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18
약먹는 천재마법사 418화
진실과 진혼(3)
대륙의 삼분지 일은 중앙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계의 자본과 문화, 사람, 산업, 영향력과 역사. 그 모든 것의 삼분의 일은 중앙도시에서 나온 것이라는 광오하기 그지없는 단언.
하지만 그 말이 허언이었다면 수십년 전 몰락한 중앙도시를 두고 아직까지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지도 않았겠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방금 마드리치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직접 보고 들은적은 없으나 그 방대함과 규모를 추측할 수 있을 만큼 위대했던 중앙도시 아르스노바.
그곳의 멸망을 초래한 것이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에 의한 비극이었다면, 어째서 프로젝트의 내막이 이렇게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중앙도시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그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투고 있는지.
결말의 끝에서 보이지 않는 장막 너머에 대답이 존재할 거라 믿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중앙전선에 드리운 장막의 존재로 아직 그곳에 닿은 자는 없다고 들었다.”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다 타버린 연초를 바꿔물었다.
“아직까지 아르스노바의 멸망에 대한 원인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었지. 그렇군…….”
마드리치 오니온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 한 가지 진실.
하지만 레녹의 머리는 그 한가지 전제조건을 기반으로 무수한 가능성을 그려내며, 순식간에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퍼즐처럼 끼워 맞추기 시작한다.
어째서 율령이 풀린 뒤에야 마드리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왜 그 계기가 방위군의 해산이 이뤄진 뒤였는지.
이들이 새로운 힘을 원하는 이유. 새로운 프로젝트가 이제서야 시동이 걸린 이유.
“당신이 계속해서 언급했던 새로운 프로젝트는 바로-”
[그만!!!]반쯤 시체나 다름없는 너덜너덜한 거인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전성이 터져 나왔다.
[거기까지다.]거인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리면서, 그 사지에 묶인 수백 개의 길쭉한 유리관이 흔들리고 있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덮은 거인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게 아니야…… 도대체 어째서…….]큰 흔들림. 금제를 어긴 마드리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균열이었다.
방금 레녹이 던진 결말에 대한 도발에, 마드리치는 자신조차 놀랄만큼 크게 흔들리고 동요했던 것이다.
그만큼 마드리치 본인이 레녹을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고 예우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오랫동안 살아온 군령술사의 눈에도 누구보다 완벽한 칼날을 눈앞에 두고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던 걸까.
[……아니. 틀리지 않았다.]대답은 거인의 입에서 곧바로 튀어나왔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 나는 그들과 다르다……!!]살점이 너덜너덜한 양 팔뚝을 천천히 들어 올린 거인이, 수인을 맺기 시작한다.
동시에 이 거대한 납골당의 공동 전체를 휘감고 솟아오르는 거대한 동력의 기세.
[자성영역 전개.]마드리치가 조용하게 중얼거린 직후, 갑자기 뱃속이 쑥 꺼지는 듯한 감촉과 함께 귀가 먹먹해지기 시작한다.
슈우우우……!!
마치 급격하게 고도가 상승하는 것만 같은 기이하기 그지없는 체감.
일부러 실드의 필터를 꺼두고 주위의 환경을 인지하고 있던 레녹이 살짝 비틀거리는 것과 함께,
쏴아아아!!!
단단한 암반으로 꽉 막혀 있던 납골당의 풍경이 완전히 뒤집혀 변화하기 시작했다.
암반 곳곳으로 물이 차오르는 것과 동시에 사방의 색채가 어두운 푸른 빛으로 뒤덮인다.
사방에서 뻐끔거리며 호흡하는 물고기와 다양한 수중생물들을 솟구치듯 지나쳐 순식간에 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두두두두두!!!
폭풍우가 몰아치는 먹구름 낀 하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와 몰아치는 바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거대한 납골당의 주위에서 끝도 없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바다의 모습 그 자체다.
자성영역 전개
영령위계 심상구현
[침식권역 망량쇄례함(妄梁鎖例艦)]쿠과과과과과!!!!!
끝도없이 좁게 이어진 복도는 갑판 아래쪽 복도를 지나는 순례길.
거인의 몸이 앉아 있던 거대한 공동은 바로 그런 갑판의 위에 임의로 마련된 공간이나 다름없다.
수십 미터는 넘는 거인의 몸을 닻대로 삼아 거친 바다 한가운데를 끝없이 방황하는 거대한 유령함선.
그것이 바로 군령술사 마드리치 오니온이 죽은 자의 영과 육을 모시는 데 사용하고 있던 납골당 그 자체였던 것이다.
두두두두두!!!
쏟아지는 빗줄기가 거세게 변한다.
낡은 갑판 위로 흠뻑 고인 물 위로 비가 쏟아지며 무수한 파문을 그리고, 파문의 중심 곳곳에서 갑판 바닥을 뚫고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갑판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희끄무레한 살덩이. 하나같이 비에 눌어붙어 있다는 걸 제외하면 남녀노소 복색은 다양하다.
인간의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수십 수백의 군령체가 거인이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절규했다.
[아아아아아아!!!]그런 이들의 목에는 굵고 길쭉한 사슬이 매달린 채, 이 거대한 유령 함선 곳곳을 회전하고 있었다.
촤르르르르륵!!!
함선 곳곳에서 군령들이 날뛰기 시작하는 것과 함께, 거기 매달린 수백가닥의 사슬이 파도처럼 흔들린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나의 권역은 세상의 끝을 향해 항해한다.]물결치는 거대한 쇠사슬의 군세의 끝에서, 합장한 자세로 멈춰선 거인이 레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자의 안식은 누구도 그 방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공간. 지금부터 나의 대답이 틀리지 않았음을 네놈에게 보여주마.]레녹은 눈앞에 서 있는 군령체를 무시하고 돛대 역할을 하는 거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무슨 방식으로 권역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 것 같군.”
한없이 농밀한 심상을 투영한 자성영역이지만, 일반적인 영역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환경 자체를 통채로 변화시켜 일시적으로 고정하는 자성영역과는 달리, 특정한 환경의 조건을 상시적으로 유지하고 만족시키는 공간.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 역시 이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연구실을 통제하고 있지 않았던가.
“위계를 초월한 관점에서 투영하는 심상에 변주를 줘서 현실을 개변하는 방식인가. 이것과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지.”
[…….]“망망대해를 배회하는 거대한 유령전함이라…… 이게 당신이 생각하는 대답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인가?”
레녹이 웃었다.
“좋아.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나도 나름 준비를 하고 왔거든.”
양쪽 검지 손가락으로 손목 안쪽을 동시에 매만지는 것과 동시에, 품안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양손에 쥐어졌다.
철컥!!
수십 개의 길쭉한 총구를 원형으로 묶어 개조해 낸 개틀링 건.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원기둥으로 보일정도로 굵직한 총신을 치켜들고 마력을 불어넣자, 총구가 미친듯이 회전하며 새파란 마력광을 내뿜기 시작한다.
위이이이잉!!!
순식간에 예열을 마치고 회전하며 터져나오는 열기로 쏟아지는 빗물이 증발해 무수한 수증기로 화했다.
갑판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초와 수증기를 동시에 들이마시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도시 마키나의 특주품 카테고리 시스템 업그레이드. 프레데터 오버바운드 개틀링건이다. 이제 막 태어난 지 48시간도 안 된 친구지.”
레녹이 팔머에게 주문한 것은 단순히 지니고 있던 총화기를 개조시켜주는 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군령술사를 상대하기 위한 새로운 장비의 제작 역시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제작이 끝났었던 것.
무수한 군령을 다루는 술사들을 상대로,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런 머신건이 제격이겠지.
두두두두두!!
회전하는 총신에 맞춰 탄창이 회전하면서 그대로 불꽃을 튀기기 시작한다.
양 손에 마력사를 묶어 매달고 힘겹게 머신건을 들어 올린 레녹이 씩 웃었다.
“시작하지.”
* * *
[우어어어어!!!]목에 매인 사슬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갑판 곳곳에서 뛰어내려 레녹을 향해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무수한 군령들의 모습.
반쯤은 시체나 다름없는 회색빛의 피부와 새파랗게 변질된 혈색은 인간이 아니라 좀비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하지만 쉴새없이 비가 쏟아져내리는 이 미끈거리는 갑판 위에서 그들의 움직임은 실로 기민하기 그지없었다.
레녹 역시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어깨를 비틀었다.
촤라라락!!
손끝에서 튀어나온 마력사를 그대로 함선 머리 위 돛대에 부착. 레녹의 몸이 그대로 갑판에서 떨어져 하늘 위로 쭉 치솟았다.
동시에 방금 꺼내 든 개틀링건의 총구를 아래쪽으로 향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긴 채 고정.
이미 잔뜩 예열되어 있던 총신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그대로 갑판 아래쪽에 무수히 많은 탄환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몰아치는 파도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지는 귀청이 찢어지는 연사음.
함선의 돛대 위에 마력사를 매달고 배 옆을 활강하며 머신건을 난사하는 레녹의 선공에 군령들이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악!!!]갑판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총알은 단순히 군령들을 관통하고 끝나지 않는다.
살점을 관통한 것을 인지한 순간 탄환이 그 자리에서 폭발하며 군령들의 육체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그 살점을 갑판과 바다 곳곳에 흩뿌렸다.
콰과과광!!
[우워어어어어!!]군령들 역시 단순히 레녹의 총탄에 무기력하게 얻어터지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순식간에 자신들끼리 몸을 겹쳐 길쭉한 탑을 쌓아올리고 레녹을 잡기 위해 체액을 튀기며 팔을 이리저리 휘두른다.
레녹이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머리 위에서 개틀링건을 난사한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돛대 정도의 높이다.
군령들끼리 서로 몸을 겹쳐 올려 높이를 높이거나, 혹은 아예 돛대를 올라타고 거꾸로 레녹의 머리 위에서 그를 노리는 군령들도 있을 정도.
단순한 좀비가 아니라 군령술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영육이다.
목에 매달린 사슬로 고통에 울부짖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지성이 남아 있고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들.
카가가각!!
몰아치는 바람 사이로 섞인 날선 마력의 정수가 사방을 할퀴고 레녹이 매달린 마력사를 끊어냈다.
비에 흠뻑 젖은 코트가 그대로 펄럭이며 갑판 아래쪽으로 떨어지고, 군령들이 침을 줄줄 흘리며 레녹을 향해 달려들려던 그 순간.
파아앗!!
레녹의 신형이 새파란 섬광과 함께 그 자리에서 몇 미터 도약해 머리 위에 나타난다.
순식간에 마력사를 다른 돛대에 연결해서 갑판 중앙을 그대로 활보.
그 사이 레녹의 손에는 기관총이 아니라 다른 물건이 들려 있었다.
철컥!!
직육면체 형태로 각진 형태의 남색 포구와, 표면 사이로 끊임업이 흐르는 마력회로, 엔진 동력부에서 빛나는 마력의 고리가 회전하며 빛을 발했다.
마력사로 악력과 지지력을 보충하고 부여잡은 마도공학 집탄포 안에서 들려오는 정령의 목소리.
동시에 포구 사이로 터져나온 빛이 함선의 갑판의 절반에 가까운 지역을 환하게 밝힌다.
그것이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마법사가 움켜쥔 바주카포가 망라하는 사격 범위라는 것을 깨달은 군령들이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
번쩍!!
섬광이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갑판 위로 새파란 불길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악!!] [뜨……!! 살……!!]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고통에 겨워 날뛰는 군령들의 모습.
폭우가 쏟아지는 함선의 위에서도 집탄포의 열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군령들의 육신을 불사르며 괴롭힌다.
레녹은 그런 군령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마력사를 끊고 가볍게 갑판 위에 내려앉았다.
[아아아악!!]온 몸이 불길에 휩싸인 군령 하나가 레녹을 알아보지 못하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그에게 기어오려던 사이.
탕!!
리볼버를 꺼낸 레녹이 군령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순식간에 수백 체의 군령들을 싸그리 정리한 레녹의 안색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우욱…… 속이…….”
마드리치가 해역에서 기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멀미약을 잔뜩 복용하고 오긴했지만, 방금같은 격렬한 움직임을 오래 버텨낼 재간은 없다.
입가를 쓱 닦고 일어선 레녹이 근처에 쓰러진 군령을 마력사로 붙들고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성큼 앞으로 걸어 수인을 맺고 있는 거인이 보이는 곳까지 선 레녹이 물었다.
“이놈들의 얼굴. 내 데이터베이스에 있지. 기존에 수감시설을 탈출한 범법자들이라고 알려진 놈들인데, 이런 곳에 있었군.”
[…….]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채로 빤히 그를 내려다보는 거인을 마주 보며, 레녹이 웃었다.
“발칸 시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특수 수감시설들 중에서, 한 곳에 묶여 있지 않고 이동하는 감옥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은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으리라.
바로 레녹이 서 있는 이 거대한 유령함선처럼.
“앨라호른. 악질적인 흉악범만을 잡아 가둔다는 시정부 직속 수감시설이 바로 여기였군?”
사법기관의 수장으로 죄인들을 심판하며, 군령으로 쓸만한 죄수들을 자신의 권역으로 보내 복속시킨다.
그 과정에서 권역의 공간 자체를 수감시설로 지정해서 끊임없이 죄인들을 호송하게 만들고, 한편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권력가들의 영을 받아 보존하고 있었나.
영을 위로하는 납골당이자, 동시에 영을 가두고 부리는 감옥.
그 두가지 용도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망망대해의 유령함선이 바로 레녹이 서 있는 권역의 존재였던 것이다.
레녹이 이 납골당을 찾은 순간부터 사실상의 선택지는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
마드리치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정부의 개가 되거나, 이 흉험한 배에 묶인 군령이 되거나.
어느쪽이든 멀쩡하게 걸어나설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만히 레녹의 말을 듣고 있던 거인이 힘없이 웃었다.
[너같은 마법사에게 진실의 편린을 쥐여준 것이 실수였을지도 모르겠군.]“…….”
레녹이 대답하지 않자 거인이 재차 말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 모든 연원을 마무리짓는다면 상관없는 일이겠지. 후회를 잘라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수십 년 전부터 끝없이 반복해 온 과오였다.]“인상적이군.”
레녹이 말했다.
“그만한 권력과 죽음을 거머쥐고도 여전히 승천으로 향하는 꿈을 꾸는건가.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마드리치 오니온이 답했다.
[그것을 간절하게 염원하기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것을 더없이 갈구하기에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그렇군.”
[무의미한 발버둥이라 생각하나?]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피식 웃었다. 두 손을 들어 천천히 수인을 맺기 시작한다.
그 순간, 쉴 새 없이 흔들리던 바다의 끝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유령함선의 옆구리를 거칠게 후려갈쳤다.
쏴아아아!!
[…….!!]폭풍우 속에서 파도가 격해지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
하지만 마드리치의 표정을 변하게 한 것은 함선을 후려친 파도의 위력이 강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몰아친 파도의 물결 일부가 갑판 위로 거침없이 쏟아지면서 알 수 없는 희끄무레한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쿠구구구구…….!!
바다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방대한 해수가 한곳으로 응축되면서 거대한 거인의 형상으로 변한다.
하반신은 물밑에 놓아둔 채 상반신만을 함선의 갑판 위로 끌어올린 물빛의 거인이, 갑판의 돛대를 대신하는 마드리치를 마주 보고 거칠게 포효했다.
수류계열 고유마법
소환계열 이중연성
환경적성 촉매설정 완료
파아아앙!!
웅장한 함성과 함께 거인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파도가 그대로 갑판 위를 휩쓸고 군령체들을 날려버렸다.
[아아아아악!!]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파도에 휩쓸려 함선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군령체들의 모습.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굵직한 사슬이 함선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갑판 밖 뱃머리 옆편에 사슬에 묶인 채로 매달린 채 비명을 내지르는 수백의 원념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원념들을 장식처럼 전시해둔 채로 바다를 헤쳐나가는 유령함선까지.
“장관이군.”
레녹은 그 처참하기 그지없는 몰골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의 미래 역시 결국 저런 식이라 믿나?”
어느새 물빛의 거인의 머리 위에 올라탄 마법사의 모습.
코트는 물론이고, 머리칼까지 흠뻑 젖은 채 빗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지만,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새파란 안광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다.
“인간을 원료로 삼아 보이지 않는 암흑의 바다를 헤쳐, 종말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서는 것……. 당신 같은 군령술사가 꿈꾸는 미래가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군.”
[…….]“하지만 도시의 힘에 기대 다음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그건 결국 이미 실패했던 길을 한번 더 따라걷는 것 뿐일 테니까.”
어째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의 비밀을 찾아내려 하는가.
단순히 그들이 실패에 남겨진 비밀을 찾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이들 역시, 마드리치와 같이 다음으로 향할 방법을 찾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멸망을 건너 세계를 존속시킬 방법을 찾아 헤메고 있다.
레녹이 원하는 대답은, 바로 그렇게 무수한 시간을 건너 뛰어 진척된 길의 가장 앞에서 보이고 있을 터.
그 뼈져린 실패를 한번 겪은 이들이 아픔을 넘어 어디로 나아갔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멈출 수 없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바다 끝에서 퍼올린 해수로 온 몸을 두르고, 하늘에 떨어지는 빗물로 목청을 떨친다.
[애석한 일이군.]널찍한 갑판 끄트머리에 솟아오른 거대한 물의 거인을 바라보던 마드리치가 몸을 일으켜세웠다.
[순리대로라면 다음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건 우리같은 노물이 아니라, 너와 같은 새로운 재능이어야 했겠지.]한 손으로는 맺고 있던 수인을 유지한 채, 다른 손으로는 온몸에 매달린 유리관을 하나 들어 몸에 꽂아 넣었다.
푸쉬익!!
바람이 빠지는 듯한 기이한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액체를 몸 안에 주입.
눈을 감고 그것을 음미하던 마드리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물빛의 거인과 마주 보고 섰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다. 이 세계의 결말이 어디에 도착할지 짐작하지 못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모험을 할 수 없음을 이해하거라.]“모험이라.”
참지 못한 레녹이 웃었다.
이 세계에서 눈을 뜬 뒤로 레녹에게는 모든 순간이 모험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그 사이를 건너는 함선의 위에서 두 거인이 서로를 마주 본다.
굳게 움켜쥔 두 거인의 팔뚝이 교차하며 빗물 사이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