 경험과 기억도 없이 환자를 떠나보내는 것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질 뿐.
그렇기에 레녹은 그녀를 동정하기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터무니없이 먼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천재들조차, 고작 바로 앞의 발밑을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노인이 그리는 인생의 궤적이 더없이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리석은 노친네가 그 모든 은원을 잊어버리기 전에 만들어낸 마지막 작품이네.]약선은 그렇게 말하면서 길쭉한 목갑 하나를 레녹의 앞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