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30
약먹는 천재마법사 330화
천성의 강함(3)
미친 듯이 스로틀을 당기던 레녹이, 바로 옆에서 떨어져 내린 펠릭스의 모습에 멈칫했다.
쿠웅!!
“반!!”
제 무게와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모래 사이로 길쭉한 자상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굳건한 두 다리로 버티고 중심을 잡는다.
레녹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스로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끼이익!!
바이크를 멈춰 세운 레녹이 아리스와 히나를 힐끗 돌아보았다.
직전의 전투로 마력과 정신력을 모두 소모했던 아리스. 크로켄에게 한번 걷어차인 것만으로 반죽음이 되어버린 히나.
두 사람 모두 당장 전투에 참가하기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펠릭스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피신시키고, 나와 같이 가세.”
“……크로켄이다. 가능하겠어?”
“지금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결과는 똑같겠지. 다른 사람들은 방해만 될 뿐이야.”
새카만 마력이 회오리치는 해머를 짊어진 펠릭스가 대꾸했다.
“이리야도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걸세. 그전까지 시간을 끌면서 어떻게든 해볼 수밖에.”
“이런 곳에서 목숨을 걸어도 괜찮겠나?”
“용병이 하는 일이 다 그런 법 아니겠는가.”
레녹의 어깨를 두드린 펠릭스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상대도 상대인 만큼, 단장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지.”
“…….”
성큼 앞서 걷는 펠릭스를 바라보던 레녹이 따라서 움직이려던 그 순간.
아리스가 힘없는 손길로 그의 코트 소매를 잡았다.
“……반.”
“아리스 님.”
“같이 가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제 자성영역이 도움이 될 거예요. 제 생각이 맞다면 분명…….”
하지만 레녹은 말없이 그녀의 손목을 쥐고 소매를 풀었다.
“요새 공략과정에서 이미 한번 전개를 하셨지 않습니까. 연달아 두 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어떻게?”
히나와 아리스의 대화.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무리를 했다는 언급. 성위 마법사가 전력을 냈다고 한다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추측을 일일이 말하는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아 바이크 손잡이 위에 올려두었다.
“요새까지는 멀지 않습니다. 도착하기만 하면 에이전트 현장요원들이 응급처리를 해줄 수 있을 거예요.”
품 안에서 남아 있는 마력회복제와 영약의 반을 털어 아리스의 정장 안주머니에 넣어준 레녹이 웃었다.
“교수님은 충분히 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서로에게 남은 시간 동안, 이제는 제가 최선을 다해야겠죠.”
“기다려요……!!”
풀썩!
바이크에서 넘어져 쓰러진 아리스가 소리쳤다.
“난, 아직……!!”
레녹은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앞서가는 펠릭스와 걸음을 맞추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악어거인의 모습을 확인했을 뿐.
너덜너덜한 코트를 휘날리며 모래먼지 사이로 사라지는 레녹의 뒷모습을 아리스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작은 손으로 모래를 꾹 움켜쥔 그녀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남은 시간……?”
* * *
“안타레스에게 미안하군.”
“왜지?”
“당신 같은 부하를 멋대로 데려다 써먹고, 이제는 목숨을 걸고 싸우게 만들었으니 말이야.”
레녹의 말에 펠릭스가 웃었다.
“나 하나쯤 없어져도 단장은 괜찮을걸세. 처음 용병단을 세우기 전부터, 우리 모두가 각오했던 일이니까.”
“그래도…… 슬퍼하겠지. 나였다면 분명 그랬을 거다.”
레녹이 대답했다.
“단장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펠릭스는 그런 레녹을 향해 잠깐 시선을 던지다 말했다.
“그건 자네 역시 단장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
레녹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자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펠릭스는 그런 레녹의 어깨를 담담히 두드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나. 꼭 이 자리에서 죽으란 법은 없으니까. 자신만의 변덕으로 움직이는 사람인만큼, 만족할 만큼 즐기고 나면 물러갈지도 모르지.”
“그건 경험담인가?”
레녹은 일전에 크로켄과 딜런과의 대화를 통해, 안타레스와 크로켄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단순히 동료 이상의 유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는 것까지도.
그렇다면 안타레스를 가까이서 보필하던 펠릭스 역시, 크로켄과 안면이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흠. 글쎄.”
펠릭스는 레녹이 말에 미묘한 웃음을 지을 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어깨에 짊어진 전투망치를 부서져라 움켜쥐었을 뿐.
“그건 지금부터 자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게.”
쿠웅!!
악어거인이 꼬리를 흔들 때마다 울려 퍼지는 진동.
발걸음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하기 그지없는 땅울림.
충격을 분산시키는 이 모래더미 위에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중량이다.
단순히 자신의 몸을 극한까지 무겁게 만드는데 집중하던 트레펜 중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게중심의 완벽한 증폭과 전이.
자신의 몸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또 초월적으로 다뤄내는 초인의 증거였다.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대던 크로켄이 레녹의 얼굴을 발견하고 씩 웃었다.
“뭐냐, 애송이. 도망친 것 아니었나?”
손에 쥔 포탄 한 발을 던졌다 받으면서 성큼 앞으로 걷는다.
“좋아, 그런 걸 보여주다가 끊어버리면 나도 좀 짜증이 난단 말이다. 화풀이 삼아 저 장난감을 좀 때려 부수려고 했는데, 먼저 기어 나올 줄은 몰랐군……음?”
크로켄은 그렇게 말하다가, 옆에 서 있는 펠릭스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췄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펠릭스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악어거인이 폭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핫!! 펠릭스,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냐!!”
“…….”
레녹이 황당한 표정으로 펠릭스를 올려다봤다.
경험이고 나발이고, 펠릭스는 크로켄과 안면이 있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펠릭스는 그런 레녹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았다.
“아실러스 공. 오랜만이오. 그간 무탈하셨는지.”
“시답잖은 말은 집어치워라. 언제까지 예의를 차릴 셈이지?”
“언제 어느 때라 하더라도 변하지 않소.”
철컥!
해머를 움켜쥐고 레녹의 앞으로 나선 펠릭스가 말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는 법. 종을 뛰어넘은 전사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크크크…… 따분한 소리만 지껄이는 건 여전하군. 그래서 안타레스 그놈이 너를 마음에 들어했었지.”
크로켄은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군. 이상하게 풍경이 눈에 익다 했더니, 방위군이 그래도 발악은 한번 해보고 죽었던 건가.”
“…….”
“금제율령 때문에 너희들이 시의회의 똥을 닦아주러 온 거냐? 지겹기 그지없어. 기껏 용병단을 새로 꾸려서 하고 있는 일이 그것뿐이냐?”
침묵하는 펠릭스를 앞에 둔 크로켄의 입가가 길쭉하게 휘어졌다.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는듯한 직설적인 어조.
하지만 정황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핵심만을 짚어내는 크로켄의 직관에 레녹은 살짝 감탄했다.
이미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일대의 풍경과 인물을 끼워 맞추며 상황을 능숙하게 읽어낸다.
그만큼 크로켄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기 그지없기 때문이겠지.
전쟁용병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던 거인은, 이미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아직까지 안타레스 그놈과 함께하고 있다면, 대답은 하나뿐이겠군.”
크로켄이 손에 쥔 포탄을 하늘 위로 던져올렸다.
모두의 시선이 포탄을 향한 아주 잠깐의 순간, 펠릭스 하나만이 똑바로 크로켄을 마주한다.
격돌. 시계가 일그러지는 충격과 함께 거대한 파문이 터져 나왔다.
쿠우우우우웅!!!
두 거인이 동시에 몸을 비틀면서 내뻗은 선공이 교차하며 공기가 압축되어 짜부라진다.
레녹의 앞을 우직하게 가로막은 펠릭스와 맨손으로 해머 단면을 부서져라 움켜쥔 크로켄의 등 뒤로 모래 먼지가 날개처럼 퍼졌다.
“……!!”
희미하게 눈을 크게 뜬 레녹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다른 모두가 포탄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홀로 올바른 반응을 해낸 펠릭스의 기지 역시 놀랍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저 크로켄이 전력으로 내뻗는 일격을 펠릭스가 받아냈다는 사실 그 자체.
저 괴물의 가공할만한 괴력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자세로, 간신히 크로켄의 힘을 버텨내고만 있을 뿐.
땅을 지탱하는 허벅지가 파열되며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며 근육이 터져 나오지만 그럼에도.
크로켄 아실러스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 레녹으로서는, 지금 이 풍경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크로켄 역시 펠릭스가 정면에서 자신의 공방을 버틴 것을 보고, 샛노란 동공을 아래쪽으로 굴렸다.
순식간에 새머리거인의 전신을 훑은 그의 시선이 그가 쥔 해머에 멈춰서고, 나직하게 웃었다.
“‘도래’의 마력인가. 이제 모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아 있었군.”
“……후우!”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크로켄의 힘을 버텨내는 펠릭스.
거칠게 숨을 내쉬는 새머리거인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로켄이 어깨에 힘을 더하자, 등 뒤로 거센 반동이 솟구쳐 터져 나왔다.
뿌직!!
양손으로 해머를 움켜쥐고 버티는 펠릭스의 두 다리가 그대로 모래 바닥을 파고들다, 관절이 거꾸로 꺾여 피를 내뿜었다.
“……!!”
“아직까지 그걸 보관해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희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주는구나.”
가소롭다는 얼굴로 웃어젖힌 크로켄이 속삭였다.
“끝나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느냐?”
“……꾸고 있지.”
땀을 줄줄 흘린 펠릭스가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당신보다는 조금 더 오랫동안……!!”
전투 직전에 해머 끝에 감돌던 이질적인 검은 마력.
아마 그 알 수 없는 마력의 회전을 빌려서 억지로 크로켄의 공방을 받아내고 있는 것일까.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두 명의 거인이 그대로 부서져 흩어지는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체중을 실어 올렸으니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중량. 한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괴력이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쏘아져 머리를 문대고.
땅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풍으로 변했다.
쿠과과과과과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는 펠릭스의 맹공.
양손으로 움켜쥔 해머를 휘두르는 공세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맹렬하기 그지없다.
두 눈과 마력을 활활 불태우며 부리를 삐딱하게 물고 허리를 비트는 그 모습에 얼마나 처절한 진심이 담겨있는지 고스란히 다가오지만.
그 필사적인 연격은 크로켄이 느릿하게 내뻗은 권격 두 번에 모조리 흩어지며 역으로 그의 팔다리를 박살 낸다.
뚜두두둑!!
허공에서 퍼져나온 두 번의 파문. 펠릭스의 등 뒤로 수십 미터 넘는 진공파가 터져 나오며 그 몸의 균형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뜨렸다.
“……!!!”
제대로 된 승부라고 볼 수도 없을 만큼 일방적인 유린.
하지만 크로켄은 그런 펠릭스의 모습을 보며 역으로 감탄했다.
“실력이 더 늘었군. 안타레스가 도와준 거냐?”
펠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비틀거리는 몸을 붙잡고 다시금 레녹의 앞을 막아섰다.
부리 사이로 튀어나오는 것은 더 이상 언어가 아니라 마음을 다잡는 전사의 함성뿐.
“오오오오!!!”
“그릇이 큰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너도 좀 눈여겨봐 둘 걸 그랬군.”
새카만 마력이 회오리치는 해머의 단면에 팔뚝을 덧대 멈춰 세운다.
쿠우웅!!!
굉음과 함께 크로켄의 몸이 희미하게 들썩거렸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까마득하지만, 펠릭스의 손에 들린 해머.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마력 자체가 어떻게든 전투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펠릭스가 이 자리에서 크로켄을 막아선 이유는 하나.
바로 후열에 선 레녹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겠지.
레녹은 처음부터 그걸 이해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그 순간부터 남은 마력을 모조리 끌어모으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몸을 깎아내며 전위역할로 나선 펠릭스가 만들어준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는 것.
자세를 낮춘 채 양손을 그러모은 레녹의 손바닥 위로 뻗어 나온 전격이 한껏 응축되기 시작한다.
우웅!!
손안에서 회전하는 마력의 격류만으로 코트가 거칠게 펄럭이며 근처 모래들을 싹 밀어냈다.
연이은 전투와 자성영역 전개 실패로 소모한 마력이 상당한 상황.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찌지지지지지직!!
팔을 타고 흘러나온 전격이 단 한줄기도 튀지 않고 물결처럼 손 안쪽으로 압축된다.
전류가 튀는 소음이 수십 수백 번씩 겹치면서 마치 공간이 찢겨나가는 듯한 소리로 변했다.
남아 있는 거의 모든 마력의 반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것은 네 가닥의 전류로 만들어진 정사면체.
본디 시작점과 도달점만이 존재하는 불규칙한 전류 수백 가닥의 힘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만들어낸 힘의 응집체다.
공명과 반발, 확산의 세 가지 증폭원리를 극한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된 레녹이 다비의 연산력을 빌려서 가늠하는 도달점의 일종.
위계를 완성하고 성위의 경지에 도달한 뒤에, 레녹이 그 위로 나아가기 위해 시도했던 연구의 부산물이었다.
네 방향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지탱하는 이 도형은, 아주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무너진 방향을 통해 모든 여파를 내뿜는다.
정사면체의 중심부근에서 희미하게 퍼져나오는 무채색의 파동.
레녹의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이 술식의 끝에, 그의 심상 일부가 담겨 나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자성영역을 전개하는 것이 어려워진 이 시점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괴물을 상대로 레녹이 꺼내 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한 수.
덜덜덜…….!!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양손에선 놓칠 것만 같다.
지극히 섬세한 조율과 균형감각을 통해 완성된 이 마력의 응집체는, 단 한순간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무너져 내린다.
이 술식을 들고 크로켄에게 달려가다가는 즉시 균형이 무너져내리고 자멸하게 될 터.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다비……. 준비해 줘.”
[계산은 완벽해요.]이어폰 너머로 다비가 대답했다.
[마스터에게 미리 받아놓은 마력으로 술식 대리시행. 점유공간 확인. 도약지점 포착. 좌표계산 완료. 필요마력구성 포진.]웅!!
레녹의 발밑에 아주 작은 파문이 인다.
그것은 레녹이 공간을 다루는 방법에 갈피를 잡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시도하는 ‘발걸음.’
지금까지 이 비루한 육체의 굴레에 갇혀 있던 마법의 재능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처음 한 걸음이다.
트레펜의 탈태로 만들어진 기계구체. 그 안에서 결과로서의 시공에 손을 대는 데 성공한 그 움직임에서 움켜쥔 편린.
그 깨달음을 가감 없이 레녹이 지닌 지식과 기술에 더해 나간다.
[육체 공간도약 시전까지 1.5초. 목표지점 크로켄 아실러스의 명치 3mm 상위.]우웅!!
[갑니다.]오른발을 뜨거운 지면에서 떼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몸이 공간을 도약한다.
자신의 육신을 상대로 벌이는 공간좌표의 전이. 그 도약을 통해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 수십 미터를 날아 좌표에 육신을 구현했다.
그 목적지는 연이어 충격파가 터져 나오는 펠릭스와 크로켄의 사이.
맨몸으로는 그 여파로 대번에 고기 조각으로 뭉개져도 이상하지 않은 폭심지의 중심.
하지만 힘의 흐름을 절묘하게 뚫고 던져올린 정사면체는, 실로 정확하게 크로켄의 명치를 향해 솟아 오른다.
[사상뢰(思想雷)]자성영역의 일부를 마법체계 안에 녹여서 만들어낸 뇌전.
마음을 담은 번개.
레녹이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생에 대한 갈망. 그 간절함은 고스란히 심상의 정경에 담겨 힘으로 변한다.
시계가 일그러지듯이 크로켄의 앞에 내려앉은 레녹이 그대로 어깨를 한껏 비틀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지근거리. 펠릭스가 만들어준 단 한 번의 기회.
필중에 가까운 지근거리. 명중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치명상 이상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레녹이 그렇게 염원하며 그대로 크로켄의 명치를 향해 [사상뢰]를 던져올린 그 순간.
크로켄의 샛노란 동공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 같은 괴물들에게, 이 잠깐의 순간조차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그는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레녹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명치를 툭툭 가리켰을 뿐.
그 말도 안 되는 반응에 놀라고 두려워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콰직!
단단한 비늘에 부딪히는 순간 그대로 정사면체의 일각이 무너져내리고 그 사이로 눈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