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97
약먹는 천재마법사 397화
마안상동(1)
“야, 그거 봤냐? 봤어?”
“시연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죠. 저희 애들 모아놓고 구경했습니다.”
레녹과 아윤이 시연을 명분으로 공식적으로 한판 붙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카르텔을 넘어 거리 전체로 퍼져 나갔다.
두 사람의 전투는 일체 기록되는 일 없이 카르텔의 중간관리직 이상의 직원들에게만 실시간으로 송출되었을 뿐이지만, 이 바닥에서 완벽한 보안이란 없는 법.
영상물 자체는 손에 넣을 수 없더라도 그 광경 자체를 같이 구경한 외부인들은 꽤 있었던 것이다.
“아니, X발……. 난 귀도 교단 문양을 그렇게 대놓고 새긴 사람도 처음 봤어. 그게 맨정신으로 가능한 일이냐?”
“그런 문신을 새겨놓고 변명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했죠……”
삼두령 중 가장 멀쩡한 조직의 수뇌부에서 일어나는 권력다툼.
그 사이에 교단의 관계자가 끼어 있다는 사실 역시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지만,
그것보다 관심을 끈 것은 49구역의 견뢰가 드디어 카르텔의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마지막에 견뢰가 뭔 짓을 한 건지, 아직도 이해한 놈이 없다는 게 진짜 웃기지 않아?”
“위성화면에서도 자기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대놓고 보여준 것 자체가, 알아보지 못할 거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겠지. 나도 내 지인들 중에, 그거 가능한 사람들한테 몰래 물어봤거든?”
“……그거요?”
“그래, 그거. 그거 하는 괴물들이 이 거리에도 몇 명 있잖아.”
설마 자성영역을 그거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말을 받아주던 사람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가 슬쩍 말을 이었다.
“하나같이 자기들 수준으로는 단언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하더라고. 어쩌면 그 그림자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이게 무슨 의미일 것 같냐?”
그제서야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한 상대방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견뢰가 이미 성위급을 넘어선 수준에 도달했다 이겁니까?”
“그래. 그리고 어쩌면 이번 소동 자체가 그 사실을 퍼트리기 위한 수작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지.”
“…….”
“알 만한 놈들만 알아보고 눈치껏 기어라, 이런 의미가 아니면 뭐겠냐는 거야.”
“견뢰가 그렇게 애매하게 수작을 부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너 그놈이랑 친해? 그 괴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떻게 알아?”
“그건 아니지만…….”
뛰어난 실력과 명성에 비해 반의 행적이 베일에 감춰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되는 그간의 행적으로 견뢰의 성정이 추측되고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함께 일해보거나 그를 상대하고 살아남았던 이들에 의하면, 도무지 상종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쳤거나 비틀린 사람은 아닌 바.
기이할 정도로 고강한 실력과 단호한 손속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이나 맺고 끊는 것도 깔끔한 편이다.
처음 이 도시에서 이름을 알린 뒤로 한결같은 태도를 고수해 왔던 마법사가 이제 와서 카르텔의 입을 빌려 힘을 과시하려 들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견뢰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사업, 싹 다 이쪽에서 재검토 들어갈 거야. 카르텔, 다이크, 에이전트, 그 브로커랑 협업 중인 유통 쪽까지……. 뭔가 확실하게 정해질 때까지는 충돌하지 않는 게 좋겠어.”
“아킬레우스 쪽 안건은 어떻게 하려구요? 그쪽에서 협업 기획서가 올라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리 저희 쪽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해도 검토단계까지 간 이상 무르는 건 어려울 겁니다.”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그놈들이 아무리 양지쪽과 손을 잡고 명분을 쌓아 올려도, 삼두령은 삼두령일 수밖에 없…….”
목소리를 낮추고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의 건너편.
레녹은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술잔을 매만졌다.
그런 레녹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관계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진상을 파악하는 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면서.]나른한 몸짓으로 턱을 괸 채 술잔을 까닥이던 상대가 말했다.
[사실 세상에는 아무런 이유나 의미가 없는 일도 많은데 말이야.]“허수차원에 대한 개념을 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술잔을 기울이던 레녹이 말했다.
“그건 위계의 완성이나 초월을 이루는 과정에서는 아예 손을 댈 일이 없는 개념이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미를 붙여 논하는 것은 광인들의 몫이지.”
[너 역시 그런 광인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냐?]“다가오지 않는 세상의 결말을 논하는 사람들이 미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겠지.”
[…….]처음으로 상대가 입을 다물었다. 그 몸짓에 따라 얼굴 위로 드리워진 베일이 흔들렸다.
카르텔의 회장이자 8레벨의 극위마법사.
발칸의 음지를 지배하는 삼두령 중 일각을 이끄는 수장이자, 이 도시의 가장 어두운 비밀에 관계된 연구자.
레녹은 바로 그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와 단둘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레녹은 그런 그녀의 베일 너머를 눈여겨보면서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의 유지가 쌓이다 보면 어제 같은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기문둔갑 같은 특수한 술식이 상대라면 허수차원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셈이니.”
자성영역 반전전개 [허위계명성(虛僞啓明星)].
허수차원에 존재하지 않는 샛별을 띄워 올려 그를 중심으로 이미 전개된 심상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대 영역 반전술식.
영역의 이면에서 마력을 기존의 영역에 따라 덧그리면, 완벽하게 상하좌우로 뒤집힌 심상이 열쇠처럼 맞물리며 구축된 영역 자체가 풀려버리는 현상을 이용하는 반전의 극한이다.
더할 나위 없이 치명적으로 먹히기는 했지만, 그가 펼친 오뢰금쇄진이 침식형에 철저하게 전장장악에 특화된 영역이었기에 가능한 일.
아무리 레녹이라 하더라도 다른 술사나 초인들을 상대로 비슷한 짓거리를 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겠지.
하지만 그런 레녹의 말에도 올리비에라는 어림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겸손이 과하면 교만이 되는 법이다. 부재증명의 원리를 그렇게 쉽게 이해하고 다룬다는 것 자체가, 네놈이 이미 위계를 반쯤 벗어났다는 증거나 다름없을진대.]“…….”
허수차원을 관측하는 파이겐바움의 눈과, 영역과 개념을 새로이 정의하는 진둔의 결계술이 아니었다면 레녹도 단시간에 이런 장난질에 손을 대지는 못했겠지.
하지만 그런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레녹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회장이 하는 말에 굳이 반박해가면서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올리비에라는 그런 레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자기개변의 개념을 발아래 두고도 아직 망설이고 있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날 찾은 것이냐?]“기문둔갑을 다루던 아윤은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교단의 교리에 손을 댔지.”
레녹이 슬쩍 말을 돌렸다.
“놈이 말한 것처럼 광신의 형태로 정신을 보호받는 것이 가능하다면, 비슷한 힘을 노리고 교단에 투신하는 이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의 내막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해야 할 거야.”
어차피 아윤과 레녹이 나누었던 일련의 대화는 영상에 송출되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교단의 문양을 보고 다른 마음을 먹는 이들이 생길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올리비에라는 레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조치로 귀도의 힘을 경계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 이번처럼 교리에 넘어간 멍청이들을 솎아 내는 걸로 족하다.]“아윤이 귀도에 투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귀도의 교주는 승천에 필적하는 존재이면서도 속세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괴물이라 하지.]올리비에라가 말했다.
“…….”
귀도 교단.
레녹이 사도로 각성하려던 윌터 마르티네스를 팔굉성채에서 처리한 뒤로 이 도시에서 눈에 띄는 활동은 없지만,
언제 다시 찾아와 자신들의 교리로 사도를 소환하려 들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 대륙에서도 한 손안에 꼽힐 만큼 강성하고 또 기이한 확신을 지닌 조직.
광신에 빠진 종교집단이라 생각하고 무시하기에는 그 위험함이 정도를 넘어서 있었다.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지.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광신이 어떤 식으로 보답받을 수 있을지 말이야. 어쩌면 마지막에 서 있는 건…….]거기까지 중얼거린 올리비에라가 말을 뚝 끊고 순식간에 화제를 돌렸다.
[……말이 길었군.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지.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고 했을 텐데.]“거래를 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굳이 당신을 찾지도 않았을거다.”
레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카르텔의 일에 끼어드는 순간부터 각오하고 있었지. 적어도 난 그 여파를 감내할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짙은 갈색의 위스키를 한모금 들이킨 레녹이, 베일에 가려진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올리비에라는 레녹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말없이 베일 안으로 술잔을 가져다 댔다.
제대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베일을 들추지 않고서도 잘도 위스키를 흘려넘긴다.
레녹이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올리비에라가 말했다.
[이 술집은 거대도시에 제대로 된 에이리어 구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존재하던 곳이지.]“…….”
[이제 와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도시가 돌아가는 일을 이곳에서 모여 논의하던 때도 있었다.]올리비에라는 느릿한 손짓으로 아직도 저쪽에서 떠들어대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 역시 말투는 경박해도, 이곳에서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시절을 기억하는 관계자라는 말이겠지.]“……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만남의 장소라는 말이군. 그래서 날 여기까지 불러낸 건가?”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에 모여 떠드는 화제는 변하지 않았구나.]쓰게 웃은 그녀가 천천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재능 있는 신성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 안주거리였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규격을 뛰어넘는 괴물이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균형을 논하던 시절……. 끝나지 않는 분쟁이 지겹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는 오히려 그리워지는구나.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지.]레녹은 그녀가 무정한 음색으로 흘리는 혼잣말을 말없이 들어주었다.
두 사람의 뒤쪽에서 떠들어대는 이들의 대화가, 뜻하지 않게 올리비에라의 오랜 향수를 자극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던 그녀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침묵. 마치 처음부터 대화가 없던 것처럼 한참을 이어지던 고요 사이에서, 술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말했다.
[마드리치 오니온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다.]“…….”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관계자들에게 걸린 금제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지.]이미 레녹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던 건가.
하긴, 파노아와 함께 대면했던 버질이 자신의 회장에게 관련된 내용에 대한 보고를 올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놈이 어떤 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서 그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지, 대충이나마 전해주는 건 가능하겠지. 버질을 통해서 따로 정보를 넘겨주마.]“직접 입으로 전해주지 않는 건 금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 이건가?”
[그런 것도 있지만……. 오늘 이 자리에 널 부른 것은, 앞으로 카르텔에서 네 위치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술잔을 느릿하게 흔들던 올리비에라가 가라앉은 음색으로 말했다.
[카르텔이라는 기업연합체를 세운지도 수십년이 흘렀다. 이제와서 조직에 손을 대는 것은 내게 있어 우행을 반복하는 일일 뿐이지.]“그렇군.”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회사는 엄연한 나의 소유물일터. 아랫것들이 물을 흐리는 일은 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주인의 도리다.]품안에서 낡은 호출기를 하나 꺼내 레녹의 앞에 들이민 그녀가 말했다.
“…….”
1사장 파르덴 맥퀸을 상대했을 때와 변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라진 올리비에라의 태도.
레녹은 그것이 그녀가 자신을 단순히 사외이사의 일원이 아니라, 대등한 협상관계로 인식하고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레녹의 상태를 버질이 알아차렸다면, 그 흡혈귀보다도 더 깊고 심유한 안목을 가진 그녀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을 터.
서로의 무력과 경지를 떠나서, 레녹이 올리비에라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자격과 지식을 쌓아 올렸다는 것을 그녀 역시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카르텔과의 분쟁으로 처음 그녀가 레녹을 마주했을 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 상황.
영입할 만한 재능 있는 마법사였던 레녹에 대한 인식이, 올리비에라 자신이 직접 나서야 될 정도의 거물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던가.
어쩌면 카르텔에 정식으로 복속되는 대신, 명목상의 직책인 사외이사 자리만 받아 챙겼던 것 역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까.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는 그런 추측과 상념을 뒤로한 채, 지금 이 자리에서 레녹과 독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녹은 그런 그녀의 베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이런 자리까지 불러내서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었군. 저울추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걸 경계하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천천히 자신의 왼쪽 눈동자에 손가락을 가져다댄 레녹이 말했다.
“하지만 그쪽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던 간에, 일한 만큼의 대가는 확실하게 쳐줘야 할 거다.”
위이잉……!!
레녹의 왼쪽 동공이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붉고 푸른색으로 점철되고, 이내 자색의 마안으로 변했다.
마안 겉면의 망막에 새겨진 균열은 이제 육안으로도 직접 확인할 수 있을만큼 선명하고도 깊게 각인되어, 당장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그걸 위해서 굳이 그쪽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시연에 나섰던 거니까.”
[이건……?]그제서야 레녹이 어째서 자신을 찾아와 거래를 제안했는지 깨달은 올리비에라가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불안정하다 못해 당장이라도 깨질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마안의 모습.
“칠채보의 마안을 보유한 당신이라면 지금 내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겠지.”
레녹은 그 눈으로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지식을 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