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12
코티지 커플
불쾌한 상상을 그만두고, 다시 고양이의 배신에 좌절하고 있을 때, 거실에 있던 초록 형과 서혼 형이 감탄을 터뜨렸다.
“현이 어디 동물 나오는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건 어때. 어쩌면 단숨에 우리보다 유명해질지도?”
마냥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프다. 어디서도 현이처럼 똑똑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보통 고양이는 제멋대로인 이미지가 강한데, 현이는 나 한정으로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어디 출연시켜볼 생각 없어? 우리 뮤직비디오라던가?”
“그럼 현이가 우리 마스코트가 되는 건가.”
현이는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고양이’라는 설정에도 어울리는 예쁘고 머리 좋은 고양이다. 누구라도 이견을 가질 리 없다.
멤버들도 현이를 거의 말이 통하는 고양이로 대했다. 거기에 위화감이 없다는 점이 대단하다면 대단한 점.
“마스코트는 함이원이지.”
“마스읍…!”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심지 듣지 않고 글자만 봐도 누가 하는 얘긴지 알 수 있었다.
저 인간에겐 먹이가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 무심코 반응하고 만다. 이 반사적인 행동을 고쳐야 하는데.
따지고 보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시간보다, 말 못 하고 머릿속 생각으로만 그쳐야 하는 세월이 길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마스코트 정의가 뭐야. 행운을 가져다주는 물건이나 사람 아냐. 그럼 함이원 말고 또 누가 있겠어.”
“말을 말자.”
“함이원이 있어서 행운 보정이 되는 것 같다는 가설, 난 진짜라고 생각해. 그래서 비록 빙어 축제에 갔던 날은 눈보라가 쳤지만, 그 인연으로 뉴튜브에서 화제가 됐잖아?”
에서 올린 영상이 인기 급상승 영상이 됐을 때, 다른 자료들은 출처가 있었지만, 빙어 축제 영상만큼은 직접 찍었다고 알려졌다.
눈 폭풍이 치던 그때 때마침 거기에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찍을 확률. 그리고 그 사람이 동영상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할 확률. 테오라의 스페셜 영상까지 만들 정도로 귀찮음을 감수할 확률.
모든 확률을 뚫고서 테오라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것이다.
그걸 내가 가진 행운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헛소리라고.
“확대해석하지 마.”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것 같은 예감 안 드냐?”
“안 들어.”
“함이원 네 촉은 고장 났구나. 슬퍼서 어쩌냐?”
입술을 쭉 늘여서 동글동글하게 올라온 볼살이 얄미웠다. 눈웃음으로 만들어진 애교살이 가증스러웠다.
왜 저건 나만 보면 어떻게든 시비 걸고 싶어서 안달하는지 알 수가 없다.
친근감의 표시인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하게 마냥 달갑지는 않다.
세간에서 형제자매는 보통 원수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친한 친구 혹은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될 텐데, 그러면 이보다 더 심해진다는 소리? 누가 거짓말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오란의 형님께서는 어떤 시련의 시간을 견뎌오신 거지?
흥, 코웃음을 쳤더니 가소롭다는 표정이 가관이다.
친구랑 이런 대화를 길게 나눠본 적이 없어서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가?
홍오란 뿐만 아니라 누군가 장난칠 때 센스 있게 받아치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장난이 섞인 대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분위기가 싸해지지 않게 맞설수 있는지.
“현아, 저 형 물고 올래?”
현이에게 응징을 부탁해봤지만, 영특한 현이는 내 말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음을 눈치채고 자기 발을 핥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런 현이의 망고스틴을 깨물어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비켜. 나 초록 형이 보라고 했던 거 봐야 하니까.”
“누가 보지 말래?”
오란은 소파에 앉은 내 바로 옆에 바짝 붙더니 머리를 들이밀어 손에 들린 초록 형의 휴대폰 화면을 가렸다.
순간, 욱할 뻔했지만,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 오란의 머리를 손으로 밀었다.
“좀 떨어져 봐. 보여줄 테니까.”
오란도 보고 싶어 하는 느낌이라 마음 넓은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초록 형이 켜둔 페이지에는 [썸남 따라 코넬 콘서트 갔다가 테오라 목격하기! (feat. 입덕스토리를 곁들인 염장주의)]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 음슴체로 쓰겠음. 초장문임. 난 미리 경고했음.
– 나 버스킹 입덕 코티지. 친구랑 만나러 홍대까지 갔는데 약속 펑크 나서 궁시렁거리고 있었음.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졸지에 추노 꼴ㅜ 그런데 저 멀리서 빗소리를 뚫고 노래가 들리는 거. 도대체 이 날씨에 누가 노래를 부르냐 하면서도 발은 그쪽으로 저절로 움직였음. 짧게 들은 게 다였지만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거든.
이미 비를 맞은 사람들도 있고 우비를 뒤집어쓰거나 우산 쓴 사람도 있었음. 근데 중요한 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그 비를 다 맞으면서 노래하고 있었다는 거.
비에 젖은 미소년들 본 적 있는 사람 있음? 없으면 말을 마~ 비 맞았는데도 얼굴에 변화가 전혀 없었음. 쌩얼 같았음. 가까이서 보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은데, 일단 색조는 거의 안 들어가 있었음. 근데 왜 잘생겼음? 왜 이목구비가 입체적임? 왜 청초함? 21이가 머리카락 쓸어 넘기는데 그만, 덕통당하고 말았음.
입덕 계기는 이런데, 사실 다른 친구들한테 일코해제는 아직 못한 상태였음. 걔네는 애 키우느라 바빠서… 내가 나이 많은 줄 알 것 같은데 아직 20대임! 친구들이 결혼을 일찍 해서 그런 거!
어쨌든, 그렇게 외로운 덕질을 하고 있었는데, 내 썸남이 콘서트 티켓을 내미는 거임. 여자들이 이 그룹 좋아한다고 들었다면서. 그게 코넬이었음.
나도 코넬한테 호감은 있었지만, 내 폰에는 코넬이 아니라 테오라 단체 사진이 있는데,,,? 그래도 공짜 마다할 게 뭐 있음. 코넬 콘서트 예매 경쟁도 피 튀기는 거 알고, 재밌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센스 있다 싶어서 당연히 Go! 했음.
그렇게 썸남과 콘서트장에 가서 시작 시각을 기다리고 있는데, 커다란 남정네들이 우리 앞좌석에 우르르 몰려와서 앉았음.
전부 키가 커서 X댓다 싶었음. 그 콘서트장이 시야 좋다곤 해도 150 간당간당한 내 앞에 키 큰 남자들이 앞에 앉으면 보일 리가 없었음ㅜ 슬픔을 머금으려는데 그 남자들이 사라짐.
순간 어디 갔나 싶었는데, 앉은 거였음!! 전부 180 가까이 되는 키 같았는데, 앉으니까 티도 안 나는 거! 와, 앉은키가 작다는 건 그만큼 다리가 길다는 소리 아니겠음? 축복받은 신체 구조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모델 체형의 그들을 관찰했음.
하나 같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는데, 거기까진 이상한 걸 못 느꼈음. 코넬 콘서트 끝나면 머리 산발되니까 모자 필수라는 글을 봤거든. 그렇게 요리조리 각도를 바꿔가며 힐끔거리는데 잘생김이 모자로도 가려지지 않았음. 옆에 있는 썸남에겐 미안하지만 잘생긴 남자에 시선이 가는 건 본능 아니겟음?
근데 계속 기시감이 드는 거. 뒤통수가 익숙한 게 자꾸만 머리 한구석에서 알람을 울렸음. 그때 한 명이 스트레칭하느라 허리를 비틀었음. 그 바람에 옆얼굴이 딱 보였음. 바로 서 혼! 두둥!
우리 애들 사이좋게 같이 다니기로 유명하잖슴?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명백했음. 테오라 멤버들! 키 엄청 큰 남자 한 명이 있었는데 아마 경호원이나 매니저 같았음.
뭐가 달라졌나 했더니 모자 아래 삐죽 튀어나왔던 머리 색이 전부 까매져 있었음! 그래서 바로 못 알아본 듯.
앞자리에 테오라가 있다는 사실에 당장이라도 사인지라도 들이밀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었지만 옆에 누구? 썸남이 있었음. 웃어주면서 대화하고 있었으나,, 신경은 온통 앞좌석으로 가 있었음.
대화하느라 애들끼리 뭐라고 얘기하는지는 잘 안 들렸어도 얼마나 친한지 알 수 있었음. 서로 장난치고 웃고 그러는 게 자연스러웠거든. 올팬 성향 함프로서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썸남이 툭 말을 걸었음.
‘근데, XX 씨, 저 앞에 있는 애들 아이돌 같지 않아요? 테오, 뭐라고 들었던 적이 있는데.’ 흠칫했음. 데뷔한 지 이제 반년 남짓한 남돌을 알아보는 남자?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동생이 걔네 팬이라 사진으로 많이 봤거든요. 노래도 자주 들었고요.’라고 말하는 거. 순간, 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걔네 어땠냐고 물었음.
‘예능에 나오는 것도 봤는데 열심히 해서 기특하더라고요. 노래도 잘 부르고. 나중에 그 그룹 콘서트 티켓 구해서 동생한테 줄까 하고요.’ (썸남은 공연기획 관계자) 콘서트 티켓에 눈이 멀어 청혼하고 싶어졌음. 아가씨랑 덕질 메이트 하는 상상과 함께 귓가에 종이 울렸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도 썸남에 대한 무한한 호감이 솟기 시작했음. 덕질 이해해주는 남친? 게다가 잘 꼬시면 코티지가 되어 줄 것 같은 남친? 무엇보다도 여동생에게도 자상한 남친? 무조건 콜!!!이었음. 본인이 나이 많은 엄마아들이 있어서 다정다감한 오빠가 얼마나 희귀생물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음. 동생분은 좋겠다고 대답해주면서 피눈물을 흘렸음. 나도 저런 오빠 있었으면 모시고 살았…
어쨌거나 테오라 멤버들이 콘서트를 준비하는 자세는 이랬음. 스트레칭하기, 차 마시기, 목 풀기, 코넬 굿즈로 도배하기,, 얘들아? 너희 코넬 콘서트에 나보다 진심이구나?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음.
콘서트 시작한 후엔 어차피 잘 보이지도 않아서 콘서트에 집중했음. 코넬 콘서트 존잼! 왜 추천하는지 알겠더라. 스트레스 다 풀렸음. 근데 테오라 애들 응원봉을 쉬지도 않고 일정한 속도로 흔들었음. 체력 무슨일? ㄷㄷ
콘서트 끝나고 사람들 거의 빠져나갔을 때까지 남아 있었는데 애들도 늦게 나간 덕에 그쯤에야 애들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엇음.
그걸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썸남이! 척척 걸어가더니 사인요청을 하는 거임! 동생 가져다주겠다고!!
헐!! 그때 인생 최대의 순발력을 발휘해서 ‘저도…’를 시전했음! ㅎㅎㅎ 사인 획득!
썸남이 준 티켓으로 코넬 콘서트를 갔는데 거기서 내돌을 봤다? 썸남 덕분에 사인도 받았다? 이거 운명 아님?? 그날부터 우리 1일 하기로 했음! ㅎㅎㅎㅎ
– P.S.1 조심스럽게 일코해제했는데 남친이 눈치챘다고 했음,, 나중에 테오라 콘서트 열면 초대권 구해본대!
– P.S.2 남친 여동생이 내 연락처 궁금하다고 했다는데 이러다 은근슬쩍 가족이 되는건…?
그 아래에는 성덕에 커플이라니 용서할 수 없다는 과격한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댓글 수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르러서 얼마나 과열되어 있는지 전해져왔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쇼핑 앱을 켜서 보여주며 현이에게 뭘 갖고 싶냐고 묻는,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고 있던 박하가 물었다.
“콘서트 목격담 읽어보고 있어.”
“그 글! 나도 봤어! 로맨틱하지 않아?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진 운명!”
“어…, 로맨틱까진 모르겠지만, 이분들 인연이긴 한 것 같아. 나중에 결혼하시면 좋겠다.”
테오라로 연결된 코티지 커플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멋지다.
“우리가 축가 불러드리면 좋겠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
턱을 괸 채 댓글을 훑어보던 홍오란이 웬일로 눈이 반짝반짝한 박하에게 동조했다.
“코티지용 축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