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77
약먹는 천재마법사 777화
유령기행(3)
찰박, 찰박!!
습기 찬 늪지대를 내달리는 거대한 벌레의 모습.
가느다란 다리 여러 개가 바쁘게 오가며, 소금쟁이가 호수 위를 밟고 이동하듯 늪지대를 미끄러진다.
벌레의 배 아래로는 포대기처럼 생긴 짐칸이 매달려 있고, 그 안에 십수 명의 사람들이 타 있었다.
거칠게 흔들리는 포대기 안에서 경계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동승자들.
레녹은 그사이에 섞여 포대기에 몸을 기댄 채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림자 로브를 푹 뒤집어쓴 채, 한 손으로는 파프리카 샌드위치를 우물거린다.
‘늪지대를 건너 헤드레인 강 상류에 도착하면 준비는 끝이군.’
열차에서 내린 레녹은 어렵지 않게 목적지로 예정되었던 늪지대에 도착, 인근에 마련된 이동수단을 찾아 탑승할 수 있었다.
늪은 철로가 연결되지 않아 독특한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듣긴 했지만, 살아 있는 소금쟁이를 타는 경험은 레녹도 처음인 바.
덕분에 잠시 이동시간에 여유가 생겨 앞으로의 여정을 점검할 시간이 생겼다.
물론 그 전에 열차에서 레녹의 반지를 빼앗으려 했던 승객들을 심문하는 사소한 소란이 있었으나,
인도자의 유령이 다른 유령을 잡아먹은 뒤로 벌어진 일들은 당연한 결과였을 뿐.
적어도 레녹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댄 사람을 곱게 보내줄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강을 건너야 하는지 정하지 못했다는 점인데…….’
같은 객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심문해서, 강을 건널 몇 가지 방법을 전해 들은 상황.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요르타로 진입하기 수월할지는 레녹도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헤드레인 강에 대한 정보가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터라, 군령도시를 오가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으로만 정보가 전달되어 왔기 때문.
결국 직접 헤드레인 강을 확인하고, 물질계와 영계 양쪽을 통과하는 ‘검문’을 받아봐야 짐작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음…….”
이리저리 흔들리는 포대기 사이에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기댄다.
멀미약을 복용했음에도 소금쟁이가 이동할 때마다 흔들리는 진동에 속이 울렁거릴 지경.
평소에는 마법으로 때우는 사소한 불편함조차, 이럴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느껴진다.
레녹이 일상생활을 공용마법의 범용성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종종 실감하게 되는 시간.
그렇기에 이 의미 자체를 논문의 형태로 담아 발표하기로 결심했던 것 아니었나.
반쯤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내려다보는 레녹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지만, 이내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
‘목표부터 확실하게 하자.’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카이세 바쥬르와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의 흔적을 찾는 것.
그리고 수호령수에게 내려진 탈태의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요르타의 위령탑을 조사하는 것이다.
거기에 분신 능력을 제대로 손에 넣기 위한 화신 술식을 익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겠지.
문제는 세 가지 목표 모두 군령도시의 가장 중요한 비밀과 근원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카이세. 위령탑. 화신술식.
어느 것 하나 요르타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을 리가 없는 테마들뿐.
그렇기에 레녹 역시 직접 요르타로 가야 할 문제라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었나.
‘마드리치 오니온의 일을 생각하면 만귀야행을 조사하고, 인도자의 유령도 확인은 해야겠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힐끗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오오오…….]객실에서 있었던 소란이 기폭제가 되었을까.
지금도 인도자의 유령은 레녹의 머리 위를 맴돌며, 늪지대 주변의 잡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
쩝쩝쩝!
인간의 형상조차 아닌 잡귀들을 씹어 삼키면서 만족스러운 한숨을 토해내는 인도자의 모습.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잡귀들을 아무리 먹어치워도 인도자의 뒤에 따라붙는 잡귀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소금쟁이에 탄 동승자들이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승객들이 가진 유령을 섭취했을 때와는 다소 판이한 반응.
애초에, 인도자가 영혼을 인도한다는 것이 만귀야행에서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라바테논 강령학부에서 있었던 소란을 생각하면, 원래부터 이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에반의 신분으로 진행했던 마탑과의 협약 당시, 강령학부 프로젝트 시연에서 나타난 영체는 인도자의 영혼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지나치게 격한 반응 때문에 빠르게 손을 쓰기는 했지만, 그만한 내력이 인도자에게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을 터.
‘요르타로 건너가기 위해 구했던 물건이지만, 생각보다 더 이상한 유물이다. 역시 조심하지 않으면…….’
어느 쪽이든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과정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을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적어도 레녹이 경험했던 그 모든 여행과 계획이 마음먹은 만큼 수월하게 풀린 적은 거의 없었으니.
레녹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헤드레인 강 근처의 지도를 접어 품 안에 집어넣으려던 순간.
“그, 그거…….”
옆에 멍하니 앉아있던 청년이 레녹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로브를 뒤집어쓴 레녹이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뭐지?”
“안 먹…… 안 먹을 거야?”
“…….”
그의 시선은 레녹이 먹다 남긴 파프리카 샌드위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을 보니 허기가 진 듯하다.
슬쩍 다른 이들을 둘러보니, 이쪽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개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소금쟁이의 포대기를 짐칸 삼아 늪지대를 건너는 이들 모두가, 나름 한 가닥 하는 실력자들.
마수가 득시글거리는 늪지대를 벌레의 배를 빌려 타야 할 만큼 절박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마키나로 떠날 때와는 다소 여건이 다른 상황.
고민하던 레녹이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청년에게 휙 던져주었다.
“우, 우왓!”
허겁지겁 양손으로 샌드위치를 들고 받아먹는 청년의 모습.
레녹으로서도 그리 배가 고픈 것은 아닌 데다 구비해 둔 식량도 충분하니 아낄 이유는 없다.
어차피 요르타 근방에는 레녹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니 어떻게 대처하든 트러블이 생길 일은 없겠지.
‘어떤 신분으로 이름을 댈지 결정하는 것도 문제군.’
빅터의 신분으로 인도자의 반지를 구했으니 원래라면 빅터의 이름을 대는 것이 맞겠지.
실제로 레녹 역시 가면을 쓰지 않았을 뿐, 행색 자체는 그림자로브를 둘둘감고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만약 요르타에서 무력이 필요하다면, 반의 신분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는 일.
작정하고 판을 짠다면 반의 신분으로 요르타에서 활동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더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화신술식을 빠르게 습득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장담할 수는 없는 계획이군.’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청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청년은 샌드위치를 마구 집어삼키다가, 느닷없이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 우웨에엑…… 맛없어!!”
“…….”
“고, 고기도 없고…… 이걸 왜 먹어?”
울상을 지으며 혀를 비죽 내민 청년을 보며 레녹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청년을 무시하고 잠을 청하려던 순간, 건너편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먹다 남긴 건 제대로 치워야지.”
퉁명스러운 인상의 장년 남성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 재질의 갑주와 장비를 보니 수색꾼. 그것도 패스파인더 쪽인 듯했다.
“포대기가 더러워지잖아. 제대로 정리해라.”
“…….”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그제서야 레녹은 남자의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걸 왜 내게 묻지?”
“네가 저 머저리에게 먹을 걸 줬으니까.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모지리가 대화를 알아듣기나 하겠나?”
남자가 대꾸했다.
“육향이 없는 샌드위치를 먹길래 놔뒀지만, 토사물 같은 냄새는 흔적이 강하게 남는단 말이다. 그쪽이 책임을 지고 정리해.”
“…….”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토사물을 치우기는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늪지대에 서식하는 마수들을 걱정하는 거라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동승한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니 그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실례를 저질러서 미안하군.”
“사과할 시간에 빨리-”
그 순간, 남자의 머리가 앞으로 홱 쏠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토사물 위로 엎어졌다.
철퍽!!
“어버버벞!!!”
괴성을 지르며 발작하면서도 얼굴을 포대기 바닥에 그대로 비비적댄다.
마치 누군가의 손에 강제로 조종을 당하는 듯한 기괴한 모습.
다른 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침묵하는 사이, 레녹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대신 나도 책임을 그쪽에게 전가해 주고 싶은데, 너그러이 이해해 주겠지?”
“으아아악!!”
오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벌떡 일어선 남자가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대거를 뽑아 들었다.
“이 개새끼가 기껏 알려줘도 주제를 모르고……!!”
푸욱!!
그 순간, 포대기 아래쪽에서 튀어나온 길쭉한 가시가 그대로 남자의 사타구니를 관통했다.
“어?”
다리 사이를 뚫고 내장을 헤집으며, 심장을 쪼개버리는 일격.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한 남자가 오공에서 피를 쏟으며 그대로 축 늘어졌다.
순식간에 남자를 죽여버린 그 가시가 늪지대 아래서 솟구쳤음을 깨달은 이들이 벌떡 일어섰다.
“마, 마수다!!”
“빌어먹을, 벌써 냄새를 뒤쫓아왔다고?!”
“소금쟁이를 지켜. 늪지대를 건널 때까지는 도움을 받아야 해!!”
포대기에 타고 있던 이들이 소금쟁이를 지키기 위해 사방으로 마력을 투사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무 위에서 내려온 사마귀를 닮은 벌레가 손에 달린 낫으로 소금쟁이의 허리를 반으로 뚝 잘라 버린 것.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벌레가 그대로 무너지고, 배 아래 매달린 포대기가 늪에 그대로 처박혔다.
꼬르르륵!!
늪 아래 헤엄치던 마수들이 기다렸다는 듯 포대기를 물어뜯자, 마치 포도알을 깨물듯 핏물이 터져 나온다.
살아남은 것은 사마귀의 등장과 동시에 포대기를 탈출해 벌레의 등 위로 올라선 몇몇 사람들뿐.
“이, 익……!!”
분을 참지 못한 여자가 레녹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너 때문에 소금쟁이가 죽었잖아.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손 놓지.”
레녹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머리가 쪼개지고 싶은 게 아니면.”
“뭐?”
서걱!!
그 순간, 여성의 뒤에서 달려들던 사마귀의 머리가 양단되어 쪼개졌다.
진녹색의 체액을 질질 흘리면서 늪지대로 쓰러진 시체를, 다른 마수들이 다시 뜯어먹기 시작한다.
으적으적!!
인간보다 같은 마수의 시체를 더 좋아하는 듯한 모습.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기가 질린 여성이 냉큼 로브를 놓았다.
죽은 벌레의 머리 위에 올라타 상황을 살피던 이가 말했다.
“로브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야. 저 멀리서 피냄새가 나고 있다.”
‘피냄새?”
“누군가 늪지대 근처에서 먼저 피를 흘렸군. 근방에 마수들이 잔뜩 모여 있어.”
“나, 나나…… 알아…….”
그 순간, 멍하니 벌레의 등 위에 앉아 있던 청년이 중얼거렸다.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기겁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깜짝이야! 이 새끼는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
레녹이 말없이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이, 청년이 헤벌레 웃으며 늪지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 아는 사람. 나, 알아.”
“……이 늪지대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데려다줄게. 아는 사람.”
청년의 말에 다른 이들이 순간 고민하고, 여자가 기가 차다는 듯 화를 버럭 냈다.
“그걸 믿냐. 빨리 도망칠 궁리나 하자고!!”
“도망쳐? 여기서 어떻게 도망치자는 말이지?”
벌레의 머리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늪을 벗어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 소금쟁이 없이 늪을 건너려면 나무 위로 뛰어야 하지. 할 수 있겠나?”
“그, 건……!!”
그 말대로, 나무 위에는 사마귀와 같은 괴물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소금쟁이를 버리고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면 어김없이 공격을 해올 터.
“이 자의 지인이 저기서 싸우고 있다면 그쪽에 협력하는 게 나을지도…….”
“저쪽도 여기까지 왔으면 늪을 건널 수단을 가지고 있겠지.”
거기까지 대화가 이루어지자, 다른 이들 역시 결심을 마친 것 같았다.
벌레가 죽어버린 시점에서 정상적으로 늪을 건너기는 불가능한 상황.
일이 이렇게 된 김에, 다른 쪽과 협력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피를 낼 정도로 싸움이 났다면 저쪽도 인원이 줄었을 거다. 이 정도 인원은 탑승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게 아니더라도 죽여서 빼앗으면…….”
“쉿.”
당연히 상정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논의할 만한 일은 아니다.
동승자들 전원이 합심해서 청년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움직이려는 모습.
가만히 벌레의 시체 위에 서 있던 레녹도 일행을 따라 이동했다.
“조심, 조심…….”
“마수 진액이 묻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밟지 않게 조심해.”
버둥대는 청년을 들쳐메고 일행이 겨우 피냄새가 피어오른 진원지로 이동한다.
가까이 다가가자 물씬 피어오르는 혈향.
방금 있던 소란이 아니라, 이 피냄새가 마수들을 불러모은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스스슥!
늪지대 위에 위치한 작은 섬의 모습. 그 위에 죽어 쓰러진 시체 몇 구의 모습.
마수에게 뜯어먹힌 것인지, 그 원형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처참한 몰골이다.
일행이 침묵에 잠긴 사이, 안색이 새파래진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야, 이거…… 맞아?”
“…….”
“이거 맞냐고. 왜 다 죽어 있는 건데!!”
여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방향을 제시한 청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 지인 어디 있어. 거짓말한 거면 여기서 죽여 버린다!!”
“아니. 이거, 맞아.”
청년이 멱살을 잡힌 채로 해맑게 웃었다.
“우리, 살려면 먹이. 필요해.”
“……뭐?”
뚜둑!
그 순간, 청년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가더니 거대한 괴물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대로 가까이 서 있던 일행의 상반신을 꿀꺽 집어삼킨다.
으지지직!!
괴물의 치악력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으적거리자, 그 자리에서 저항도 못 하고 인육이 뜯겨나가는 모습.
하지만 일행들 사이에 서 있던 레녹 하나만이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
레녹이 무슨 공격을 피하거나, 괴물로 변한 청년의 이빨을 막아낸 것이 아니다.
청년이 마치 의도한 것처럼 레녹을 피해서 다른 일행들을 죽여 씹어먹은 것뿐.
“너, 샌드위치 줬어.”
머리만 기괴한 괴물로 변한 청년이 꺽꺽대며 말했다.
“살려줄게. 도망가.”
“…….”
레녹이 샌드위치를 준 은혜로 여기서 죽이지 않았다는 말일까.
하지만 레녹은 그 말을 따라 도망치는 대신,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보다 말했다.
“인간의 말을 하는 마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살려준, 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빨을 부딪치며 다가오는 청년의 모습.
식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레녹의 머리를 향해 입을 쩍 벌린다.
이빨 사이에 길쭉하게 늘어진 피거품을 바라보며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은혜 갚은 짐승의 우화는 보기만 좋을 뿐이지. 그 대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고, 고기…….”
청년의 눈에서 빠르게 이성이 사라진다.
“너, 샌드위치…… 더 배고파…….”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지? 버티기 힘들 거다.”
레녹이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적어도 내가 본 그쪽 부류는 다들 비슷했거든. 광증에 먹히는 게 아니라, 감화되어 자신의 의지로 따르게 되지.”
“으, 으으으……!!”
“자의로 저지르는 금기에 가장 강한 배덕과 모순이 담기는 법이지. 그건 마수들이 느끼는 본능과는 거리가 멀어.”
보기 드물게 친절하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하고, 청년이 레녹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줬으니까…… 먹이 해줘!!”
덥석!!
식욕을 참기 어려운지, 괴물의 머리가 레녹의 온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대로 목구멍을 마구 흔들어,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 집어삼키는 모습.
“오오, 오……!!”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트는 청년을 두고, 그제서야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아악……
새하얀 천으로 통일된 복장과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 제각기 무기를 쥔 채 시선을 맞추고 천천히 청년을 향해 다가서는 모습.
사람들이 그대로 몸을 비트는 괴물을 향해 무기를 힘껏 찔러넣으려던 순간.
쩌저적!!
괴물의 몸 위로 붉은 실선이 무수히 그려지더니, 이내 수십 개의 육편으로 쪼개져 폭발했다.
콰아앙!!
끔찍한 몰골로 쪼개진 괴물의 시체 안에서 레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성을 잃고 인육을 탐하는 괴물이 마수만 있는 건 아니지.”
“…….”
“술식의 원리를 벗어난 인체변형. 인신공양에 기반한 식인. 위계에 국한되지 않는 강함.”
놀란 기색으로 변한 사람들을 두고 걸어 나온 레녹이 말했다.
“전부 너희 쪽에서 만드는 사도의 특징 아니었나?”
그렇게 말한 레녹이, 새로 나타난 사람들의 복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새하얀 천으로 된 재질. 단촐한 장식과 통일된 복장.
어딘가 눈에 익은 그 예복의 형태가, 레녹이 알고 있는 집단의 그것과 무척이나 유사했기 때문.
“왜 그쪽이 여기에 있는지 확인은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신도들을 보며 레녹이 피식 웃었다.
“귀도 교단. 이런 오지에서 마수들을 상대로 뭘 하고 있는 거지?”
늪지대에서 피냄새를 풍기고 마수를 불러모은 진원지.
그곳에서 몸을 숨기고 일행을 기다리던 것은, 바로 귀도 교단의 사제들이었던 것이다.
“……본교의 근원내력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이셨군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 신도들 중에, 누군가 웃는 얼굴로 앞으로 나서며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사도가 필요해서, 사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혹시 신도님께서도 흥미가 있으신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