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31
약먹는 천재마법사 631화
설계자(4)
분명 마우저와 함께 화덕진군과 나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사실상 이야기에 진척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우저가 공방 뒤쪽에서 줄담배를 태우는 시간을 잠깐 기다렸다 돌아온 사이, 엘라바의 상태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제 감각과 힘을 조절하기 어려워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마우저의 조언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모습은 배움에 굶주린 학도와 같았다.
“저는 사람이 아예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쉽게 변하기 어려운 것이 성격과 습관의 문제인데…… 무슨 신묘한 비책을 쓰셨는지 정말 궁금하군요.”
그 말에 공방 한쪽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던 레녹이 힘없이 웃었다.
“가끔은 신묘한 해결책보다는 충격요법이 먹힐 때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충격요법 말입니까?”
“이론보다 정신론이 먹힐 때도 있는 법이죠. 운이 좋았습니다.”
따지자면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전뇌영역 이론과 논리에 입각한 해결책으로 일을 해결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우로보로스를 사용해 충격을 주고 시작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버트 역시 레녹이 그 잠깐 사이에 엘라바의 머릿속을 헤집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침묵하다 시선을 돌렸다.
“엘라바는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체질 때문에 엑스 마키나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자랐습니다.”
“…….”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공방에 정착하지 못하고 성년을 지나서까지 오랫동안 떠돌아다녔죠.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한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레녹이 조용히 대답했다.
이버트가 수긍했다.
“그렇지요. 그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이 도시에서는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 죄악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승님도 형님을…….”
무심코 수긍하던 이버트가 거기까지 말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머쓱한 기색으로 웃은 그가 외투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감사드립니다. 물론 엘라바의 체질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태에 호전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에게는 큰 축복이겠죠.”
공손한 이버트의 인사에 레녹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저 역시 매번 이런 일을 통해 나름의 의미를 얻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이버트가 레녹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질적인 대가와 형상만이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저도 그걸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군요.”
“…….,”
엘라바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프로그램 코드를 복제해 손에 넣었다는 말을 돌려 말했는데, 이버트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어째서 당신 같은 장인이 마이스터 선발식에서 보류 판정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다가올 소집일에는 제가 꼭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레녹은 그 뒤로도 기계도시 내부의 큰 행사나 이벤트를 화제로 이버트와 대화를 나누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엘라바와 이버트를 보내주었다.
“사흘 뒤에 있을 시정감사 때문에 당분간은 지상의 경계가 엄해질 겁니다. 이 시기에는 집행관들도 다소 예민해지니 형님도 조심하세요.”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칠 것처럼 말하는군. 너도 나시사를 닮아가는 거냐?”
퉁명스러운 마우저의 대꾸에 이버트는 웃어넘기고 엘라바와 함께 공방을 떠났다.
돌아가는 방향을 보면 레녹이 언급했던 대로 공방지구 근처 병원에 들리기라도 할 생각인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버트는 엘라바를 꽤 아끼고 있는 것 같았다.
“반, 이번 일에 대해 추가 보수를 더 청구하지 않아도 괜찮겠나? 이버트가 일단 보수를 계좌로 보내주기는 했지만, 원래라면 이것보다 더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마우저가 물었다.
“나시사의 공방에서 마이스터로 일하는 놈이다. 돈이야 많을 테니 굳이 배려할 필요는 없어.”
“괜찮습니다.”
마우저의 말에 레녹은 웃으며 주머니 끝에 손을 찔러넣었다.
“필요한 건 이미 손에 넣었으니까요.”
주머니 끝에서 손에 잡히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칩.
레녹은 칩의 저장공간에 코드를 복사해두고 휴대폰을 통해 프로그램의 정체를 확인했다.
휴대폰의 메모리가 부족해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프로그램의 기능이 모종의 잠금을 해제하는데 사용되는 코드라는 것은 틀림없다.
이버트의 말과 엘라바의 행적을 종합하면 바로 이것이 심성관의 문을 강제로 개방하는데 필요한 핵심 프로그램 코드겠지.
레녹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공방 문 앞에 놓여 있는 작은 박스를 집어 들었다.
“그건 뭔가?”
“사이버드 장인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한 물건입니다. 저번 일의 대가로 부탁한 물건인데, 생각보다 빨리 구해주셨군요.”
레녹이 대답하며 박스 포장을 그 자리에서 뜯었다.
박스 안쪽에는 먼지가 잔뜩 끼인 배터리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배터리 안쪽에 음각된 문양을 확인한 마우저가 살짝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울트라스 공방의 물건이군. 이제는 마키나 종심지구에서도 구하기 힘든 장물일 텐데.”
“사이버드 장인이 여러 방면으로 발이 넓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몰라서 부탁을 좀 했었죠.”
“으음…… 배터리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아.”
마우저가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중고품이군. 한참 사용되던 물건이야. 전력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배터리를 꼭 받아와야 할 이유가 있나?”
레녹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배터리를 꺼내 들어 매만졌다.
카이세의 회중시계. 그 아티팩트의 연료로 사용되던 울트라스 공방의 배터리가 바로 이 장물이었으니까.
기왕이면 아티팩트의 동력 수급 방식 자체를 바꿔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지만, 당장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배터리를 수급해서 카이세의 힘을 빌릴 수밖에.
“필요한 준비물은 얼추 구색을 갖췄군요.”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배터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남은 건 직접 확인해 보는 일 뿐입니다.”
* * *
쏴아아아!!
귓가를 맴도는 시원한 파도소리. 혀끝으로 희미한 짠내가 느껴질 만큼 선명한 바닷바람.
따개비가 잔뜩 붙어 있는 방파제 안쪽으로 바닷물이 부딪혀 흩어져 사그라든다.
머리위로 튀어오른 물방울이 마우저의 덥수룩한 수염 사이에 맺힌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빌어먹을, 너무 춥잖아!!”
버럭 소리를 지른 마우저가 저 멀리서 한참 바다를 살펴보고 있는 레녹에게 물었다.
“반, 이거 오늘 시도해도 괜찮은 것 맞지?!”
“이버트 관리인에게 엑스 마키나의 일정에 대해서 확답을 듣지 않았습니까.”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파제 끝에 선 채 바다 아래쪽에 감각을 뻗치던 레녹이 대꾸했다.
“오늘부터 이틀간 엑스 마키나가 주도하는 시정감사가 있고, 그쪽 행사를 위해 마키나 내부 정예병력 배치가 편중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쏴아아!!
파도 안쪽으로 마력감지를 깊게 뻗어서 조심스레 수온과 해류의 방향을 확인한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이 아니라면 해저장벽 근처를 혼자서 안전하게 탐사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겠지요. 날씨가 어떻든 시도는 해봐야 합니다.”
심성관에 정식으로 소집이 된 다음 구세계의 마총, 테레메르의 종언을 챙기려면 너무 늦다.
소집이 시작되기 전, 그러면서도 바다 쪽의 경계가 소홀해지는 얼마 되지 않는 이 기회를 통해 레녹은 홀로 해저장벽을 탐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이런 날씨에 시도했다가는 딱 바다 아래서 물고기밥이 되기 딱 좋을 것 같은데.”
마우저가 툴툴거렸다.
“어차피 내려가는 건 내가 아니니 더 이상 뭐라 하는 것도 이상하겠군.”
“이쪽 해역은 관계자 외 출입이 금지된 공장지구 근처라,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다시 들어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해안가 한쪽을 손짓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부탁을 두 번이나 할 수는 없겠죠.”
“…….”
해안가 한쪽에 늘어선 큼지막한 공장건물들 사이.
접이식 칼날을 한손에 쥔 남자가 이쪽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다.
레녹이 하급 공방지구에서 일할때 접이식 칼날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던 의뢰인.
해안가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의뢰인에게 레녹은 공장지구 바닷가에 들여보내 줄 수 있는지 문의를 했던 것이다.
물론 맨입으로 부탁을 한 것은 아니고 뒷돈을 찔러주긴 했지만, 출입이 어려운 공장지구 해역에 레녹을 몰래 들여 보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레녹은 저 멀리 보이는 의뢰인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환각의 장막을 펼쳐 곧바로 의뢰인의 눈을 속여버렸다.
“이걸로 저 남자의 눈에는 저희가 곧바로 바다를 구경하고 나가는 걸로 보이겠지요.”
“……철저하군. 나도 이대로 이제 돌아가보면 되겠나?”
“제 위치와 방향 위도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수신장비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 넉넉히 들어올 법한 작은 단말기를 마우저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걸 공방 안쪽 컴퓨터에 연결해서 정상적으로 데이터가 출력되는지 확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직접 바다 안쪽으로 들어갈 생각이면서, 또 데이터를 따로 뽑아두려고?”
“만약 마키나의 해저장벽이 공간왜곡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면, 왜곡된 공간 안팎에서 동시에 데이터를 추출해 비교해야 합니다.”
레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공간의 왜곡률을 계산해서 장벽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을 테니까요.”
“해저장벽 자체가 공간왜곡을 통해 유지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단 말인가?”
“생각이 아니라 거의 틀림없을겁니다.”
마우저의 놀란 표정을 돌아보며 레녹이 외투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소매 사이로 새카만 그림자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밤까마귀의 형상이 솟아올라 가볍게 해안가에 발을 내디뎠다.
철컥!!
강철의 날개를 펄럭이는 밤까마귀의 형상에 살짝 움츠러든 마우저를 돌아보며 레녹이 말했다.
“기계도시와 같은 규모가 큰 대도시에서 분기마자 구역의 위치를 바꾸고, 장벽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설계만으로는 불가능할 테니까요.”
“…….”
“나시사 장인은 제 공방을 상급 공방지구로 이전시키면서 장벽의 하중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장벽의 면적이나 위치에 대해서는 일체 문제 삼지 않았죠.”
“으음…….”
“장벽의 물리적인 크기나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해저장벽 아래쪽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마키나 각 구역을 나누고 구분하는 강철의 장벽은 그 크기만 수십미터, 두께는 수 미터를 가뿐하게 넘기는 거대한 철덩어리다.
그런 장벽을 매 분기마다 옮기고 이동시켜 새롭게 구역을 나누고 정의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금속을 옮기고 이동시켜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나 원자재는 대체 얼마나 될까.
비상식적인 수준을 넘어, 획기적으로 소모값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게 아니고서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렇기에 레녹은 마키나에서 기계장벽을 이동시키는 기술이 반드시 공간압축과 왜곡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공방에서 저를 납치히려 들었던 사이드스쿼드 요원은 제가 밤까마귀를 통해 공간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쏴아아아!!
밤까마귀가 서슴없이 해안가를 성큼성큼 걸어 두 다리를 바닷물에 담근 순간, 레녹도 목에 걸고 있던 고글을 얼굴 위로 올려 썼다.
“그건 아마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은 공간이 변질될 때 어떤 식으로 현실이 어그러지는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이미 그 순간부터 기계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추측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물론 이 모든 말들은 직접 해저장벽 근처로 들어가보는게 아닌 이상 확인하기 어려운 것뿐이지만…….”
외투를 벗고 어깨와 가슴을 가볍게 두들기며 수인을 맺은 순간, 레녹의 복장이 살짝 달라붙는 슈트 형태로 변했다.
이제부터 감당해야 할 수압의 힘에서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잠수복.
마지막으로 준비를 마친 레녹이 손목을 걷어 미리 준비한 태블릿 시계를 착용하며 말했다.
“적어도 오늘 안에 무언가 성과를 낼 수는 있을 겁니다.”
삐빅!!
시계 화면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레이더와, 그를 따라 이동하는 광원의 형상.
레녹이 테레메르의 종언에 부착해둔 펜터렉트의 마력을 바다 속에서 추적하기 위해 만들어둔 장비다.
기계도시 마키나에서도 가장 비밀스럽고 어두운 해저장벽 아래 존재하는 유물금고.
심성관에 들어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