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78
약먹는 천재마법사 578화
공간 사용법(2)
카르텔 본사 최심부 지하층.
거대한 지하공동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금고로 만들어 잠가버린 철의 장벽.
장벽 앞 어둠 사이로 십수 명의 요원들이 어떻게든 상대의 틈을 만들기 위해 발을 놀린다.
“서버실이 위치한 지하금고의 전력은 예비 발전소를 통해 보충하고 있다.”
그런 요원들의 귓가에 꽂히듯이 울려퍼지는 조용한 목소리.
[후우, 후우……!!] [허억……!!]잔뜩 긴장된 숨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연달아 울려 퍼지고,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사라진다.
“이 곳의 예비전력은 단순히 저장된 전력을 가져오는 수준을 넘어, 외부 공공시설에 사용되는 전력까지 무단으로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지.”
파직!!
“카르텔 정도 되는 음지의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도둑질이라 해야겠군.”
고요해진 어둠 사이에서 희끄무레한 전광이 번뜩일 때마다, 그와 함께 사방에서 기척이 덩달아 소멸한다.
요원들 역시 어떻게든 마력과 의지를 끌어올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대응하려 했지만.
거의 모든 순간 그들의 판단보다 한발 앞서 터져나오는 뇌전과 탄환의 빛무리가 사방을 휩쓸고 기세를 주저앉히고 있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도록. 상부의 판단을 기다린다.]자포자기한 기색의 요원들 중 누군가 중얼거리는 말이 회선을 타고 고요하게 흘렀다.
[저 남자를 상대로 더 이상의 작전수행은 불가능해.]대답은 없었지만, 모든 요원들이 그 말에 내심 동의했다.
이 드넓은 공동 사이에서 쉴 새 없이 번뜩이는 전극의 주인.
거대한 금고 문 앞 계단에 걸터앉은 흑발의 마법사.
어둠 사이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지만, 두 눈에서 흐르는 저릿한 안광은 수십 미터 바깥에서도 이렇게 선명하게 보인다.
그 안광의 저편에서 얼마나 강대하고 위험한 마력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지 역시.
카르텔 본사 지하금고.
기업연합체의 가장 민감한 기밀 서류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이 강철의 장벽을 가로막은 단 한 사람.
그 마법사 한 명을, 수천 시간이 넘는 전투훈련을 수행한 에이전트의 정예요원들이 뚫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척까지 다가가 무기를 휘두르기는커녕, 생명의 존망을 위협하는 전극을 어떻게든 피해 버티며 시간을 끄는 것이 전부일 뿐.
그런 레녹의 주위에, 중력의 힘을 거스르듯이 둥둥 떠오른 수십 개의 탄환들.
탄환을 타고 흐르는 희미한 전기장이 마치 숨을 쉬듯 파문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주위의 접근을 일체 차단하고 있다.
“몇 명은 더 쏘아 떨어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노인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끌렸군.”
요원들을 보며 고갯짓하는 레녹의 손에는, 굵직한 전선 단면이 그대로 피복이 벗겨진 채 쥐어져 있었다.
파지지직……!!
전선의 끝에서 터져 나온 전격이 레녹의 피부 위를 타고 흐르지만, 그 육신을 태우기는커녕 매개로 삼아 허공으로 물밀 듯이 퍼져 나간다.
동시에 레녹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뇌전의 커튼을 그리듯, 반구형으로 그를 둘러싸고 회전한다.
[일렉트로닉 필드]공용마법 중에서도 꽤 광범위한 지역을 커버하지만, 위력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은 전격마법의 보조 역할로 사용되는 시동기술.
하지만 레녹의 손끝을 타고 흐르며 허공을 맴도는 거대한 전격의 필드는, 어지간한 초인의 의식조차 통째로 암전시킬 만큼 강력해져 있다.
레녹은 카르텔 본사에 비축된 예비전력을 사용해 거의 노코스트로 공용마법을 대규모 전개.
그 과정에서 장막 안으로 접근하는 요원들만 실시간으로 전력을 조작해 요격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에이전트의 기조나 내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는 한 모양이야.”
파지직!!
[끄아악……!!]허공을 부유하는 탄환을 하나 잡아 손가락으로 튕겨낸 그 순간, 밀려난 탄환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동시에 레녹을 등지고 몰래 금고에 접근하려던 요원 한 명이 복부에서 피를 흩뿌리며 고꾸라졌다.
돌아보지도 않고 손가락을 까닥여 요원의 육신을 발아래까지 끌고 온 레녹이 중얼거렸다.
“못보던 얼굴들도 많고, 작전 대형이나 사용하는 장비들도 기억과는 많이 다르군.”
[…….]방위군 반역사태에 협조할 당시, 레녹은 에이전트의 현장요원들과 함께 모의 훈련을 진행했던 것이 있다.
그 과정에서 기억하고 있던 작전 대형, 사용하는 장비들과 지금 레녹이 보고 있는 요원들의 모습은 같은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에이전트였다면, 이렇게 과격한 작전을 펼쳐가면서까지 카르텔과 척을 지려고 할 리도 없고. 그렇지 않나?”
발밑에 쓰러진 요원의 바이저를 벗겨낸 레녹이 물었다.
“우욱……!!”
의식을 차리자마자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속을 게워내는 요원의 모습.
레녹이 사용하는 뇌전은 단순히 물질을 불태우고 죽이는 데만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성질변화를 사용해 뇌전의 흐름을 만져주면, 신경계통에 간섭해 혼선을 일으키는 식으로 발현할 수 있다.
지금처럼 살상력을 죽이고 사람의 오감을 반쯤 짓뭉개버리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사용 가능했다.
“외부고문이라는 자리에 크게 미련은 없지만…… 팔라드 오콘에게는 개인적으로 빚을 졌지.”
“…….”
“맛이 간 놈들은 사흘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되찾을거다. 부상자를 데리고 돌아가라.”
레녹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그럼 개인적인 인연을 생각해 목숨 정도는 살려주지.”
“쿨럭, 크하악……!!”
방위군 반역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레녹은 팔라드 오콘이 그들을 위해 아주 많은 것들을 양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팔라드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월권행위를 수차례 저지르고, 필요한 모든 비용을 그쪽에서 감당하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레녹을 폐쇄구역들 중 하나인 6번 구역에 들여보내주었기 때문에, 카이세를 만나 또 다른 비밀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숨을 죽인 채, 토악질을 마친 요원이 게슴츠레한 눈빛을 들어 힘겹게 웃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겠습니다, 반 님.”
“…….”
“지금 에이전트를 지휘하는 건 오콘 부국장이 아닙니다. 반 님과 가까이 지내시던 마르시아 팀장님도 더는 계시지 않죠…….”
철컥!!
빠르게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든 요원이 레녹의 미간에 총신을 겨누며 말했다.
“비켜주십시오. 카르텔 본사의 회계장부만 손에 넣은 뒤에는 저희도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레녹의 앞에서 토악질을 해댄 것 자체가, 뇌전의 후유증을 빠르게 덜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나.
아무리 그렇다곤 하더라도 회복이 지나치게 빠르다. 틀림없이 이 중에서도 상당히 실력과 위계가 높은 초인이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걸 알면서도 자신의 미간에 겨눠진 총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을 설득해서 중재하려고 여기 있는게 아니다.”
“……허억?!”
파직……!!
요원의 등허리를 관통해 파고드는 한줄기 전광이,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척수를 파고들어 온몸을 무력화시킨다.
쿵!!
“방위군 사태 당시에도 에이전트에 재직했던 놈 같은데, 더 할 말이 없다면 자고 있어라.”
멍한 표정으로 다시 고꾸라진 요원을 두고 레녹은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광활한 지하공동의 천장에서 먹물지듯 새카만 우물이 열리는 듯한 광경.
“너 말고 다른 간부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군.”
쩌어억!!
그림자의 통로가 활짝 열리는 것과 동시에, 그 너머에서 떨어져 내릴 무언가를 레녹이 기다렸다.
하지만 통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기척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통로의 존재 자체가 눈속임. 이미 상대가 이 장소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닫고 레녹이 감각을 전환한 그 찰나의 순간.
레녹의 바로 옆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백발의 노인이 빛살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검을 뽑아 드는 순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신속의 참격.
어깨를 타고 솟아오른 거친 검극이 반원을 그리며 레녹의 몸을 쪼개 버릴 듯 솟구쳤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동시에 지하공동을 통째로 흔드는 거센 진동.
매개한 시멘트 먼지가 풀풀 날리면서 수십 명의 시야를 동시에 가려막는다.
흔들리는 먼지 사이로 노인의 웃음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토록 강력한 의념을 쉴 새 없이 내뿜는 상대가 대체 누구인가 싶었네만…….”
우우우우웅!!
먼지 너머에서 들려오는 철갑의 날갯소리.
동시에 울려 퍼진 거센 엔진음이 일대에 가득 들어찬 먼지를 싹 날려버리고, 금고 앞의 정경을 재차 드러낸다.
얇은 칼을 한 손으로 거머쥔 채 멈춰선 노인 오네일과, 그런 오네일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연초를 입에 문 마법사.
그런 레녹의 등허리에서 뻗어나온 철갑의 날개가 노인의 칼날을 정면에서 받아내 멈춰세우고 있다.
“아까 전의 강력한 뇌명, 이 저릿한 마력…… 자네가 바로 견뢰라 불리는 마법사였군.”
“처음보는 얼굴인데, 에이전트의 요원인가?”
레녹이 연초에 불을 붙이면서 힐끗 시선을 돌렸다.
철컥!!
동시에 철갑의 날개가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거대한 손의 형상으로 변해, 그 사이로 노인의 얼굴을 비추었다.
“본 특무기관의 외부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네. 어째서 우리의 작전을 방해하는 게지?”
“간부급 재원 같은데, 굳이 설명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
오네일의 말을 무시한 레녹이 간단하게 고갯짓했다.
“사정이 있어서 지하금고를 지키고 있다. 부리는 요원들을 데리고 물러나. 그럼 이쯤에서 그만두지.”
“으흠…….”
“내 말이 들리지 않나?”
“아니, 나도 막상 보니까 고민이 좀 되어서 말이야…… 조금만 시간을 주시게나.”
갈라진 날개 사이로 레녹을 유심히 응시하던 노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같은 조직의 외부고문을 어디까지 손봐줘도 되는지, 너무 오랜만에 현장에 나오니까 매뉴얼이 기억이 안 나는군.”
“그런가?”
레녹이 웃으며 손을 들어올린 그 순간, 갈라진 날개 안쪽에서 묵직한 엔진 시동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날개 뿌리부근 부터 급격하게 달아올라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치익!!
“그럼 일단 이걸 한번 받아보고 결정하는 걸 추천하지.”
“……뭐라?”
길레온의 철갑날개는 비행능력 뿐만 아니라, 공간간섭 능력을 크게 증폭시켜 주는 희귀한 능력을 지닌 아티팩트.
비록 한 쌍을 전부 손에 넣지는 못해, 편익의 형태로 달고 있을 뿐이지만 그 능력을 어느 정도 빌려오는 것은 가능하다.
작금의 공간도약 고유마법 투사 역시 그 결과물.
레녹은 철갑날개의 기능을 이용해, 공간에 개입하기 위한 새로운 응용법을 연달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쩌저적!!
레녹과 노인의 눈앞에서 금이 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공간의 정경.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유리창을 깨부수듯 갈라지는 그 모습에 노인의 표정이 살짝 굳은 그 순간.
와장창!!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긴 레녹이 그대로 그 균열을 박살 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