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17
약먹는 천재마법사 417화
진실과 진혼(2)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가 희미해지다, 고요한 침묵으로 변한다.
마드리치의 뒤를 따라 열린 돌문을 지나, 끝없는 복도를 내리 걸었다.
“그 노인까지 당신의 군령이었을 줄은 몰랐군.”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레녹이 말했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레이스의 규칙을 강조한다 했지. 갱단을 전멸시킬 때까지 나타나지 않길래 도망친 줄 알았는데.”
“그리모어 갱단의 백귀야행은 내가 군령을 수급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수단들 중 하나다.”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한 노인, 마드리치가 손을 휘젓는 것과 동시에 복도의 풍경이 일변했다.
화악!
안쪽으로 펼쳐진 복도 사이로 무수히 놓여진 유리 진열대. 그 사이로 각기 다른 유골함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레녹이 그 무수한 유골함의 전시장에 잠깐 말을 멈춘 사이, 그 사이로 걸음을 옮긴 마드리치가 말했다.
“군령 의식 형태를 유지하기에 효율이 좋아 따로 관리하고 있었지. 고작 마법사 한 명에게 몰살당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아킬레우스의 보안 네트워크 사이에 그쪽의 군령들의 단말들을 숨겨두었더군.”
유골함에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쓱 훔친 레녹이 대답했다.
“직접 나서지 않고 군령들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일이었겠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킬레우스의 네트워크는 양지의 기업들 중에서도 단연코 최상급이다. 보안회사가 얼마나 내부 단속에 신경 쓰는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뒷짐을 진 채로 앞장서 걷던 그가 피식 웃었다.
“그걸 뚫고 들어와 나와 관련된 단말의 좌표를 정확하게 탈취해낸 네놈의 역량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
아무리 다비가 강력한 전뇌정령이라 해도, 아무런 매개체나 키워드 없이 보안 네트워크를 정면에서 뚫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때 아킬레우스의 보안 네트워크에 접속했던 것은 전뇌영역에서 그쪽 회사의 기술팀장을 살아 있는 생체 단말기로 사용해 네트워크에 접속했기 때문.
하지만 마드리치가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면 굳이 그걸 설명해 줄 이유는 없었다.
서로 속내를 떠보는 지지부진한 대화가 계속되자, 노인이 먼저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묻고 싶은 건 고작 그것뿐인가?”
슬쩍 뒤를 돌아본 노인의 눈이 레녹과 정확하게 마주쳤다.
“내 제안을 거절하고 직접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부터가, 어떤 대답을 간절하게 갈구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진작 확인이 끝났지.”
레녹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블랙컨슈머 프로젝트. 금제 때문에 말은 할 수 없어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
“카이세와 알카이드.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간 뒤로 무슨 일이 있었지?”
레녹이 물었다.
“어떤 과오가 있었길래 여전히 시정부의 고위층에 당신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건지 알고 싶군.”
“참으로 솔직하구나. 내 앞에서 감히 그 이름을 꺼내 드는 이는 오랜만이다.”
마드리치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때는 그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 반역에 필적하는 죄를 선고하던 시절도 있었지.”
끝없는 유골함의 전시장 사이를 거닐면서 그가 말했다.
“그만큼 두 사람이 공헌했던 바가 지대했고, 과오 역시 막중했기 때문이야. 만귀야행의 실패를 직접 목도한 입장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만귀야행의 실패라…….”
레녹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건 역시 당신이 두 개 도시의 운명을 좌우한 승천계획에 참여했다는 말이겠군.”
군령도시 요르타의 만귀야행.
거대도시 발칸의 블랙컨슈머 프로젝트.
시간도 방식도 다르지만, 승천으로 향한다는 목적 하나만은 공유했던 두 가지 거대한 대계에 모두 발을 담가봤다는 말이 아닌가.
“요르타에서의 실패를 경험으로 발칸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위상에 이른 건가?”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비밀에 대해서 내 입으로 직접 말해줄 수는 없다.”
마드리치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알카이드가 남겨놓은 금제는 지독할 정도로 강력하고 또 치명적이라, 그 이름과 존재를 먼저 누설하는 것조차 금하고 있지.”
“…….”
레녹이 먼저 알카이드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언급했기 때문에, 마드리치 역시 그 이름을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하지만 내가 어째서 아직까지 이 도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그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후욱……!!
복도 끝이 점점 넓어지다 이내 탁 트인 거대한 공간으로 변한다.
새하얀 빛이 스며들어오며 따스한 정광이 얼굴을 내리쬐었다.
그 정광을 뒤로 한 마드리치의 군령이 몸을 온전히 돌려서 레녹을 내다보았다.
“영원을 꿈꾸며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보험을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독하리만치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이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간에 대한 보장을 받고 싶어 했지.”
방금 전까지 차가운 공기가 맴돌던 유골함 진열장을 따라 쭉 이어진, 화려하고도 정갈하게 꾸며진 새하얀 공동.
수천 개의 유골함으로 가득 찬 진열장 벽면의 한복판에, 거대한 거인이 양손을 그러모은 채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다.
평범한 인간의 수백 배는 되어 보이는 거인의 얼굴은 파리하기 그지없고, 살점이 군데군데 갉아 먹혀 안쪽의 뼛조각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그 팔과 무릎, 어깨, 목과 머리, 눈가 안쪽과 손발 위로 수백 개는 넘어 보이는 길쭉한 유리관이 끈에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거인의 몸으로 수백 개의 유리관을 지탱하고 있는 듯한 기이한 모습.
그런 거인의 등 뒤 공동 벽면에 난 무수한 선반들 사이로 수천개가 넘는 유골함이 줄지어서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실로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기 그지없는 풍경에 레녹의 말문이 막힌 그 순간.
죽은 듯이 멈춰 있던 거인과, 레녹의 눈앞에 서 있던 노인의 입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그것이 허울뿐인 달콤한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비록 그것이 허울뿐인 달콤한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이럴 수가.”
그제서야 레녹은 마드리치의 본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죽은지 한참이 지난 듯, 뼈 위로 그 살점만이 간신히 붙어 있는 처참한 거인의 몰골.
바로 그것이 마드리치 오니온의 진정한 정체였던 것이다.
평범한 인간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체구의 거인종. 도시가 세워질 때부터 살아남은 군령술사의 정체가 설마 순수한 인간조차 아니었을 줄이야.
사법기관의 수장으로 오랫동안 역임했다 하기에, 평범한 인간의 체격일거라 생각했던 편견을 완전히 박살 내는 거인의 자태.
마드리치는 그런 레녹을 내려다보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이 납골당은 이미 죽은 자들을 기리는 진혼장. 그와 동시에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마지막 도피처다.]“…….”
[나는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래로,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가련한 이들을 품어오고 있었지.]“……그렇군. 그래서 당신이 시정부 고위층에 이렇게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거야.”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못한 이들의 시간을 억지로나마 연장시켜주고, 내세에 대한 희망을 미끼로 그 영육을 잡아놓고 있었군.”
거대도시의 고위 관료들은 그 막강한 권력만큼이나 대부분이 적지 않은 나이를 자랑하는 고령.
어지간히 강력한 위계를 완성한 초인이 되지 않고서야 남은 수명이 정해져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마드리치 오니온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죽음을 유예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써,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시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젝트에서 당신이 맡은 역할은 계획을 성공시키는 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보험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나?”
프로젝트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대해 서로 아는 것이 겹치는 일도 많지 않다는 올리비에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군령술사인 마드리치 오니온이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자신의 군령으로 만들어 부려먹는 것뿐.
죽음을 억지로 미뤄두기 위해 군령술이라는 술식에 묶인 채 시체만도 못한 시간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존재조차 언제라도 술사의 의사에 따라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거인, 마드리치 오니온이 웃었다.
[죽음이 두려워 그보다 못한 안식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지.]“…….”
[군령술을 다루는 이들은 경고하곤 한다.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고 단지 미련만이 남을 뿐이라고. 하지만 진실을 듣고 난 뒤에도 사람은 달라지지 않아.]마드리치가 말했다.
[모르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지. 알 수 없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야. 군령술은 그 어리석음과 모순을 힘의 원천으로 삼는 술식이지만……. 그런 술사들이 모인 도시, 요르타조차 정작 그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이 세상의 모든 영과 육을 모아서 승천으로 향하는 다리를 놓겠다던 요르타의 계획, 만귀야행.
군령술의 비의로 만들어진 그 계획의 실패가 요르타라는 도시에 어떤 폐해를 미쳤는지 레녹은 잘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너무나도 뼈아픈 과오였다는 것은 분명했다.
기백 년은 넘게 살아오며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영을 거두었을 위대한 군령술사조차, 만귀야행의 실패를 언급할 때마다 희미하게 말끝이 떨려오고 있었으니까.
오랜 시간을 살아온 초인들이 흔치않게 드러내는 선명한 감정의 동요.
살아가면서 결코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은 짙은 감정의 투사지만, 레녹은 이미 예전에도 비슷한 것을 한번 본 기억이 있었다.
진둔의 항하사미궁에서 만났던 기계도시의 집행자, 마이야 렌슬릿 역시 승천문의 실패를 언급할때마다 저런 반응이었으니까.
그 실패가 얼마나 뼈아프고 치명적이었기에 수십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후회하는 이들이 방황하고 있나.
승천에 도전하는 행위 자체가 위대하다 했던가.
하지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을 때 더욱 참혹한 것이다.
레녹은 그 간단하면서도 실감하기는 어려운 진리를, 뼈아픈 실패 끝에 직접 영혼에 새겨온 존재를 마주하고 있었다.
거인이 우묵한 시선을 내려 레녹의 어깨를 짓눌렀다.
[승천으로 향하는 다리가 끊겼을 때 일어나는 참상은 단순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과의 법칙이 어긋나고 순리가 뒤집히는 지옥 속에서 개개인의 생명 따위는 사소한 것에 불과하지.]“…….”
“무엇을?”
[멸망을 피할 수 없다면, 자신만이라도 살아서 다음을 향하고 싶다는……. 아주 이기적이면서도 순수한 욕망을 말이야.]거인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것과 함께, 그 손가락의 끝에 올려져 있던 유리관이 흔들리고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온다.
철퍼덕!!
녹색빛의 액체가 땅바닥에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꾸물꾸물 일어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레녹을 향해 다가와 말했다.
그 옆에 서 있던 노인과 남자, 거인의 목소리가 겹쳐 울려퍼졌다.
“원한다면 네게도 그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구현할 기회를 주마.”
“욕망을 구현할 기회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결말이 다가오고 있다.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
“모두가 직감하고 있을 거야. 그렇기에 준비를 게을리할 수 없는 게다. 이 도시에 흘러넘치는 힘을 통제할 수 없어지기 전에, 필요한 재능을 솎아내고 다듬어야 해.”
양지와 음지를 아우르는 강력한 통제기구. 거대도시의 힘을 하나로 묶어서 시간이 다 하기 전에 행동에 나설 셈인가.
새로운 프로젝트는 바로 그 장대한 계획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마드리치의 차가운 시선이 정확하게 레녹의 얼굴에 닿았다.
“군령술을 배워 살아 있는 인간의 영을 다스릴 줄 알게 된다면, 너 역시 개천의 끝에서 다리를 놓는 일에 참여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터. 너라면 할 수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는 칼날이 될 수 있어.”
마드리치 오니온이 대화를 시도할 때부터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방금 말로 확실해졌다.
그는 굳이 레녹과 적대하기보다는, 그 재능과 능력을 도시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써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과 시정부 고위직이 죽음을 유예하고 싶어 한다는 비밀을 언급한 것 역시 레녹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함이겠지.
중요한 것은 발칸의 양지와 음지를 억누를 수 있는 통제력일 뿐, 그 형태는 어떤 식이든 상관없기 때문일까.
아킬레우스 보안회사와 손을 잡고 방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는 별개로, 레녹의 존재가 그에 필적할 통제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레녹이 웃었다.
많은 조직과 세력에게 섭외와 회유를 받아오기는 했지만, 이만큼 구체적이고 정교한 계획을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다.
양지와 음지 모두를 아우르는 통제력은, 결국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력에게서 나오는 법이라.
꽤 생소하기 그지없는 계획이지만 발상이나 논리 자체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어느 한쪽에 깊게 발을 들이는 대신 혼자 움직이다보면 이런 식으로도 도시의 핵심에 닿을 수도 있는 건가.
그것을 확실하게 인지했기에 레녹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쪽과 거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확실히 알겠다.”
“……뭐?”
“사법기관의 수장. 강력한 군령술사. 프로젝트의 관계자…… 하지만 결국 당신이 가진 그 모든 힘은 이 납골당에서 나오는 것이지.”
마드리치 오니온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레녹은 단 한번도 그 본질에서 눈을 돌려본 적이 없다.
“원로원에 연줄이 있다느니, 새로운 프로젝트의 설계자라느니 하는 명분들은 아무래도 좋아.”
침묵하는 전라의 남자를 응시하며 레녹이 웃었다.
“조건은 그대로다. 날 칼날로 써먹고 싶다면 프로젝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엄청난 거물이자 유력인사, 시정부 고위인사이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유지라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마드리치가 하는 모든 말은 결국 프로젝트의 비밀을 대가로 자신들의 아래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에 불과하다.
고작 그런 지금까지의 행보를 모두 내던지고 머리를 숙일 생각은 없었다.
“……프로젝트, 그놈의 프로젝트…… 그렇게나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서 있던 새하얀 납골당의 공동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블랙컨슈머 프로젝트는 미래를 위한 계획이 아니었다.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종말의 분기점이었지. 그 비밀을 아무도 언급하려 들지 않는 이유를, 정녕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단 말이냐?”
“그건 당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야.”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연초를 꺼내 물었다.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뒤 입을 연다.
“내 눈과 귀로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들은 뒤에 결정할 일이지. 하지만 당신은 꺼리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군.”
“…….”
“만귀야행의 실패는 스스로의 원동력으로 삼은 주제에, 프로젝트의 실패는 언급하는 것조차 무서운가?”
마드리치가 하는 말에는 그 자신의 사상과 관념이 너무나도 확고하게 녹아 있어, 반대로 그 감정을 유추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것은 마드리치가 스스로의 생각을 숨기는데 어설프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오랜시간동안 생각을 숨길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이도, 거래를 제안하는 이도, 이렇게 그의 눈앞에 서서 대립하는 이도.
오랫동안 살아온 이 대법원장에게는 수십년 만의 일일 테니까.
“……넌 아무것도 몰라.”
“실패하는 것만으로는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그럴 것 같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서슴없이 그 시간의 공백을 뚫고 그에게 물을 수 있었다.
그에게 가장 예민한 역린을 망설이지 않고 건드리며,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있던 감정을 자극하고 일깨워 도발한다.
“적어도 그런 사람이 세계의 끝에 서 있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군.”
마드리치가 살아오며 갈망했던 그 모든 대답을 뿌리부터 부정하고 비웃었다.
그 여파는 레녹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수준의 것이었다.
“그래? 네가 프로젝트의 끝에서 무엇이 탄생했는지 알고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그 순간, 레녹의 눈앞에 선 남자와 노인의 입이 동시에 열리고.
두 사람의 입술 안쪽에서 새카만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직!!!
마치 지금부터 할 발언을 미리 인지하고 틀어막으려는 듯한 격렬하기 그지없는 붕괴현상.
스스로의 힘을 묶어 만들어낸 금제라는 매듭이 엉키고 비틀려서 망가지려는 전조.
두 사람의 양쪽 입술 사이가 스파크를 따라 그대로 쭉 찢어지고 턱관절이 아작 나며 혀를 짓뭉갠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발언을 억누르고 망가뜨리는 그 처절하기 그지없는 금제의 부작용에 레녹이 미간을 찌푸린 그 순간.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 스스로의 하관을 부여잡은 두 남자가 동시에 말했다.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의 실패가, 중앙도시의, 몰락을 초래, 했다고, 해도 말이아라가가갈가각!!”
우두두두둑!!
그 순간, 레녹의 눈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의 머리통이 그대로 구겨지듯 목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며 피분수를 내뿜었다.
일체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조차 자신들의 의지로 거부하고, 또 수용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몸 안쪽으로 파고든 머리통이 스스로의 심장을 잡아뜯고 온 몸의 혈관을 조각내 시뻘겋게 물들인다.
금제가 걸린 당사자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입막음 방법. 그 모든 행위를 자신들의 몸으로 직접 체현하는 이적.
순식간에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사라진 두 군령을 보며 레녹이 뒤로 물러섰다.
“……그랬군.”
금제의 영향은 단지 그 군령에서 끝나지 않고, 본신인 거인에게까지 닿는다.
군령술사인 마드리치 오니온이 자신의 군령을 이용해서 금제의 페널티를 분산시킨 것이 이 정도.
올리비에라가 프로젝트의 비밀을 일절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납득이 가는 위력이었다.
강력한 술사이자 초인이기에, 스스로의 힘을 사용해서 묶은 매듭이 망가질때 더 처참한 고통을 빚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방금 마드리치가 했던 마지막 말이, 레녹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앙도시 아르스노바의 멸망. 그 원인이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의 실패에서 비롯된 부산물이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