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76
약먹는 천재마법사 576화
파워게임(3)
“에이전트.”
버질이 중얼거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감히 본사에 현장요원들을 투입해……!!”
얼마나 분노했는지 버질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고, 이마 위로는 굵은 핏대가 서 있었다.
“에이전트와의 분쟁에 아예 개입하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던가?”
레녹은 그런 버질을 보다가 슬쩍 몸을 돌렸다.
“마키나의 티켓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면 내가 직접 가져가지. 그쪽 일은 알아서 잘 해결해 보도록.”
“……잠깐만.”
버질이 빠르게 분노를 가라앉히고 레녹의 코트를 붙잡았다.
“아까 이곳에서 나눴던 대화는 전면 취소하지. 내가 실언을 했군.”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분명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내게 부탁 했을 텐데?”
레녹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정부 직속 특무기관에서 삼두령과 한판 붙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알 바는 아닌 것 같군.”
어째서 이 시점에 카르텔 본사에 에이전트가 강습을 시도하는지 레녹은 알지 못한다.
이벨린 마르시아가 에이전트에서 해고당한 뒤로 레녹은 그들과 따로 연락을 취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함께 방위군 사태에 참전했던 부국장 팔라드 오콘이나, 히나 오네일과 같은 현장요원이라면 이야기를 나눠볼 용의는 있지만.
버질의 말대로라면 지금 에이전트를 지휘하는 것은 레녹이 생전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레타 위더힐드라는 존재일 터.
머피의 말대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이 시점에 다른 조직간의 분쟁에 개입할 이유는 없다.
레녹이 에이전트 요원들이 이곳을 완전히 포위하기 전에 미련 없이 이곳을 빠져나가려던 그 순간.
“카이세에 대해 알고 싶어 했었지. 회장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그에 대해 몇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버질이 빠르게 말했다.
“카이세 바쥬르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려던 레녹의 걸음이 멈춰 섰다.
“반, 나도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외근을 나간 다른 사장들이 복귀할 때까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버질이 살짝 다급한 어조로 첨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사에 침입한 요원들이 회사 내부 자료실 곳곳을 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본사 최심부 지하금고실. 내부 데이터를 보관하는 서버실이 그 안에 있어. 칸소아의 시신에서 추출한 기계도시의 티켓도 거기 보관되어 있다.”
“…….”
“에이전트와 완전히 척을 져달라 부탁하는 게 아니다. 저쪽의 작전이 지연되도록 방해해 주는 정도면 충분해.”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말없이 품 안에서 연초 한 개 피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인 레녹이 연초를 문 채 연기를 내뱉으며 웃었다.
“그 사실을 빨리 이야기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따로 정산을 해줘야 할 거다.”
“……물론이지.”
레녹의 대답을 들은 버질이, 빠르게 사장실로 돌아가 벽장을 벌컥 열어젖혔다.
진열장 안에 장식된 붉은 건틀렛을 바라보는 버질의 표정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 * *
투투투투!!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밤하늘.
먹구름 낀 야경 사이를 주파하는 수송선의 외곽 격납고.
카르텔의 고층빌딩이 우후죽순으로 서 있는 거리를 복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히나 오네일이 고개를 돌렸다.
수송선 의자에 기댄 채 안대를 뒤집어쓰고 쿨쿨 잠을 자고 있는 노년의 여성.
이번 작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입안하고 지휘한 당사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태평함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안경을 양손으로 꽉 붙잡은 히나가 물었다.
“국장님, 정말 이게 맞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그제서야 국장, 그레타가 한쪽 손가락으로 안대를 쓱 밀어 올렸다.
“오네일 요원. 또 뭐가 그렇게 불만이지?”
“저희 에이전트가 이 시점에 삼두령을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잘못된다면 저희 모두가 책임을 뒤집어쓰고 특수감옥에 갇힐지도 모른다고요.”
음지의 삼두령이라 거론되는 기업연합체, 카르텔.
8레벨의 괴물,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를 필두로 하는 사장단과 막강한 이사진의 존재는 물론 위협적이지만 그 진가는 카르텔의 무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수백 개가 넘는 자회사를 통해 음지 사업의 대다수에 발을 걸친 그들의 영향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
카르텔의 존재로 인한 폐악보다, 그로 인해 돌아가는 음지의 산업과 경제구조가 더 눈에 뜨일 정도다.
하물며 거대도시 발칸은 그 태생부터 양지와 음지가 서로를 적대하고, 공존하면서 성장해 왔던 독특한 환경.
중앙의회의 권력자들 중에서도 카르텔과 남몰래 커넥션을 맺고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음지의 보복이 아니라, 오히려 양지의 견제가 에이전트를 향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히나 오네일은 이번 작전이 최악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타는 그런 히나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이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서 그런지, 이쪽으로는 안목이 상당히 좋군. 역시 데려오길 잘했어.”
“그러니까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하지만 네 추측은 틀렸다. 오히려 지금이니까 이렇게 카르텔의 본사에 대놓고 깽판을 칠 수 있는 거야.”
말문이 막힌 히나를 내버려 두고 그레타가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살폈다.
“현재 시간은 금요일 밤 11시 37분. 그것도 한 해의 분기가 완전히 지나가는 달이지. 덩치가 작은 회사들은 분기 매출 정산에 진땀을 빼고 있을 시기야.”
“네?”
“반대로 덩치가 큰 공룡기업들은 정산일정이 상대적으로 늦은 만큼 이 시기에는 오히려 한가하지.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나?”
그레타가 씩 웃었다.
“기업연합체라는 카르텔의 복잡한 특수성. 덩치가 큰 카르텔 본사는 한가하지만, 반대로 카르텔의 팔다리를 이루는 자회사들은 한창 바쁠 이 시간대. 아마 다른 사장과 이사진 역시 본인이 맡은 사업부와 회사 매출을 정리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겠지.”
그제서야 그레타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한 히나의 표정이 변했다.
“데드라이즈가 돌아오지 않았고, 팔굉성채가 몰락한 지금 이 시점에 밑도 끝도 없이 커져 가는 카르텔의 허점을 찌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카르텔 본사 최정상 사장실과 최하층 지하금고. 둘 중 하나만 공략해 내부 데이터를 빼낼 수만 있어도 성공이다.”
그레타가 그렇게 말하며 수송선 끝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어 어깨에 들쳐멨다.
철컥!!
그것이 그레타 자신의 몸집에 버금가는 거대한 바주카포라는 것을 깨달은 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 잠깐만요……!! 그걸 여기서 쏴버리면 다른 요원들의 본사 잠입까지 발각당……!!”
“히나야.”
순식간에 친근하게 그녀의 이름을 바꿔 부른 그레타가 웃었다.
“여기까지 일이 진행됐으면 이미 다 들킨 거나 마찬가지야. 뭘 자꾸 발뺌을 하려고 하니?”
“…….”
길쭉한 미사일을 바주카포 포구에 거꾸로 처박은 그레타가 낄낄 웃었다.
히나는 그런 그레타를 보며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만약 에이전트가 카르텔 본사를 상대로 작전을 성공시킨다면 조직의 위상은 말도 안 될 정도로 크게 오를 터.
하물며 작전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레타 정도라면 본인의 책임하에 에이전트 내부 기조를 공격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퍼트릴 수 있다.
작전의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극한까지 당기면서도, 리스크를 어떻게든 감당가능한 정도까지 끌어내리는 것.
도박에 가까울 정도로 무모한 수를 연이어 던지면서 유기적으로 뒷감당까지 생각해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에이전트 국장에 복직한 그레타 위더힐드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럼 곧바로 축포 한방 크게 쏘아 올려볼까!!”
껄껄 웃은 그레타가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자, 바주카포에서 튀어나온 미사일이 그대로 카르텔 본사 최상층을 향해 질주했다.
사장실을 정확하게 노리고, 빌딩지구의 반을 대번에 날려 먹고도 남을법한 화력의 폭약이 그 자리에서 격발.
충돌과 동시에 화관을 태워 지상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콰아아앙!!!
* * *
불이 꺼진 어두운 고층 빌딩 복도.
환기구 사이로 들려오는 소음만이 감도는 복도 벽면을 거미처럼 훑고 지나가는 일련의 인영들.
외부의 침입을 알아차린 카르텔의 강습부대와 에이전트의 요원들이 빌딩 곳곳에서 거칠게 충돌했다.
콰아앙!!
“아저씨. 생각보다 세잖아. 카르텔의 쓰레기들도 실력 하나는 나쁘지 않은걸.”
민머리에 알 수 없는 문신을 때려 박은 사나운 인상의 남성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 젖히며 말했다.
이미 맨손으로 카르텔 강습부대원을 여럿을 상대했는지, 주먹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그런 남자의 손에 멱살을 붙잡힌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몰골로 민머리 남자를 노려보던 중년이 이를 바득 갈았다.
“에이전트. 이번 일에 대한 대가는 아주 혹독하게 치르게 될 거다……!”
중년 남성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상당하지만, 이미 전황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카르텔의 무력부대를 이끄는 관리자이자, 이사진의 일원.
대부분이 자회사로 돌아간 와중에도 본사에 남아 있던 초인들이 어떻게든 저항하고 있지만.
에이전트의 정예부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와 핏물만이 흥건하게 남아 있을 뿐.
“대가?”
얼굴에 문신을 새긴 민머리 요원이 히죽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좀 살아보니까,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이 꼭 먼저 가더라고.”
뻐억!!
거침없이 중년 남성의 턱을 후려갈기자, 그 눈에서 빠르게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상황을 보면 꼭 틀린 말은 아니지?”
“끄윽……!!”
핏물을 삼키며 어떻게든 버티려던 카르텔의 이사의 몸이 축 늘어지고, 그 몸을 휙 내던진 남자가 빙긋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음지의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일은 이래서 즐거워. 뒤탈도 없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히익……!!”
“정의의 편이라는 것도 이럴 때면 나쁜 수식어는 아니란 말이지.”
사무실 복도 근처에 숨어 있던 카르텔의 사원들이 그 시선을 받고 벌벌 떨었다.
카르텔의 강습부대와는 달리, 본사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일반 사원들이 미처 도망치지 못한 채 남아 있던 것.
아무런 마력이나 전투력도 보유하지 않아, 이 자리에서 쉽사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남아 있는 이들.
민머리 요원이 입맛을 다시며 그런 사원들을 향해 마력을 끌어올린 그 순간.
“싸울 수 없는 자들은 보내주는 게 어떻겠나?”
저 멀리 복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저항하는 자들만 제압하는데도 여력이 부족해. 쓸데없는 데 힘을 빼지 말게.”
성성한 백발과 덥수룩한 수염. 주름이 잔뜩 진 채 굽어진 어깨.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노인의 허리춤에는 얇은 검 한 자루만이 매달려 있다.
“영감, 그게 무슨 소리야.”
민머리 남자가 노인을 돌아보며 날카롭게 웃었다.
“이놈들은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음지의 온갖 벌레들을 털어먹은 쓰레기야. 같은 공범이라고.”
“그런가?”
노인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난 늙어서 그런 복잡한 건 잘 모르겠군. 다만 내가 에이전트에 재직할 때는 힘없는 사람들까지 손대지는 않았거든.”
그는 뒷짐을 진 채로 천천히 민머리의 간부 앞으로 걸어와 껄껄 웃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인정머리가 없다니까. 그렇지 않나?”
“하, 굳이 기어 와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삐딱하게 웃은 민머리 남자가 시선을 홱 돌렸다.
“그레타 국장이 당신 같은 노친네들에게 누울 자리를 마련해 줬다는 건 알겠으니까, 상관마쇼. 이해했어?”
민머리 남자 역시 휘하 소대를 거느리고 작전지역을 돌파하는 임무를 맡은 에이전트의 요원.
흥이 깨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난 내 부하들이랑 하던 일이나 계속…….”
하지만 그렇게 대꾸하며 자신의 부하들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린 남자의 말문이 곧바로 턱 막혀 버리고 말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에이전트의 권한 아래 은근히 피학을 즐기던 부하들이, 하나같이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
노인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래서 말했잖나.”
“……영감. 저거 당신이 한 짓이야?”
민머리 남자가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니가 내 부하들, 다 때려눕힌 거냐고.”
노인이 다가온 복도 방향을 순서대로 남자의 부하들이 모두 기절해 있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노인은 그런 남자를 외려 안쓰럽게 쳐다보며 혀를 쯧쯧 찼다.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레타는 어떻게 이런 무지렁이를 작전에 투입시킬 생각을 한 거지?”
“이 새끼가 진짜……!”
키릭!!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려던 그 순간, 노인의 손이 순식간에 남자의 관자놀이에 닿아 있었다.
팔을 움직이는 동선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기민한 손놀림.
하지만 노인이 남자의 관자놀이에 손을 뻗은 것은, 남자를 제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천천히 손을 거둬들인 노인이 남자의 눈앞에 그 손을 내밀었다.
“이제 느껴지나?”
파지직……!!
새파란 마력이 담긴 채로 번들거리는 손가락만 한 크기의 전류.
소리 없이 나타난 그 전격파편이 관자놀이를 관통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뭣…….”
“소리도, 궤적도, 속도도 없어. 단지 그 자리에 나타날 뿐이네.”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의 부하들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당했지.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나?”
“…….”
“엄청난 수준의 마법사가 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것도 공간도약을 통한 정밀저격이 가능할 정도의 괴물이야.”
“미, 미친…….”
“이런, 내게서 떨어지면 안 될 텐데.”
노인이 웃었다.
“자네 혼자서 마력을 인지하고 피해낼 수 있을 것 같나?”
퍼석!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남자의 미간을 스치고 지나간 전격이, 그대로 머릿속을 휘저으며 그 의식을 통째로 빼앗았을 뿐.
“꺽……!!”
두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경련하는 남자를 두고 노인은 곧바로 등을 돌렸다.
스릉!!
검을 뽑아 드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복도 사이로 은백색의 섬광이 가로지르는 순간, 노인의 정수리 위에서 내려 찍힌 전격이 두 쪽으로 절단 나 떨어져 내렸다.
지직!!
자신을 노린 두 번째 전격에도 노인은 담담한 기색으로 턱을 쓰다듬을 뿐.
“오만하기 그지없군. 여기까지 와서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인가?”
공간을 뛰어넘어 솟아오른 전격에 당한 요원들 중 숨이 끊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지금 이 수수께끼의 전격을 쏘아내는 상대가 철저하게 위력을 조절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손속을 두고 있다는 증거.
하지만 노인은 외려 그 능숙하기 그지없는 솜씨에서, 상대가 수도 없이 사람을 죽여본 괴물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얼마나 두들겨야 인간이라는 생물이 부러지고 망가지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 직전에서 멈춰서는 섬뜩한 손속.
그것은 상대가 그만큼 압도적인 마력조작능력과 동시에, 그에 걸맞은 오만한 성정을 지녔다는 방증이었다.
“미리 고지받은 사장단의 명단 중에 이 정도 마법사는 없었지.”
노인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적도 아군도 아닌 3자의 개입인가…… 얼굴이라도 직접 확인해야겠군.”
* * *
“그렇군. 이걸로는 부족했나?”
그런 노인의 모습을 마력감지를 통해 모조리 확인하고 있던 레녹이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거대한 지하공동 한복판에서, 큼지막한 스나이퍼 라이플을 든 채로 무릎을 꿇은 모습.
그런 레녹의 등 뒤로 뻗어 나온, 거대한 날개와 같은 형상이 라이플의 총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다.
“에이전트 측에도 내가 알지 못한 실력자가 더 있던 모양인데…….”
레녹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라이플의 탄창을 빼냈다.
철컥!!
빠져나온 탄창의 아래쪽에는 [라이트닝 바운드]라는 공용마법의 이름이 휘갈기듯 적혀 있었다.
[라이트닝 바운드 카트리지 탈착.]묵직한 철갑날개에 휘감긴 라이플 내부에서 들려오는 전뇌정령의 낭랑한 목소리.
[반경 1200m 일대 구조물 스캔 완료. 3차원 구상도 구현. 발사각도 계산 검토. 자동사격알고리즘 확보.] [포착된 사수 전원 현시점에서 사격 가능 확인.]레녹의 눈앞에 펼쳐지는, 카르텔 본사지구 지하시설의 거대한 3차원 지도.
그 공간 사방에서 점차 거리를 좁혀오는 강렬한 기척들.
끼릭……!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라이플의 길쭉한 총신 위로 은은한 묵빛의 광채가 내려앉았다.
[조준보정] [궤도수정] [도탄사격] [투영배율] [마찰감소]……
차르르르륵!!
라이플 위로 쏟아져 내리는 십수 종의 사격보조마법.
총신 위로 떠오른 HUD가 새파랗게 빛나는 것과 동시에, 한껏 달아오른 총구 앞 공간이 조금씩 갈라지며 열리기 시작한다.
[사격보조 알고리즘 ver4.0 가동.] [중심좌표 설정. 사격경로 최적화. 공간지표 다각화.] [공간전이 동화율 58%. 지정좌표 인식 완료.]철컥!!
스나이퍼 라이플의 탄창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총신을 감싸 안는 부드러운 마력.
레녹은 스코프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은 채, 그의 주위를 맴도는 수십 종의 카트리지 중 하나를 보지도 않고 골라잡았다.
지금 레녹은 본사에 침입한 에이전트 요원들에게 총알을 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카트리지라는 형태에 마법을 영창해 부여한 뒤, 그 탄창의 힘을 온전히 라이플에 담아 쏘아내는 것.
그렇게 쏘아낸 마력을 대천사의 연민과 공간도약의 감각을 이용해 허공에서 지정좌표로 전이시킨다.
요원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해 보이는 노인을 향해 사용해야 할 새로운 카트리지의 이름.
철컥!!
[항뢰(恒雷) 카트리지 삽입 확인.] [고유마법 공간전이 도약사격 준비완료.]우우웅……!!
“관자놀이에 고유마법을 직접 때려 박아도 버틸 수 있나 확인해 볼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줄 전기마사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