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62
성녀강탈 (3)
제도의 귀족가에 위치한 저택.
제국의 제2황자, 에이클리프 로가시온은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황실에서 그에게 공식적인 업무가 내려오는 일은 없었지만, 에이클리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세력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였다.
그런 에이클리프의 뒤에는 유테니아가 서있는 모습이었다.
유테니아는 성서를 읽어나가는 틈틈이 에이클리프의 편지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유테니아의 감시를 받으며 편지들을 확인하던 에이클리프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서 유테니아를 향해 이야기했다.
“콜트 공작이 나에게 따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콜트 공작? 의외의 제안이네요.”
콜트 공작가는 알테리어스 지방의 대부분을 다스리는 가문이었다.
북부의 험악한 환경속에서 자라온 공작가의 병사들은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병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알테리어스에 위치한 마력석 광산은 콜트 공작가의 재정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이번 대의 공작은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낸 막대한 인맥을 자랑하고 있었다.
공작의 본거지가 북부에 있다고는 하지만, 제도에서 공작의 영향력은 결코 가볍지 않은 편이었다.
오브토스 공작과 더불어 귀족들 중에서도 가장 예의주시해야하는 인물인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콜트 공작은 렌글로스 녀석을 지지하지 않나.”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가 이미 제3황자인 렌글로스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콜트 공작은 렌글로스의 가장 커다란 후원자였다.
렌글로스가 유력한 황위계승후보로 떠오른 것에는 외조부인 콜트 공작의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에이클리프를 초대하다니, 누가 봐도 미심쩍은 상황인 것에는 틀림없었다.
공식적인 초대에 함정을 파두지는 않았겠지만, 그리 유쾌한 이야기가 오고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에이클리프의 이야기를 들은 유테니아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펼쳐놓았던 성서를 덮으며 이야기했다.
“황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야 가급적이면 만나고 싶지 않다만······.”
“그런가요?”
콜트 공작을 껄끄러워하는 에이클리프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공작을 만나는 것은 그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될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에이클리프를 보는 유테니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며칠 전에 교단으로부터 보고받았던 내용에 대해 떠올렸다.
‘어쩌면 이번 일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요.’
교단이 제국의 황위쟁탈전에 전면으로 나설 수는 없다.
계승전에 참여하는 주축은 어디까지나 에이클리프 본인이어야만 했다.
교단이 힘을 드러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소한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유테니아에게 좋은 방법이 떠오른 상황이었다.
잘만 이용한다면 황자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성지의 힘을 빼놓을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황자님이 직접 초대장을 보내는 걸로 할까요.”
그렇기에 유테니아는 에이클리프에게 공작을 초대할 것을 제안했다.
역으로 공작을 초대하라는 이야기에, 에이클리프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이 이야기를 잘못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얼굴이었다.
“지금 나보고 콜트 공작에게 초대장을 보내라는 이야기를 하는건가?”
“네. 지금 당장 공작을 부르는 건 곤란하겠지만, 한 달 정도 뒤에 여는 파티에 공작을 초대하는걸로······.”
그녀는 에이클리프의 말대로 공작을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이 저택에서 성대하게 파티를 열어서 말이다.
그렇게 유테니아가 자신의 계획을 에이클리프에게 전하려던 찰나.
유테니아는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성서를 들고 있던 그녀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거짓된 신의 대행자가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언제나 유테니아에게 계시를 내리던 목소리였다.
위대한 존재가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유테니아는 머릿속에 있던 상념을 완전히 털어내고서, 그 다음에 이어질 신의 계시에 집중했다.
– “용의 아이가 스스로 공물을 바칠 것이다.”
– “공물을 받아들여라.”
– “그가 거짓된 성녀와 동행하게 하라.”
용의 아이. 그리고 거짓된 성녀.
계시를 듣던 유테니아의 머리에 위대한 존재의 마지막 명령이 스쳐지나갔다.
위대한 이에게 걸맞은 그릇을 빚으라.
위대한 존재에게 어울리는 훌륭한 그릇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수한 용의 피가 필요한 법이었다.
이번에 내려온 계시는 그것을 위한 신의 안배로 보였다.
거짓된 성녀의 경우에는 이번에 플루토가 확보했다는 질서의 성녀가 분명할테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가 그녀에게 계시를 내렸다면, 유테니아는 단순히 그것을 따를 뿐이었다.
유테니아는 자신을 향한 하늘의 부름에 답하면서, 들고 있던 성서를 창가에 비스듬히 세워두었다.
대화를 나누던 유테니아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돌변했기 때문일까.
그녀를 바라보던 에이클리프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 유테니아를 향해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지? 방금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있었나?”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네요.”
“일이라고······?”
“위대하신 분으로부터 명령을 받아서요.”
위대하신 분의 명령이 내려왔다.
에이클리프라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또한 신의 목소리를 들어 이 자리에 있게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위대한 존재의 명령이 떨어졌다는 이야기에, 에이클리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걱정하지마라.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그동안 이루어놓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을테니.”
“그게 제왕에게 필요한 덕목이니까요. 그것조차 어렵다면 황제가 되기는 힘들겠죠.”
“흠흠, 그래서 한 달 뒤에 공작을 초대하면 되는건가?”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제국의 반절조차 가로지르지 못할 시간이지만, 페린의 힘을 빌린 유테니아에게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달 정도라면 그녀가 원하는 밑작업은 전부 끝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유테니아가 에이클리프를 향해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할까요. 그때쯤이면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을테니까요.”
적어도 제국에 피바람을 일으키기에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 * * * * *
“하암······.”
공중에 떠있는 부유토의 위.
나는 스마트폰의 화면 속에 비추어지는 세 캐릭터들을 바라보며 하품을 하는 중이었다.
플루토와 페린. 그리고 새롭게 광신도에 포함된 에이린.
세 사람은 소란스러운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주로 에이린이었다.
– “플루토님! 제가 잘못했어요! 보내지 마세요!”
에이린은 플루토의 발치에 매달려 울고 불며 비는 중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간절한 모습으로 빌고있는 이유는 하나.
얼마 전에 찾아온 히든퀘스트 때문에 내가 그녀를 잠시 떠나보내기로 결정한 탓이었다.
이번에 생긴 히든퀘스트는 무려 [용혈]을 보상으로 주는 것이었다.
내가 조종할 최상급 캐릭터를 위해 들어가는 필수 재료를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나도 이대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만··· 작별의 때는 언젠가 찾아오고 마는 법이겠지.”
나는 어딘가의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 같은 대사를 읊으면서, 에이린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주었다.
돌이켜보면 에이린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쥐어준 이득이 적지 않았다.
에이린은 성지에 대한 정보를 로안이 보기 편하게 문서로 정리해주었으며, 어디 외딴 산골짜기에 처박혀있던 성유물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덕분에 [현자의 돌]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성유물을 얻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캐릭터에게는 저마다의 역할이 주어지는 법이다.
이 세계에서 에이린의 역할은 용혈의 교환 재료인 것이다.
가슴이 아프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버리지 말아주세요! 저는 시조님께 충성하고 있어요!”
자신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일까.
에이린은 플루토의 다리에 격렬하게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플루토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플루토는 한쪽 손을 들어올리며 머뭇거리더니, 이내 손을 뻗어 에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 “······보내는 시늉만 하는거야.”
– “보내는 시늉도 하지 말아주세요!”
– “······.”
– “제가 잘못했어요! 착한 흡혈귀가 될게요? 네?”
플루토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에이린의 태도는 완강한 편이었다.
그녀는 결코 이곳에서 벗어나기 싫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흡혈귀가 되면서 AI가 많이 망가진 것일까.
지나칠정도로 플루토에 대한 집착이 강한 캐릭터였다.
이제는 아무말이나 내뱉는 에이린을 바라보며 나무위에 앉아있던 페린이 입을 열었다.
– “착한··· 흡혈귀?”
페린은 불가능한 단어를 들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흡혈귀라는 단어와 착하다는 말이 결코 어우러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흡혈귀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인가 싶기는 했다.
현실로 따지면 착한 모기 정도가 아닌가.
착한 모기. 착한 모기라면 분명히——.
“그게 말이 되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깔끔하게 페린의 이야기에 동의하기로 결정했다.
정작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들은 다른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플루토와 에이린이 동시에 매서운 눈빛으로 페린을 노려보았다.
언제부턴가 플루토의 손에는 데스사이드가 들려있었다.
– “플루토씨는 착해요······.”
푸른 빛을 띄는 데스사이드의 모습에 페린은 빠르게 대답을 정정했다.
플루토는 그제서야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 페린은 잘 알고 있는 모양인걸.”
– “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났기 때문일까.
다시 한 번 플루토에게 엉겨붙는 에이린이었다.
에이린의 머리 위에 떠오른 말풍선의 크기는 이전보다도 한층 더 커져있었다.
– “플루토님! 제발 보내지 말아주세요!”
– “에이린······.”
– “플루토님을 위해서라면 청소 빨래 요리 뭐든지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저를 버리지 마세요!”
– “흡혈귀는 요리같은거 안먹잖아······.”
나는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두 캐릭터를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이야기해도 다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었다.
흡혈귀의 시조도, 게으른 천사도, 멍청한 자세로 바다를 떠다니는 흰색 찹쌀떡도 전부.
내가 이 게임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었으니까 말이다.
녀석들이 없었더라면 매일같이 게임을 붙잡고 과금을 하는 일도 없었을거다.
아마 한달동안 번개만 난사하다가 게임을 접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착한 애들이 많기야 하지. 유테니아만 생각해도······.”
교단의 첫째 효녀 유테니아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순간.
내 머릿속에 마을 하나를 통째로 갈아넣으며 공양의식을 올리던 유테니아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내 입장에서야 경험치를 모아주는 훌륭한 캐릭터라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시점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다른 캐릭터들의 눈에는 그림자를 두르고 다니는 정신나간 마왕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마 AI의 시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정도로 묘사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착하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착한건 아닌가? 그래도 뭐, 나한테만 잘하면 됐지.”
그렇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녀가 몇천명의 캐릭터를 죽였든, 몇만명의 캐릭터의 위에 군림하든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서 유테니아는 언제나 첫번째 사도였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목적에 충실한 첫 캐릭터였다.
유테니아와의 만남이 있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 캐릭터들이 뭐라고 생각하던지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