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50
약먹는 천재마법사 550화
과거의 괴물(2)
사방을 에워싸듯 거칠게 공간을 침식하고 자리 잡는 투명한 유리거울의 장벽.
빛을 반사하기보다는, 프리즘처럼 빛을 투사해서 파장 별로 쪼개어 비추는 듯한 기묘한 형상.
하늘 위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영역의 힘으로 쪼개자, 무지갯빛의 광채가 아른거리면서 지상을 눈부시게 휘감기 시작한다.
발전소의 풍경을 통째로 뒤집어씌우고 바꾸기보다는, 주변의 풍경을 침식해 들어가는 모습에 레녹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침식형. 그것도 굉장히 안정적이군. 이 당시부터 이미 심상영역을 조정하고 있었나.’
침식형 자성영역. 레녹은 이미 이런 형태의 자성영역을 한번 상대한 적이 있었다.
흑마법사 에르몽이 자운 오디스의 몸을 빼앗아서 구현했던 영역의 형태가, 현실을 뒤집어씌우기보다는 침식해 공존하는 식이 아니었던가.
연식으로 따지자면 족히 수백 년 전의 술사들이 영역을 전개할 때 사용했다던 오래된 기술.
올리비에라는 그런 고대의 기술을 자신의 심상에 접목해서 영역으로 다뤄내고 있던 것이다.
쩌저저적……!!
올리비에라의 몸을 둘러싸듯 전개된 장대한 유리거울의 장벽이 그녀를 향해 경배하듯 고개를 숙이고
길게 뻗은 손가락 끝에 모여든 무지갯빛의 광량이 퍼져나가 거울장벽 사방에 부딪혀 반사되기 시작했다.
수십 갈래로 쪼개진 빛이 거울의 장벽 사이로 반사되고 분산되며 쪼개지고 갈라졌다, 다시 구부러지며 올리비에라의 손끝으로 모여든다.
키이이이잉!!
장대한 빛의 물결이 올리비에라 한 사람을 둘러싸고 일렁이며 춤을 추는 듯한 환상적인 정경.
햇살을 쪼개어 만들어진 광량이 한자리에 집약되어 압축되기 시작하는 눈부신 광채.
온전히 8레벨의 위계에 도달한 광요(光曜)계통의 속성마법.
레녹은 그 끓어오르는 엄청난 화력의 형상에 수인을 맺기 위해 양손을 들어 올린 그 순간.
그녀의 손끝에 모인 빛이 섬뜩한 섬광으로 변했다.
광요계열 고유마법
팔중포사(八中砲射)
[경래천렴(炅來穿簾)]인지의 속도를 뛰어넘은 섬광이 빛의 포화로 변해 지상을 내달린다.
화력의 투사를 뛰어넘어 마법으로 극한까지 왜곡되어 만들어진 파괴의 의념이 빛의 파도로 화하고.
발전소 일대 공터를 휩쓸고 터져 나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쿠과과과과과!!!
순수속성마법. 그중에서도 화력투사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린 일발.
하지만 그 마법을 정면에서 받아낸 마법사의 존재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모든 술식이 마모되어 사라지고 유일하게 서 있던 갑각방패 뒤쪽에서, 레녹이 앞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
천천히 어깨를 털어내는 레녹의 모습에 올리비에라의 눈썹이 꿈틀거리지만, 반대로 레녹의 표정도 묘하게 변해 있었다.
치이익……!!
갑각방패 전면부가 살짝 녹아내리며, 그 여파로 매캐한 연기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로켄 아실러스의 공격이 아니라면 그동안 흠집조차 일지 않았던 사도의 갑각.
그런 방패의 전면부를 조금이나마 녹여 버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올리비에라의 광요마법이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화력이, 레녹의 마법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수준이라는 증거.
그것을 확인한 레녹이 어깨를 주무르며 자세를 낮추고, 올리비에라의 손짓과 함께 거울의 장벽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파직!!
레녹의 코트가 펄럭이는 것과 동시에 등허리에서 뻗어 나온 전격이 번뜩이고.
기다렸다는 듯 거울 장벽에서 터져 나온 수백 발의 섬광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두두두두두두!!!!
발전소의 하늘 위에서 내려 찍히는 빛을, 영역의 힘을 빌려 무엇보다 강렬한 포격으로 바꾼다.
수정거울 사이에서 찰나의 순간 수십 번씩 왜곡되고 분산되어 집약된 광량이 마력의 힘을 빌려 물질을 태우는 빛으로 화했다.
레녹 역시 마력사로 스스로의 몸을 고정한 채, 마력을 뇌전의 가닥으로 바꿔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지상을 불태우는 빛의 비를 쳐내고 빗겨내면서, 피어오르는 전격의 줄기를 붙잡고 던져 올린다.
손끝을 타고 피어오른 전격이 사방에서 비산해 무수한 뇌전의 꽃을 피어 올리고, 그대로 올리비에라의 지근거리에 내려 찍혔다.
콰아아아아!!
서로를 마주 본 두 마법사의 손이 교차할 때마다 수인을 맺고 영창을 터트리며 수십 개의 고유마법을 동시에 전개한다.
레녹과 올리비에라의 등 뒤로 빗겨나간 뇌전과 빛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풍경을 그대로 밀어 증발시키고.
발전소의 장대한 시설과 콘크리트 더미가 엿가락처럼 녹아내리며 사방을 지옥도로 만들었다.
쿠과과과과과!!!
코끝을 타고 흐르는 짙은 마력의 냄새, 살 끝을 스치고 터져 나가는 수백 갈래의 섬광.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데도, 서로의 멱줄을 노리는 손길은 당장이라도 그 급소에 닿을 것만 같다.
의념과 심상의 발로. 마력이 곧 의지를 대행하는 두 마법사가 휘두르는 마법이 형태와 질서를 잊고 뭉개져 죽음의 형상을 그린다.
전격과 광선의 파도가 사방에서 동시에 격돌하며 터져 나오는 굉음이 귀청을 찢어버릴 듯 먹먹하게 울려 퍼졌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빛의 색과 파동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어렵다.
마력감지와 마안을 전력으로 활성화시켜, 상대의 공격 패턴과 속도, 화력을 그 자리에서 분석하고 다음을 예측해 때려 박듯이 밀어붙이는 화력의 방출.
속성마법이 수십 번씩 교차하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몇 초 뒤의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서는 공방을 따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것이 온전한 컨디션의 8레벨 극위마법사를 상대로 전개하는 초고속의 술식전투.
끝이 보이지 않는 마력의 투사 사이로, 먼저 승부수를 던진 것은 올리비에라였다.
[요(曜)]그녀의 언령이 떨어지는 순간 거울의 장벽 일부가 환하게 빛나며, 눈부신 광채를 지상에 내리찍었다.
쾅!!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강렬한 언령의 발현.
[광(光), 천(遷), 렴(斂), 화(華), 희(熙), 돈(旽)]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장대한 거울 장벽 곳곳이 발광하며 공명하듯 그 힘을 끌어올리고,
사방에 내리 찍힌 빛의 기둥이 레녹의 주위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회전했다.
그 빛무리들을 한 손으로 잡아 쥐듯 손을 내뻗고, 다른 손으로는 수인을 맺은 올리비에라의 입에서 영창이 떨어졌다.
[주광복합다중공명 광위마법] [백휘토렴체(白輝吐簾締)]드드드득!!!
빛의 기둥이 레녹을 중심으로 구부러지며, 새하얀 소행성의 형상을 그리고 회전했다.
그 중심에서 밀집되어 터져 나오는 화력은 고위계 초인조차 견딜 수 없을 만큼 아득한 열기.
하지만 백색의 구체 안쪽에서 텨져 나온 강대한 천둥소리가 빛의 광휘를 찢어발기고 거대한 주먹으로 변했다.
콰아아아!!!!
레녹의 몸을 감싸 안듯이 보호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벼락의 거인.
뇌명성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킨 거인의 발아래서 터져 나오는 전격의 폭풍은, 방금 전까지 레녹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뿌리가 레녹이 아니라,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끌려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올리비에라가 처음으로 어깨를 꿈틀거렸다.
“하늘의 빛을 끌어다 무기로 사용하고 있지만, 자원이 넘쳐나는 건 당신뿐만이 아니야.”
[그렇군. 입자발전소의 전력을 통째로……!!!]입자발전소 내부에서 통제를 잃고 떠도는 전력을 끌어모아 레녹 자신의 마력에 더한다.
전격계통의 고유마법에 접목시켜 무제한에 가깝게 연료를 공급해 터트린 마법의 위력과 효율은 이미 한계선을 초월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주위의 전력을 끌어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킨 경험은 셀 수 없을 정도.
입자발전소가 전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레녹은 자신이 여기서 죽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녹이 천천히 양손을 끌어올리자, 벼락의 거인이 그대로 그 수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뇌요신래(雷曜申來)] [주박수(胄拍手)] [대라전(帶羅電)] [여뢰신(余雷身)]파지지지지지직!!!!!
격렬한 뇌성과 동시에 거인의 양손이 박수를 치듯 마주 대고 우레의 파동을 터트렸다.
창조계통 고유마법 : 연금술 응용
사중연성 복합공명
[초융합(超融合) : 일순(一瞬)]레녹의 양손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듯한 환상이 일었다.
그 순간 벽력거인의 양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가 푸르스름한 파문으로 변해 터져 나갔다.
[뇌명(雷鳴)]콰아아아아아!!!!
한계까지 압축되어 터져나간 뇌명의 파문이 새하얀 빛의 구체를 집어삼키고 그대로 올리비에라의 몸을 휩쓸었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휩쓸리는 그녀의 신형.
그녀의 등 뒤에 장엄하게 서 있던 거울 장벽조차 금이 가 부서지기 시작한다.
쩌적!!
균열은 자성영역에서 시작해 이내 올리비에라의 육신까지 닿았다.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그녀의 육신.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레녹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훌륭하군.]와장창!!
깨져나간 올리비에라의 육신 너머에서, 새로운 올리비에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환각이지만, 환각이 아니다.
빛의 분산과 산란을 이용해서 절묘하게 조형해낸 신기루.
레녹조차 그 본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환상이자 분신 그 자체다.
그녀가 자성영역을 전개한 시점에서 레녹이 그 몸을 정확히 노리는 대신 전방위 투사마법을 선택한 이유.
그건 애초에 올리비에라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의 신기루를 사용해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하늘의 빛을 끌어나 포격으로 사용하는 화력투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광요마법.
[왜 맞지 않는지 알고 있겠지?]새로운 신기루의 분신으로 걸어 나온 올리비에라가 말했다.
[넌 날 알고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날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몇 번이고 생각해 본 것처럼 과감하고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정보의 공백이 생겨, 기본적인 상성에서 계속 호흡이 어긋나고 있는 거다.]올리비에라의 두 마안이 섬뜩한 광채를 내뿜었다.
[마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싸우고 있는 것처럼.]분명 그녀 역시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던진 것은 아니겠지.
다만 레녹과 올리비에라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정보과 기억의 간극이, 단순히 오해나 착각이라기에는 심상치 않은 수준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레녹은 그런 올리비에라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생각에 잠겼다.
빛의 분산과 집약을 통해 엄청난 수준의 고화력을 투사하는 광요계통의 속성마법.
그런 마법을 거의 무한에 가깝게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만들어주는 자성영역, [탐태소천경(探兌昭穿鏡)]의 존재까지.
‘예상보다 훨씬 더 까다롭군.’
레녹이 구사하는 전격마법의 순간화력이 밀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공방 자체를 유지해 왔다는 것부터가, 전격마법의 화력이 광색계열을 순간적으로는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
다만 스스로의 마력을 소모하는 레녹과, 저 하늘의 빛을 끌어다 휘두르는 올리비에라의 유지력이 말도 안 될 만큼 차이가 나고 있을 뿐.
레녹 역시 입자발전소의 전력을 끌어다 사용하고는 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총량이 다르다.
이런 구도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는 올리비에라가 영역을 전개한 시점에서 몸을 빼야 했겠지만,
레녹이 그러지 않고 아직 발전소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었다.
‘다비, 남은 진행률은?’
[40%정도……!!]어찌나 분석에 몰두하고 있는지 대답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독립된 네트워크의 신호와 패킷을 해석해 시스템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난해하기 그지없는 작업을 억지로 떠안긴 만큼 다비가 힘겨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
적어도 발전소 근처에서 시간을 끌며 어떻게든 다비가 네트워크를 해킹할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
“글세…….”
대답을 기다리는 올리비에라를 보며, 레녹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걸 듣고 싶으면 일단 직접 나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떤가?”
[……좋아.]피식 웃은 올리비에라가 한쪽 손을 위로 치켜올렸다가, 천천히 내리며 대답했다.
그녀가 팔을 아래로 내릴 때마다 마치 프레임이 끊겨 잔상이 남는 것처럼 수십 개가 넘는 팔의 잔상이 그 뒤에 고스란히 남았다.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그 수십 개가 넘는 잔상이 모조리 올리비에라 본인의 형상이 되어 사방을 에워쌌다.
광요계열 고유마법
신기루(蜃氣樓)
[요희신궁(曜熙身躬)]파아아앗!!
레녹의 사방 수십 미터 저면에서 원을 그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수십 명의 올리비에라.
그녀가 퍼트리는 수십 개의 전성이 겹쳐 울리며 기이한 음색으로 변했다.
{그럼 어디 한번 직접 찾아내 보거라.}
키이이잉!!
수십 명의 올리비에라가 치켜올린 손가락 끝에서 다시 집약되기 시작하는 눈부신 빛의 광채.
레녹은 그 빛무리를 바라보며 천천히 양손으로 맺고 있던 수인을 들어올려 눈가에 가져다 댔다.
감긴 오른쪽 눈 위에서 맺고 있던 수인을 마치고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칠흑처럼 어두운 안광이 줄줄 흘러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한번 찾아보지.”
새카맣게 물든 안광이 떨어지는 오른쪽 마안으로 올리비에라를 시선에 담은 레녹이 웃었다.
“방금 그걸로 어떻게 당신을 죽일 수 있을지 알았다.”
* * *
불규칙적인 신호음만이 울려 퍼지는 지하 동력실.
삐익, 삐익……!
거대한 꽃잎처럼 펼쳐진 기계장치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카이세가 문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오래전의 보관기록에서 당신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목덜미 아래서 희미하게 진동하는 스피어의 창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카이세 바쥬르.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
담담한 척하지만 격정을 숨기지 못한 어조.
그만큼 지금 이 자리에서 그의 얼굴을 본 것이 충격이었다는 의미겠지.
여성은 이내 빠르게 동요를 수습하고 차분하게 창날을 카이세의 목에 가져다 댔다.
“……들고 있는 물건을 전부 내려놓고,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세요. 지금부터는 제 지시에 따라주셔야겠습니다.”
“마법사의 동료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베겠습니다.”
이리야의 차가운 말에, 카이세가 가만히 그녀의 손길에 따라 동력실 밖으로 걷기 시작했다.
카이세는 잠깐 생각하는 기색으로 고민하다, 이내 피식 웃었다.
“아니, 넌 마법사의 동료가 아니군.”
“…….”
대답하지 않는 이리야를 두고 카이세가 계속 말했다.
“설령 우연이라 해도 이렇게 절묘한 시점에 날 노릴 수는 없어. 처음부터 마법사와 비슷한 시점에 발전소에 숨어들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겠지.”
쿠우우우우웅……!!
머리 위 지상에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울려 퍼지는 굉음.
카이세가 슬쩍 시선을 들어 올리고, 이리야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정상적인 팀이라면 같은 동료가 저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형편 좋게 타이밍을 재고 있을 리는 없거든.”
이리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에 반응하는 것 자체가 그녀 자신을 흔들기 위한 노림수라는 것을 노련한 전사인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세는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슬쩍 뒤를 돌아 이리야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올리비에라는 내가 아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강인한 사람이야. 그녀가 누구에게 패배한다는 것 자체가 잘 상상이 가지 않는군.”
‘올리비에라…….?’
그 이름을 가진 강력한 마법사를 이리야는 단 한 명밖에 알지 못했다.
죽은 걸로 알고 있던 카이세와 지금 이 자리에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올리비에라의 존재.
내심 추측하고만 있던 진실을 그 어떤 방식보다 확실하게 깨달은 그녀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커지고.
카이세는 그 희미한 징조조차 놓치지 않았다.
“역시, 넌 마법사보다 아는 게 없군.”
손을 들어 올려 이리야의 스피어를 맨손으로 움켜쥔 카이세가 중얼거렸다.
“그럼 네게는 볼일이 없어.”
“잠깐, 어딜……!!”
고작 올리비에라의 이름을 들었다고 틈을 보인 것은 아니다.
거의 반사적으로 창대를 움직인 이리야가 카이세를 제압하기 위해 그대로 팔을 휘두르고,
기민하기 그지없는 참격이 카이세의 뒷덜미를 향한 그 순간.
서걱!!
“마법사의 동료인가?”
이리야는 다시 카이세의 등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리야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베겠습니다.”
“아니, 넌 마법사의 동료가 아니군.”
“…….”
“설령 우연이라 해도 이렇게 절묘한 시점에 날 노릴 수는 없어. 처음부터 마법사와 비슷한 시점에 발전소에 숨어들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겠지.”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다.
틀림없이 기억에 있는 대화다.
이리야의 뇌를 강하게 찌르는 기시감.
“올리비에라는 내가 아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강인한 사람이야. 그녀가 누구에게 패배한다는 것 자체가 잘 상상이 가지 않는군.”
이다음으로 나올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넌 마법사보다 아는 게 없군.”
이다음으로 들려올 말은……!!
“그럼 네게는 볼일이 없어.”
“아니야……!!”
쨍그랑!!
주위의 감각이 통째로 부서져 가는 감각과 함께, 이리야가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콰아앙!!
단단히 쥐고 있던 초진동 스피어가 손가락을 타고 빠져나오는 감각.
묵직한 살덩이를 그대로 후려갈기는 듯한 둔탁한 소음이 일고, 무언가 저편으로 처박히는 충격이 인다.
동시에 한껏 좁아져 있던 이리야의 시야가 와장창 깨져나가며, 그 사이에서 새로운 광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타오르는 동력실의 풍경,
까마득히 먼 복도 저편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 카이세의 모습.
방금 이리야가 휘두른 그 일격을 피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부상을 입어버린 것이다.
“쿨럭……!!”
참지 못하고 한 움큼 피를 토해낸 카이세가 기침을 하며 웃었다.
“나쁘지 않게 먹혔다고 생각했는데, 빠져나오는 속도가 너무 빠른걸. 역시 성위급의 초인을 상대로는 너무 도박성이 강하단 말이야.”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스피어 네 자루를 허공에 띄워 올린 이리야가 노성을 터트리며 성큼 카이세를 향해 걸었다.
카이세는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이리야를 보며 쓰러진 채로 힘겹게 자세를 바꾸었다.
“별건 아니야. 언어를 트리거로 삼아서 체감시간을 한번 억지로 되돌린 것뿐이지……. 쿨럭!!”
피 묻은 입가를 훔치며 숨을 헐떡인 카이세가 대답했다.
“이번 연구에 마력을 거의 다 끌어다 사용해버려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시간 끌기 정도거든. 후우…….”
“…….”
이리야는 카이세가 한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건넨 몇 마디 말을 특정한 분기점으로 삼아, 그녀의 체감시간을 통째로 역행시키는 술식.
어디까지나 체감시간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시간은 결국 상대적인 것.
체감시간 역시 엄연히 생명이 인지하고 있는 시간감각의 일종.
카이세는 자기 자신의 입으로 본인이 그녀의 시간을 직접 건드렸다고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의 개념을 이용하는 강력한 환술……. 이 시점에 아직 그 정도의 힘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아직? 그건 좀 틀린 말이군.”
편안한 얼굴로 드러누운 카이세가 대꾸했다.
“난 처음부터 망가져 있었으니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
“…….”
“방금 그 공격으로 내장이 반쯤 파열된 것 같은데, 이제는 감각이 별로 없어. 고통도 없지.”
자신의 멱살을 쥐고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이리야를 보며 카이세가 배를 쓱쓱 문질렀다.
생명활동을 역행해서 흐르는 그의 마력으로 인해, 이미 체내의 감각과 신경은 완전히 뭉개져 가고 있다.
오감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인지하기보다는, 단지 그런 사실이 일어났다는 것만 머리로 이해하고 있을 뿐.
역천의 마력을 지니고 태어난 자에게 내려진 천형의 저주.
“세상과 유리되어가는 감각 속에서 끝을 향해 걷고 있을 뿐이야. 그게 어떤 기분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아뇨. 관심없습니다.”
이리야가 차갑게 대답했다.
카이세의 멱살을 쥐고 그를 일으켜세운 이리야가 그를 부축한 채로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발전소 밖에서 당신의 신병을 확보한 다음에 듣기로 하죠.”
감각이나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카이세의 말.
시간에 직접 개입하는 듯한 그의 능력은 충격적이지만 이리야는 본질을 잊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레녹은 지상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들과 목숨을 걸고 시간을 끌고 있다.
그건 단순히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보다는, 그의 팀원들이 지금 이 상황을 인지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일 터.
이리야는 그런 마법사의 기대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몸을 바쳐서 시간과 시선을 끄는 사이, 이리야는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손에 넣어야 한다.
지금 이 폐쇄구역에서 일어난 사건의 주동자이자, 원흉으로 보이는 암흑가의 지배자.
카이세 바쥬르의 신병을 일단 손에 넣고 생각해도 늦지 않다.
이리야가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동력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복도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내달린 그 순간.
“슬슬 마력이 돌아오는군…….”
꾸륵……!!
카이세가 줄줄 흘리고 있던 피가 마치 역행하듯 그의 몸 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피가 흥건했던 복부의 상처가 사라지고, 입가에 묻어 있던 혈흔도 자취를 감춘다.
그 자리에서 마치 부상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되돌아오는 듯한 기이한 현상.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리야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어린 찰나, 카이세가 말했다.
“마법사의 동료인가?”
“……!!”
환술을 걸때 트리거로 삼았던 말이다.
이리야가 곧바로 몸을 뒤로 빼며 스피어를 움켜쥐었지만, 그다음의 말이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카이세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을 뿐.
“반응할 줄 알았다. 시간은 맞췄군.”
속았……!!
이리야의 등 뒤에서 나타난 거대한 손이 그대로 그녀의 몸을 잡고 동력실 밖으로 처박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