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55
약먹는 천재마법사 755화
일인극(7)
제니의 술집.
마탑과 대학간의 협약이 체결된 뒤로, 반이 머무르는 술집에도 사람이 미친 듯이 몰리고 있다.
의뢰에 관심이 없는 이들까지도 술집에 방문하며 매상이 폭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오늘은 안타레스 용병단의 단원들이 직접 나서 술집으로 향하는 길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개인장비를 든 채로 말없이 인파를 막아선 용병들의 모습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얌전히 발걸음을 돌린다.
간혹 냄새를 맡은 이들이 간을 보듯 술집 주변을 기웃거렸지만, 정문을 지키고 선 새머리거인을 마주하고 금방 사라질 뿐.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와는 별개로, 손해만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용병들 사이로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마법사의 모습.
용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술집 로비에 들어온 레녹이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제니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반, 이쪽이야.”
“제니.”
제니는 곧바로 레녹을 술집 옆에 위치한 회사 빌딩 쪽으로 안내했다.
“중요한 일 같아서, 일단 술집으로 시선을 끌고 약속 장소는 다른 곳으로 빼놨어.”
“……블러핑을 칠 필요까지는 없을텐데.”
용병들을 움직여서 술집에 시선이 쏠리게 만든 뒤, 정작 싱클레어 마탑의 마법사는 다른 곳에 안내해 두었다는 말인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최대한 안전을 기하려는 태도가 꽤 인상적이지만.
아마 그건 단순히 레녹의 지인일 것 같다는 어렴풋한 추측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주 강력한 마법사야. 난 잠깐 옆에서 대화를 나눠본 게 전부였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빌딩 최상층으로 안내하는 제니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 있었다.
“타티아나나 펠릭스와도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 조심해야 할지도 몰라.”
“…….”
아리스 리첼렌의 스승이라 자신을 소개했다면, 분명 성위급 이상의 위계를 손에 넣은 고위 마법사겠지.
그럼에도 펠릭스나 타티아나와 같은 동급의 초인과는 다른 무언가를 제니가 느꼈다는 말인가.
꽤 막연하게 느껴지는 조언이었지만, 레녹은 제니의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다.
“기억해 두지.”
브로커로서 오랫동안 일해온 제니의 안목과 직관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물며 우로보로스 마법체계의 기초를 익힌 제니라면, 다른 마법사를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실제로 지금 이곳을 찾은 싱클레어 마탑의 마법사가 평범한 인물이 아닐 가능성은 무척이나 높았다.
삐빅!!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벽면이 통유리로 된 드넓은 복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복도를 지나 끝에 위치한 집무실의 문을 잡은 제니가 레녹에게 눈짓하고.
곧바로 문을 연 뒤 슬쩍 뒤로 물러섰다.
끼릭!!
열린 문 너머로 들어서자, 햇살이 쏟아지는 집무실 아래 누군가 찻잔을 기울이는 것이 보였다.
빛이 바랜 백금발을 곱게 틀어올린 여성. 새하얀 숄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담담한 얼굴. 나이를 짐작케 어려운 묘한 분위기.
의자 옆으로 돌아 앉은 채 조용히 잔을 매만지는 그 모습은, 레녹이 알고 있는 어떤 마법사와도 조금 흡사해 보였다.
문을 열고 나타난 레녹을 힐끗 바라본 여성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견뢰? 그 흉험한 마력을 보니 확실하겠군요.”
“…….”
“클라리스 리첼렌이라고 해요.”
그녀는 무표정한 레녹의 얼굴을 보고도 여유를 잃지 않은 채, 빙그레 웃었다.
“위계를 초월한 대종사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에요. 일단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하지만 레녹은 그런 클라리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지팡이를 짚은 채 서서, 그녀의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을 뿐.
잠시 고민하던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제니가 왜 그쪽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군.”
“아직 자기 소개를 할-”
“당신, 인간이 아닌 건가?”
“…….”
침묵하는 클라리스를 두고 레녹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마력흐름과 패턴이 내가 아는 어떤 생명종과도 다르군. 인간과 신체구조가 다르다기보다, 아예 아인종조차도 아닌 것 같은데…….”
수인종이나 거인종과 같은, 인간과 유사한 아인종은 어느 정도 통일된 마력흐름과 패턴을 보유하곤 한다.
그건 그들의 본질 역시 인간과 큰 범주에서는 같은 의미로 묶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하지만 지금 레녹의 눈앞에 앉아 있는 클라리스 리첼렌의 마력은, 그런 아인종의 범주와도 완전히 달랐다.
인간종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기보다도, 아예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마력흐름을 상시 몸에 두르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레녹은 어떤 생명종이 이런 방식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본체를 따로 보유하고 있고, 의사소통을 위한 정신체를 따로 운용하는 괴물들이 간혹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진둔이나 편람 같은 초월자. 혹은 기계도시의 마스터마인드처럼 규격 외의 재능을 보유한 괴물들.
인간종이 아니면서도 이런 방식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생명종이 이 대륙에 얼마나 있을까.
“인간이 아니면서 따로 본체를 보유한 생명종이라고 한다면-”
레녹이 물었다.
“그쪽이 바로 쿤다라에 기거하는 장생종들 중 하나인가?”
“…….”
놀란 기색으로 레녹을 바라보던 클라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스가 당신에 대해 극찬하던 이유가 있었군요. 대마법사라고 해도, 이 정도로 방대한 식견을 가진 술사는 극소수에 불과하건만.”
“…….”
“평범한 인간보다 꽤 오래 살아왔죠. 궁금하다면, 일단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아니. 용건부터 듣지.”
레녹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 아주 바쁘다. 싱클레어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할 가치가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겠군.”
아리스 리첼렌과 같은 성씨를 사용하는 클라리스의 등장.
지금껏 일언반구도 없던 싱클레어 마탑 관계자의 방문.
하지만 레녹은 그들의 방문 때문에 흔들려서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레녹이 개인적으로 빚을 졌다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리스 리첼렌의 일뿐.
신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에반을 자신의 연구실에 거둬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던 그녀에 대한 일뿐이다.
아리스 본인이 직접 엮여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그녀의 스승이라 하더라도 굳이 손을 거들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물며 그녀가 레녹이 세운 마탑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라면 더더욱.
“이해해요. 요즘 발칸이 많이 부산스럽다 들었거든요. 다 그쪽이 새로 세운 마탑 때문이라죠?”
하지만 클라리스는 그런 레녹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과 제휴나 협력 사업을 요구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요. 애초에 아리스에게 듣기로는-”
클라리스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순간 짙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
레녹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방문을 닫았다.
클라리스 맞은편에 기대앉은 사이, 찻잔을 집어든 클라리스가 즐거운 기색으로 말했다.
“아, 이 차는 무척 맛있네요. 그쪽 동업자에게 실력이 정말 좋다고 나중에라도 전해주시겠어요?”
“아리스 리첼렌에 대한 일인가?”
입을 다문 클라리스를 보며 레녹이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아니, 질문이 잘못됐군.”
레녹이 가볍게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 말했다.
“어디까지 알아야 하지?”
“…….”
그 순간, 시종일관 미소짓던 클라리스의 안색이 살짝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희미한 호선을 그리던 입꼬리가 내려앉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그녀의 인상이 달라졌다.
단정하고 엄격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랜 시간 그 힘을 보존해 온 마법사의 기세.
“싱클레어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성을 가르친 제자에게 물려주는 오랜 관습을 가지고 있죠.”
말없이 반쯤 빈 술잔을 바라보던 클라리스가 말했다.
“그건 이 대륙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해 온 마법의 규율. 이기적이기 쉬운 마법사들이, 유일하게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대상임을 증명하는 수단이죠.”
“…….”
“저도 아리스가 하려는 일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클라리스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소망에 응원과 조언을 건네주는 것뿐. 무관심조차 배려의 일환이라면, 못난 스승으로서 능히 감내해야겠죠.”
“그래서,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모르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말하고 싶은 건가?”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몰라요.”
클라리스가 대답했다.
“정체와 목적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아리스에게 들은 건 없으니까.”
“…….”
“다만 아리스가 교수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마탑에 틀어박혀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당신 때문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레녹을 바라보는 클라리스의 눈동자가 강하게 빛났다.
“견뢰. 당신은 제가 사랑하는 제자의 남은 시간과 맞바꿀 만한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침묵이 흘렀다.
클라리스가 하는 말의 의미를 레녹도 곧바로 이해했기 때문.
아리스 리첼렌이 안식년을 선언하고 마탑으로 돌아간 이유가, 그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어쩌면 그 행동 자체가 레녹과 깊게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도.
하지만 아리스가, 설마 그때부터 레녹의 비밀을 알고-
“뭔가 착각하고 있군.”
그것을 깨달은 레녹의 표정이 한없이 싸늘하게 변했다.
“내가 고작 성위마법사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나?”
“…….”
“이상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돌아가서 확실하게 말해두는 게 좋겠군.”
살짝 마력을 끌어올려 검지로 테이블을 두들긴 레녹이 말했다.
아리스 리첼렌의 남은 시간을, 레녹과 맞바꾼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적어도 레녹은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여분을 늘릴 생각은 결코 없었다.
그건 레녹이 바라는 대답이 아니다.
레녹이 생각하는 존속에 대한 올바른 방법 따위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를 위해 두 사람의 시간이 비틀려야 한다면 차라리 밀어내는 편이 낫겠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마력을 일으켜 클라리스를 찍어누르려던 그 순간.
“거친 말로 호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도 아리스가 무너질 때까지 내버려 둘 생각은 없으니까.”
클라리스가 웃으며 품 안에 손을 뻗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내놓은 결론이 그뿐이라면, 당신을 만나러 오는 일도 없었겠죠.”
“……그거야말로 웃기지도 않는 대답이군.”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서, 지금 내 반응을 떠봤다고 지껄이기라도 할 셈인가?”
쿠구구구……!!
이번에야말로 짜증이 난 레녹의 의념이 클라리스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 심상치 않은 중압감에 클라리스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설마 의념의 강도가 이 정도로 실체화되어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듯한 반응.
“아무래도 제 말의 의미를 오해한 모양이군요. 제가 말했던 남은 시간에 대한 말은…….”
하지만 클라리스는 차분하게 그 압박을 버텨내며, 천천히 품 안에서 꺼낸 물건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바로 이 물건을 만들기 위해 아리스가 매달린 시간에 대한 말이었어요.”
탁!
손가락만 한 작은 약병 두 개.
투명한 금빛으로 빛나는 액체가 그 안에 가득 차 있다.
그 안에서 회오리치는 마력의 농도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레녹조차 순간 그 용도와 정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
그제서야 레녹은 클라리스가 지금까지 했던 말의 저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레녹과 아리스의 관계.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에 대해 다분히 간접적으로 생각을 묻던 그 태도.
아리스 리첼렌이 직접 만들어낸 영약. 클라리스는 처음부터 이것을 전해주기 위해서 레녹을 직접 찾아왔던 것이다.
“아리스가 연구 끝에 손에 넣은 힘에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어요.”
침묵하는 레녹을 향해 천천히 약병을 밀어낸 클라리스가 말했다.
“아직 세간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이제부터라도 최대한 그 여파를 대비하려 하고 있죠.”
“……·.”
“이 영약은, 그런 아리스가 자신의 깨달음과 영감을 물질적인 형태로 녹여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한 결과물이에요.”
“시행착오라…….”
천천히 약병을 집어 든 레녹이, 그 안에서 회오리치는 황금빛의 액체를 바라보았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마력이 트이는 듯한 아름다운 나선의 소용돌이.
아리스가 사용하는 수류계열 고유마법의 묘리를 여기에 담았을까.
그 익숙한 형상조차 이제는 오래된 도서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클라리스는 그런 레녹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해,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 하더군요.”
“…….”
레녹은 그 말을 듣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전언이야말로 레녹이 기억하는 아리스를 생각나게 만들었으니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선성에 끌렸고, 그렇기에 멀리하려 했다.
그녀의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기 전에 먼저 떠났어야 했는데.
미처 잘라내지 못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 레녹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제약에 조예가 없던 아리스가, 이런 물건을 만들어 건네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지.
눈앞에 없는데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외려 떠올리기 어렵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레녹이 중얼거렸다.
“나는…….”
레녹이 말없이 약병을 쥔 손에 힘을 주는 사이, 클라리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부탁받은 일은 이게 전부군요.”
담담한 시선으로 레녹을 내려다보며 클라리스가 말했다.
“그쪽이 하려는 일이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건승을 빌어요.”
“…….”
“아리스 역시 그것을 알고 있으니, 이렇게 간절하게 당신을 도와주려 하고 있는 거니까.”
클라리스가 방을 나서려 문고리를 잡은 채로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저는 며칠간 발칸 근처에서 오랜 지인들을 만날 생각이에요. 혹시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을 붙여주지.”
고개를 숙인 채로 레녹이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직접 와서 이야기해라.”
“꼭 그렇게까지는…….”
클라리스가 그렇게 말하다, 이내 곤란한 듯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하나만 더.”
레녹이 약병을 품 안에 넣으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아리스 리첼렌은 이 물건을 뭐라고 불렀지?”
“구세계의 문헌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했어요. 다소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 아이는 이렇게 부르더군요.”
클라리스가 말했다.
“엘릭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