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5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몸 안에 쌓인 오염물질들도 치워준다니…. 이것만으로 돈값은 하는군.’
강한 각성성분과 여러 마약종류를 섞은 약품이라 효과가 강력한 만큼 그 폐해를 지우는 것 역시 쉽지 않을텐데, 확실히 영약이라 이름붙여진 물건은 다르다.
최소한 연초를 피우면서 쌓이는 노폐물을 제거할 수단정도는 확보하게 된 셈이다.
빠르게 이불을 내다버리고 원룸을 싹 치운다.
아직 비릿한 냄새가 감도는 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시킨 레녹은 벽에 기대앉아서 스스로의 몸을 천천히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몸을 다루는 학문이나 기술에는 조예가 없지만, 대충 어떤 부분에서 개선이 되었는지 확인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레녹의 몸을 괴롭히는 페널티가 한둘이 아닌만큼,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진다면 바로 체감이 오기 때문이다.
‘일단 마나중독증은….. 훨씬 낫군.’
영약을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마나중독증을 각오하고 마력으로 신체강화를 주구장창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약간의 욱신거림말고는 별다른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라면 마력강화를 멈춘 직후부터 바늘로 찌르는듯한 고통과 함께 온몸의 기력이 쭉 빠져나갔어야 할 터.
마력을 멈춘지 시간이 꽤 되었는데도 아무런 징조도 느껴지지 않는것을 보면, 영약을 복용하는 과정에서 중독증세가 많이 해소되었다고 보는것이 바람직했다.
‘다른 페널티들은 큰 진전이 없어.’
온 몸에 힘이 흘러넘친다거나, 흔들리는 몸에 중심이 꽉 잡히고, 갑자기 모자란 무언가가 충만해지는 감정따위는 들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재인박명]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수명에 관한 페널티를 고작 건강증진 영약으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고 결국 연초를 입에 물었다.
기껏 노폐물로 배출한 뒤라 미련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기는 힘들었다.
손가락 끝에 피워올린 불꽃을 연초 끝에 가져대다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결국 이걸로는 마나중독증, 그리고 잘해봐야 불면증 완화 정도인가?’
심지어 완전히 페널티가 사라진것도 아니다.
영약을 복용한 시점에 한해서 마나중독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뿐, 다시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 또 극심한 고통이 그를 괴롭히겠지.
결국 부작용없이 신체에 마력을 마음껏 때려박기 위해선 매번 1억 셀 짜리 영약을 복용해야한다는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레녹이 정말 하루에 1억 셀 정도는 물쓰듯이 써버릴 수 있을만큼 부자가 되지 않는다면 이건 애초에 논할 필요도 없는 가정일테니.
‘그래도 얻은게 아예 없는건 아니야.’
폐속의 연기를 모두 뱉어내면서 레녹이 생각을 추슬렀다.
일시적이지만 페널티의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희망을 가지기에는 충분하다.
이것만으로 그의 몸에 쌓인 이 지독한 족쇄들이,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주박은 아니라는것을 확인한 셈이니.
그래. 고작 그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예 방법이 없는게 아니라는것만으로도 레녹은 더 움직일 수 있다.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생각을 모두 정리하고 나자 그제서야 몸에 힘이 탁 풀리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느린 손놀림으로 연초를 비벼끈 뒤 쭉 미끄러지듯이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창문 밖으로 흘러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면서 레녹은 그대로 죽은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고 흘려보내는, 실로 오랜만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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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레녹은 일주일을 푹 쉬면서 그가 복용한 영약이 얼마나 영험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한번 실감했다.
영약을 복용한 효능은 단지 하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근 일주일동안 불면증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언제든지 자고 싶을때 잠들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었다.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챙길 수 없었던 숙면을 취하면서 알게모르게 쌓여있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모두 녹여낸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니에게 연락을 넣기 위해서 오랜만에 휴대폰을 들었다.
슬슬 다음 의뢰를 알아보기 위해서 언질을 넣어둘 필요가 있었다.
특히 이제는 딥웹에 이름을 등록한 뒤 받는 의뢰기 때문에 이전보다 몸값도 뛰어있을 터.
운이 좋다면 레녹이 원하는 물건들을 보수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몸이 다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뚜….뚜…..]“……?”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는다.
통화권에서 벗어난것도 아닐텐데, 아예 저쪽의 전화기가 꺼져있는건가.
제니와 연락처를 교환한 이후로 그녀의 전화기가 꺼져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레녹은 곧바로 옷을 챙겨입고 그녀의 술집으로 향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도시가 지나칠정도로 조용하다.
레녹을 제외하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쉽사리 찾아보기가 힘들정도였다.
한동안 뉴스란을 확인하지 않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인가.
서둘러 핸드폰을 켜고 뉴스란을 들어갔지만, 이것마저 먹통이었다.
“이게 무슨….”
트래픽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만큼 지금 이 도시에 알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것일까.
순식간에 경계심을 쭈욱 끌어올린 레녹이 곧바로 제니의 술집 문을 벌컥 열었다.
“오랜만이군.”
바에 걸터앉은채로 유리잔을 닦고 있던 조든이 손을 흔들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 레녹이 바에 자리잡고 앉자마자 물었다.
“제니는?”
“소집령에 호출당했지. 지금 어디 이름모를 사무실에 붙잡혀있겠군.”
조든의 무심한 대꾸에 레녹이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 이 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겁니까?”
핸드폰이 먹통이 될만큼 엄청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정작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다.
조만간 이 문제에 반드시 해결책을 강구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레녹이 묻는 말에, 조든이 오히려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떴다.
“뭐 일주일동안 기절해있기라도 한건가? 이제와서 이런걸 물어보는게 더 이상한 일이군.”
“…….”
휴식의 대부분을 잠만 자다 왔으니 아주 틀린말은 아닌 셈이다.
레녹이 차마 그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사이, 조든이 다시 말했다.
“필레놈 자치령에 관한 소식은 알고 있나?”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원래 이달 말쯤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었던 자치령의 사절단이 고작 일주일 전에 방문 통보를 보내왔네. 덕분에 지금 발칸은 아주 난리가 난 상태지.”
“…..고작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텐데요.”
자치령의 사절단이 도착하기로 한 것 때문에 제니가 자리를 비운것은 이해한다.
브로커들을 상대로 내려진 소집령은 사절단이 도시에 와 있는동안 쓸데없는 짓을 하지말라는 시정부의 권고나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그것이 지금 이렇게 도시가 쥐죽은듯이 조용한 이유가 될수는 없다.
수천만명이 살아가는 이 도시에 깔린 침묵은 분명히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었다.
레녹의 날카로운 말에 조든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도시가 조용한 이유는 온전히 그것때문만은 아니지. 자치령의 사절단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거물이 참가의사를 밝혀왔네.”
“상상을 초월하는, 거물 말입니까?”
조든과 그리 오래 알고 지내지는 않았지만, 레녹은 그가 어떤 성격인지 대충 알고 있다.
말솜씨에 과장이 없고, 언동이 굉장히 신중하다.
대체적으로 담백한 표현을 좋아하는 그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정말 말 그대로 자치령쪽에서 엄청난 거물이 발칸을 방문했다는 뜻일 터.
그 예상대로, 이어진 조든의 말은 레녹의 예상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다.
“필레놈의 등대에서 수십년을 칩거하던 초월자, ‘천견’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있어…. 9레벨 승천자가 발칸을 방문하는건 근 백년동안 처음있는 일이네. 모두가 지금 숨을 죽이고 중앙광장을 지켜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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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레녹이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마법개론서를 독파하며 승천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홀로 전략병기 대우를 받으며 거동 한번에 온 대륙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대마법사.
승천자는 그런 대마법사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한계에 도전하는 초월자들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스스로 강력한 제약을 건 만큼 쉽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수준 자체는 같은 경지에서 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세운 업적이 곧 역사와 함께하는 위대한 선각자들.
도시위주로 돌아가는 이 위태로운 세상을 지탱하는 장엄한 기둥들.
그 중에서도 ‘천견’은 유난히 특별하고 존중받는 선각자 중 하나다.
필레놈의 등대지기, ‘천견(穿見)’ 마드레아 팔시어.
수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등대지기로서 외해(外海)의 위험을 감시해온 위대한 초월자이자, 이 시대에 열 명도 남지 않은 9레벨 승천자.
앉은 자리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내다보고, 과거와 미래를 주시하며 시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재앙을 관측하는데 기나긴 일생을 바친ㅡ
가장 온건하고 책임감있다 여겨지며, 존경받는 승천자.
등대지기로서 의무를 다하는 동안 단 한번도 속세에 간섭한 적 없던 그녀가, 발칸과 필레놈의 협상과정에 참가의사를 밝혀왔다.
심지어 자치령의 사절단 소속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승천자가 자치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이상으로는 어떤 말도 필요없었다.
레녹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조든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술집을 나왔다.
지금이 아니라면 승천자라는 존재를 육안으로 확인할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그의 손에는 조든이 건네준 작은 스코프 하나가 쥐여져 있었다. 이미 뭘 하려는지 조든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근처의 택시 하나를 잡아타고 20번대 구역으로 향한다.
손님없이 노닥거리던 기사가 반색을 하며 그를 반겼다.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도 승천자의 방문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5구역에 위치한 중앙광장과 대략 십수킬로미터 떨어진 19구역 언저리에서 택시를 멈춰세웠다.
후우웅!!
마법을 사용해 몸을 허공에 띄워서 근처의 아무 건물 옥상에 내려앉는다.
부유마법은 이동속도도 빠르지 않은데 마력을 굉장히 많이 잡아먹는터라 효율이 굉장히 나쁜 편이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때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중앙광장이 보일만한 빌딩의 옥상까지 올라가려던 레녹은 빌딩 옥상에 두 명정도의 사람이 대기하고 있는것을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군인.’
길쭉한 저격소총을 빌딩 끝에 걸치고 흔들림없이 거리를 응시하는 저격수 하나와, 통신기를 부여잡고 끊임없이 암구호를 주고받는 통신병 하나.
가슴에 달린 문장을 보아하니 시정부 직속의 특수부대들인듯 하다. 아마 일정 고도 이상의 건물 옥상에도 비슷한 전력들이 배치되어있겠지.
거리상으로 저격이 가능한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 장소까지 이런 병력들을 배치해놓다니.
지금 발칸에서 승천자의 방문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여기서 굳이 저들을 기절시키거나 모습을 드러내는건 악수다.
마나중독증 때문에 비가시마법을 몸에 걸 수는 없지만, 저들의 눈을 속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소음마법으로 기척을 완전히 지우고 두 사람의 눈에 주위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간단한 환각마법을 때려박았다.
착용하고 있는 고글에 특별한 방비가 되어있는지, 마력을 어느정도 밀어내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강제로 파고든다.
파지직…!!
같은 마법사를 상대로도 마력간섭을 성공시키는 레녹에게 이런 장비의 방벽 정도는 종잇장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온전히 눈앞에만 몰두하기 시작한 두 사람을 유유히 지나쳐 옥상 끝자락에 걸어앉은 레녹이 조든에게 받아온 스코프를 한쪽 눈가에 가져다댔다.
원래라면 옆의 군인이 사용하는 저격총에나 사용될법한 물건인듯 한데, 먼 거리를 보려면 어쩔 수 없다.
시력강화를 하기에는 마나중독증이 거치적거리니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그래도 조든이 건네준 스코프의 성능이 괜찮은지 곧바로 중앙광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5구역에 위치한 광활한 중앙광장을 수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세상에 온 뒤로 저렇게 많은 인파를 보는것은 처음이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발디딜틈 없이 모여서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동경, 선망, 존경, 두려움, 설렘….. 그 방향은 달라도 간절함은 누구 하나 뒤쳐지지 않는다.
레녹 역시 스코프를 아주 살짝 돌려서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비틀었다.
모여든 군중에 못지않은 무수한 경찰병력들, 군인들, 그리고 슈트를 입은 에이전트들이 일제히 모여서 널찍한 길을 만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레녹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통신병의 통신기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30초 안으로 도착한다. 모두 정신 바짝차리고 대기해!!] [들어오신다..!!]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대략 서른 명 정도로 이루어진 짧은 행렬이 모습을 드러낸다.
필레놈 자치령의 사절단이 드디어 발칸 중앙광장에 도착한것이다.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은, 피로에 절은 표정.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하고 사방을 둘러보는 눈빛에는 적의가 넘친다.
자치령과 거대도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행렬의 중심에 위치한, 등이 굽고 머리가 새하얗게 샌 작은 노인 하나.
곱게 빗어넘긴 머리에는 작은 비녀를 꽃고, 나풀거리는 옷을 입은 채 손에 든 지팡이로 천천히 땅을 짚으며 걸어오는 한 사람.
천견, 마드레아 팔시어가 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