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73
약먹는 천재마법사 873화
운명을 보는 눈(9)
와장창창!!
유리처럼 깨져 나가는 복잡한 도심의 풍경.
귀를 먹먹하게 하는 굉음을 합주 삼아 비치는 모든 것이 금이 가는 혼돈 속.
눈에 닿는 모든 공간이 깨져 나가는 와중에도, 낮과 밤을 뒤섞어 칠해가는 외해의 문은 그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다.
부시장 에이미 와인스턴이 그들에게 안내해 준 외해의 [문]은 분명 진짜다.
다만 그를 통해 외해 밖에 존재한다는 19구역의 심처에 누구도 도달할 수 없었던 것뿐.
“라피스가 접근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군.”
레녹이 무너지는 옥상 끝에 선 부시장을 향해 돌아서며 물었다.
화르륵!!
손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발걸음을 따라 길게 늘어지며 화염의 꼬리를 그렸다.
“생체코드 검사를 끝내고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나?”
[난 한번 의심하기 시작한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로 끝까지 믿지 않습니다.]부시장이 서슬 퍼런 레녹의 기세를 마주하고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불길함을 느꼈다는 것은 무수한 경험을 통해 무의식중에 도출되는 정답. 설령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난 내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지요.]확실한 근거와 이유보다도 자신의 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부류의 인간인가.
하지만 그런 삶의 방식을 견지하고도 발칸의 부시장직에 올랐다면, 에이미 와인스턴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오히려 지독한 건 당신이 아닙니까. 설마 여기까지 와서 [문]을 직접 보고도, 그 존재를 의심해 주인을 구해낼 줄이야.]레녹을 바라보는 부시장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외해의 문에 대해 잘 아는 자라면, 오히려 절대로 이 상황을 의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법사의 의중은 참 읽기 어렵군요. 여전히 기분 나쁜 족속들입니다.]“그래. 내 반응을 떠보았던 모든 말들이 이 상황을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기 위한 수작이었다는 건 알겠군.”
쾅!!
뛰쳐나온 불길이 옥상 뒤편의 유리문을 녹여 버린다. 도망칠 구석을 막아버린 레녹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부시장이 다급히 피하려 했지만, 움직임을 읽은 듯 거리를 좁히고 틈을 찔러 들어온다.
와인스턴보다 한참이나 느린 손짓. 하지만 레녹의 손은 빨려 들어가듯 대번에 부시장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콱!
[커, 커컥……!!]“하지만 마지막까지 속이고 싶었다면, 금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았어야지.”
레녹의 손가락 끝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부시장의 하관을 가리는 철가면을 파고들었다.
거칠게 발버둥을 쳤지만, 열기를 이기지 못한 철가면이 그대로 뜯겨 나가며 맨살을 내보였다.
뚜두둑!!
가면 아래 숨겨진 부시장의 입과 턱은, 마치 독에 녹아내린 것처럼 처참하게 짓뭉개져 있었다.
“프로젝트의 금제를 어긴 대가로 이렇게 되었다 말하고도, 19구역의 비밀을 떠벌린다면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나.”
“으, 으으…….”
입술이 찢어지고, 이빨과 혀가 없어 단순한 소리만을 토해내는 와인스턴의 모습.
애초에 발성 자체를 철가면에 내장된 기능을 통해 구현하고 있던 걸까.
반쯤 녹아내린 철가면을 다시 그녀의 입에 쑤셔 넣은 레녹이 말했다.
“왜 협정을 어기고 라피스를 죽이려 했지? 필레놈 자치령의 불가침 조약이 해지되지 않은 이 상황에서, 시정부에서 얻을 이득이 있나?”
[크, 흐흣……. 날 죽이지 않는겁니까?]“왜, 내가 여기서 널 빨리 편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나?”
레녹이 웃었다.
“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체질이거나, 두려움을 모르는 미치광이가 아니야. 단지 인조인간 제조 기술을 빌려 만들어진 의체일 뿐이지.”
[…….]“본신의 위계가 높지 않은 걸 생각하면 여러 의체를 동시에 조작하는 수준은 아니겠지. 의체의 사망을 트리거로 삼아 새로운 몸으로 옮겨가는 방식인가? 본래 육신 따위는 진작에 버리고 정신만을 남겨둔 상태겠군.”
19구역에서 인조인간에 관한 연구가 진행된 적 있다는 것을 아는 레녹은, 부시장 역시 관련 기술에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금제율령이 풀린 뒤 인조인간 제조 기술이 발칸의 고위 권력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하물며 레녹은 에이미 와인스턴이 생체공학의 대가이자, 관련 기술에 있어 굉장히 개방적인 성향이라는 사실을 메이어에게 전해 듣지 않았던가.
홀로 폐쇄구역을 안내하는 대담함이 예비 육체가 준비된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레녹은 그것을 짐작하고 에이미 와인스턴이 고통에 둔한 의체임을 간파해, 그녀의 신변을 제압하려 했던 것이다.
“의체임에도 네 입과 턱이 그렇게 뭉개져 있는 건, 금제의 대가가 언제나 적용되기 때문이겠지. 그건 네 몸이 아니라, 정신을 좀먹는 저주일 테니까.”
[하핫, 금제에 대해 거기까지 이해하고 있군요.]부시장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철가면을 입에 끼워 맞추며 말했다.
[이 상처 때문에 날 의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접근권한을 승계받은 시점에서,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악!!]턱!!
거칠게 부시장을 밀쳐 넘어뜨린 레녹이 차가운 눈길로 부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장 여기서 널 죽여봤자 안전한 곳에 보관된 새로운 의체에서 깨어날 뿐이겠지. 왜 네가 이곳에서 무사히 도망치도록 도와줘야 하지?”
[끄읍……!!]쉴 새 없이 흔들리는 빌딩 옥상 끄트머리 깃대에, 부시장의 몸을 처박아 마력사로 묶어버렸다.
뚜둑!!
그것만으로 부시장의 목이 살짝 꺾이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말해. 처음부터 어길 협정이었다면, 애초에 왜 여기까지 라피스를 끌고 온 거지?”
[푸, 후후후……!!!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이유가 궁금하다고요?]그 순간, 숨을 헐떡이던 부시장이 느닷없이 폭소를 터뜨렸다.
땅바닥을 기면서 나뒹구는 사이에도, 그 눈빛은 전혀 흐려지지 않는다.
힘겹게 시선을 돌려 뒤에 서 있는 라피스를 보며 에이미 와인스턴이 웃었다.
[그런 시답잖은 설명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중앙의회에서 이번 일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는 것도, 그 과정에서 청의 눈을 배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것도 말이지요.]“……처음부터, 시의회와의 협의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말인가요.”
[중앙전선에서 청의 눈이 지닌 입지가 지나치게 커진 시점에서, 다른 거대 세력 역시 그걸 좌시하려 들지는 않는 건 당연한 일. 의회와 정부 역시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낭패한 기색으로 침묵하는 라피스를 두고, 부시장이 느릿하게 속삭였다.
[천견의 손녀가 이끄는 비밀결사보다는, 연맹과 군벌의 연줄을 쥔 시의원들이 많았던 것뿐이지요.]“…….”
[타락한 승천자가 태동하며 중앙전선의 판도가 격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시정부도 입장을 정리해야 하겠지요.]무너져 내리는 19구역 외곽의 도심을 돌아보며 부시장이 중얼거렸다.
[이번 일은 그에 앞서 주변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수순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지나치게 무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와인스턴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조소가 어렸다.
콰직!!
그 순간, 무언가 부시장의 턱을 강하게 후려갈기며 철가면을 다시 뜯어냈다.
무어라 말하려 하지만, 더 이상 말이 되어 소리로 나오지는 못한다.
레녹이 그런 부시장을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런, 손이 미끄러졌군.”
“……!!”
“걱정하지 마라. 조만간 다시 붙여줄 테니. 그것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라피스를 돌아본 레녹이 손목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파티샤, 라피스의 상태는 어떻지?”
“육신에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
빠르게 라피스를 부축하고서 그녀의 상태를 살핀 파티샤가 말했다.
“다만 무리하게 공능을 끌어다 사용하셨으니, 당분간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외해의 문에 잡아먹히려던 것을 사실상 등대지기의 힘으로 억지로 멈춰 세운 반동.
“에반 님. 전 괜찮아요.”
그 말을 듣고서야 라피스가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여기까지 와서 멈추고 싶지는 않아요. 일단 여기 머물면서 문을 통과할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아니, 그건 불가능할 거다.”
“정 안 되면 외해의 문 앞에서 의식을 집행해, 조-”
“그런 뜻이 아니야. 부시장은 네가 문을 열지 못한 순간 곧바로 태도를 바꿔 널 죽이려 했다.”
라피스의 입을 막은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그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두 가지. 하나는 클리프턴이 가지고 있던 접근권한이 문을 열 수 있는지 부시장도 몰랐다는 것.”
어째서 부시장은 라피스와의 거래를 지킬 생각이 없으면서 굳이 여기까지 그들을 안내했는가.
레녹은 그것이 라피스가 승계받을 예정이었던 접근권한이 실제로 작동할지, 부시장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그럼…….”
쉴 새 없이 흔들리며 깨져 나가는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던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문을 여는 데 실패한 시점에서, 이 공간 자체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그 순간, 일행의 머리 위에서 조용히 번뜩이던 외해의 문이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쩌적!!
콰아아앙!!
문 너머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불길한 마력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19구역 사방을 점유하고 쏟아져 내렸다.
새카만 빛의 기둥이 내리찍히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파괴하며 소멸시키는 강렬한 마력.
[문을 한 번 열 때마다, 그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롭게 개편한다…….]힘겹게 철가면을 주워 쓴 부시장이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이미 망가져 버렸지요. 이 폐쇄구역의 공간은, 이제 저 문 하나만을 위해 존속하는 거짓된 환상입니다.]“…….”
문을 여는 데 실패한 시점에서 주변의 모든 시공간을 새롭게 개편하려 하는가.
부시장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레녹에게 제압당한 뒤에도 여유를 부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애초에 계획이 실패한 시점에서, 주변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뒤섞이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구역에서 일어나는 시공간 붕괴 현상은 한낱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어떻게 할 겁니까?]부시장은 고통스럽게 기침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부시장과 같이 죽든지, 아니면 시공간의 붕괴와 개편을 피해 폐쇄구역 밖으로 도망치든지.
애초에 여기까지 와서 기존의 계획이 어긋난 이상,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레녹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불길한 어둠을 보면서도 냉소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 모르니까 당하기만 하고, 그쪽의 의도에 끌려다니다 이대로 쫓겨나라?”
19구역에 존재하는 프로젝트의 비밀과 실패가, 레녹이 생각하던 것 이상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부시장의 의도에 끌려다니다가, 이대로 쫓겨나듯 도망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
알지 못해서, 몰랐기 때문에. 지식과 경험의 부재로 농락당하는 것은 질렸다.
낮과 밤을 뒤섞어 준동하는 외해의 문.
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새카만 마력을 움켜쥔 레녹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손해만 보고 갈 수는 없지. 내가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뭐라구요?]빠직!!
부시장이 그 말에 눈을 찌푸린 순간, 레녹이 문 아래로 떨어지는 외해의 마력을 쥐고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서 떨어지는 어두운 마력이 순식간에 고갈될 정도로 압도적인 동화력.
순간 레녹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강한 인력에, 주변의 모든 광채가 일제히 단 한 사람의 마법사를 향해 휘어졌다.
휘오오오오!!
끼기기긱!!
공간이 구부러지며 마찰되는 듯한 격렬한 소리와 함께, 외해의 비틀린 염상이 체내를 긁어내렸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그 마력에 노출된 순간 광기가 골수 끝까지 뻗쳐 미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폐해.
하지만 외신들의 의지를 목도하며, 세계의 결말을 파헤쳐 온 레녹은 단 한 번도 이런 사념에 흔들려 본 적이 없다.
단지 이해할 수 없다고만 여겼던 바다의 의지를, 일부나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깨닫는다.
어쩌면, 광라무해궁을 통해 그 가능성을 접한 순간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이제야 온몸으로 체화해 녹여냈다.
쿠르릉……!!
막대한 용량을 자신의 몸 안에 그대로 들이부어, 아무런 반동도 없이 오직 그릇만을 조금씩 넓혀 나간다.
8레벨에 오른 뒤로 한참 동안 변함이 없던 레녹의 최대 마력량이, 꿈틀거리며 준동하듯 늘어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이게 무슨……!!]외해의 마력을 흡수해 자신의 마력량을 늘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시장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린 순간.
외해의 문 너머로 터져 나오던 마력을 레녹이 모조리 집어삼켜 고갈시켜 버렸다.
19구역의 시공간을 유지하던 근원 동력을, 아예 통채로 흡수해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 찰나.
쩌억!!
지면 아래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공허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 만들어진 건축물이 부서지고, 하늘과 땅을 이루는 공간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
쿠과과과!!!!
갈라진 지면 사이로 라피스와 파티샤, 레녹의 신형이 추락하고, 부시장이 굴러떨어져 내린다.
공허 너머에서 쉴 새 없이 발작하는 매캐한 안개.
안개 너머에서 온몸이 새카만 어둠에 점철된 채로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수만 명의 사람들.
[아아아아악!!!!]새카맣게 눌어붙은 상반신을 앞으로 내민 채, 형용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레녹을 향해 손을 뻗는다.
[끄아아악!! 흐아아아악!!]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증오하고 저주하며, 원념 어린 괴성을 토해내는 타락한 생명.
그것이 어딘가 눈에 익다는 사실을 레녹은 곧바로 눈치챘지만, 눈여겨보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파티샤!!”
“여깁니다……!!”
바로 앞에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공허 속에서, 라피스와 파티샤의 기척을 포착해 움켜쥔다.
학의 다리인지 부리인지 모를 단단한 부위를 움켜잡은 레녹이, 낡은 연필을 꺼내 파티샤와 라피스의 몸에 꽂아 넣었다.
그 바로 옆에서 철가면을 고쳐 쓴 에이미 와인스턴의 몸이 휘청이며 떨어져 내렸다.
저 오염체 사이에 절여지면 의체를 바꿔 갈아타는 부시장이라 해도 정신적인 폐해를 버틸 수 없을 터.
여기서 의체를 믿고 뻗대던 부시장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살려서 인질로 써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렇게 생각한 레녹이 무심코 마력을 끌어올리다, 속이 격렬하게 진탕하는 것을 느끼고 입매를 굳혔다.
‘마력이……!!’
레녹이 방금 시도했던 것은, 외해의 문을 유지하는 마력을 모조리 흡수해 강제로 19구역의 파괴를 앞당기는 일.
그간 성장이 지체되었던 최대 마력량을 강제로 늘리는 것과는 별개로, 당분간 19구역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도록 통채로 마비시켜 버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만 너무 급격하게 자신의 것이 아닌 마력을 흡수해 그릇을 키운 탓에, 당장 체내 마력의 조절이 흔들리는 상황.
그것을 대번에 눈치챈 부시장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아무래도 우린 다음번에 다시 보게 되겠군요.]거꾸로 떨어져 내리는 에이미 와인스턴이 레녹을 돌아보며 속삭였다.
[작별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이 될 겁니다.]공허 저편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수만 가지 오염체를 양팔을 활짝 벌려 맞이한다.
콰득!! 뚜두둑!! 으지지직!!!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소음과 함께 온몸이 뜯어먹히는 부시장의 육체.
부시장의 얼굴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내 순식간에 흔적도 남지기 않고 사라졌다.
살아 있는 육신을 순식간에 뜯어먹은 오염체들이,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레녹을 향해 달려든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오염체들이 달려들어 검은 안개가 길게 휘어지는 기묘한 광경.
마치 거대한 괴물의 배 속에서, 그 위장에 서식하는 날파리들을 피해 도망치는 듯하다.
하지만 레녹은 그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에낙필의 다섯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좌표 지정까지는 불가능해. 만약 폐쇄구역을 탈출하지 못한다면…….’
에낙필의 다섯손가락은 사용자를 일정한 거리 밖으로 무작위 공간전이시키는 술식.
당장 레녹의 마력으로 전이되는 거리 자체를 늘려줄 수는 있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좌표를 정확하게 지정해 줄 수 없다.
라피스와 파티샤 모두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떨어졌는지 알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
“에반 님.”
하지만 그 순간, 라피스가 레녹의 손을 조용히 붙잡고 속삭였다.
눈을 감은 그녀의 눈꺼풀 사이로, 핏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도와드릴 수 있어요. 제가 보고 있을게요.”
“……!!”
그 말의 진의를 알아들은 레녹이 곧바로 아티팩트를 작동시킨 순간.
파아아앗!!!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격렬한 진동과 동시에, 세 사람을 둘러싼 주변의 풍경이 색채가 뒤섞이듯 일변했다.
* * *
피이이이이잉!!
우당탕탕!!!
낡은 벽돌로 세워진 건물 뒤편.
쓰레기가 잔뜩 버려진 담장 안쪽 폐허 사이로 레녹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튕겨져 나왔다.
펄럭!
날개를 펼친 파티샤가 우아하게 라피스를 받아 들고, 자연스럽게 쓰러진 레녹의 등 위에 내려앉았다.
“쿨럭!!”
기침을 토해낸 레녹이 싸늘한 시선으로 파티샤를 노려보았다.
“비켜.”
“……본의는 아니었습니다만.”
파티샤가 헛기침을 하며 라피스를 안아 든 채로 레녹의 등 위에서 내려섰다.
벌떡 일어선 레녹이 쓰러진 라피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상태는 어떻지?”
에낙필의 다섯손가락을 사용하기 직전, 라피스는 자신의 공능을 이용해 도착 지점을 강제로 ‘관측’시켰다.
그 덕분에 세 사람은 도시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 없이, 무사히 19구역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라피스가 무리하게 공능을 끌어다 쓴 것은 분명한 상황.
피눈물을 방울지어 조금씩 흘리는 라피스는, 이미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가뜩이나 섬세한 초견의 공능을 무리해서 끌어다 썼으니, 그 반동도 상당할 겁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어쩌면…….”
“말해. 뭐지?”
파티샤가 겨우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당분간 시력에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
레녹이 착잡한 기색을 감추고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19구역 밖으로 탈출하며 사태가 일단락되었으니, 이벨린과 연락해서 지금의 상황을 전해두어야 할 터.
하지만 가장 먼저 메시지에 떠오른 것은 라피스나, 이벨린과 관련된 연락이 아니었다.
다비가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 화면 너머로, 이제 막 고지되는 뉴스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
무심코 화면을 넘기려던 레녹이,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폐쇄구역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청의 눈과의 회담이 끝내 좋지 못한 결과로…….] [청의 눈을 이끄는 수장, 라피스 팔시어는 회담에 참가한 와인스턴 1행정부시장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현재 부시장은 극심한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추정…….] [시정부에서는 등대지기와 휘하 마법사를 특급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지명수배를 신청했습니다.]“……이건.”
휴대폰 화면 너머로 전송되는 뉴스에 비치는 발칸 도시의 화면.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전광판과 스크린에 레녹과 라피스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