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56
약먹는 천재마법사 756화
일인극(8)
클라리스와 만나 여러 가지 대화를 주고받은 다음 날.
레녹은 개인 연구실 작업대 위에 놓아둔 물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두개의 유리병 안쪽에서 회오리치는 황금빛의 액체.
클라리스를 통해 아리스가 레녹에게 선물해 준 두 병의 엘릭서.
한 병은 자신을 위해, 다른 한 병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라고 했던가.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복용하는 대신, 어제부터 하루 종일 엘릭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탑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 레녹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선의.
하지만 레녹이 이렇게 망설이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엘릭서라…….”
클라리스는 아리스가 구세계의 문헌을 참고해 이 영약의 이름을 만들었다고 했다.
구세계의 문헌이란 레녹이 알고 있는 WORLD 1.0과 WORLD 2.0의 흔적이나 기록을 의미하는 것일 터.
문제는 레녹이 알고 있는 [엘릭서]라는 단어의 의미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었다.
‘WORLD 1.0과 2.0에서 엘릭서는 각자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었어.’
영약병 안에서 회전하는 황금빛의 빛무리를 바라보며 레녹이 생각했다.
‘한쪽은 회복능력 쪽이었고, 다른 한쪽은 좀 특이한 능력이 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
엘릭서 자체가 WORLD에서 극히 희귀한 아이템이었기에, 레녹도 실물을 본 기억이 많지 않다.
단지 두 세계 모두 회복에 치우친 특성이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정도.
그렇기에 레녹은 아리스의 엘릭서를 손에 넣은 뒤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리스가 구세계의 엘릭서를 재현했다 해도, 그것이 WORLD 1.0과 2.0 중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설령 알아내더라도, 그것이 현재 레녹의 상태나 페널티를 호전시킬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
‘클라리스는 엘릭서의 이름이 중의적인 의미로 지어졌다고 말했다. 그건 양쪽의 사례를 참고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자면 엘릭서이자 엘릭서가 아닌 영약이기에 중의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말.
WORLD에서 엘릭서와 같은 최상급의 소모성 아티팩트는 제조방식이 난해할 뿐만 아니라, 날씨, 환경, 시기까지도 고려해 제작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제작 자체가 구세계의 자연환경과 물리법칙에 의존하는 물건.
그렇기에 레녹 역시 연금술을 손에 넣고도 구세계의 최상급 영약들을 제조하는 일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는데 난도가 너무 높을뿐더러, 제작환경을 맞추기도 어렵고 그 모든 전제조건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하지만 아리스 역시 구세계의 제작방식을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었을 터.
그럼에도 이 영약에 엘릭서라는 이름을 붙인 의미.
그건 역시 아리스 리첼렌이 성위의 경지에 오르며 손에 넣은 근원심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연구실 벽면에 매달린 거대한 기계장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 됐군.”
치익!!
벽면 한쪽에 매달린 거대한 용기에 희석액을 가득 부어놓고, 차례대로 소분한다.
자동화기계가 수십 개의 포션병에 희석액을 일정한 용량 채워 넣고 가지런히 도열.
찰칵!!
깔끔하게 정리된 케이스 안에 포션병을 나란히 채워 넣는 사이, 레녹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엘릭서 원액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용기 안에 조심스럽게 원액을 절반 정도 덜어 넣는다.
용기 안에 보존된 희석액에 섞인 엘릭서가 소분장치를 타고 수십 개의 포션병 안쪽으로 주입.
미리 한 방울씩 나눠 담은 엘릭서 방울 위로 포션이 떨어지며 원액을 희석시켰다.
똑, 똑, 똑.
레녹이 연구실에서 진행하고 있던 작업은 단순히 엘릭서의 성분 분석만이 아니었다.
아리스가 선물해 준 두 병의 엘릭서 중 한 병을 희석시켜, 약효를 열화시키는 대신 양을 늘리는 일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다.
작업대 위에 올라타 꼬리를 둘둘 말고 지켜보던 다비가 기가 막힌 기색으로 물었다.
[그런 식으로 사용하라고 선물을 준게 아닐 것 같은데요…….]“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라는 말이, 꼭 몇 명을 정해두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
고개를 기울인 채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레녹이 말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원액이 아까워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야.”
[…….]대답이 없는 정령을 두고 작업을 끝낸 레녹이 허리를 펴며 작업대 위를 빠르게 정리했다.
“대충 소분이 끝났군. 이제 보관함에 결계를 치고 보존마법을 걸어두면…….”
레녹 자신을 위한 원액 한 병.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엘릭서 희석액 세트.
물론 그 ‘다른 사람들’ 중에 레녹이 종종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아리스 역시 엘릭서를 레녹에게 선물해주면서 그 용도까지 까다롭게 따지려 들지는 않겠지.
[그렇게까지 원액을 아끼려는 마스터의 집념이 오히려 더 대단하게 느껴지네요.]“자꾸 은근슬쩍 놀릴 거면, 이 결과물을 가장 먼저 시음하게 해주지.”
[헷.]숨을 삼키고 필사적으로 딴청을 피우는 다비를 두고 레녹이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당연히 내가 먼저 복용해 볼 생각이니까.”
[……죽으면 안 돼요?]“물론이지. 소분하는 과정에서 독성 테스트도 끝냈어. 555중의 유해성 기준을 통과했으니 아마…….”
[아마?]“……아마, 생명에 큰 지장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논리적인 추론에 따라 결론을 내려도 이론상의 문제는 없을 것 같군.”
“…….”
뼈를 찌르는 일침에 레녹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엘릭서라는 영험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약의 효능이 어느 쪽일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
게다가 제약과 제조에 조예가 없는 아리스가 만들어낸 영약이기에 불안감이 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리스를 신뢰하지만, 레녹이 기억하는 그녀의 손재주를 생각하면 믿음이 살짝 흔들리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말없이 투명한 황금빛으로 흔들리는 약병 입구를 바라보던 레녹이,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 바로 복용하는 건 조금 이른 것 같군.”
[역시 그렇죠?]“그래도 실험을 해볼 정도의 여유는 충분해. 애초에 소분을 한 이유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연구실 창가에 있는 화분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마력을 흡수해 생장을 촉진시키는 성질이 있어, 말려서 빻으면 마법진의 구성재료로도 사용되는 식물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해하지 않고, 관상용으로도 나쁘지 않아 옥션에서 사들여 놓았던 화분.
레녹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엘릭서 희석액을 천천히 화분에 들이부었다.
[……꿀꺽.]한껏 긴장한 기색으로 옆에서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 채 바라보는 다비의 모습.
이윽고 희색액을 흡수한 식물에게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치이익……!!
[시, 심상찮은 소리가 나는데요!]“침착해. 아직 살아 있으니까.”
기이한 소음을 내며 그 자리에서 희미하게 요동치는 식물의 모습.
레녹과 다비가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로 유심히 그 변화를 지켜보는 사이.
부르르 떨던 나뭇잎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뚝 멈춰 버렸다.
“…….”
다비가 중얼거리는 사이, 레녹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아리스라면 이런 효능을 위해 약을 주지는 않겠지. 희석시키면 약효가 발현되지 않는 타입이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럼 우리는 지금 쓸데없이 그 유기체가 준 영약 희석액을 하나 낭비한 건가요?]“……아니. 그럴 리는 없을 거다.”
레녹은 아리스 리첼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책임을 지고, 그 말과 행동에 더할 나위 없는 무게를 부여하는 사람.
무언가를 책임지고 다른 이의 짐을 나눠 갖는 일에 망설이지 않는 성정.
약속의 무게와 중함을 알고, 그것을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없이 엄격하게 요구하는 사람이다.
아리스가 레녹에게 약속했던 안식년이 한참 지난 이 시점에서, 그녀가 느끼는 책임이 얼마나 무거울지는 자명하다.
그 시간만큼이나 완벽한 결과물을 보내야 한다고 분명 생각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이렇게 레녹에게 그 결실을 선물해 줄 정도라면, 틀림없이 그녀가 생각하는 기준을 만족시킨 물건이겠지.
고작 몇 번의 희석 따위로 약효가 흐려지거나 약해질 리는 없다.
엘릭서 한 병을 곧바로 희석시켜 양을 늘린 것은, 레녹이 지닌 아리스에 대한 신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하지 못한 발동 조건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일단 자리를 옮겨서 성분 분석을-”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화분을 양손으로 들어 올린 그 순간.
파삭!!
화분 밑동이 그대로 깨지며 식물의 뿌리가 빠르게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레녹의 양손에 들어왔던 식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더니, 연구실의 천장을 찌를 만큼 거대해졌다.
쿠웅!!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레녹이 손을 놓자, 한껏 거대해진 뿌리가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파사사삭!!
사방으로 뻗어나간 식물이 그 자리에서 거대한 나무의 형상이 된다.
머리 위로 뻗어나간 가지 위에 올라탄 다비가 황당한 기색으로 레녹을 바라보았다.
[이건 오히려 너무 나갔는데요?]“…….”
[혹시 이 식물이 우리 말을 듣고 있기라도 한 건 아니겠죠?]“그럴 리가. 따지자면 약효가 조금 늦게 드는 타입이라 봐야겠지.”
연구실 중앙 작업대를 메우고 퍼져나가는 잎사귀와 뿌리를 피해 물러선 레녹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건 별로 좋지 않은데…… 오히려 이런 식이면 써먹기 어려워.”
[약효로 강제로 생장을 촉진시킬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요?]“꼭 그런 건 아니야. 이런 식으로 생장이 이뤄지는 것 자체가, 약효가 통제되지 않는다는 증거니까. 봐라.”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발아래로 뻗친 뿌리를 가리켰다.
성장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뿌리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
쩌저적……!!
뿌리 끝단부터 빠르게 바스러지며, 마디마디가 떨어져 나간다. 잎사귀가 시들어 생기를 잃고, 푸르른 줄기가 노랗게 변해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 왕성하게 뿌리를 뻗으며 자라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빠르게 말라 죽어가는 식물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강제로 성장한 만큼의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그 반동으로 빠르게 죽어버리는 거다.”
[이건…….]“약효의 효능 자체는 상태 촉진에 집중되어 있고, 유지하기 위한 반동은 외부에 떠넘기는 식이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약병을 유심히 들어올렸다.
“식물에게서 보인 생장과 반동을 생각하면, 역시 기존에 알고 있던 엘릭서의 효능을 구현하려 한 물건인가?”
[수백 번 희석시킨 용액으로 이 정도 효능인데, 원액을 복용하면 큰일 나겠는데요.]다비가 레녹의 머리 위에 올라타며 중얼거렸지만, 레녹은 고개를 저었다.
“식물의 뿌리에 직접 흡수시켰으니 반동이 강하게 오는 것도 당연하지. 음용하면 이것보다는 훨씬 안정적일 거다.”
하지만 레녹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의문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직접 마셔보지 않고서는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레녹이 곧바로 작업대 위에 놓아둔 희석액 약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심장마비를 대비한 전기충격 준비완료. 응급구조대 호출 준비도 끝났어요!]“…….”
폴짝폴짝 뛰며 호들갑을 떠는 다비를 무시한 레녹이, 그대로 눈을 감고 희석액을 입에 털어 넣었다.
청량하면서도 달짝지근하게 느껴지는 맛. 묘하게 먹고 나서 맛을 기억하기 어렵다.
무심코 한 병 더 먹어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레녹이 빠르게 체내 상태를 확인했다.
확실히 음용을 통해 복용하니, 레녹이 실험했던 식물처럼 폭발적인 반응이나 징조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희석액 특유의 묘한 밍밍함과 함께, 영약이 체내에서 가볍게 순환하는 것만이 느껴질 뿐.
온몸의 감각이 날카롭게 일어서며 마력회전 속도가 빨라진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며 체온이 빠르게 높아지고 피부가 달아오르는 듯했다.
그 상태로 마력을 돌리면서 컨디션을 점검한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회복제는 아니야. 오히려 각성제나 도핑제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겠군.”
체내 신진대사를 강제로 촉진시키며 회복력이 빨라질 수는 있겠지만 엘릭서의 효능은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희석된 엘릭서 영약을 통해 레녹이 알 수 있는 것은, 이 영약을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각성제로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
레녹이 사용하는 진통제나 각성제와 비슷한 효과를 지니면서도, 챙겨주어야 하는 것은 복용 뒤 필요한 영양분을 빠르게 공급하는 것뿐이다.
아마 지금까지 사용했던 각성제와 비교하면 단연코 가장 부작용이 적고 안전한 약물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만으로 엘릭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조금 그 약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자명하다.
아리스가 레녹에게 이 영약을 선물하며 기대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다비는 그 육신에서 다른 것을 관측한 것 같았다.
[마스터. 지금 연구실의 성분분석장치로 마스터의 몸을 관찰하고 있거든요?]다비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영약을 복용한 직후부터 뭔가 좀 상태가 이상한데요.]“뭐?”
레녹이 그 말에 물끄러미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체온이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다비의 말대로 무언가 이상이 생기거나 변한 점은 거의 없다.
곰곰히 생각하던 레녹이 굳이 느껴지는 불편함이나 문제점을 생각해 냈다.
“굳이 따지자면 복용 직후부터 살짝 배가 고프기는 하군.”
[……아니, 그런 건 아니라구요.]다비가 황당하다는 듯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애초에 성분분석장치 따위로 마스터의 위장을 투시해 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그럼 어떤 부분에서 이상이 생겼다는 말이지?”
이 세계에서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레녹은 자신의 몸 상태에 극도로 예민하게 신경을 써왔다.
꾸준히 노력과 시행착오를 병행해가며 관리해 온 지금에 와서는 아주 사소한 문제점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그런 레녹 자신의 감각으로도 느낄 수 없는 문제가, 연구실의 성분분석장치로 보인다는 말인가.
다비의 말대로 분석장치가 레녹의 저항능력을 뚫고 그의 상태를 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일 터.
레녹이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걸음을 옮긴 사이, 다비가 분석장치 스크린을 앞발로 가리켰다.
[이쪽 시간대 로그를 확인해 보면 마스터의 마력량에 아예 변동이 없는 구간이 있어요.]“…….”
[원래 마력량 측정은 불가능해도, 그 변동치 자체는 그래프를 통해서 추정할 수 있었잖아요?]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용 직후에 추정조차 되지 않는 구간이 있던 것 같은데요. 그래서인지 마스터를 아예 무생물로 인식하고 있어요.]그 말대로, 성분분석장치는 대상의 보유마력과 그 변동치를 추정하는 그래프를 동시에 띄워 보여준다.
그럼에도 레녹을 비추는 마력량의 변동 그래프가, 아예 평탄한 수직선을 그리는 구간이 있었던 것.
마력을 소모하거나 축적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마력량 자체가 외부에 고정되어 관측되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
레녹이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물었다.
“다비, 아까 그 식물의 보존마력 변동량은 어땠지?”
[방금 그쪽 로그를 뒤져봤는데, 마스터랑 똑같아요. 희석액 주입 직후 마력량 관측이 아예 되지 않는 시간대가 있어요.]마력을 매개로 생장을 촉진시키는 식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도, 정작 그 마력량에 변동이 없는 구간이 있다.
“그렇군…….”
흥미로운 기색으로 뚫어져라 그래프를 바라보던 레녹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아리스가 준 엘릭서의 비밀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어.”
장치에서 떨어진 레녹이 곧바로 작업대에서 엘릭서 희석액을 한 병 더 복용했다.
온 몸의 감각이 빠르게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 순간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을 영창.
[알파 라이트]파아아앗!!
눈부신 광원이 순식간에 연구실의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퍼져 나왔다.
다비가 투덜대며 앞발로 제 눈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광원.
하지만 레녹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달아서 똑같은 마법을 그 자리에 계속해서 영창하기 시작했다.
[알파 라이트] [알파 라이트] [알파 라이트]……
파바바바바밧!!
연구실 사방에 눈부신 빛으로 물들어,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만큼 밝아졌다.
마치 거대한 빛무리 사이에 파묻혀 흘러가고 있는 듯한 환상이 들 정도.
하지만 레녹은 그런 주변의 환경을 무시하고 오직 마력량을 확인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마력량에 변동이 없다.’
공용마법 중에서도 연비가 아주 나쁜 알파 라이트를 연속으로 영창했음에도, 마력의 소모가 발생하지 않은 시점이 있다.
그제서야 비로소 엘릭서의 능력을 이해한 레녹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복용을 통한 각성과 촉진 자체는 부가적인 효과였어. 진짜 효능은 다른 곳에 있었군.”
엘릭서를 복용한 직후 마법을 사용했다면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상태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느라 오히려 알아차리지 못했다.
분석장치가 레녹의 마력 변동치를 관측하지 못한 이유.
레녹조차도 처음에는 엘릭서의 진짜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원인.
단순히 엘릭서가 레녹의 마력을 숨겨주거나 가려주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법을 사용하거나, 마력을 대량으로 추출해도 보유마력 자체가 그대로 보존되는 힘.
“마력 소모 여부에 관계없이 보유마력량을 보존시켜주는 힘이라…… 아리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물건을 만들었군.”
아리스가 제조한 엘릭서는, 말 그대로 레녹의 마력량을 잠깐 동안 ‘고정’시켜 주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