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27
약먹는 천재마법사 227화
임원총회(2)
머쓱해진 레녹이 뺨을 긁적이는데, 벨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저 거리에서 저렇게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마력조작을 포착하고 분석해 낸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말이다.”
“우리야 경험적으로 대충 어떻게 마력을 조작하는지 알고 있지만, 반 당신은 아닐 테니까요.”
“그러게. 뭔가 치고 박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드레이까지 그렇게 말하자 레녹도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레녹은 가지고 있는 열악한 운동신경이나, 접근전에 강하지 않다는 약점 자체를 드러내 본 일이 없다.
레녹은 언제나 시작하기 전부터 승리를 위한 포석과 발판을 철저하게 마련해두고 전투에 임하곤 했으니.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숨기는 일에 능숙한 레녹의 전투에서 실제로 접근전이 일어나는 일도, 그가 접근전에 취약해 보이는 일도 없었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녹이 전투 도중에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거나, 몸을 움직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챈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더라도, 그동안 함께 일해오면서 알게 모르게 내비쳤던 일면들에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뭐, 실제로 그런 식의 육탄전에 흥미가 없는건 아니지만……. 지금은 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물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우우우우웅…….
새파란 마력이 나선형으로 수렴하는 수정구체. 은은한 열기를 띈 채로 혼자서 발광하는 마력노심이 놓여 있었다.
카르텔의 처형부대가 습격했던 다이크 사의 공장부지. 그곳에서 미리 설치되어 있던 마력노심을 킬리안에게 탈취하게 한 뒤, 레녹이 손에 넣었던 것이다.
그 뒤로 레녹은 종종 이렇게 불안정한 마력노심을 안정시키는 일에 힘을 쓰고 있었다.
회사의 대표가 사무실도 없어서야 되겠냐면서 제니가 임시로 만들어준 방이지만, 이런 소소한 일거리를 처리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안정화는 거의 끝났군.’
괜히 파노아에게 부탁해서 마력노심을 받아 챙긴 것이 아니다.
레녹의 마력회복력은 다른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압도적이지만, 정작 마력량 자체는 동급의 술사들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타고난 그릇과 누적되는 시간에 가장 정직하게 비례하는 마력량을, 마법을 깨달은지 2년을 갓 넘긴 레녹이 따라잡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마력량의 크기가 가끔씩 레녹의 발목을 잡곤 했던 것이다.
자성영역을 전개할때 소모되는 막대한 마력으로 인해 정작 영역을 전개하고 난 뒤에도 술식을 사용할 시간이 필요했다거나.
진작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을 손에 쥐었으면서도 마력량의 부족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거나.
물론 대량으로 마력을 사용할 때는 신중을 기해왔던 만큼 위기에 몰린 순간은 적었지만, 레녹은 앞으로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이 잡히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의 마력량이 다른 마법사들을 아득하게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내 마력량의 성장속도를 생각하면 오래 사용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장은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위이이이잉…….
레녹의 마력을 노심에 풀어내는 것과 동시에 조심스럽게 내부 회로를 순환시킨다.
기본적으로 마력노심은 노심 내부에서 마력입자들을 분해 및 재조립하며 발생하는 강력한 열기를 동력원으로 삼고 있다.
마력노심이 효율적이지만 불안정한 에너지원 취급을 받는 것은 마력입자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외부 충격에 굉장히 취약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열이 쉽게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
따라서 레녹은 열변환과정을 대폭 축소시켜셔 위험성을 낮추고, 노심에서 자체적으로 재조립되는 마력입자들을 자신의 마력으로 대체하며 외부순환로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성공한다면 오직 레녹만을 위한 예비마력통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레녹의 현재 마력량을 뛰어넘는 강력한 마법까지도 일시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력노심에 신경을 기울이려는데, 밖에서 누군가 방문을 격하게 두들겼다.
“들어와.”
“반!!”
숨을 헐떡이면서 문을 박차고 들어온 건 땀에 흠뻑 젖은 제니였다.
고작 이 3층짜리 건물의 옥상까지 뛰어올라오면서 숨이 벅차다니, 그녀도 자신만큼이나 영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야?”
제니는 대답하는 대신 손에 들고 있던 노트북을 레녹에게 내밀었다.
“카르텔이 움직였어. 큰 건이야.”
“…….”
레녹은 물끄러미 노트북에 떠오른 메일을 읽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기라드 오제트의 신병을 인도해 준 이후, 저쪽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추측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회장의 권한으로 소집하는 임원총회라…….”
“단순히 총회를 소집하는걸 떠나서, 여기 초청된 이름을 봐.”
임원들의 이름이 쭉 나열된 초청장 아래쪽, 아주 자연스럽게 반의 이름이 섞여 들어가 있다.
이런 순간에 열리는 총회에 초대하는 손님의 명단을 착각할 일도, 또 잘못 적을 일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이것은-
“회장이 직접 보내는 초대장이군.”
대련은 중단됐다.
삽시간에 레녹의 집무실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 사이에서 의견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드레이가 말했다.
“임원총회. 다시 말해서 저쪽에는 거의 틀림없이 회장을 비롯한 사장단 전원이 소집될 테고, 이사진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자리할 테죠.”
“…….”
“저들이 작정하고 포위망을 걸었을때, 반 님 혼자서 몸을 빼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총회가 열리는 장소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요.”
벨리타가 반박했다.
“32구역에 있는 대규모 컨벤션 홀. 스포츠 스타디움과 연결되어서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시설인데다, 결정적으로 하늘이 완전히 열린 건축구조예요.”
“총회 날짜는 겨우 사흘 뒤야. 이만큼 광범위한 구역에 함정을 파놓기에는 시간도 규모도 너무 버겁기는 하겠지…….”
킬리안의 말에 벨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디움을 통채로 임관했다면 그 비용도 엄청날 거다. 카르텔이 이런 돈을 써가면서 헛짓거리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보지?”
레녹은 벨버의 말을 무시하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이올라가 남겨두고 간 마안은 레녹의 손안에 있다.
그녀는 사실상 버질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맡기고 기라드의 신병을 인도받아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건, 레녹이 내건 협상에 대한 버질의 대답이라는 말이 될 텐데…….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일들을 정리해 보자.”
그 사이 제니가 먼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카르텔의 문서에서 직접 이 이름이 언급된 건 수십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야.”
“…….”
“카르텔 내부에 있는 배신자에 대한 증거와 기라드의 신병을 인도하는 대가로 버질과 원만한 협상을 합의했는데도, 그 대답이 이거라면…… 거의 틀림없이 회장의 의사가 개입되어 있다고 보는 게 무방하겠지.”
좌중이 침묵에 잠겼다.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이 대체 어느정도인지, 모두가 절절하게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텔의 회장,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에 대해서는 레녹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공식적인 활동이 무려 50년 전의 일.
수십년전에 이미 절정에 다다른 술사로 활동을 이어가다 기한없는 칩거에 들어갔으며, 당시에도 위계를 뛰어넘었다는 취급을 받던 거물이다.
카르텔의 경영활동에도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간간이 생존만을 암시해 오던 괴물이, 하필 지금에서야 다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
‘돌고돌아 회장인가…….’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카르텔의 내분이 사장급 간부에게까지 뻗어 있다면 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상황이 정리되지 않을 테니.
다만 그 과정에서 버질이 레녹과 제니의 사업을 회장의 시선에서 돌려주기를 바랐던 것인데, 역시 마음대로는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초대를 했으면 받아줘야지.”
“……괜찮겠습니까?”
드레이의 말에 레녹이 피식 웃었다.
“날 죽이고 싶었다면 이렇게 거창하게 나올 가능성은 낮아……. 벨리타의 말대로 32구역 한복판이라면, 민간인들이 휩쓸리는 걸 피할 수 없는 범위지. 그녀가 이걸 모를 리가 없어.”
6레벨의 군위마법사. 레녹과 아비드 욘센이 맞붙었던 공장부지가 지금 어떤 형상으로 변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족히 수백미터가 넘은 범위를 망라하는 적나라하고 처절한 파괴의 현장.
6레벨 고위 술사들의 전투가 그 정도라면, 명백히 그 상위의 경지에 도달한 술사가 손이 닿는 유효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에이전트는 물론이고, 시정부에 속해 있는 온갖 괴물들이 철저하게 견제할 거다. 그녀의 진신이 그 자리에 직접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노트북을 살짝 기울였다.
“따지자면 이건 카르텔 내부 배신자를 숙청하는 과정을 외부에 대대적으로 공개하기 위한 요식행위지.”
“……”
“이만한 일을 숨길 수 없다는 내부적인 판단이 있던 걸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날 부른 건…….”
어떤 일이 생겨도 자기 한 몸 정도는 빼낼 자신이 있다.
약선의 약을 받아먹고 찾아온 기연. 그로 인한 내면의 변화와 자성영역의 발전.
거기에 카르텔의 처형부대를 박살내고 손에 넣은 마력노심이라는 에너지원까지.
만약 정말로 올리비에라가 레녹을 죽이려고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벨린은 물론이고 안타레스까지 레녹을 위해 손을 거들어줄 것이다.
승천자가 나타나지 않는 레녹이 함정에 빠질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호한 레녹의 말에 다른 이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레녹과 같이 일해봤거나, 혹은 상대편의 시점에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술사인지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이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성장속도와 특유의 날카로운 판단력.
무수한 전선을 지나쳐오며 단 한 번도 빗나간 적 없는 그 특유의 직관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이 그렇게 말한다면.”
제니가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
“너희들과 협력하기 시작한 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일이 이렇게 커졌군.”
킬리안이 한숨을 내쉬고, 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텔과의 접전에 확실히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라면, 저쪽에게 직접 의사를 전해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일이 되겠지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단장에게 말을 전해두면 될까?”
벨버의 질문에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타레스에게는 부탁을 해두고 싶어. 이미 예전에 확답을 받아두기는 했지만, 아마 이번이 카르텔과의 결론을 내는 마지막 일이 될 것 같으니.”
가장 좋은 것은 쓸데없이 전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비교적 원만하게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제니가 시작한 사업이 충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굳이 지금 카르텔과 결판을 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
다만 그동안 흘린 피와 희생을 무마하기 위해서 서로가 거래로 내걸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레녹은 이미 카르텔 내부의 배신자에 대한 존재를 입증함으로써 그 도리를 다했다.
이제는 카르텔의 수뇌부가 직접 대답해야 할 차례였다.
* * *
32구역. 엘레먼츠 스타디움.
30번대 구역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스포츠 구단으로,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최근 구장을 신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역 사회공헌에 기여하기 위해 스타디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컨벤션 홀은 물론이고 대규모 공연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가변시설을 갖추면서 이 근방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랜드마크로 올라선 바.
32구역 주민들의 자랑거리로 등극한 이 스타디움이, 어느 평일 하루 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은 세간에서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이곳에 감도는 긴장감과 사늘한 그림자를 민간인들이 느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만큼은 거대도시의 모든 세력권이 일제히 이 스타디움을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카르텔의 임원총회.
수백 개가 넘는 무수한 계열사를 거느리고도 정작 그 수뇌부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던 카르텔의 회장이, 수십 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직접 소집시킨 대규모 총회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32, 30, 35구역 경찰서장과 합의가 끝났어. 이제부터 한나절 동안 스타디움 근방의 모든 교통신호에 변수를 줄 거다. 반경 3㎞ 이내로 민간인들의 차량이 오가는 빈도를 대폭 줄여나갈 거야.
“알겠습니다. 이쪽도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가요.”
에이전트의 정보부 소속, 히나 오네일은 귓가에서 들리는 통신에 대답하면서 빠르게 휴대폰을 두드렸다.
최근 들어서 점점 업무강도가 극심해지는 에이전트 쪽에서도 이번 일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극심한 인력부족에 당장 내근직으로 근무하던 직원들까지 튀어나와 스타디움 근처에 방위선을 펼치는 일에 협조하고 있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요…….”
지하세계의 필두. 삼두령 중 하나로 군림하던 카르텔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도대체 몇 년 만의 일인가.
그 거대한 기업연합이 이렇게 스타디움 하나를 통째로 빌려 총회를 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시의회에서 직접 공문서가 내려왔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본부에서는 회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기는 하지만,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할 거다.
“……상대는 삼두령의 일각입니다. 막을 수 있을까요?”
-시간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야. 그 여자가 나타나면, 마르시아 팀장님을 비롯해서 다른 고위 술사분들이 대인주박을 걸고 즉시 결계를 구축하실 거다.
“…….”
-놈들이 평화롭게 이야기를 끝내주길 기다리자.
“아무리 봐도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만…….”
히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허리춤에 매달린 도신을 매만졌다.
카르텔이 이 스타디움을 대관하려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에이전트나 시정부 측에서 막지 않았던 것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통제불가능한 저 거대한 카르텔이 알 수 없는 곳에서 모의를 꾸미게 내버려 두느니 직접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뿐.
그리고 카르텔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놈들이 손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시작한다. 집중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히나를 비롯한 요원들이 일제히 스타디움 내부에 연결된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포츠 구장.
그 가운데 가변시설을 사용해서 잔디를 뒤엎고 매끈한 돌바닥을 깐 뒤, 그대로 귀빈들을 모시기 위한 컨벤션 홀로 탈바꿈한 모습.
8만 명이라는 수용인원은 카르텔의 모든 조직원을 불러모으기에는 턱없이 좁지만, 반대로 모든 임원과 그 수행원들을 수용하기에는 상당히 넓은 면적이다.
오늘 이 자리를 위해 불려 나온 협력사업체의 모든 임원들과 각 계열사의 수뇌부, 본사의 임원들과 부장급 간부, 그리고 이사진에 오른 최고위 수뇌진들이 드넓은 홀에 자리를 잡고,
수천 명이 넘는 수행원들이 메인 홀 외부에서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 광활하다시피 한 홀의 드넓은 단상에 제각기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네 명의 남녀.
카르텔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최정상에 군림하는 사장단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설마설마했지만 사장단은 전원이 직접 자리했군. 이렇다면 설마…….히나, 준비해라.
“…….”
히나 오네일. 듣고 있나?
통신 너머로 굳은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지만, 히나는 그것을 듣지 못하고 살짝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화면 구석에서 천천히 홀 위로 걸어 올라오는 한 청년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너무나 익숙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