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138
138. 이별은 창작의 어머니. (2).
“좀 보고 갈래?”
“그래도 돼요?”
김시우는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걱정해 집까지 찾아와 죽까지 만들어 준 홍수연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이 대본의 주인공이기도 했으니 미리 보는 것이 홍수연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절반 정도는 썼으니까….”
“볼래요!”
“그래.”
홍차를 다 마신 뒤 방으로 들어간 김시우는 컴퓨터 앞에 있는 의자를 빼주었다.
“앉아서 봐.”
“네.”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홍수연은 자리에 앉아 앞에 보이는 미완성의 대본을 읽었다.
“불행소녀와 행운소년?”
이번 영화의 제목을 읊은 홍수연은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김시우는 뒤에서 자신의 대본을 읽는 홍수연의 반응을 기다렸다.
홍수연은 대본에 몰입했는지 점점 스크롤 내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홍수연은 대본을 다 읽었는지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어때?”
홍수연의 감상이 끝나자 김시우는 바로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좋아요. 조금 슬프긴 하지만….”
여자주인공에 조금 몰입해 버린 홍수연이 울컥하며 대답했다.
“다행이네.”
김시우는 대본이 괜찮게 나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홍수연은 저녁까지 먹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
김시우는 대본을 완성할 때까지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홍수연이 집에 다녀가고 나서 보름이 지나서야 대본을 완성했다.
총 한 달 하고도 보름.
김시우가 집에 틀어박힌 날짜였다.
그 사이 일본에서는 ‘천재가 사랑하는 법’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키리시마 스미레와 혼다 다이스케의 연애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자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이야기도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긴…소꿉친구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 배우가 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
다만 문제는 저번에 이야기했던 대로 더 이상 배우로서의 상업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연인이 있는 배우는 팬들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경우 다른 배우들에 비해 작품 활동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뭐…일단은 기다려 보자고.”
김시우는 그들이 좋은 배우임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이번 영화로 더욱 높게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곧 첫 촬영을 시작하는 ‘무쌍 조선’은 자신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장소 섭외부터 카메오 섭외까지 막히는 부분이 없었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의지가 넘쳤다.
“뭐…지영 누나가 있으니 별문제는 없겠지.”
더욱이 대부분 김시우와 작업해 본 적이 있는 배우들이 있었기에 촬영장 분위기를 걱정할 일도 없었다.
유일하게 걱정인 김지현과 심지영도 사이가 좋진 않아도 현장에서만큼은 싸우지 않고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단 저작권 등록부터 해야겠다.”
김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이해수에게 대본 파일을 보내려다 실수한 것을 깨닫고 메일 쓰는 것을 멈추었다.
“이제…변호사도 새로 구해야겠네.”
그동안 자신과 관련된 모든 법적인 일은 이해수에게 맡겼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직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새로운 변호사를 알아보기 위해 김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어머? 아들. 웬일이야?”
아침부터 샤워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하는 김시우를 본 그의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하러 가야죠. 쉴 만큼 쉬었으니까요.”
“그래, 돈 많이 벌어오렴. 그리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야. 엄마는 수연이가 제일 괜찮은 거 같더라.”
“….”
홍수연을 며느리감으로 적극 찬성하는 듯한 어머니의 말을 무시한 채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김시우였다.
“어디로 가지….”
차에 탄 김시우는 새로운 변호사를 고용하기 위해 새로운 로펌을 알아보았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잘나가는 푸른 법무법인.
그곳보다 좋은 법무법인은 한 곳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해수만큼 일을 잘하고 자신을 우선으로 챙겨주는 변호사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에 갑자기 막막해진 김시우였다.
“흠….”
김시우는 고민 끝에 이쪽 분야에 통달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한 번의 신호음이 울리자 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
-네, 작가님. 황지유입니다.
“아, 지유 씨. 지금 바쁘신가요?”
김시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기자 출신이자 시우 필름의 정보 담당인 황지유였다.
-아뇨, 그렇게 바쁘진 않습니다.
“그럼 변호사 한 분만 찾아주면 안 될까요?”
-변호사요?
“네, 일 잘하고 청렴한 분으로 부탁드릴게요.”
-알아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오래 걸릴까요?
-아니에요. 하루 정도면 충분합니다.
통화를 마친 김시우는 갑자기 할 일이 사라졌지만, 밖에 나온 김에 드라이브를 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하도 집에만 있다 보니 생각이란 걸 안 하네….”
대책 없이 밖으로 나온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 김시우는 차를 몰아 강원도로 향했다.
4시간을 달려 강원도 바닷가에 도착한 김시우는 바닷바람을 들이마셨다.
“쓰읍…하아….”
시원한 바닷바람이 김시우의 코로 들어와 폐를 가득 채웠다.
“시원하네. 이래서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바닷가를 가는 건가?”
김시우는 모래사장을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손을 잡고 걷는 커플, 아이를 안고 걷는 가족, 함께 웃으며 걷는 친구 사이인 사람들까지 해변엔 제각기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행복한 표정으로 거닐고 있었다.
자신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이 해변에 혼자 걷는 사람은 김시우뿐이었다.
“쓸쓸하네.”
혼자 해변을 걷던 김시우가 씁쓸해진 표정으로 해변을 나와 근처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한 검은색 고양이가 김시우의 근처로 와서 몸을 비비었다.
“개냥이냐?”
갑자기 다가와 친한 척을 하는 고양이를 보며 김시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는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자신이 만져도 아무런 저항 없이 배를 뒤집어 까기도 했다.
“미안한데 너를 키울 수는 없어. 나는 나 하나도 벅차거든. 대신 오늘치 간식은 사주마.”
김시우는 고양이를 떼어 낸 뒤 편의점으로 들어가 고양이 간식을 한 움큼 산 다음 다시 밖으로 나오자 고양이는 자신을 따라왔는지 편의점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하네.”
이내, 근처 의자에 고양이와 함께 앉은 김시우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몸을 비비는 고양이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한 척이냐…그보다 너, 굶어 죽지는 않겠다.”
김시우는 봉투에 담긴 고양이 간식을 하나씩 뜯어 고양이에게 주자 고양이가 허겁지겁 간식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배는 고팠나 보네.”
사료가 아닌 간식으로 배를 잔뜩 채운 고양이는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김시우에게 머리를 박았다.
고양이가 머리를 박는 행동은 헤드번팅이라는 행위로 보통 헤드번팅은 고양이들이 아주 많이 좋아하거나 신뢰하는 상대방에게 하는 행동이었다.
“저기…혹시 고양이 주인이세요?”
얼마나 고양이가 친한 척을 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고서 다가와 주인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아뇨. 오늘 처음 봤어요.”
“아! 정말요? 그럼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네, 뭐…제 고양이도 아닌데요.”
한 여자가 고양이 사진을 몇 번 찍은 뒤 만지려고 하자 사건이 터졌다.
퍼억.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양이의 펀치가 여자의 손등에 작렬했다.
“아야!”
“….”
그 모습을 본 김시우는 머쓱하게 여자와 고양이를 번갈아 보았다.
여자는 상처받은 얼굴을 했고, 조금 전까지 배까지 까며 뒹굴었던 고양이는 하악질을 하며 무서운 표정으로 여자를 경계했다.
“히잉….”
여자는 고양이를 만지지 못함에 아쉬워하며 돌아갔고 고양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김시우에게 친한 척을 했다.
“야, 나는 집사가 될 생각 없어.”
“야옹~.”
김시우의 말에 대답하는 고양이었다.
“한 번만 더 대답하면 선물을 주마. 대답해봐.”
“야옹~.”
“….”
정말 대답하듯 고양이가 두 눈을 깜빡이며 김시우를 올려다봤다.
“그래, 기분이다.”
김시우는 자신의 말에 대답한 고양이를 들고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동물병원이었다.
“오늘, 건강검진 좀 하자.”
“냐~.”
동물병원으로 들어간 김시우는 카운터에서 졸고 있는 수의사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앗! 어서오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이 녀석 건강검진 좀 하려구요. 하는 김에 중성화도 할 수 있으면 하구요.”
“아, 그럼 일단 기본적인 검사부터 해드릴까요?”
“아뇨. 그냥 할 수 있는 거 다 해주세요. 필요한 건 다 해주세요.”
“아…알겠습니다.”
보통은 키우는 고양이도 기본적인 검사만 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김시우는 오늘 주운 고양이에게 필요한 건 다 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진료를 보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가 김시우에게 고양이의 나이를 비롯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김시우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어…그럼 이 고양이는….”
“바닷가 근처에서 주웠어요.”
“아…네.”
이후 의사는 오기 전 고양이가 간식을 잔뜩 섭취했다는 이야기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최소 6시간에서 8시간 정도는 금식을 해야 해서요….”
“아, 네. 그럼 오늘부터 병원에 입원시켜도 상관없나요?”
“네, 가능합니다.”
“야, 내일 올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라.”
“야옹~.”
할 수 있는 진료가 끝나고 수의사는 검사 비용과 중성화 비용, 입원비용까지 계산해 김시우에게 보여주었고, 김시우는 가격도 보지 않은 채 카드를 내밀었다.
그 비용이 꽤 나왔지만, 김시우도 꽤 돈이 많았다.
동물병원에 고양이를 맡긴 김시우는 그대로 돌아가 호텔로 돌아갔다.
다음날 점심쯤 병원에 도착하자 김시우는 힘들어 보이는 의사와 수술 후 반쯤 기절해 누워 있는 고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이 힘드셨나 봐요….”
“아, 저 친구가 길고양이라서 그런지 이것저것 준비할 게 좀 많았거든요….”
“하하하…죄송합니다. 그보다 문제는 없나요?”
“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몸에 별다른 이상도 없구요. 다만 영양실조 낌새가 보여서 영양 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아, 얼마죠?”
“서비스입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김시우가 결제한 금액이면 영양 주사 한 번 정도는 서비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데려가면 되나요?”
“네, 다만 상처가 덧나지 않게 신경만 조금 써주시면 됩니다.”
“아…네.”
고양이를 챙긴 김시우는 차에 올라타 켄넬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하아…키울까?”
어릴 적 강아지를 한 번 키운 적을 제외하고 동물을 키운 적은 없었다.
아니,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들을 책임질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다.
“키우려면 아무래도 집을 구해야겠군….”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물을 싫어했다.
더군다나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선호했다.
“독립할 때가 되었나? 아…밥해 먹는 거 귀찮은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에 4시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야.”
“냐?”
“너 말 잘 들을 자신 있냐? 난 멍청한 고양이는 별로 안 좋아해.”
“야옹~.”
“참나…대답은 잘하네.”
고양이는 옆으로 누운 채로 힘 빠진 울음소리를 냈다.
“하아…결국 또 일을 벌였네.”
이해수와 이별한 이후로 자꾸만 생각을 안 하고 일을 저지르는 것 같은 자신이 한심해진 김시우였다.
어제만 해도 분명 이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수술이 끝나고 누워 있는 고양이를 보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버렸고, 차마 수술이 끝난 고양이를 버리고 올 수 없었다.
그렇게 김시우는 고양이와의 갑작스러운 동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