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78
약먹는 천재마법사 778화
유령기행(4)
갑작스럽게 마주친 귀도 교단의 사제들과 그들이 건넨 황당한 제안.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답하기에 앞서 가만히 기억을 돌이켜보았다.
‘마지막으로 교단과 접촉했던 게 언제였지?’
생각해보면 교단과 직접 접촉한 것도 간만의 일이다.
얼마 전 교주를 대면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그 초월자는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바.
따지자면 암리타 사태 이후로 교단과 엮이는 것은 거의 처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들이 늪지대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피냄새를 풍겨 마수들을 끌어들인 것부터 의도적인 계획이었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갈라 죽인 청년의 시체를 힐끗 바라보았다.
“이 사도가 되다만 자에게 먹이라도 공양할 생각이었던 거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레녹이 준 파프리카 샌드위치를 토했던 동승자.
그가 포대기에서 죽지 않고, 벌레의 등에 올라탄 시점에서 레녹은 청년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만 그가 인간의 말을 할줄 아는 마수인지, 아니면 다른 범주의 괴물인지 고민했던 것뿐.
선두에 서 있던 사제가 그 말을 듣고 감탄한 기색으로 반문했다.
“교단의 질서에 대해 무척이나 잘 알고 계시는군요. 역시 같은 교리를 섬기는 분이십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인가?”
“네.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한 사제가 레녹을 향해 양손을 모으고 공손히 합장을 했다.
“혹시 교리를 믿는 신자라면, 본교의 사도를 위한 공양물이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
레녹이 그 황당한 제안에 입을 다문 사이, 사제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이 늪지대를 빠져나가기 위해 희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교단의 안녕을 위한 신도님의 은혜는 저희가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신도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저희도 협력을 구하는 일에 거리낄 필요는 없겠지요.”
사제가 품 안에서 날카로운 검을 꺼내 들며 대답했다.
“불신자를 공양하면 신께서도 기쁘게 저희의 헌신을 받아주실 겁니다.”
[이 미친 유기체들. 빨리 치워 버리죠?]로브 안에서 말을 듣고 있던 다비가 투덜거렸다.
[듣고 있으니까 짜증이 나려 그래요.]교단의 신도가 맞든 아니든 인신공양의 대상이 되어달라는 말이 아닌가.
그 염치를 모르는 뻔뻔한 부탁과 광신에 범벅이 된 언행이 외려 레녹이 알고 있는 교단다워 웃음이 났다.
“늪지대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겠지.”
천천히 비좁은 섬 한복판에서 자신을 둘러싸는 사제들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교단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희생을 주저하는 집단이 아니야. 단순히 늪을 건너기 위해서라면 진작 너희끼리 공양해서 방법을 손에 넣었을 거다.”
“…….”
“그럼에도 굳이 마수들을 불러 늪지대를 건너는 다른 사람들을 유인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레녹이 웃었다.
“수준 높은 마력사용자를 공양해 힘을 받아야 할 만큼, 아주 다급한 문제가 너희에게 있기 때문이겠지.”
교단의 신도. 그것도 외부활동이 허락될 정도로 신앙이 깊은 사제들은 가히 광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신을 희생해 공양하는 일 따위는 대부분이 주저하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신도들끼리 공양을 펼쳐 늪을 건널 힘을 얻는 대신, 다른 제물을 기다리고 있던 이유.
교단의 신도를 공양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신도님.”
레녹의 말을 듣고 있던 사제가 희멀건 웃음을 지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이미 한번 말했지만, 난 신도가 아니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올린 순간.
바로 옆에 서 있던 사제의 머리통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퍼어엉!!
동료 사제의 피를 뒤집어쓰고도 무표정한 교단원들을 보며 레녹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기분 나쁜 호칭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군.”
“죽여!!”
비좁은 섬 안에서 수십 명의 교단원과 마법사가 격돌했다.
사방에서 이리저리 뒤엉키는 장병기와 교단의 술식이 충돌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육을 흩뿌린다.
그 사이를 빼곡하게 파고든 은백색의 실선이 물결치며 뇌리를 파고든 찰나.
파파파파팟!!!
수십 명에 달하는 교단원이 춤을 추듯 양손을 모으고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무릎 꿇은 채로 기도를 하듯 주저앉은 신도들의 모습.
하지만 그들이 자세를 잡은 것은 다 같이 공통된 의식이나 술식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팔다리에 정교하게 이어 붙은 마력사가 인형처럼 사지를 조작해 강제로 육체의 통제능력을 박탈하고.
그들이 양손으로 잡은 무기로 자신의 심장을 찌르게 만든다.
푸욱!!
“……!!!”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죽어버린 사제들의 모습.
잠깐의 시간벌이조차 되지 못한 일련의 공방.
교단원 전원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 레녹이 손을 털어 끊어진 마력사를 회수했다.
귀도 교단이 왜 여기 있는지 정보를 캐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레녹은 교단이 어떤 이들인지 알고 있었다.
어지간한 심문이나 압박으로는 절대로 교단의 정보를 발설하지 않을 광신도들이 모인 집단이다.
레녹으로서도 마안을 사용해 정신을 반쯤 뭉개고 파편적으로 뱉어내는 정보를 주워 담는 것이 고작.
시간이 충분하다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이런 험지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늪을 건널 수단을 다시 찾아봐야겠군. 배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나?”
점멸술식을 난사하면 늪지대를 탈출하는 것 정도는 어떻게 가능하겠지만,
파피루스에 충전해둔 점멸을 여기서 소모하면 군령도시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사용을 자제해야 할 터.
레녹은 그런 사태는 피하고 싶었다.
[이런 마경에서 자란 나무로 배같은 걸 만들었다가는 금방 독이 올라버릴걸요.]다비가 로브 안쪽에서 레녹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습기도 가득 차 있을 거고, 방수에도 적합하지 못할 테니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일단 나무 위로 올라가서 생각해 봐야겠군. 고도를 높이면 주변 환경을 좀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을 거다.”
레녹이 그렇게 대답하며 마력사를 머리 위에 자란 나무에 걸고 천천히 잡아당긴 그 순간.
쿠구구구……!!
늪지대 전체가 떨리는 듯한 충격과 동시에 수면 아래서 무언가 불쑥 솟구쳤다.
시야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거대한 덩치.
날카로운 가시를 온몸에 박아넣은 집채만 한 독두꺼비가, 무기질적인 눈동자로 레녹을 응시한다.
[불룩.]그저 레녹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엄청난 양의 마력.
제대로 가공되거나 순환하지 않은 채, 자라온 시간 사이 체내에 쌓인 것만으로 어지간한 초인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두꺼비의 등장과 함께 다른 마수들의 기척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을 보면, 아마 이 괴물이 근방 늪지대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 있는 포식자라고 보아야겠지.
하지만 두꺼비는 레녹을 보고 바로 달려드는 대신, 마치 나른한 기색으로 하품을 쩍 했다.
[구어어.] [생각보다 귀여운데요?]“……단어 학습이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니라?”
예상보다 무방비한 두꺼비의 모습에 레녹과 다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턱을 크게 부풀린 두꺼비가 입을 쩍 벌리더니, 방금 전까지 레녹이 서 있던 작은 섬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콰자자작!!
죽어 쓰러진 괴물과 마수, 사제들의 시체가 두꺼비의 입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
나무 위에 마력사를 걸고 매달려 있던 레녹만이 남아 그 식사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으쩝쩝.]입맛을 다신 두꺼비의 무기질적인 눈동자에, 언뜻 이채가 감도는 듯하다.
여기 죽은 이들 대부분이 마력사용자였으니, 마수에게는 꽤 각별한 식사거리로 느껴지겠지.
한 줌만 한 고기를 먹기 위해 흙더미 몇 톤을 씹어 삼키는 그 모습이, 외려 늪지대에 서식하는 마수답다 해야 할까.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품 안을 뒤적거리는 사이, 두꺼비 마수가 천천히 레녹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제서야 늪지대 아래서 드러난 두꺼비의 몸통을 확인한 다비가 괴상한 비명소리를 냈다.
[으으…….]“아직도 저게 귀여워 보이나?”
두꺼비의 목 아래는 마치 원숭이처럼 길쭉한 팔다리가 달려 사방을 휘적거리고 있다.
어딘가 부품이 맞지 않는 기계장비를 억지로 끼워 맞춰 작동시킨 듯한 기괴함.
두꺼비는 허공에 매달린 레녹을 향해 다가와, 천천히 입을 쩍 벌렸다.
그제서야 왜 마수가 바로 레녹을 먹지 않았는지 깨달은 다비가 중얼거렸다.
[어차피 도망칠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에 먹을 생각이었나 보네요.]“맛있는 건 마지막까지 아껴먹는 편이군. 나도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휙 떨어뜨렸다.
“그럼 이것도 맛있게 먹어 치울 수 있을지 한번 확인해 보자고.”
삐비빅……!!
군령도시로 떠나기 전에 준비했던 것은 그동안 사용하던 아티팩트나 개인화기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손쉽게 고화력을 투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은, 편람의 우물에서도 시도했었던 폭발물의 형태.
대수림에서 사용했던 마나공명 소이탄처럼, 특정한 방식으로 마력을 압축해 터트리는 폭발물은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중에서도 레녹이 이번에 꺼내 든 것은 확산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부 파괴에 집중하는 관통형 열량탄.
치이이익!!
이상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주먹만 한 금속구체.
금이 간 균열 사이로 새파란 마력광을 발하며 떨어지는 그것을 허공에서 마력사로 잡아챈다.
원심력을 사용해 마력사를 휘둘러, 그 끝에 매달린 열량탄을 정확하게 두꺼비의 목구멍에 처박은 그 순간.
뻐어어어엉!!
두꺼비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끈적거리는 피부와 눈알이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통째로 녹아내린 뒤에도 레녹을 먹고 싶은 본능은 남아 있는지, 몸통만 남은 원숭이의 팔이 허공을 휘적거린다.
마력사를 걸고 매달린 레녹을 찾지 못하고 힘을 잃어버린 마수의 몸통이, 그대로 다시 늪지대에 처박혔다.
레녹은 그를 보며 곧바로 나무 위에 올라타 떠날 준비를 마쳤다.
“빨리 움직이지. 이제 곧 다른 마수들도 이곳으로 몰려올 거다.”
아까 보았던 바로 이 늪지대의 마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같은 마수의 고기를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늪지대에서도 상당히 그 힘이 강했던 두꺼비를 죽여 버렸으니 아마 다른 마수들이 그 고기를 탐하기 위해 찾아올 터.
마수들의 시선이 여기 쏠린 사이에 빠르게 빠져나가는 편이 좋겠지.
“……음?”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려던 레녹이, 시선에 잡히는 기시감을 인지하고 다시 멈춰 섰다.
방금 머리를 터트린 마수의 시체.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몸통의 뱃가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레녹의 모습.
“…….”
[마스터?]“마력이 남아 있다.”
[강한 마수라면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마력을 남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아니. 다른 쪽이야. 애초에 착각하고 있었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부유마법을 조절해 속도를 죽이고 마수의 뱃가죽 위에 내려선 레녹이 마력사를 뽑아 들었다.
서걱!!
절단마법을 부여해 깔끔하게 뱃가죽을 잘라내고 내장을 파헤친다.
“……찾았다.”
소화가 되다 만 마수의 내장 안에서, 유달리 불룩하게 막혀 있는 부분을 한 번 더 잘라냈다.
주르륵!!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깃덩이의 잔해와 오물들이 뒤섞여 갈라진 내장 밖으로 흘러나온다.
다비가 기겁했지만, 레녹은 동요하지 않고 오물 사이에 마력사를 뻗어 곧바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쿵!!
크기로만 따지면 거의 레녹의 키에 비견되는 거대한 보관함.
겉에는 마치 아이언메이든을 본 딴 것처럼 기도하는 여상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마수의 소화기관 안에서 발견될만한 물건이라기에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독특한 기물.
레녹이 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처음 마수의 것이라 느꼈던 마력이, 애초에 이 함에서 나오는 물건이었어. 지나치게 원초적인 의념이라 착각을 했군.”
강력한 마수나 초인이 죽을 때 그 마력이 시체에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죽음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겪은 마력은 반드시 사망 직후 어느 정도 변질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레녹이 마수의 것이라 생각했던 마력은 정작 머리통을 터트린 뒤에도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던 것.
그를 통해 레녹은 마수가 집어삼킨 물건들 중에 상당히 특이한 무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살아 있는 마수의 마력보다도, 레녹의 감각에 먼저 잡힐 만큼 아주 강렬하고 특별한 무언가.
“교단이 어째서 이런 늪지대 한복판에서 버티고 있었는지 알겠군.”
함의 외면에 새겨진, 기도하는 여성의 모습을 본 레녹이 말했다.
“마수가 집어삼킨 이 물건을 되찾기 위해 힘이 필요했던 거야. 그래서 인신공양을 사용해서 수단을 마련하려 했던 건가.”
[미친 유기체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고 싶어 한 보물이라는 말이네요.]다비가 신이 나서 꼬리를 마구 팔딱거렸다.
[바로 열어보죠!]“…….”
하지만 방금 레녹이 한 말대로 조금 있으면 마수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가능성이 높다.
그걸 알면서도 여기서 이걸 바로 열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마력소모를 감수하고 일단 이걸 들고 인적이 없는 곳까지 이동하거나, 차라리 두고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일.
“……좋아. 열어보자.”
하지만 레녹은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곧바로 함의 문짝 위로 마력을 흘려 넣기 시작했다.
여기서 얼마나 더 이동해야 늪지대를 벗어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이걸 들고 움직이는 건 비효율적이다.
차라리 여기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들고 갈 수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는 편이 좋겠지.
차르르륵!!
보관함 문짝에는 상당한 수준의 잠금술식이 걸려 있었지만, 레녹은 그걸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레녹의 입자 단위 마력조작과 초월적인 수준에 도달한 직관. 대마법사의 마력이 있다면 어지간한 술식은 정면에서 힘으로 때려 부술 수 있다.
으지지직……!!
굳이 계통을 분석하고 할 것도 없이, 술식의 동력을 공급하는 부분에 마력을 때려 막고 억지로 본래 술식의 구조와 치환시킨다.
그것만으로 술식 자체가 어그러지며 기본적인 원리가 모호해지고, 그 틈을 타 곧바로 레녹의 의지가 술식을 대체.
파아앙!!
늪지대 호수 위로 가벼운 파문이 이는 것과 동시에 락이 부서지고 문이 활짝 열린다.
“좋아. 그럼 교단이 숨기려 했던 보물이 뭔지 바로…….”
보관함 안을 들여다본 레녹의 말이 그대로 멈췄다.
다비 역시 곧바로 눈앞에 나타난 그것을 확인하고 침묵했다.
[…….]“이건…….”
보관함 안에 존재하는 것은 아티팩트나, 교단의 성물이 아니었다.
기도하는 자세로 웅크린 여성의 시체.
고풍스러운 예복을 입은 채로 눈을 감은 평온한 얼굴.
마치 그 모습은 보관함 외벽에 새겨진, 기도하는 여신과 얼핏 비슷해 보였다.
[음…….]잠시 고민하던 다비가 어렵사리 물었다.
[괜히 열어본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놓고 갈까요?]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사정이 있을 것만 같은 보관함의 내용물.
교단 사제들이 기를 쓰고 되찾으려 한 물건이라면, 이 시체가 지닌 중요도는 실로 엄청난 수준이겠지.
어쩌면 광신도들의 건드려서는 안 되는 치부나 비밀을 건드린 것일지도 모른다.
요르타로 향하는 레녹의 입장에서 굳이 손을 대거나 회수해서 교단의 추적을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다비의 제안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시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곤란한데…….”
[마스터?]“아는 사람이다. 그것도 빅터의 신분으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군.”
레녹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머리를 쓸어넘겼다.
기도하는 모습으로 평온히 죽어있는 그 모습이, 틀림없이 기억 속에 있는 얼굴임이 틀림없었기 때문.
“편람의 우물 사태 마지막에, 대수림 외곽에서 타티아나를 회유하려던 자다. 이건 정말 문제가 되겠어.”
[……네?]그제서야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다비도 그 의미를 깨닫고 반문했다.
“타인을 사도로 만들 수 있는 교단의 고위직은 오직 하나뿐이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처음 마주친 교단의 사제들이, 사도를 만들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낼 수 있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귀도 교단의 신녀가 사망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꽤나 골치 아파지겠군.”
편람의 우물 사태 최후반부에 나타나, 타티아나 치글렛을 사도로 만들려고 회유하던 교단 측 관계자.
교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교단 최고위직이자, 교단 내부 모든 의식을 주관하는 제사장.
신녀, 세이나 나이드리의 시체가 이 이름 모를 험지 어딘가에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기도하는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던 신녀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토해냈다.
“이것조차 그분께서 안배하신 결과라면, 능히 감내해야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