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11
질투가 많은
콘서트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몸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콘서트가 진행될 때부터 지금까지 머리가 몽롱했다. 강제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게 된 기분이라, 좋으면서도 불편했다.
콘서트가 이런 거였다니. 왜 아무도 나에게 콘서트가 이런 느낌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을까?
서라운드로 들리는 사운드가 온몸을 진동시키고, 콘서트의 주인공인 코넬 선배님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팬들은 자지러지듯 비명 같은 환호를 보내며 연신 응원봉을 흔들었다.
노래 하나하나에 파도치는 이들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팬들은 무대나 대형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팬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환호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모든 이들을 보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말 못 하는 내가 아무리 음악을 통해 이야기한다고 주장해도 그건 반쪽짜리 소통이었다.
다른 음악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고, 또 일방적으로 들려주기만 했으니까.
그래서 콘서트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목격한 그 순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궁극적인 소통이 바로 저기 있음을 깨달았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춤과 퍼포먼스, 무대 세트와 함성, 디지털 화면과 응원봉에서 나오는 불빛…. 모든 것을 동원해 하나가 되어가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놀랍고 부러웠다.
목소리를 선물 받고 나서 누군가를 간절히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콘서트 한 번으로 가슴 밑바닥이 뜨겁게 들끓었다.
콘서트를 관객석에서 체험한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인데, 직접 무대 위에 서게 될 테오라의 콘서트는 어떨까?
부럽고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테오라도 언젠가는 콘서트를 열겠지만, 그때까지 어떻게 이 부러움을 참아내야 하지? 막막하기만 했다.
멤버들이 이번 콘서트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몰라도 나처럼 격렬한 부러움을 얻어오진 않았겠지.
“후우?.”
속에서부터 우러나는 한숨이 터졌다.
“한숨을 왜 그렇게 깊게 쉬어? 콘서트에 푹 빠져서 보더니?”
언제나 나를 매의 눈으로 살피는 멤버들에게 그 변화가 들키지 않을 리 없다. 오란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유난히 내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니까. 부모님이 더 생긴 기분?
“이제 한숨 안 쉴게.”
“우리가 한숨 쉬지 말라고 그랬겠냐? 왜 한숨 쉬냐 이거지.”
“그냥 좀, 부러워서 그랬어.”
결국 버티지 못하고 고백해버렸다. 입을 열 때까지 시달리긴 싫어서 별수 없었다.
“난 또 뭐라고.”
혀를 쯧, 차고는 오란이 다시 눈을 감고 자기 좌석에 몸을 묻었다. 나머지도 전부 자기 일로 복귀했다.
참고로 코넬 선배님의 대기실에서 나가기 전에 내 귀띔으로 박하는 사인과 기념사진을 획득했다. 깜빡 잊을 뻔했다고 내가 무슨 생명의 은인이라도 된 양 추켜세웠었다.
그렇게 대기실과 콘서트장에서 남긴 사진을 편집하느라 박하는 폰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서혼 형은 다시 한번 코넬 선배님들의 곡을 들으며 여운을 느꼈다.
지온은 피곤한지 눈만 떴다가 다시 잠든 듯했고, 초록 형은 휴대폰에 열심.
모두 부럽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들 정도는 다르더라도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듯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멤버들도 나처럼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콘서트를 하는 모든 연예인이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생길 정도지만, 그건 우리도 콘서트를 열고 나면 해결될 일이다.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참으면 된다. 하루라도 그날이 일찍 올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방법은 명백한데 그래도 지금 단계에선 기약 없는 일이라 마음에 답답함이 남았다.
“이원.”
자는 줄만 알았던 지온이 말을 걸어왔다.
“응?”
“음악은 대단해. 그치?”
“…맞아.”
“그러니까 믿어. 음악을 사랑하는 만큼 음악도 너를 사랑해줄 거라고.”
다른 사람이면 닭살 돋는다고 핀잔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다. 그렇지만 괴짜 예술가 같은 지온에게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이 남달랐다.
지온의 몸에 밴 래퍼의 스피릿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배우기가 쉽지 않다. 타고나야 하는 걸까?
“가사 쓰냐, 제톤?”
괜한 시비를 거는 오란을 모두가 무시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스킬이 다들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오란은 치, 하고 잇새로 바람을 내더니 지켜보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지온이한테서 약간 득도한 분위기가 나서 그런가? 말에 담긴 의미를 찾게 되더라.”
나도 서혼 형의 말에 공감했다. 태도 자체가 가볍지 않은데다 말에 진심이 담겨서 더 가슴에 와닿았다.
“지온이가 쓴 가사도 처음엔 센스에 감탄하는데 곱씹을수록 심오한 편이지.”
테오라의 곡에선 그 경향을 억누르는 편이지만, 개인 곡은 온갖 상징을 가져다가 라임으로 써서 공부해야 하는 편이란다. 그걸 알려준 사람이 서혼 형이었다.
반면 서혼 형의 랩 가사는 성격대로 친절하면서도 온후했다. 가사에 욕설이나 비속어를 섞지도 않고, 허세가 넘치지도 않았다. 주제도 전체관람가였다.
서혼 형은 동생들이나 어린 팬들이 들어도 괜찮을지 무의식적으로 고려하는 게 아닐까?
“우리랑 팬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명언 자제해. 김지온.”
가만히 듣고만 있던 초록 형이 끼어들었다. 왜 자제하라고 그러지. 누군가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멘트를 굳이?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지온이 되물었다.
“왜?”
“너 죄 많은 남자 될까 무섭거든.”
“Uh-huh.”
서혼 형도 뭔가 이해했는지 나지막한 목 울림을 냈다.
나만 이해 못 했나? 다른 사람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하는 걸로 지을 수 있는 죄가 도대체 뭐지.
“무슨 죄?”
“애기 이원이가 궁금했구나?”
초록 형이 입에 담은 저 호칭이 코티지에게 새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큰 애기가 어딨어?”
인상을 썼더니 바로 대답이 나왔다.
“흐흐, 별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 마음을 훔친 죄랄까?”
“아…. 그런 죄?”
“코티지들의 마음을 춤과 노래로 빼앗는 건 우리의 역할이지만,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 마음까지 흔들어놓으면 안 되지.”
아하. 자체적으로 연애 금지를 규칙으로 정해둔 테오라에게 어울리는 경고다.
“지온이가 미소 한 번 짓고, 심쿵 발언 한 번 하면 그때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어.”
“I got it.”
“나 좋아하나? 사귀자고 하면 어쩌지? 혼인신고는 언제? 애는 몇 명 낳으면 좋을까, 노후에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살까, 뭐 그런 식으로?”
“……?”
설마 그렇게까지 이입하는 분들이 있을까 싶지만 일단 경청했다.
연예인이라면 애초에 오해받을 빌미를 제공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게 맞으니까. 스캔들이 터지기라도 하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순식간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테니까.
“게다가 지온이는 남자 상대로도 인기 많을걸?”
“뭐?”
“쇼미더골드 나갔을 때, 남팬이 그렇게 많았다던데? 아이돌이 된 지금이야 여팬들이 늘었겠지만, 래퍼 지온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는 걸로 알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쇼미더골드에 나갔던 래퍼 제톤이 ‘매운맛’이라면, 테오라의 제톤은 ‘순한맛’. 그러나 그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
“나 ‘그’ 곡 가사 다시 썼는데. 볼래, 이원?”
‘그’ 곡이라 함은 내 작업실에서 골랐던 연습곡 No.5? 편곡이 들어갔어도 원곡의 난해함은 완전히 지울 수 없었던 곡이다.
그 느낌 때문인지 지온이 써온 가사까지 어려워서 들어보고 나서 내 감상은 ‘황당하다’였다.
한글과 영어, 독일어까지 섞인 가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미친 라임과 상징을 내포하고 있음은 알지만, 가사로 볼 때도 어려운데 들을 땐 더했다.
애초에 3개 국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람에게도 듣기 힘든 속도라 이 곡을 선보이면 사람들의 머릿속엔 물음표투성이일 게 명백했다.
그래서 지온에게 다시 써달라고 부탁했다. 멜로디가 어려우니까 가사는 단순하고 쉽게 해달라고.
여러 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드디어 내게 보여줄 만한 가사가 나왔나 보다.
“천천히 읽어볼게. 내일 오전에 작업실에 와서 저번처럼 불러보는 건 어때?”
“오케이. 내일 아침 먹고 같이 가.”
아침이란 단어에 강세를 두는 걸 보니, 내일은 아침부터 요리를 시작할 생각인가 보다.
체중 조절에 들어가서 마음껏 먹기는 힘들지만, 멤버들도 오늘 칼로리를 잔뜩 소비했으니 아침 정도는 푸짐하게 먹어도 괜찮을 거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읽으면 멀미가 날 것 같아서 지온이 준 노트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대강 훑은 것만으로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적어도 한글을 주로 해서 영어가 들어간 형식이긴 했으니까.
“숙소에 돌아가면 나도 보여줄래? 저번 거 못 봐서 아쉬웠는데.”
서혼 형은 종종 지온의 작사하는 방식에 흥미를 가지곤 했다.
하나의 줄거리를 생각하고 써나가는 서혼 형과 달리, 지온은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를 짜 맞추는 형식으로 작사했다.
작업 방식이 완전히 다른 터라 두 래퍼가 서로의 방식을 참고한다고 해서 원래의 작업에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번뜩이는 영감을 얻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가면서 닮게 되는 거겠지. 우리는 같은 생활 패턴과 식생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가족보다도 더.
* * *
지온과 함께 작업실에 다녀온 후, 초록 형이 내미는 휴대폰 화면 속 글을 확인했다.
코넬 콘서트에서 테오라를 봤다는 목격담이었다.
“재밌는 글이길래 읽어보라고.”
세수를 하고 난 후라 젖은 손을 티셔츠에 문지르면서 휴대폰을 받아들였다. 소파에 앉아서 버릇처럼 현이를 찾았다.
“현아, 형 왔어~.”
…냐옹.
일반적으론 내가 일하고 돌아오면 숙소 거실에 있는 캣타워에 올라가 있거나 서혼 형과 함께 쓰는 방 침대 아래에 있곤 했는데 오늘은 방향이 달랐다.
“현아?”
웬일이지. 박하 방 쪽에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낯설었다. 간식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다른 사람한테는 가지 않는 앤데.
일단 현이부터 찾아오기로 하고 박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박하야? 현이 거기 있어?”
“들어와도 돼! 문 열려있어!”
그러고 보니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도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박하가 뭔가 파릇파릇한 화분을 들고 있고 그걸 사냥감 보듯 매섭게 노려보는 현이가 있었다.
내 발걸음을 감지한 현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애처롭게 쳐다봤다. 마치 대신 저 화분을 빼앗아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뭘 들고 있는 거야?”
“이거? 캣닢! 화분으로 사봤는데 현이가 졸졸 따라오는 거야! 진짜 신기해!”
현이를 키우게 된 지 이제 세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아직 캣닢을 사준 적은 없었다. 현이가 캣닢을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사주는 건데.
“함현!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이건 이제 네 거야!”
초록색의 식물이 자란 작은 화분을 바닥에 내려뒀다.
냐옹냐옹 대답한 현이는 캣닢에 온몸을 비비더니 머리로 화분을 방문 방향으로 밀었다.
도자기 재질로 된 화분이라 작아도 묵직해 보였다. 적어도 현이 체중보다는 무거울 게 분명했다. 그런데 현이는 그 화분을 기어이 머리로 밀어서 박하 방 바깥으로 몰고 나가려고 했다.
“와? 똑똑하다 했더니 아예 화분을 밖으로 가져가려고 하네! 근데 여기서 즐기면 안 될까, 현아?”
살살 꾀어내는 박하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현이 때문에 내가 대신 화분을 밖으로 들어다 줘야 했다.
캣닢이 고양이 마약이라더니, 내 부름까지 제쳐둘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만 따랐던 고양이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캣닢에게까지 질투가 나려고 했다.
콘서트 때도 그렇고, 캣닢도 그렇고. 난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멤버들에게 솔직히 얘기했더니 질문이 돌아왔다. 코티지들이 다른 아이돌이 좋아졌다고 하면 어떻겠냐고.
“…코티지가?!”
질문했던 초록 형은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서 질문을 거뒀다.
내 표정이 어땠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