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
※ 작중 모든 지명 및 부대, 인물 등은 창작된 허구입니다.
노래해주세요
‘빌어먹게 좋은 날이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병원 정문을 나섰다. 한순간에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손차양을 만들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명절처럼 돌아오는 정기 검진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없단다.
‘그럼 그렇지.’
역시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버릴 순 없었다. 내 생에서 딱 하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멀쩡한 목소리였다.
나는 선천적으로 성대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첫울음을 터뜨린 그때, 부모님은 기뻐하시지 못했다. 그 울음을 들은 의사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에 황급히 나를 소아과 전문의에게 보였다.
그렇게 선천적 성대 기형을 진단받았다. 통증이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었으나 아기의 성대는 연약해서 수술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소름 끼치는 악마의 울음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부모님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그게 제 아들이라면?
자신이 우는 소리에 지레 놀라 공포의 울음을 터뜨리는 상황은 또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벙어리나 다름없는 아이가 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목소리를 앗아간 대가라도 되는 걸까.
악마의 목소리를 가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도 소리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귀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선지 내 목에서 나오는 소음 대신 황홀한 클래식 선율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가 지날수록 중증의 잡식성 음악중독자가 되었다.
8살. 수술을 통해 목소리가 나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얻었다. 나는 부모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수술하자고 떼를 썼다.
더 없이 설레고 행복하기만 했다. 회복 후 수술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
드높은 기대의 반동일까.
결과는 처참하도록 실망스러웠다. 객관적으로 전보다 부드러워졌으나 누구나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목소리였다.
평균적인 성인 남성보다도 낮은 저음에 불규칙한 쇳소리가 섞인, 탁하고 불쾌한 숨소리가 바로 내 목소리였다.
발음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잔뜩 섞인 것도 문제였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아이의 목에서 나오는 지옥의 음성. 괴리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그 자리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마저 차마 입을 떼지 못했을 정도이니 말해 뭐할까.
내 목소리를 경험해본 사람조차 본능에서 우러난 진심을 숨기지 못했다. 신체 반응은 그들이 느낀 공포 섞인 소름을 표현했다.
‘아, 나는 목소리 없이 살아야겠다.’
그때 그렇게 깨달았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도 살아간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불편함은 있어도 생명이 위태롭진 않다.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어쩌면 나는 삶을 살아가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음을 자연스레 체득했는지도 모른다.
그 후로 자발적 벙어리가 되었다. 아예 본격적으로 악기로 목소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억지로 소리 내어 말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쓰셨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다르다면서.
끔찍한 내 목소리를 매번 들어가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라니?
나도 고집으론 누구에게도 안 지지만, 말하는 법을 연습해야 하는 이유를 쭉 적어와 하나씩 짚어주는 엄마와 눈물 어린 호소를 하는 아빠의 사랑엔 버틸 수 없었다.
방에서 혼자서 연습하겠다는 조건으로 부모님의 설득을 수락했다. 매일 단 10분씩 이어지는 소음공해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기 일쑤였지만.
부모님의 끈질긴 노력으로 어찌어찌 발음을 알아들을 정도로 소리 낼 순 있게 되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혐오하지는 않게 됐다.
익숙해진 탓이리라. 여전히 정말 싫어하지만 떼어낼 순 없으니….
오늘도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연례행사처럼 병원을 방문했지만, 이제는 미련을 버릴 때가 아닌가 싶다.
기적을 그만 애걸할 때도 됐지.
목에 걸린 헤드폰을 다시 쓰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니, 내 목소리만 아니라면 괜찮을지도.
씁쓸하게 되짚은 나는 어깨에 멘 바이올린 케이스를 추스르며 병원 앞 건널목으로 향하다 초록 불을 보고 걸음을 서둘렀다.
“?!”
헤드셋의 노래를 뚫고 비명 같은 부름이 나를 덮치며 팔이 강하게 확 당겨졌다.
몸이 끌려가는 방향으로 다리가 크게 휘청거림과 동시에 바이올린 케이스 스트랩이 어깨를 타고 내려가 바닥에 닿을 듯 달랑거렸다.
“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몸을 똑바로 세웠다.
횡단보도 한복판에 날 붙잡은 젊은 남자가 보였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왔던 오토바이는 뒤꽁무니만 보인 채 빠르게 사라졌다.
이 남자가 날 구해줬구나.
병원 방문으로 심기가 어지러워 주의가 산만해졌을까. 헤드폰에 울리는 노래가 나를 홀렸을까.
이유야 어떻든 방금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다는 건 알겠다.
헤드셋을 벗자 남자가 나를 횡단보도 반대편으로 이끌었다.
엉겁결에 끌려갔더니 여기저기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한다.
“괜찮아? 병원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도로 병원 갈 뻔했잖아.”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깊게 고개 숙여서 감사를 표현했다.
보통은 감사하다고 말하고 끝내겠지만 내 경우는 감사 인사 대신 물질적인 보상을 하는 편.
시간을 보니 딱 점심시간이다.
다짜고짜 그의 소매를 잡은 채 주변의 설렁탕집을 가리켰다.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어서 다행이다. 상황이 여의찮았다면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잔뜩 쓸어서 안겨줘야 했을 텐데.
“응? 밥 먹으러 가자고? 사주겠다는 거야?”
끄덕대자 남자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얌전히 끌려왔다.
이렇게 순순히 따라오다니.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쯧.
나이가 10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에게 속으로 훈수를 두며 설렁탕집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하는 인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키오스크가 보였다.
역시나. 이 설렁탕 체인엔 키오스크가 있을 줄 알았지.
일반 음식점에서 말하지 않고 주문하려면 보디랭귀지에 의존해야만 했다. 언어가 다른 외국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키오스크가 있는 식당이나 배달앱을 선호했다.
먼저 주문하고 남자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눈치껏 같은 설렁탕을 주문했다.
카드로 계산을 마치고 설렁탕이 나오길 기다리며 빈자리에 앉았다.
“잘 먹을게. 어린 애한테 계산하게 하기 좀 그런데…, 그럼 딱 이것만 얻어먹을게. 알겠지?”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짓자 그에 화답하듯 남자가 활짝 웃었다.
“아까는 정말 위험했어. 아무리 파란불이어도 주위는 잘 살펴야지. 내가 순발력이 좋아서 다행이지. 놀라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벨벳처럼 부드러운 음색의 목소리가 첫사랑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이제까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목소리가 좋았다.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20대 남자 말투가 이렇게 다정다감한 곡선일 수 있는 걸까. 아기도 아닌데 아기가 된 오묘한 느낌.
“어, 나왔다. 마침 혼자 밥 먹기 싫었는데 잘됐다. 이 외로운 형을 구해줘서 고마워. 며칠 혼밥했는데 밥알이 목에 걸려서 안 넘어가더라. 오늘은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아, 내가 말이 많았지? 얼른 먹어. 수저 들고.”
왜 고맙지? 앞자리에 동영상 재생시켜놓은 것보다 심심할 텐데.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에 열심히 설렁탕을 먹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남자, 내가 말하지 않는 걸 이상해하지 않는다.
보통은 의아함을 느껴서 직접 물어보거나 궁금한 티를 낸다. 우리 가족같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있나? 아니면 몸에 밴 배려? 뭐든 기꺼웠다.
갑자기 도는 입맛에 밥을 한 술 크게 떴다. 식사 중간중간 남자는 수다를 떨었다.
“바이올린 하는구나. 나도 배워보고 싶었는데 기타로도 벅차더라. 교복 입고 있는 거 보니 학생인데 고등학생? 아님, 중학생? 요즘 학생들은 성장이 빨라서 잘 구분이 안 되네.”
중학생으로 보인다고? 키가 이렇게 큰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자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다 사레가 들려 급히 물을 마셨다.
“하하, 고등학생이구나? 반응 보니 딱 알겠네. 어릴 땐 어려 보인다는 말을 싫어하니까. 중학생이었으면 그렇게 안 찡그렸을걸. 정답이지?”
나이 차 때문인가. 속내가 쉽게 읽힌다는 게 짜증난다. 어른은 다 이런가.
“미안, 기분 나빴어? 입술은 집어넣고. 하하.”
입술이 왜 제멋대로 삐져나가고 난리야. 얼른 입술을 원상 복구했다.
“표정으로 대신 말하네. 표현력이 되게 좋다. 첫인상은 차가웠는데 표정이 다이나믹해. 반전매력이랄까.”
낯간지러운 칭찬이 난무했다. 실생활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고? 이 사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점점 의문만 늘어났다.
언변이 매끄러운 걸 보니 뭔가 설득하는 일을 하나? 아니면 호스트?
머릿속으로 예상 답안을 만들어보는데 남자가 먼저 정답을 내놨다.
“너무 닭살이었나? 멤버들한테 맨날 잔소리 들었는데 못 고쳤어. 전엔 이게 내 장점이었는데 이제 좀 자제해야 하나 보다. TMI지만 내가 아이돌이었거든. 너도 음악 한다니까 특별히 알려준다.”
아이돌? TV에 나오는 그 춤추고 노래하는? 이 남자가 아이돌이었다고?
또 얼굴에 물음표를 잔뜩 띄웠는지 남자가 이어서 대답했다.
“진짜야. 한 곡 잠깐 띄우고 망해서 알진 못하겠지만. 신기하지?”
신기하다. 아이돌 같은 소수의 직업군에 속했던 사람이 눈앞에 있다니. 이 신기함은 무형문화재를 만나는 기분이 아닐까.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순 없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뭐 어울리는 것 같기도?
음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클래식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대중음악도 즐겨 듣는다. 팝송도 듣고 가끔은 타국의 민요도 듣는다.
워낙 다양한 장르를 듣느라 반짝하고 사라진 아이돌 곡이라면 지나쳤을 가능성이 크다.
내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 애청곡이 되려면 ‘표현력’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음색이나 발성, 능수능란한 강약 조절 같은 요소도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남자는 고수다. 직접 들어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클리어리’라고 검색해보면 사진 나올 거야. 화장품이 더 많이 나올 테니까 정현오라고 붙여서 검색해봐.”
‘클리어리 정현오’를 검색하자 이미지가 떴다. 앞에 있는 이 남자, 이 형이 맞았다.
무대 사진은 조금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프로필 이미지는 확실히 정현오였다.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스물여섯, 나보다 9살 연상.
해체 기사가 몇 개 올라와 있었다. 해체 소식조차도 크게 화제가 되지 못하고 조용히 묻힌 듯했다.
‘진짜 망돌이구나.’
뭐라 위로를 해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형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부끄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분명히 아쉽긴 해. 여러 가지가 부족했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어. 그치만 난 최선을 다했거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노래도 춤도 너무 좋아해서 과거로 돌아가도 아이돌 할걸? 물론 다른 소속사에서 다른 방법으로 데뷔하겠지만. 아, 당연히 우리 멤버들도 데려갈 거야.”
잠깐 상상에 빠졌던 현오는 설렁탕을 마저 해치웠다.
“형이 너무 수다쟁이지. 미안. 원래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속엣말도 술술 나오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 탓만은 아니다?”
연갈색 머리칼에 붓으로 그린 듯한 눈매를 휘며 현오가 웃었다.
현오 형은 여자들이 보면 훈남이라고 할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특별한 개성은 없지만, 이목구비 하나하나 따져봐도 빠지는 데가 없었다. 메이크업이 잘 받는 얼굴이랄까.
무엇보다 웃는 상이라 선하고 좋은 인상이었다.
괴상한 화장으로 뒤덮인 과거 무대 사진이 그 얼굴에 겹쳤다.
도대체 화장은 왜 그따위로 했지? 그나마 맨얼굴이 더 나은데. 결정권이 없어서 억지로 당했나….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 학교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어?”
식당에서 나오면서 그는 내 손에 사탕을 쥐여주었다.
손바닥에 올려진 박하사탕 하나. 사탕을 입에 집어넣는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붙잡을 명분도 없으니 여기서 인사하면 끝. 보통은 이렇게 헤어지겠지.
그렇지만 나는.
이 사람의 음악을 듣고 싶다.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나에게 음악은 곧 대화. 일방적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웠다.
현오 형은 내게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아.
자그마한 기대가 피어오르는 동시에 망설여졌다.
머뭇거려진다는 건 이성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원한다는 뜻.
결국 나는 점점 차오르는 욕망에 지고 말았다.
“노래해주세요.”
끔찍한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눈치챘다. 내가 다짜고짜 노래 불러 달라고 했음을. 앞뒤를 따지지 못하고 행동했다.
현오 형은 이름조차 모르는 생판 남에게 무작정 노래를 부탁받은 셈이다.
나라도 황당하겠다….
멋대로 질러놓고서 허락을 기다리는 내가 바보 같았다.
괜히 머리카락을 헤집고 있자 형이 내 손목을 잡아내려 그만두게 했다.
어이없다기보단 재밌는 걸 봤다는 표정이었다. 비웃음처럼 보이진 않았다.
“처음 하는 말이 인사도 아니고 노래해달라는 말이라니!”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은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도 없었다. 거부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건만.
생소함이 담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오 형은 한참을 시원하게 웃었다. 가슴까지 후련해지도록.
“이름을 알려줘. 그럼 노래해줄게.”
“…함이원. 열일곱 살.”
훗날 생각했다. 그날의 만남은 확실히 내 인생의 경로를 틀어버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