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65
약먹는 천재마법사 565화
세계를 닫는 자(3)
풀썩!!
손을 뽑아내는 것과 동시에, 창백해진 안색으로 피를 토해낸 카이세가 쓰러진다.
은하수를 뭉쳐 만들어진 듯한 그림자는, 그런 카이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레녹은 두 인영이 엇갈리며 흩뿌리는 혈흔을 보며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절절하게 실감했다.
카이세가 죽고 남긴 유지를 전달해 주겠다고 했던가.
그럼 지금 그림자의 발치에 쓰러진 채로 경련하는 저 남자는 누구인가.
카이세를 심장을 꿰뚫고, 이미 죽은 카이세의 유지를 전달해 주겠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드는 대신, 몸을 낮추고 쓰러진 카이세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쿨럭……!!”
가슴팍 사이로 흥건하게 배어나온 핏물이 흘러넘친다.
두 손 끝으로 어떻게든 상처를 틀어막아보려 하지만, 심장을 꿰뚫은 관통상은 이미 너무나도 컸다.
카이세가 흔들리는 눈으로 레녹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진정해. 천천히 심호흡해라.”
“틀렸, 어…… 이미…….”
붉게 물든 입술로 힘겹게 웃은 카이세가 중얼거렸다.
“이, 정도 치명상은…… 극복이, 안…… 마력도…….”
“…….”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이해했다.
심장과 같은 중요장기의 완전파손. 동시에 연이은 작업으로 인한 카이세 자신의 마력부족.
카이세의 체질이 아무리 특별하고 이질적인 종류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인간.
이 정도 치명상을 입고 살아날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카이세를 포기하는 대신, 말없이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웅……!!
“내가, 아는…… 아니야…… 도망……!!”
“도망쳐?”
레녹이 반문했다.
현실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고, 과거의 시간선에 잠식되어가는 이 폐쇄구역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처음부터 다른 방법 따위는 없었다.
이제와 카이세를 버려두고 새롭게 나타난 저 그림자와 또 다른 탈출구를 모색하는 것도 가당찮다.
레녹은 이미 저 그림자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정신을 집중해라.”
파아앗!!
마력을 끌어올려 카이세의 상처부위에 가져다 댄 레녹이 그대로 손등을 가볍게 뒤집었다.
“흉내는 내보겠지만, 받아들이는 건 네 몫이니까.”
손끝을 타고 흐르는 마력입자의 흐름을 반대방향으로 뒤집어, 그대로 카이세의 파손된 심장에 때려 박는다.
철컥!!!
“……!!!!”
그 순간 카이세의 몸이 한 차례 크게 펄떡이며 그 자리에서 희미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카이세의 전신에 흐르는 역천의 마력.
지금까지 보고 기억해 두었던 그 마력의 특징을 흉내 내어 카이세의 전신에 공급한다.
지금 카이세의 부상이 시간역행을 통해 회복되지 않는 것은 부상의 중함만큼이나 본신마력이 부족하기 때문.
그렇다면 카이세가 지닌 역천의 마력을, 그가 본래 지닌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공급해 주기만 하면 될 일이다.
“우욱……!!”
타인의 타고난 선천마력을 그 자리에서 모방해 주입한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
평범한 마법사가 시도했다면 카이세는 물론이고 술자 자신의 마력흐름까지 뒤집혀 온몸이 터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겠지.
실제로 레녹이 카이세의 육신에 공급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력의 성질 자체를 반전시킨 모방품.
진짜 역천의 마력 그 자체의 성능을 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레녹의 마력을 매개로 카이세의 선천적인 체질을 극한까지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쩌저저적!!!
카이세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역천의 마력이, 새로운 동력이 되어 육신의 시간을 거꾸로 되감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처럼 덜덜 떨면서도, 그 자리에서 꿰뚫린 심장근육이 접합되고 상처가 아물며 근육이 이어 붙었다.
체내에 흘러넘치는 역천의 마력이 끊어져 가는 생명을 억지로 잡고 되감는다.
피육이 흘러넘치던 명치 사이로 생살이 돋아나 그 자리를 메우고, 파리해진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레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카이세가 제대로 의식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자성영역을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마력의 반절 가까이를 써버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결국 카이세 바쥬르 본인의 협조 없이는 더 이상 지금 사태를 한 번에 풀어내기 어려운 상황.
레녹은 그렇기에 남은 여력의 일부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시점에서 카이세를 살려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마치 그를 기다리듯 묵묵히 서 있는 그림자의 앞에 선 레녹이 손끝에 묻은 카이세의 피를 닦아내며 물었다.
“자, 그럼 이제 그쪽이 말하는 유지가 뭔지 한 번 들어볼까?”
카이세의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레녹은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지만, 그림자는 놀랍게도 그런 레녹을 공격하지 않았고.
레녹 역시 그 사실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건넨 말이 정해진 메시지를 재생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세의 심장을 꿰뚫은 그림자는 지성이나 확고한 의지를 지닌 존재가 아니다.
단지 이 공간을 깨트리려는 누군가를 향해 미리 정해진 메시지와 행동을 실행하는 ‘장치’에 불과했을 뿐.
카이세의 추측은 틀렸다. 지금 이 시공에서 끝나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알카이드 본인이 아니었다.
[이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우리가 정한 약속이자 다음을 위한 안배다.]알카이드는 단지 이 꿈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도록, 안배를 남겨놓고 떠났을 뿐.
어느새 레녹의 코앞에까지 걸어 나온 그림자가 말했다.
“…….”
[이 시공간이 고정된 테스트베드로 남아 있는 것은, 아직 그의 지성이 멀쩡하던 시점을 기록하고 남겨두어 재활용하기 위함이다.]“대용품의 재활용이라…….”
레녹의 질린듯한 대답과는 별개로, 그림자는 남아 있는 음성을 충실하게 재생했다.
[실험은 계속된다. 시공은 반복된다. 실패는 순환한다.]“그 실험, 이곳에서 멈추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림자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손을 들어올린 그림자의 손끝 사이로 눈부신 빛의 파편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결말이 찾아오는 그 순간까지 이 순간을 영원히 반복한다.]그림자의 모습이 기이하게 비틀리며 은하수의 장막을 사방에 넓게 펼치고.
그 끝에서 저력을 짐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열원이 빛을 발했다.
[순환과 고정을 방해하는 변수는 제거한다.]키이잉……!!!
그 빛의 형상이 올리비에라의 광요마법을 완벽하게 모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빌어먹을…….”
레녹은 그 모습을 보며 연초를 꺼내물고 허탈하게 웃었다.
“뭐 하나 순탄하게 풀리는 일이 없군.”
콰아아아앙!!!
발전소 화력배출구 옥상에서 거대한 섬광이 터져 나와, 사방의 모든 것을 통째로 휩쓸어 버렸다.
* * *
뚝, 뚝…….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안개에 끼인 것처럼 흐릿했던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고, 내장을 뒤흔드는 충격이 뒤따라 느껴졌다.
쿵, 쿵!!
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거센 진동으로, 몸이 살짝 튕겼다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뒤늦게 배를 타고 올라오는 둔탁한 격통.
“……?”
카이세가 힘겹게 눈을 떠 고개를 든 순간.
그의 옆에 날아온 무언가가 그대로 처박혀 피를 흩뿌리며 나뒹굴었다.
콰아아앙!!
“쿨럭!!”
만신창이가 된 마법사가 카이세와 비슷한 자세로 널브러진 채, 그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슬슬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반?”
대답은 없었다.
마력사를 뽑아 카이세의 목덜미를 쥐고 멀리 던져버린 레녹이,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빛의 열원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콰아아아앙!!!
공간박리의 이능을 통째로 뒤집어쓴 것처럼 조각나는 공간 사이로 뇌전의 형상이 번뜩였다.
[뇌래천벽(雷來穿霹)]박수를 치듯 터져 나온 우레의 장막이 군령의 파도를 절단 내듯이 가로지르며 공간을 넓히고.
[강쇄전련(强鎖電蓮)]차르르륵!!
순식간에 사방에서 이어진 벼락의 사슬이 억지로 그 넓혀진 공간을 잡아 벌린다.
그 사이로 튕기듯 솟구쳐 사라지는 레녹의 신형.
점멸을 사용해 그 자리에서 다섯 번 넘게 공간을 도약한 마법사의 손끝에 눈부신 적색의 뇌전이 빛을 발했다.
[적력편이(赤靂便移)]꽈아아아앙!!!
마력의 성질변화로 붉게 물든 전격의 뇌명성이 그림자의 마력과 맞닿으며 입자발전소의 어두운 하늘을 양단했다.
[항뢰(恒雷) : 선련(仙練)] [뇌겁(雷迲) : 천명(踐命)]우두두두둑!!!
레녹과 그림자의 손끝에서 터져 나온 마력이 사방으로 엇갈려 폭발하며, 의념을 타고 빛의 파도와 뇌전의 형상으로 변했다.
주위의 대기 자체를 쥐어뜯고 증발시키는 뇌명의 파편과 공간을 잠식하고 좀먹는 군령의 장막.
화력을 끊임없이 부풀리고 가라앉히는 상반된 두 동력의 폭발과 발출 사이로, 두 인영의 마력이 미친 듯이 교차하며 줄지어 공간을 두들겼다.
쿠과과과과과!!!!
눈앞에서 바라보면서도 그 사고방식과 전투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초고속의 전투.
하지만 레녹의 뇌전이 처절하게 빛을 태울수록, 그림자가 뽑아내는 다채로운 술식은 갈수록 더욱 장엄하고 농밀하게 변해간다.
부족한 마력을 달고 간신히 버티던 레녹의 신형이 뒤로 쭉 미끄러지다, 이내 휘청이며 그대로 넘어졌다.
쿠웅!!
“반!!”
카이세의 외침에 레녹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단순히 술식을 모방만 하고 있을 뿐, 사용방식 자체는 지극히 단순하거든.”
“…….”
“됐으니까 일단 저걸 봐라.”
카이세는 레녹의 앞에 선 그림자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저건…….”
“알카이드가 남겨놓은 안배라더군. 찔린 것까지 기억나나?”
진통제 앰플을 하나 더 꺼내 목덜미에 주사한 레녹이 말했다.
“폐쇄구역의 이상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원인이자, 일이 잘못된 경우 시공을 되돌려 지금 이 순간을 무한히 반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콰아아앙!!
상대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섬광을 뇌전으로 받아쳐 하늘 위로 튕겨낸 레녹이 웃었다.
“말도 안 되는 괴물이더군.”
고오오오……!!
그림자의 등 뒤에서 펄럭이는 철갑날개. 손끝에서 일렁이는 광요마법의 섬광.
그의 머리 위에서 부유하는 거대한 유령함선과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샛노란 정광을 터트리는 소환수 아르주마르타.
본디 카이세의 동료들이 지니고 있었을 술식과 힘을, 상대는 제 것인 양 자유롭게 다루고 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카이세가 퍼뜩 시선을 돌려 배출구 아래 지상의 풍경을 확인하고 할 말을 잃었다.
“이럴 수가…….”
멀쩡했던 라마할 구역의 지면이 일그러져 뒤집히고, 사방에서 터져 나간 균열이 시공을 남김없이 갉아먹고 휘몰아친다.
이미 존재하는 시공을 완전히 한번 박살 내고 리셋하려는 것처럼 짓뭉개져 바스라진다.
사방에서 일그러져 망가져 가는 풍경과는 반대로, 쓰러진 카이세와 고정장치의 형상만이 멀쩡하게 남아 있을 뿐.
그제서야 카이세는 레녹이 어째서 저렇게까지 엉망이 되어 뒹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망가져가는 와중에도, 레녹은 카이세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저렇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모습조차, 고정장치와 카이세의 육신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있던 결과물일 터.
“아마 정말로 올리비에라나 오니온의 술식을 가져다 쓰고 있는 건 아닐 거다. 8레벨의 극위술식이란 그런 의미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레녹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중얼거렸다.
“스스로의 힘을 물질화하기 위해 이 공간에 남아 있는 이미지를 선택한 거겠지. 하지만 이 공간에서는 엄연한 현실이고, 위력이나 특징도 얼추 비슷해.”
힐끗 카이세를 돌아본 레녹이 말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전에 네 생각을 듣고 싶군. 결국 이 시공 영역을 고안해 낸 건 너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