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117
117. 캐스팅은 내 마음대로. (1).
다음날 시우 필름 사무실에 도착한 김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아침이었지만, 사무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네….’
자신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했었지만, 막상 응대하려니 귀찮아진 김시우였다.
“다들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김시우의 말에 각 제작사부터 투자사의 사람들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다들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커피 마시겠습니다.”
“저는 물….”
“저는 오렌지 주스요.”
사람들이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를 이야기했고, 김시우는 이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유진은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가 음료를 가지고 왔다.
“자 드시죠.”
“감사합니다.”
집무실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김시우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느낌.
그들은 섣불리 자신들이 가져온 조건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왜 다들 말씀이 없으시죠? 영화 제작에 투자하려고 오신 거 아닌가요?”
“앗…. 네. 그렇죠?”
김시우의 말에도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자신들이 챙겨온 계약서를 건넬 뿐이었다.
‘아….’
그제야 사람들이 조용한 이유를 눈치챈 김시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자신의 패를 꺼내기 싫은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더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한다고 이야기한다면 순식간에 불이 붙어 서로 과하게 조건을 내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제작사 선택은 박웅덕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캐스팅 전권은 저한테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서류에 적힌 조건들 보고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이야기에 김시우가 홀가분하게 그들을 배웅했지만,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하아….”
사무실 안에 그새 다른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 유진아 너는 너 일하고, 신입 한 명 좀 붙여줄래?”
“네, 작가님.”
“자,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그렇게 김시우는 하루 대부분을 투자사 사람들과 제작사 사람들을 만나는 데 사용했다.
“후아…. 이제 없지?”
“네.”
“다들 시간 되면 퇴근해. 나는 먼저 간다.”
김시우는 평소 퇴근하는 시간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집에 도착한 김시우는 박웅덕에게 전화를 걸었고, 박웅덕은 마치 연락이 올 줄 알았는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감독님, 바쁘십니까?”
-나보단 김 작가가 바쁘겠지.
“하하하…. 그보다 이번 작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글쎄, 이번 작품은 내가 못 할 거 같은데?
“그렇습니까?”
김시우는 박웅덕의 거절을 생각하지 못한 터라 크게 당황했다.
박웅덕도 김시우가 그럴 줄 알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감독을 추천해 준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대신 내가 괜찮은 놈 한 명 추천해 줄게. 그놈이 구도 하나는 기막히게 잡거든. 아마 전쟁 장면 하나는 잘 뽑을 거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네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김 작가. 조만간 연락해줄게.
“네, 감독님. 감사합니다.”
박웅덕과 통화를 마친 김시우는 잠자리에 들었다.
***
‘무쌍 조선’의 발표 이후 3일 동안 김시우는 투자나 제작 이야기를 하러 온 사람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건넨 서류들을 이유진이 정리하였고, 정리한 파일을 이해수에게 보냈다.
무조건 조건이 좋다고 덥석 물었다가는 순식간에 망할 수도 있었다.
그 제작사, 투자사, 투자자 등 서류를 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회사인지 조사하는 것은 필수였다.
‘뭐…. 솔직히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간단하지만.’
박웅덕, 표봉수, 김진만, 심지영 등 어디가 괜찮은지 물어보면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이참에 리스트를 정리하기로 했다.
자신에게는 유능한 정보원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유 씨. 조사는 어느 정도 남았나요?”
“아! 네, 작가님. 내일쯤이면 시우 필름에 왔던 사람들 조사는 다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는 대로 저랑 이유진 감독한테 보내주세요.”
“네, 작가님.”
하루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제작사와 투자사, 배급사의 결정이 끝나면 그다음엔 캐스팅의 시작이었다.
***
그렇게 하루가 지나 황지유가 조사한 자료를 받은 김시우는 서둘러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역시 대기업이 좋긴 하네….”
황지유의 자료에서 역시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 제작사와 투자사들은 그 이름의 값어치를 하듯 조건이 매우 좋았다.
김시우는 이유진과 황지유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회의 후 리스트에서 목록을 추려 후보 수를 줄인 다음 자신들이 내걸 조건도 정리했다.
캐스팅 전권과 김시우의 공식행사 참여 자유 등 막대한 돈을 벌어다 주는 것에 비해 사소한 조건들이었다.
“그럼 유진아, 연락해서 미팅 날짜 잡아줘.”
“네, 작가님.”
“지유 씨는 저번에 하던 조사 마저 해주세요.”
“넵!”
시간이 지나 김시우는 박웅덕의 전화를 받고 이번에 함께하게 될지도 모르는 영화감독을 만나러 강남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 왔어? 김 작가.”
김시우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박웅덕과 소개해주기로 한 감독은 먼저 도착해 있었고, 김시우를 반겨주었다.
“인사해. 이쪽은 내 후배 박세용.”
“안녕하세요. 김시우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박세용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박세용은 과할 정도로 고개를 숙여 김시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아니에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자자 둘 다 그런 인사는 그만하고 자리에 앉지.”
“아, 네….”
이내 자리에 앉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들이 줄줄이 나왔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식당 직원이 음식을 놓은 뒤 사라지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작가. 이 친구를 아는가?”
“어…. 죄송합니다.”
박웅덕의 질문에 김시우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하하! 모를 수도 있지. 얘가 찍은 영화는 죄다 망했거든.”
“아니, 선배님.”
“왜? 맞잖아. 푸하하하. 그래도 이 녀석이 찍은 영화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해. 연출 하나는 기가 막힌다고. 그럼 뭐해 대본을 못 쓰는데.”
김시우는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박세용을 검색했고, 그가 찍은 영화 목록을 보게 되었다.
“어?”
“왜? 무슨 일인데?”
김시우가 놀란 표정을 짓자 박세용과 박웅덕이 동시에 바라보았고, 김시우는 입을 열었다.
“저 박세용 감독님 작품 알아요. 심지어 여러 번 봤는데요.”
“오…. 박세용. 대단한데?”
“하하….”
“그 ‘나쁜 놈들의 도시’라는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요.”
“정말요?”
“물론 스토리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요….”
“아….”
김시우가 박세용의 실력을 알게 된 이상 이야기는 아주 쉽게 흘러갔다.
김시우의 대본으로 박세용이 연출을 맡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만 이야기는 쉽게 흘러갔는데 상황은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쿨럭….”
서로를 소개받은 대가로 박웅덕과 술을 마셔야 했다.
박세용은 이미 포기했는지 초점이 없는 상태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얼핏 입가로 술이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젠장. 낮부터 술이라니. 대낮에 술 취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던데…. 하아….’
그 후 김시우는 박웅덕과 만난 지 6시간 만에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감독도 정해졌고, 제작 준비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날 초췌한 몰골로 출근한 김시우를 본 시우 필름 팀원들이 놀라며 김시우에게 말을 건넸다.
“작가님. 어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야…. 그보다 이번 영화 감독님 정해졌어. 박세용 감독님이라고 박웅덕 감독님께서 소개해주셨어.”
“네? 박세용 감독님이요?”
“어. 잘 알아?”
“그럼요! 연출로는 국내 톱이신 분인데요.”
김시우를 제외한 시우 필름 팀원 대부분이 박세용을 알고 있자 무안해진 김시우였다.
‘나…. 영화인 맞나?’
혼자서 무안해하는 사이 흥분한 듯한 이유진이 콧김을 내뿜으며 김시우에게 다가왔다.
“그럼 이번에 박세용 감독님한테 배울 수 있겠죠?”
“네가 원하면?”
“아싸!!!”
오랜만에 이유진이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본 김시우는 어제 술을 마시면서까지 박세용을 소개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제작사 리스트는 추렸어?”
“네, 일단은 이렇게 총 5곳으로 추렸고요. 투자는 그냥 배급사한테 받는 게 깔끔하고 좋을 것 같아요.”
“미팅날짜는?”
“내일부터 오전 오후로 2일에 걸쳐 잡아 두었어요.”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이유진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들은 김시우는 집무실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일단 확실한 사람들부터 전화해야겠네.”
본격적인 캐스팅의 시작이었다.
“여보세요?”
-네! 작가님.
“지금 바쁘신가요?”
-아뇨, 안 바빠요. 하나도 안 바빠요.
김시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김지현.
자신이 직접 뽑았던 첫 번째 배우이자 현재 드라마계의 공주님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작품을 연달아 성공시킨 배우였다.
“이번 영화 대군의 부인 역할을….”
-할게요. 당연히 해야죠.
김시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는 김지현이었다.
“스케줄은 괜찮으신가요?”
-다음 주면 드라마 촬영도 끝나서 괜찮아요. 여유 있습니다.
김지현은 있던 스케줄도 없애고 올 만큼 의지가 철철 흘러넘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회사에 대본이랑 계약서 보내드릴게요.”
-네, 작가님. 감사합니다. 정말 최선을 다할게요.
김지현과의 통화를 마친 뒤 김시우는 이어서 전화를 계속 돌렸다.
지밀나인의 심지영, 호위무사의 박준호, 왕의 박승환, 왕비의 이옥자 등 쉬지 않고 전화를 돌렸다.
결과는 전부 통과.
모든 배우들이 작품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행이네…. 다들 해주신다고 하니.”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김시우의 작품에 매번 똑같은 배우만 출연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박준호는 벌써 4번 연속으로 김시우의 작품에 출현했고, 심지영도 김시우의 영화 대부분에 출연했다.
“다음 작품엔 수연이를 중심으로 아예 새롭게 캐스팅해야겠네.”
이번 영화를 끝으로 매번 같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그만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굵직한 배역들은 캐스팅이 끝났고, 남은 배역인 주인공과 비중이 적은 조연들만 남아있었다.
“일단 약속은 약속이니까. MT 때 우승한 팀 애들 좀 보고 단역이나 조연에 넣어주고….”
대략적인 캐스팅을 마친 김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창밖은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하려고 나온 김시우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는 이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어? 아직 퇴근 안 했어?”
“아…. 네. 저도 이제 하려고요.”
“그래? 그럼 같이하자. 데려다줄게.”
“네! 작가님.”
김시우와 같이 사무실에서 나가면서 이유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이유진은 김시우와 같이 퇴근하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좀처럼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는 김시우를 보고서 모두가 퇴근할 때 일이 남아있다고 하면서 일부러 김시우를 기다렸고, 이유진의 예상대로 김시우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와 집에 데려다준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좋았어. 오늘은 꼭 단둘이서 밥 먹어야지.’
김시우의 차에 올라탄 이유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작가님.”
“어?”
“저 밥 사주시면 안 돼요?”
“배고파?”
“네….”
“그래, 그러자 그럼. 영화 얘기도 할 겸.”
그동안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던 이유진의 반격이 시작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