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75
약먹는 천재마법사 875화
운명을 보는 눈(11)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논의가 다 끝나가는 와중에 찾아온 습격.
하지만 레녹은 언제고 들켜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라피스든 레녹이든 기척을 감추고 숨어버리기도, 멀리 도망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생각보다 빨리 발각당하기는 했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쉴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할 터.
“용병 사무소 소속이군. 플라톤?”
시체의 품 안에서 신원을 확인한 레녹의 표정이 살짝 묘하게 변했다.
아주 오래전에 들어보았으면서도, 한동안은 거의 이름을 듣지 못했던 사무소였기 때문.
“마법사. 상대는 고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파티샤가 라피스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 물었다.
“저희의 위치를 특정했다기보단, 우연히 근처를 탐색하고 있던 것 같은데 굳이 죽여서 시선을 끌 이유가 있던 겁니까?”
“서류는 위조된 가짜였지만, 구청장의 직인은 진짜였다. 21구역 구청에서 협조하고 있는 게 거짓말은 아니라는 거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시체의 품을 뒤졌다.
셔츠 안쪽 주머니에서 단말기와 시체가 쥐고 있던 붓을 빼앗은 레녹이 일어서며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구역 전체가 통제당하기 시작할 거다. 도로가 막히고 나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지도 몰라. 그럴 바에는…….”
치익!!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고 그대로 침대 위에 던진다.
빠르게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침대를 보며 레녹이 곧바로 라피스에게 손짓했다.
“이쪽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다른 구역으로 도망치는 게 우선이다. 움직이지.”
“이해했어요.”
구청에서 협조하기 시작한 이상 차로와 인도가 모두 막혀 버릴 가능성이 있다면, 당장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겠지.
레녹의 말을 이해한 라피스가 곧바로 방을 나서 복도 밖으로 뛰쳐나갔다.
파티샤가 그 뒤를 따라 비상계단 쪽으로 라피스를 안내하려던 그 순간.
콰앙!!
복도 사방에 배치된 객실의 방문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사방에서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갖 총화기와 폭발물, 마력이 내장된 장비를 들고 완전무장한 채 복도를 가로막는 십수 명의 초인들.
“청의 눈!! 저거 맞지?!”
“생포가 가장 단가가 높으니까 죽이지 마!! 살려서 더 받아야지!”
“지랄 마. 한 명이 목만 가져가는 게 가장 빨라. 방해하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
서로 빠르게 말을 토해내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용병들의 모습.
라피스의 앞에서 날개를 펼치고 가로막듯이 선 파티샤가 경악했다.
“대체 언제부터……!! 미리 숨어 있던 건가요?!”
“위치를 알자마자 객실 창문을 타고 들어왔군.”
용병들의 동선을 곧바로 간파한 레녹이 중얼거렸다.
“행동이 너무 빨라. 사전에 미리 매뉴얼이 준비되어 있던 것 같은데.”
빼앗은 단말기에 귀를 갖다대자, 수십 개가 넘는 목소리가 레녹이 위치한 호텔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마력감지를 통해 수십 명의 초인들이 일제히 근방 길목을 향해 걸음을 돌려세우는 것이 느껴지는 상황.
“라피스 팔시어. 맞지?”
쿠웅!!
선두에 선 보라색 피부의 거한이 독가스 같은 연기를 줄줄 흘리며 물었다.
두 눈은 시커멓게 충혈되어 초점이 보이지 않고, 눈가에는 핏줄이 잔뜩 곤두서 당장이라도 날뛸 것만 같은 흉험한 인상.
“그 천견의 손녀라고 들었는데, 어려도 너무 어리군.”
“…….”
“승천자의 혈족은 어디서든 굉장히 비싼 값에 팔리지. 시체를 챙겨가기만 해도 인센티브가 수백억대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다.”
쩔그럭!!
양손에 움켜쥔 갈고리 작살을 제 입으로 깨문 거한이 말했다.
“적당히 저항하다가 포기해 줬으면 좋겠군. 장기 하나쯤은 멀쩡하게 챙겨가야 만족할 만한 수당이 나올 것 같거든.”
소름 끼치는 거한의 독백. 하지만 라피스는 그 말을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제 시체 전부도 아니고, 장기 한 짝으로 만족하는 사람에게 내어줄 만한 목숨은 없군요.”
“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건 각오했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싸늘한 안색으로 돌아선 라피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손을 휘두른 순간.
복도 사방을 가로막고 대기하던 용병들의 시야가 그 자리에서 비틀렸다.
키이잉!!
“빌어먹을, 이게 뭐야?!”
“잠깐만, 내 몸이……!!”
용병들이 바라보는 시야를 서로 바꿔 각자 다른 몸을 통해 세상을 비추게 한다.
삽시간에 위치를 잃어버린 용병들이 비틀거리며 혼란에 빠진 찰나, 라피스가 몸을 뒤로 던지듯이 물러서고.
화르르륵!!
양손을 맞잡은 채 한쪽 눈을 감은 레녹이 한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손을 가로로 눕힌 채로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화염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흘러넘친다.
레녹의 손끝에서 번뜩이는 붉은 광채를 목격한 몇몇 용병들이 안색이 확 변해 물러서려던 찰나.
양손을 놓아버리듯 펼친 레녹의 손아귀에서 엄청난 양의 화염이 복도를 휩쓸고 쏟아져 내렸다.
염열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발산현현
[적축(赤築)] [파화자향(波火滋響)]번쩍!
그 순간, 호텔의 한 층을 연결하는 복도와 객실, 창문과 환풍기 사방으로 뜨거운 폭염이 폭발하듯 흘러넘친다.
쿠과과과과!!!
“흐아아아악!!”
“몸이, 몸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방에서 온몸이 불타 쓰러지는 용병들의 모습.
선두에서 맨몸으로 불길에 노출된 보라색 피부의 거한은 이미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다른 용병들이 열기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객실 안으로 도망치거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진다.
하지만 온몸에 달라붙은 불길은 사그라드는 일 없이 인간의 근육과 살점을 남김없이 불사르고.
비명을 지르며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불덩어리들이 추락해 꿈틀거리다, 숨이 끊긴 뒤에야 잿더미만 남긴 채 사라질 뿐.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던 라피스가 말없이 입을 다물고, 파티샤가 반대로 학의 부리를 쩍 벌렸다.
레녹은 두 사람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돌아서며 라피스에게 손짓했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못쓸 지경일 거다. 이쪽으로.”
방금 레녹이 용병들을 상대로 사용했던 염열마법은 화염을 한계까지 압축시켜 강제로 터트리는 고유마법.
소모마력에 비해 발동범위와 위력이 상당히 높은 대신, 영창한 순간부터 방향을 특정할 수 없는 조건을 지닌 마법이다.
대상을 특정 짓기 어려워 사용하기 어렵지만, 이런 좁은 복도에선 한 방향을 레녹이 틀어막고 일방적으로 적을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외해의 마력을 흡수하며 섬세한 조작이 어려워진 지금은, 아예 작정하고 이런 범위 포화를 때려 박을 수밖에.
왜애애애앵!!!
호텔 복도와 로비에서 화재 경보음이 울려 퍼지고, 거리 저편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에반 님. 당장 주시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요.”
라피스가 곧바로 레녹의 뒤를 따라 반쯤 뛰듯이 걸으면서 말했다.
“아마 저쪽에서 이 구역의 통신망을 모조리 차단한 것 같아요.”
반쯤 열린 비상계단 입구 아래쪽을 바라보는 라피스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계단이 녹아내려 걸어내려가기 힘들 지경이다. 차라리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는 것이 빠를 지경.
곧바로 결심을 마친 라피스가 근처 객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했다.
“일단 이 구역을 탈출해서, 제가 가진 아티팩트를 사용해 다른 식으로 연락을 취해볼게요. 일단-”
쩌어어엉!!
그 순간, 라피스의 머리 위에서부터 하늘이 짓눌리는 듯한 기묘한 공명음이 울려퍼졌다.
근방의 기압이 통채로 일그러지며 들리는 모든 소리를 왜곡시키는 듯한 기묘한 환각.
라피스가 마력을 끌어올려 초견의 공능을 두르고, 파티샤가 고개를 떨치며 날개를 펼친 순간.
두 사람의 옷깃을 움켜쥔 레녹이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 직후 무인호텥의 옥상 위에 미사일이 떨어지며, 건물 전체가 폭발하듯 산산이 조각나 비산했다.
콰아아아아앙!!!
거리 일대가 눈부신 화염에 휩싸여 흔들리고, 아스팔트가 액체처럼 녹아내려 인도 밖으로 흘러넘쳤다.
라피스와 파티샤를 움켜쥐고 떨어지는 레녹의 감각에, 이쪽을 노려보는 수십개의 기척이 동시에 잡혔다.
철컥!!
지상과 건물 창구에서 총화기와 의념이 섞인 마력을 동시에 조준하고 사출하는 추적자들의 반응.
땅에 내려선 뒤에 반응하면 이미 늦는다.
그것을 직감한 레녹이 마력사로 라피스와 파티샤를 연결해 등에 묶은 뒤, 곧바로 염열마법을 영창했다.
간결한 수인과 함께, 그대로 몸을 휙 돌리면서 내리찍듯이 휘둘러 마력을 뽑아낸 순간.
염열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부여중첩
[4중첩 점화(點火) : 가속] [화염인(火炎印): 접익(接翼)]화르르륵!!
레녹의 손끝에서 폭발하듯 솟구친 화염이 세 사람의 몸을 밀어내듯 가속하며 폭발하는 호텔건물로부터 멀어졌다.
“꺄아아악!!”
길게 솟구치는 불길을 마치 화염의 날개처럼 네방향으로 휘감은 채, 레녹의 신형이 추락 직후 엄청난 속도로 가속.
구심점 없이 회전하며 21구역의 번화가 일대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주파했다.
두두두두!!!
“놈이 도망친다!!”
“제 몸에 불을 붙여서 추진을 걸었어, 미친 새끼!!”
“잡아, 통행제한이 걸린 길목 안에서 끌어내려야 해!!”
도로 한복판에 버려진 채로 멈춰선 차량 사이로 용병들이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건물 벽면을 타고 내달리며 뒤를 쫓는 이들도, 옥상에서 미리 대기한 채로 저격을 준비하는 사수도 있다.
“에반 님!”
라피스가 저격수를 보자마자 시야를 막고, 추적자들의 균형을 잃게 만들어 벽을 타고 달려오는 이들을 떨어뜨렸다.
파다닥!
칼이나 대거를 들고 은신한 채로 따라붙는 암살자들은 파티샤가 날개를 휘저어 바람으로 밀어냈다.
학의 머리를 간신히 거꾸로 치켜든 영물이 회전하며 고속비행하는 레녹을 향해 꽥 소리쳤다.
“마법사, 좀 균형을 제대로 잡아줄 수는 없는겁니까……!”
“이 상태로는 균형을 잡으면 동선이 뻔해진다.”
후웅!!
레녹이 창백한 안색으로 대꾸했다.
“이대로 흔들리면서 조준당하지 않도록 혼선을 주는게 차라리 나을-”
슈우우웅!!
그 순간, 빌딩 사이에서 뱀과 같이 미끄러지듯 비행한 미사일이 레녹의 코앞까지 날아들었다.
미사일의 머리에는 살아 있는 눈동자가 박혀 기괴하게 꿈틀거리고, 발사체 외벽에는 핏줄처럼 충혈된 혈관이 솟구친 섬뜩한 외견.
인신공양을 베이스로 하는 주술을 걸어, 조작능력과 유도능력을 극대화시킨 저주화기다.
그것을 깨달은 레녹이 부스터로 삼은 불길의 방향을 홱 틀어서 미사일을 아슬아슬하게 벗겨내려던 그 순간.
미사일의 머리가 짐승의 입처럼 쩍 벌어지더니, 레녹의 코앞에서 그대로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허공에서 폭발한 저주의 마력을, 라피스에게 닿지 않게 그 자리에서 쥐어 삼킨다.
그 반동으로 레녹의 몸이 튕겨지듯 저 멀리 처박히고, 마력사로 묶여 있던 라피스와 파티샤가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큭……!!”
“라피스 님!”
라피스가 마력을 추슬러 빠르게 균형을 잡고, 파티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인도 쪽으로 내려섰다.
“나는 괜찮아. 에반 님이……!!”
“마지막에 점멸을 사용하는 걸 봤습니다. 괜찮아요!”
“……!!”
얼굴에 묻은 잿가루를 닦아내며 일어선 라피스가, 바로 직전까지 지나쳐 온 거리의 처참한 풍경을 돌아보며 말을 잃었다.
미사일에 폭격당해 활활 타오르며 무너져 내리는 호텔 건물과, 도로 사방에 주인도 없이 버려져 멈춰선 차량.
귀청을 찢는 총소리와 폭약의 굉음이 난자하는 혼란 속은, 도시가 아니라 전쟁터 한복판이라 해도 믿길 지경이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라피스가 힘겹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중얼거렸다.
“……발칸에선 이런 번화가에도 미사일 폭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하는 걸까?”
“그건-”
“자주 있는 이벤트는 아니지.”
그 순간, 활활 타오르는 거리 밖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경을 쓴 어두운 인상의 남성이 불길 바깥에서 파일철을 하나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연구원인 듯 걸친 흰 가운에는 검댕이 덕지덕지 묻어 있고, 소매 끝은 이미 불타서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불길 속에서 라피스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시선은 기이할 정도로 무표정하고 섬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