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25
약먹는 천재마법사 825화
매듭(12)
송하가 태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마력을 끌어올린 순간.
감각 전체가 세로로 쪼개지는 듯한 강렬한 기시감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사악!!
검을 움켜쥐는 찰나의 의념을 발도와 동시에 덧씌우는 검사의 검의.
칼집 끝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느낄 수 있었던 찰나가 끝난 직후.
한계를 넘어선 예기가 참격이 되어, 화장터 유적지 기둥을 세로로 쪼개 버렸다.
쩌저적!!
섬뜩한 칼날의 마찰음이 체감을 넘어 레녹의 몸을 난자한다.
사늘한 은빛으로 번뜩이는 궤적이 별처럼 반짝이며 가속해 내리찍혔다.
점멸을 사용해서 그 자리에서 흐릿하게 번뜩이는 마법사의 신형.
하지만 이내 뒤로 튕겨 나가듯 밀려나, 화장터 바닥 위로 느릿하게 미끄러졌다.
콰아앙!!
“……!!!”
하지만 외려 놀란 듯이 눈을 뜬 것은 레녹이 아니라 송하 쪽이었다.
“그걸 맞아? 당연히 피할 줄 알았는데?”
“……틀린 말은 아니군.”
레녹이 그 말을 들으며 짜증스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뒤로 밀려나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피해 자체는 크지 않다.
송하의 검격이 말도 안 될 만큼 빠르기는 했지만, 반응만 제대로 했다면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기 때문.
문제는 송하의 말대로, 레녹이 그 검격을 피하지 않고 ‘막으려’ 했다는 점에 있었다.
“네 말이 맞다. 막는 게 아니라 피했어야 했겠지. 판단이 섞였군.”
“섞였다……?”
레녹의 말을 따라 중얼거린 송하의 두 눈이 순간 흥미로운 듯 반짝였다.
“너, 생각보다 더 재밌는 녀석이구나.”
철컥!!
송하가 태도의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쥔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새하얀 백발이 이마를 타고 뒤로 길게 늘어지며 그 얼굴을 뒤덮은 찰나.
송하의 손끝으로 감각이 다시 빨려들어 가는 듯한 환각이 일었다.
“이렇게 된 거, 네가 그 파피루스를 넘길 생각이 들 때까지 좀 더 놀아볼까?”
쐐애액!!
새하얀 빛의 선이 유적지 벽면을 사선으로 쪼개며, 유골함 수십 개를 일시에 베어냈다.
손톱 하나만큼의 간극을 쪼개어 베어내는 정밀한 검예(劍藝).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런 검술을,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태도로 행하고 있다는 것일까.
태도를 쥐고 발도를 반복하는 찰나, 길게 늘어진 칼날을 타고 의념을 멀리 실어보낸다.
폭발력과 비거리, 정밀도와 변주를 모두 함유한 참격이 레녹 단 한 사람을 노리고 회전한다.
두두둑!!
쏟아지는 참격을 받아치기보단, 점멸을 병행해서 피해내며 거리를 벌리는 일에 집중하는 레녹의 모습.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멈칫거리는 레녹을 보며 송하는 확신을 얻은 것 같았다.
투웅!!
가볍게 검날을 옆으로 밀어 공간을 살짝 벌린다.
송하를 중심으로 격렬한 풍압이 몰아쳐 발아래 잿더미를 퍼뜨리고.
재의 장막 사이로 사라진 검사의 신형이 순식간에 레녹의 앞에 나타나 칼을 들이밀었다.
끼익!!
“너, 제대로 된 술사가 아니구나?”
대번에 레녹의 어깨 위에 태도의 칼날을 걸친 송하가 물었다.
“아까부터 자꾸 막을 수 없는 걸 막고, 피할 수 있는 걸 받아치려 한단 말이지.”
태도를 역수로 쥔 채, 칼끝을 길게 늘어뜨려 레녹의 가슴을 두들긴다.
“술사보단, 아주 노련한 전사의 반응이야. 일부러 구도를 비틀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거지.”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레녹이 송하의 검격을 몇 번 받아냈던 것은, 원래 레녹이 생각하던 대처가 아니었으니까.
광래무해궁과 연계시켜, 강제로 체득시켰던 권사의 공능이 레녹의 몸에 남아서 반응하고 있는 것.
송하는 그런 레녹의 미묘한 반응을 즉시 눈치채고, 그 간극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너 같은 전사가 왜 그렇게까지 약해졌는지, 특질계 술식은 왜 익히고 있는 건지……. 너무 궁금한데.”
고개를 갸웃거린 송하가 물었다.
“뭐 기아스라도 몸에 따로 걸어둔거야?”
“그건 내가 오히려 묻고 싶은 말이군.”
어깨에 얹힌 칼날을 힐끗 바라보며 레녹이 대꾸했다.
아무리 보아도 지금 송하가 보여주는 사고와 추론 능력은, 그가 인정한 제약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지능을 3분할하고도 그만한 사고능력을 유지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돼. 그게 가능한 오성을 지녔다면 그 능력을 그렇게 사용할 리 없지.”
“칭찬하는 거야?”
“그럴 리가.”
레녹이 비웃었다.
“내 말을 그렇게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네 기아스가 온전하게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증거다.”
만약 지능이라는 것을 수치화한다면 그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언제부터 말을 이해할 수 있고, 언어를 구사하며 문자를 익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걸까.
온갖 기인과 괴물들이 날뛰는 이 세계에서 애초에 그런 기준은 존재할 수도 없고, 있다 해도 무용지물.
그럼에도 레녹은 송하가 스스로의 지능을 ‘제약’하는 조건이 생각과는 다를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분신계통 초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제약과 조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군.”
레녹이 냉소했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고찰이나 관조도 없이, 그렇게 평생을 다른 사람의 도구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거냐?”
“……글쎄. 난 멍청해서 그런 거 잘 몰라.”
송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별로 재미없는 말. 오래 듣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중얼거린 송하가 태도를 움켜쥔 손에 힘을 준 순간.
쿠우웅!!
레녹의 앞에 새하얀 관 한 짝이 내리찍히듯 떨어졌다.
허공을 비집고 나타나, 굉음을 터뜨리며 떨어진 새하얀 관짝.
치익!!
관의 문이 열리더니, 온몸이 새하얀 광채로 뒤덮인 인영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금이 간 채로 잘게 부서진 외견과, 오른팔에 차인 새하얀 건틀렛의 형상.
“실체가 아니야, 이게 귀신인가?”
표정을 찌푸린 채로 유심히 화신을 바라보던 송하가 중얼거렸다.
“그렇군……. 아바타(Avatar)의 일종이구나. 이런 술식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
촤라락!!
새하얀 관에서 걸어 나온 화신체의 몸 위로, 수십 가닥의 마력사가 솟구쳐 그 몸을 휘감았다.
마력사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수축하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손짓에 이끌려 화신이 자세를 잡는다.
도래의 육신에 깃들었다, 사도로 지정된 반동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화신체의 형상.
하지만 제사장의 권한을 이용해서 강제로 화신을 자극하면, 전투에 써먹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화신체의 육신에 마력사를 이어붙여 인형처럼 조작하는 묘리.
레녹은 송하를 상대로 이 자리에서 그것을 실험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에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송하가 다시 태도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좋아. 군령도시의 아바타가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한번 확인해 볼까?”
쐐애액!!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흐릿하게 일그러진 검격이 화신체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화신체의 신형은 물론이고, 마력사를 붙든 레녹의 형상까지 양단하고도 남을 법한 압도적인 길이.
하지만 화신체의 반응은 레녹과는 전혀 달랐다.
양팔을 교차해 건틀렛을 위로 향한 뒤 그 자리에서 송하의 검격을 받아낸다.
쩌엉!!
칼날과 건틀렛의 격돌에 충격파가 터져 나와 사방을 울리고, 화신의 몸이 크게 떨리며 흩어졌다.
뚜두둑!!
유리 세공품이 무너지듯 영체 파편을 후두둑 흘리면서 비틀리는 화신체.
하지만 화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축이 무너진 육신을 비틀어 칼날 아래로 몸을 벗겨냈다.
한 바퀴 굴러 벌떡 일어선 화신체가 거침없이 송하를 향해 내달렸다.
툭, 툭, 두 번의 발디딤과 동시에 화신체의 신형이 순식간에 가속.
안색이 확 달라진 송하의 얼굴에 건틀렛을 휘둘러 정타를 꽂아 넣었다.
구중도래 무예 팔반
일겁(一迲)
도래와의 전투에서 습득한 구중도래의 무예가 화신체의 움직임을 따라 폭발적으로 재현.
건틀렛을 휘감고 솟구친 묵색의 잔영이 회오리처럼 솟구치며 송하의 신형을 휩쓸었다.
콰아아앙!!
화장터 유적지의 공동이 크게 흔들리며 곳곳에서 잿가루와 암석 파편들이 날뛰었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검광이 번뜩이며 화신체의 신형을 휘감았다.
카가가강!!!
연기가 몰아치는 유적지 사방에서 화신체와 검사의 그림자가 엇갈리며 충돌했다.
부서져 흩날리는 영체 파편과, 그 사이를 노니는 태도의 검기가 어지러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래, 이거였구나.”
쐐액!!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태도를 움켜쥔 송하가 납득한 듯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서 그렇게 애매한 태도를 취했던 거였어.”
콰아앙!!
거꾸로 떨어지는 송하의 명치에 순백색의 건틀렛이 빨려 들어가듯 틀어박힌다.
하지만 송하는 화신체의 권격을 받아치는 대신, 몸을 홱 틀어 축을 강제로 바꿔 버렸다.
아무런 지지대도 없는 허공에서 몸의 방향과 궤적을 변환하는 신기.
스팟!!
송하의 표정이 차갑게 굳으며, 손끝에서 발하는 의념이 소우주의 형태로 변질된 그 순간.
자신의 키보다 길쭉한 태도를 그대로 검집 안에 납도했다.
[귀래(歸來) : 역도(逆刀)]발도가 아니라 납도.
지면에 발을 디디고 선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로.
검사가 검을 휘두르기 위한 모든 공정을 역순으로 수행해 낸 찰나.
서걱!!
화신체의 몸 안에서 검격이 뽑혀 나오듯이 솟구쳐, 송하의 태도 안으로 휘감겼다.
그동안 상대에게 꽂아 넣은 검격을 거꾸로 회수하는 듯한 기이한 풍경.
그 순간, 화신체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영체 파편을 줄줄 흘리면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쿵!!
“후우, 후우……!!”
힘겹게 숨을 내쉰 송하가 기침을 하며 레녹을 돌아보았다.
빠르게 화신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리를 한 것인지, 순간 안색이 파리해진 모습.
“훌륭한 실력이야. 하지만 아바타의 강도가 너무 약해서 판단이 한 박자씩 뒤로 밀리는걸.”
“…….”
“소우주를 섞었으니 당분간 움직이기 어려울 거야. 아바타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철컥!!
태도를 뽑아 레녹을 향해 겨눈 송하가 말했다.
“파피루스. 내가 가져가야겠어.”
송하와의 전투를 철저하게 회피해 온 레녹의 반응.
유일하게 육탄전이 가능했던 화신체를 심상기로 처리한 지금, 그를 지켜줄 조력자는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상대는 무려 분신의 몸으로 소우주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고강한 위계를 보유한 육체능력자.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선을 들어 올렸다.
유적지 천장 위로 갈라진 균열이, 천천히 크기를 키우는 것을 확인한 레녹이 중얼거렸다.
“이쯤이면 충분하겠군.”
“뭐?”
쿵!!
그 순간, 유적지 천장과 벽면이 갈라지며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균열의 시작이었지만, 화장터 유적지 천장과 벽면이 갈라지며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즉시 그 여파와 원인을 확인한 송하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렸다.
“어……. 저거 혹시 내가 한 짓인가?”
송하가 휘두른 칼부림을 따라 베어진 유적지의 균열을, 강제로 벌려서 훼손시켜 버린 것.
쿠과과과!!!
화장터 유적지가 강 아래 깊은 곳에 위치한 만큼, 이곳을 향해 쏟아지는 수압 역시 폭발적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쏟아지는 물이 목 아래까지 차오르고, 유적지를 가득 채우며 그대로 침수시켰다.
꼬르르륵!!
물속에서 놀란 표정으로 레녹을 돌아보는 송하의 모습.
레녹 역시 물속에 가라앉은 채 송하를 마주 보며 천천히 양손을 합장했다.
키이잉……!!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레녹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는 싸늘한 한기.
강물을 타고 송하의 피부 위로도 느껴질 만큼 차가운 마력.
송하가 즉시 태도를 쥐고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영창을 마친 레녹의 마법이 한발 더 빨랐다.
빙결계열 고유마법
환경조형 : 동결
가중영창
[냉령주박계(冷領鑄迫界)]쩌어어어엉!!!
레녹을 중심으로 근방의 물이 대번에 얼어붙으며, 송하가 위치한 물길까지 그대로 멈춰 세웠다.
두 사람이 위치한 유적지 구역을 중심으로 수십 미터 반경이 얼어붙으며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화했다.
“앗, 차가!!”
송하가 자신을 가둔 얼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그것보다 송하의 등 뒤에서 화신체가 그의 몸을 덥석 끌어안는 것이 먼저였다.
“……!!!”
얼음감옥을 만든 것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화신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속셈이었나.
화신을 통해 대신 술식을 영창해, 직접 송하의 몸에 영거리로 꽂아 넣을 생각이겠지.
“할 수 있으면 해봐.”
송하가 이를 악물고 배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파괴술식이나 저주 따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발상 자체는 무척 기발했지만, 이번 한 번만 버티면 얼음을 베어내고 곧바로 레녹을 붙잡을 수 있다.
이런 영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술식의 종류와 위력이라면, 한 번 정도는 버텨낼 수 있을 터.
“그렇겠지.”
레녹이 웃었다.
“하지만 증강술식은 어떨까?”
“뭐?”
전격계열 고유마법
증강계통 성질변화
[여뢰신(余雷身)] [사서삼극(思瑞三極)]빠지지직……!!!
날카롭게 번뜩인 강렬한 의념이 송하의 정수리 위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신체 능력과 반사신경을 활성화시키고, 반응속도를 끌어올리는 증강술식.
레녹이 일전에 개발했던 증강마법의 세 번째 개정판, 사서삼극.
처음으로 송하에게 사용하는 마법이, 외려 그 능력을 끌어올리는 증강술식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
“잠깐……!!”
하지만 정작 증강마법을 부여받은 송하의 반응은,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공격보다도 격렬했다.
두 눈이 팽팽 돌아가듯 어지러이 고개를 저으며 소리치는 검사의 모습.
“그만둬, 이게 뭐야!!”
“반사신경과 사고 속도을 끌어올리는 증강마법인데, 분신능력자에게 걸어주면 특히나 반응이 격렬하더군.”
레녹이 송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마 다른 분신과 기본적인 조건이 달라지면서, 더 이상 이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겠지.”
“멈춰, 제기랄!!!”
“이런 편법을 적재적소에 잘 깔아준다면, 어렵게 공을 들일 필요도 없이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거지.”
고개를 뒤로 젖힌 레녹이 마력사를 펼쳐 머리 위로 던지며 말했다.
“내가 무슨 설명을 한 건지 알아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의회에서 일하고 있던 분신능력자, 아르망을 상대로 레녹은 여뢰신을 실험하며 여러 가지 부작용을 확인했던 적이 있다.
그중에서 여뢰신의 세 번째 개량 버전, 사서삼극이 분신의 존재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레녹은.
마지막 순간 송하의 분신을 파괴하거나 죽이는 대신, 버프를 들이부어 외려 그 존재를 뒤흔드는 것을 선택한 것.
“으앗……!!”
쩌저저적!!
얼음덩어리가 빠르게 상승하며 기압이 폭발적으로 변화, 송하의 분신을 진탕시키며 뒤집어놓은 그 순간.
수백 미터 강물 아래서부터 얼음덩어리가 솟구치며, 수면 위로 거대한 물기둥을 터뜨렸다.
콰아아앙!!!
* * *
“이미 충분히 말씀을 드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군령도시 요르타. 지하 1층계에 위치한 대심판장.
지금은 판데모니엄의 특질계 술사를 가둬두기 위한 감옥으로 사용되는 거대한 공동.
나이멜은 자리를 비운 레녹을 대신해 그곳에 앉아, 그녀가 본래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진혼정의 영령들이 자리를 비우며 도시의 대외적인 업무에 문제가 생긴 지금.
그녀가 맡은 일은 요르타 바깥에서 찾아오는 외부 세력을 상대하는 일.
“이번 사태에 대한 요르타의 입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거울 너머의 상대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인 나이멜이 말했다.
“도시를 방문하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해당 안건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아까부터 말이 자꾸 빙빙 도는 것 같은데.]거친 여성의 목소리가 거울 너머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바로 그 입장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영령 나으리.]“…….”
거울 너머에 앉아 있는 것은 군복을 입은 중년 여성의 모습.
한 손에는 반쯤 태운 담배를 쥔 채로, 삐딱하게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살기등등한 표정.
그녀의 얼굴에 아무렇게나 새겨진 흉터들이, 험악한 군인과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건 허락이나 협조를 구하는 게 아니라 통보다. 마지막으로 말하지.]군복을 입은 여성이 담배를 입에 갖다 대며 말했다.
[우리 데드라이즈 4군단 동부 주둔군은 요르타의 혼란을 수습하고, 도시를 안정시키기 위해 군대를 투입할 예정이다.]요르타 주위 군벌과 세력에 대한 정보 수집을 이미 마쳐둔 나이멜은,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데드라이즈 4군단. 중앙전선 외곽에서 대륙 각지에 주둔하며 영향력을 흩뿌리는 군사기업의 일각.
그리고 거울 너머에서 담배를 잘근잘근 씹고 있는 여성은, 4군단 전체를 이끄는 장성이자 무수한 실전을 거친 역전의 지휘관이었다.
[상륙부대를 보내 헤드레인강을 넘어 교각을 만들고, 기동부대를 먼저 투입. 순차적으로 병력을 들여보내 사태를 조사하겠다.]여성의 노란 눈동자가 나이멜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의는 요르타 중심지구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수뇌부와 직접 대면한 다음에 듣도록 하지.]“…….”
나이멜이 그 말에 대답하기에 앞서 피곤한 기색으로 미간을 짚었다.
서슴없이 압박해 오는 군단장 역시 까다로운 상대지만, 문제는 그녀 하나만이 아니다.
위령탑이 무너지고 고대의 영령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입수한 세력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 도시로 향하고 있을 터.
도시의 권한을 인계받은 영령들은 요르타를 노리는 외부 세력들을 상대로 이런 힘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산전수전 다 겪은 지휘관의 결정을 어떻게든 물리는 일이겠지.
나이멜이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쿠웅!!
지하 1층계의 결계가 박살 나듯 양옆으로 쪼개지며, 바깥에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온몸이 흠뻑 젖은 그림자 로브. 투명하게 빛나는 흑요석 가면을 뒤집어쓴 마법사의 기척.
황급히 고개를 돌린 나이멜이 레녹의 모습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식으로 요란하게 복귀하라고 장소를 일러 드린 것이 아니었을 텐데요.”
“내 알 바는 아니군.”
레녹이 그렇게 대꾸하며, 등 뒤에 끌고 온 얼음덩어리를 휙 내던졌다.
“그것보다 지하 강바닥에서 이걸 잡았는데, 확인해 봐라.”
[네놈이 요르타에서 그 지랄을 피웠다는 판데모니엄의 술사냐?]4군단장이 거울 너머에서 연기를 뻑뻑 뱉어내며 웃었다.
[재밌는 일이군. 요르타의 영령들이 네놈을 잡아두기는커녕 이딴 식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할 이유가 대체-]쿵!!
흠뻑 젖은 채로 축 늘어진 송하의 모습에 나이멜이 흠칫한 순간, 레녹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데드라이즈의 장성이라고 하더군. 자기를 송하라고 부르는 분신능력자다.”
[……송하?]그 순간, 거울 너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4군단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송하 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