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79
약먹는 천재마법사 579화
공간 사용법(3)
레녹의 시선 너머로 깨져 나간 균열을 따라, 허공이 그대로 쪼개지며 절단당하는 신기.
공간 자체를 깨트리듯 잘라내어 서로의 거리감을 절단해내는 균열의 파편.
박살 난 균열을 따라 절단된 공간이, 지하공동 전체로 퍼져나가 벽면과 지면을 무차별적으로 찢어 잘라버렸다.
쩌저저적!!!
마법사를 손끝을 타고 퍼져나온 공간의 균열이, 사방으로 찢어져 모든 것을 절단하고 공간 자체를 크게 흔들어 붕괴시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뿌리 끝에서부터 파생되는 균열을 피해 에이전트 요원들이 진형조차 갖추지 못하고 사방으로 밀려났다.
[방어하지 마라!! 회피가 우선이다!!] [피할 수 없다면 팔다리를 내주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최대한 마력으로 보호하고 버티지 않으면……!!]쿠구구구!!!
날개의 엔진음에 맞춰 지하공동 전체가 흔들리고 끊어지며 전황을 뒤흔들었다.
장비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나, 인간이 맨몸으로 공간 자체에 손을 대서 여기까지 균열을 퍼트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 균열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한 노인, 오네일의 육신 역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져 나가는 듯한 소음과 동시에, 공간의 균열이 오네일이 쥐고 있는 칼날까지 뻗어나간다.
하지만 오네일은 레녹이 일으킨 공간절단을 피해 물러서는 대신, 역으로 한 발 더 내밀어 칼날을 날개 안쪽으로 찔러넣었다.
카가각!!
균열의 힘을 버티지 못한 칼날이 순식간에 조각나 원형을 잃어버리지만, 그렇게 조각난 칼날 파편조차 마력으로 붙잡아 억지로 이어붙인다.
날카로운 칼날이 순식간에 갈라진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레녹의 코앞에 쇄도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날개 파편이 접합되며 안으로 들어온 칼날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치익!!
그럼에도 그 힘을 잃지 않고 레녹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노리는 참격.
오네일이 꽉 닫힌 날개 안으로 남은 칼날을 힘껏 밀어 넣어 안에 숨은 마법사를 꿰뚫으려던 그 찰나.
레녹을 둘러싸고 움츠러든 철갑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그대로 오네일의 몸을 뒤로 튕겨내 처박았다.
콰아아앙!!
지하공동 곳곳에 세워진 두꺼운 기둥을 몇 개씩 박살 내고 저편에 처박히는 노인의 형상.
파리를 쫓듯 날개를 털어 상대를 떨쳐낸 레녹이 앉은 채로 철갑날개를 구부려 몸을 감쌌다.
철컥, 철컥, 철컥!!!
갈라진 날개 사이로 미리 구비해 둔 프레데터 머신건의 총신 수십 개가 예열된 채 튀어나온 그 모습.
[…….]요원들 중 누군가 앞으로 이어질 일을 상상하고 침을 꿀꺽 삼킨 그 순간.
두두두두두두두!!!
철갑의 날개를 타고 터져 나온 수백 발의 탄환이 그대로 지하공동을 뒤덮고 거대한 탄막을 그렸다.
쏟아지는 탄환의 빗속에서 요원들이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전원 뒤로 물러나라!!] [모든 탄환에 마력이 부여되어 있다, 오래 버티기 어려워!!!] [다른 팀장님들도 금방 도착하실 거다!! 그때까지만 대형을 유지한 채 버티면……!!]“그 흉측한 날개, 기억에 있어.”
사아악!!
그 순간, 요원들의 앞에 내려앉은 거대한 그림자가 회전하며, 쏟아지는 탄환을 모조리 막아내는 장막으로 변했다.
그림자의 장막이 검은 짐승처럼 변해 탄환들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그 안에서 나타난 체인이 거대한 낫을 들고 걸어 나왔다.
“수십 년 전에, 그런 기괴한 흉물을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잘생긴 친구가 하나 있었지.”
체인이 기억을 되살리는 것처럼 아리송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카이세 쪽 측근이었던 것 같은데.”
“데드라이즈의 회색 유령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그 순간, 레녹의 바로 옆에서 흐릿한 연기가 피어올라 순식간에 인간의 형상을 갖춘다.
철컥!!
레녹의 날개가 감싸지 못한 반대편 지근거리에서 총구를 겨눈 채 나타난 케이드가 말했다.
케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레녹의 관자놀이에 총신을 갖다 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 기억에도 남아 있습니다. 틀림없이 길레온 마일로즈 본인의 개인장비군요.”
“아, 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체인이 반색하며 손바닥을 탁탁 쳤다.
“너무 오랫동안 현장을 잊고 살았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단 말이야, 원. 그렇게 오래 근무했는데 이젠 잘 생각도 안 나.”
“길레온 마일로즈가 카이세를 떠난 뒤로, 직접 일선에 나선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케이드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저 역시 발칸을 떠나 있던 동안 그의 소식을 두어 번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자의 장비를 견뢰가 보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 레녹의 급소를 겨눈 이 남자의 말은 틀리지 않다.
레녹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날개는, 실제로 길레온 본인이 남겨두었던 장비였으니까.
피폭현상에 녹아내렸던 내부 부품을 교체하고, 회로를 재정비해 날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복원시킨다.
날개 외피에 갑각파편을 달아 내구성을 올리고, 총화기를 수납해 자동사격이 가능하게 만든 새로운 장비.
레녹은 에이전트 요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철갑날개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쿵!!
“반이라고 했던가. 기관을 떠나 있는 사이 그 이름을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네.”
무너진 기둥 잔해 저편에서 오네일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마법사답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남은 괴물이라는 평이 자자하더군. 흉성이 가득하다 못해, 혈투를 즐기는 성정이라고 들었는데.”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그간의 행적이 굵직하고 완전무결한 전공을 가진 기인이지요. 다양한 조직과 충돌하며, 본 기관과 협력한 기록도 있는 인재이기도 합니다.”
케이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레녹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근에는 큰 부상을 입어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도 알려져 있지요.”
“꽤 많이 알고 있군. 따로 조사를 한 적이 있나?”
“재능 있는 초인들의 프로필과 행적은 주기적으로 체크해 두는 편입니다.”
레녹의 말에도 케이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권총을 고쳐잡았다.
“실력 있는 강자들과 쓸데없이 충돌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케이드…… 아직도 청부업을 계속하고 있는거니?”
체인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내 권한으로 눈감아줬지만, 발칸에서는 곤란해. 좀 있으면 나도 관리관 자리를 내려놓을 거라, 이제는 힘이 없단다.”
“괜찮습니다, 체인. 당분간은 그레타를 따라 에이전트 일에 집중할 생각이니까요.”
케이드가 묵묵히 레녹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다만 오늘 여기서 이 남자를 어떻게 처리할지부터 결정을 내려야겠지요.”
“에이전트의 국장이 어떻게 조직 자체를 단기간에 이리 강력하게 재편시켰는지 궁금했었는데…….”
레녹이 눈을 감은 채로 연초 연기를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수십년전에 에이전트에 재직했던 은퇴요원들을 현역에 불러모았던 건가. 재주도 좋군.”
살인청부업자로 활동하던 암살자. 범상치 않은 검술 실력을 지닌 노인과, 그림자를 능숙하게 다루는 장년 여성.
카이세와 데드라이즈의 이름을 익숙한 듯 언급하는 그 행적과 마치 오래전부터 이 도시에서 기거한 듯한 언행.
삽시간에 레녹을 포위하고 그를 무력화시키려는 그 노련한 실력까지. 이런 베테랑 요원들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는 없다.
하나같이 지나간 세월을 체감하고 있는 듯한 독특한 언동.
이들은 수십 년 전 에이전트에서 근무하다, 현장에서 물러났던 고위계 초인들이었던 것이다.
“어머, 그럼 여태까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거야?”
체인이 오히려 의외라는 듯 호호 웃으며 그림자 낫을 까닥였다.
그대로 레녹의 목에 낫의 날을 가져다댄 그녀가 말했다.
“난 또 전부 알면서 카르텔 쪽에 붙은 괘씸한 후배인 줄 알았지. 사정을 몰랐다면 적당히 훈계만 해두고 놓아줘도 되지 않을까?”
체인의 검은 눈이 무심하게 빛났다.
“실력 없는 낙오자들은 몰라도, 재능 있는 마법사는 되도록 오래 살려두고 싶거든. 혹시나 알아, 이 친구가 두 번째 에반 바일런이 되어줄지?”
“…….”
느닷없는 체인의 말에 주변에서 침묵이 흘렀다.
오네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에이전트에서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도 못하면서, 또 그런 소식은 잘도 기억하고 있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영감님? 반중력 엔진의 상용화만큼 이 도시에서 뜨거운 화제가 어디 있다구요.”
체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제가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온통 그 얘기만 해대는 덕분에 모를수가 없는 지경이라고요.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비행선은 언제 나올지,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데 체험관은 언제 생기는지, 지금 이 친구가 단 것같은 흉측한 날개는 언제쯤 시장에 판매되는지…….”
“…….”
“우리 딸도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주워듣고 와서는 공중부양 킥보드를 사달라고…… 하아, 다음 번 편입시험을 잘 보면 생각해 보겠다고 말해버렸다니까요.”
“어머니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시간이 더 끌리기 전에 작전을 빠르게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케이드가 힐끔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레타 국장의 말로는 금고에서 장부를 찾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들었습니다. 제가 견뢰를 감시하고 있을 테니, 두 분이 빠르게 일을 처리해 주세요.”
“케이드, 나는 회계장부라는게 정확하게 뭘 말하는지 잘 모른다만.”
오네일이 머쓱한 기색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칼을 거둬 들였다.
“제가 알아요. 금고 문만 열어주시면 제가 안에서 가지고 나올게요.”
“그레타가 무슨 장부를 원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겐가?”
“영감님, 저 이래봬도 관리관 일을 십수년 넘게 한 공무원이라고요.”
체인이 가볍게 코웃음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불법적인 기업연합체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자 치명적인 헛점이 어디 존재하는지는 뻔해요. 장부를 여러개 만들어서 숫자에 장난질을 칠 수 있다는 거. 거기서부터 건수를 엮어 들어가면 금감원을 통해 카르텔의 자회사들에 압수수색을 넣을 수 있다구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군.”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흔든 오네일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자네가 전부 알아서 하게. 어차피 장부를 확인하는 건 자네가 아니지 않은가?”
그 순간, 이제까지 가만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레녹이 중얼거렸다.
“장부를 확인하는게 너희들이 아니란 말이지…….”
철컥!!
케이드가 레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침없이 총구를 관자놀이 끝에 강하게 밀어 넣었다.
“입 다무세요. 쓸데없는 말을 하게 놔두지는 않겠습니다.”
“묘하게 결정을 미뤄두고 있는 태도가 이것 때문이었군.”
레녹이 총구 끝에 고개를 살짝 밀린 상태로 힐끗 케이드를 바라보았다.
“결정권자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야. 아니, 아예 직접 작전에 같이 참여하고 있었던 건가?”
“…….”
레녹을 둘러싼 세 요원은 수십년 넘게 전장에서 굴러온 베테랑.
당연히 이 시점에서 느닷없이 핵심을 찌른 레녹의 말에 반응할 정도로 어리숙한 초인은 없다.
하지만 레녹은 이미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결론을 내린 뒤였다.
“그레타 국장. 그 사람이 이 자리에 와 있었군.”
어둠속에서 마법사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럼 당신들에게는 더 볼일이 없겠어.”
케이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총구를 아래쪽으로 낮춰, 레녹의 복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다.
타아앙!!
상대를 죽이는 대신 이 자리에서 무력화시키기 위한 과격한 일발.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레녹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점멸을 사용해 순식간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레녹이, 철갑의 날개를 바짝 끌어당기며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레녹을 중심으로 무형의 파동이 퍼져나가 일대 공간을 휩쓸었다.
우웅!!
“뭐지……?”
“무언가 손을 쓴 건 확실한데…… 잠깐, 설마!!”
체인이 자신의 그림자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의 반발을 느끼고 고개를 휙 틀었다.
처음 그녀가 공동에 나타나며 대량으로 집어삼켰던 레녹의 탄환.
그림자 속에 묻어두었던 탄환들이 일제히 공명하며, 체인의 그림자 사이에서 연달아 폭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지직……!!
수백 발의 탄환을 매개체로 삼아 전격의 파동이 진동하며, 그 위력을 빠르게 증폭시킨다.
주체할 줄 모르고 터져나온 전격의 파동이 체인의 그림자 장막을 찢어발기며 그녀의 술식을 무너뜨리고.
주먹모양으로 우그러든 철갑의 날개가 순식간에 무방비한 그녀의 등허리를 번뜩이듯 후려쳤다.
콰아아앙!!
“큭……!!”
튕기듯이 공동 아래쪽으로 처박혀 미끄러진 체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튀어나오고.
순식간에 전황이 뒤집혔음을 깨달은 오네일과 케이드가 동시에 움직였다.
오네일의 허리춤에서 검광이 번뜩이고, 케이드가 발치에 수류탄과 섬광탄을 십수 개씩 섞어 흩뿌리며 몸을 비틀었다.
퍼버버버벙!!
폭발 사이로 솟아오른 수십 갈래 마력이 그 자리에서 격돌하며 사방으로 파편을 난자했다.
오네일의 검이 허공을 내리긋는 사이, 그 손짓을 따라 움직이는 칼날이 눈부신 궤적을 연신 덧그린다.
하지만 레녹은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수류탄을 리볼버로 쏘아맞춰 폭발 위치를 빗겨내면서, 그 자리에서 오네일의 검격을 철갑날개로 모조리 받아냈다.
카가가각!!!
“얼마 전에 육탄전에 대한 요령을 어깨 너머로 배운적이 있었지.”
철갑날개 안쪽에서 새하얀 리볼버를 들어올린 레녹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는 좀 보이는 것 같군.”
타앙!!
쩍 벌어진 날개 사이로 리볼버의 탄환이 거침없이 질주해 오네일의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아음속의 속도로 검을 휘두르는 검사치고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허용한 조준사격.
하지만 오네일은 이 단 한발의 반격으로, 상대가 얼마나 공간도약 사격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지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공간을……!!”
“보였나? 감각이 좋군.”
검극을 받아내고 방어하는 찰나의 틈을 노린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칼날과 탄환이 충돌하는 그 찰나의 순간, 레녹이 쏘아낸 리볼버의 탄환이 격발 직후 공간을 도약해 오네일의 피부 위에 내리꽂혔던 것이다.
단순히 공간을 도약한 것 뿐이라면, 인지한 순간 어떻게든 받아낼 수 있다.
오네일의 반응속도와 검을 휘두르는 궤적을 역산해서 한발 앞서 심리의 간극을 찌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기예.
사실상 수싸움에서 저 마법사가 그를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카가가각!!
철갑의 날개를 다섯갈래로 쪼개 검극을 흘려내면서 점멸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레녹의 모습.
검광을 빛내며 춤을 추듯 피를 흩뿌리는 오네일의 형상은 언뜻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전반적인 신체능력이 매우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오네일을 스쳐지나가듯, 순식간에 날개 안쪽으로 파고든 케이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작전 당시부터 거의 움직이지 않던 태도, 개인장비에 집중해 전투에 임하는 방식. 본신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손속까지.”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한 쌍으로 보이는 새카만 날을 가진 단검이 두 자루 들려 있었다.
“마드리치 오니온의 일이 지난 뒤로 제대로 쉰 적이 없는겁니까?”
케이드가 몸을 한바퀴 돌리는 것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흐릿한 연기가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카가가각!!
레녹의 날개를 무시하고 안쪽의 실드를 두들겨 잘라내는 소름끼치는 절삭음.
허공을 내달리는 연무를 닮은 검기가 불꽃처럼 실드 외피를 타고 번져 깊은 찰과상을 남겼다.
촤악!!
어깨와 무릎, 목덜미와 옆구리.
상대적으로 방비가 취약할 수 밖에 없는 부위를 절묘하게 파고들어, 실드를 긁어 잘라냈다.
살인청부업자. 그 중에서도 암살자에 가까운 은밀기동. 그 속도는 오감으로는 인지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오히려 레녹이 펼쳐둔 날개 안쪽 공간을 철저하게 맴돌면서 날개의 힘에 덩달아 보호받는 듯한 기색.
철갑날개의 방벽을 정면에서 뚫기 어렵다는 사실을 역으로 이용해, 오히려 전투를 이어나가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카가가각!!
허공에서 쉴 새 없이 울려퍼지는 절삭음에 실드 외벽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레녹의 실드는 본디 실드 자체의 내구성보다 복구력과 압축력에 신경을 쓴 방벽.
폐쇄구역의 사건을 지나오며 과부하된 마력이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탓에, 실드 복구력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촤아악!!
셔츠 사이로 피가 배이면서 빠르게 붉게 물들기 시작한 옷깃.
하지만 레녹은 팔다리를 베어내는 섬뜩한 자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티팩트? 소우주? 어느쪽이든 절삭력에 힘을 밀어 넣고 위력을 증폭시킨 방식이군.”
촤악!!
가슴팍을 살짝 베어내는 칼날의 감촉을 대놓고 무시한 레녹이 거침없이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럼 안정성은 어떨까?”
철컥!! 우우우웅!!
그 순간, 철갑의 날개가 거대한 손바닥과 같은 형상으로 변하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공간의 층을 벗겨내듯 단면을 잘라냈다.
길레온이 철갑날개의 힘을 빌려 이능으로 사용했던 공간박리 능력.
수십 년 전의 길레온 마일로즈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힘을 철갑날개라는 아티팩트를 빌려 제어하고 있었지만
공간의 개념을 실재하는 이론과 법칙으로 직접 다루기 시작한 레녹에게 있어 그 원리를 따라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지금처럼, 방향과 위력을 신경쓰지 않고 일대에 충격처럼 퍼트리는 정도라면……!!
쿠우웅!!
공간의 층이 벗겨지며 일그러지는 충격으로, 레녹의 지근거리에서 빠르게 내달리며 틈을 엿보던 케이드의 신형이 그대로 튕겨져 나온다.
“……!!!”
설마 이 정도 수준으로 공간을 예민하게 다루고 있을 줄은 몰랐던 케이드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동요가 어렸다.
그 자리에서 다시 연기의 형태로 변해 사라지려던 케이드의 다리에 절묘하게 탄환이 박히고.
[마커 부착 완료. 동기화 시작.]레녹의 품안에서 다비가 꼬리를 흔들었다.
[마커 설치 좌표를 기준으로 공간전환식 계산 준비.]다비의 말을 듣자마자 레녹이 품안에서 리볼버 탄환을 꺼내 머리 위로 튕겨올렸다.
케이드가 오랜 경험으로 그 동작이 일종의 트리거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
“잠깐, 설마……!!”
[실행.]파앗!!
케이드와 탄환의 위치가 그대로 바뀌어 레녹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철컥!!
철갑의 날개를 손처럼 뻗어서 그 몸을 움켜쥔 레녹이,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웃었다.
“잡았다.”
콰아아앙!!
케이드의 몸이 머리부터 그대로 지하공동 바닥에 거꾸로 처박혀 인간말뚝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요원들 중 눈썰미가 좋은 이들만이 전율했다.
[매개체를 사용해 공간좌표를 뒤바꾼 건가……!! 이미 인간이 아니야!!]“마커를 따로 부착하고 동기화까지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조건만 갖춰지면 원하는 대로 구도를 설정할 수 있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요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제 대충 준비가 끝났다.”
팟, 팟, 팟!!!
그 순간, 에이전트 요원들의 몸 곳곳에서 희미한 푸른 빛의 마력이 연달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방금 케이드의 몸에 꽂아넣은 마커와 비슷한 마력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요원들이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레녹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워진 지하공동. 레녹이 요원들의 몸에 부착한 마커가 반딧불처럼 빛을 발하는 섬뜩한 풍경.
[마커 활성화 완료. 공간전환식 병렬시행 준비.]두려움과 경외가 섞인 시선의 끝에서, 레녹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얼마나 너희들을 가지고 놀아야, 그레타 위더힐드를 여기 불러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