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88
관계자 외 관찰 금지 (1)
관계자 외 관찰 금지.
여기서 ‘관계자’는 진짜 관계자가 아니라 시청자를 포함했다. 결국은 모두가 관계자가 되어 스타의 일상을 관찰해달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금지’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프로그램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는 후문.
대충 ‘관찰 금지’라고 불리는 이 유명 예능은 황금 시간 대인 금요일 밤 11시에 방송되고 있었다.
무려 3년 차를 맞이한 이 프로는 방영 초반부터 꾸준히 시청률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그래서 ‘관계자 외 관찰 금지’는 스타가 되는 등용문으로 알려져 있다.
최소한 버즈량은 폭발하고, 촬영 분량이 재밌게 뽑히면 하루아침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스타가 되기도 한다.
잘만 하면 뉴튜브에 각종 영상이 올라오고 커뮤니티에도 짤이 도배돼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최고의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어떤 결과를 얻을지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지만, 일단 ‘관계자 외 관찰 금지’에서 섭외 요청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희소식이었다.
“일정 조율해보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출연은 거의 확정됐을걸!”
테오라의 일상이 담긴다면 숙소나 연습실을 배경으로도 찍게 될 터다.
“관찰 캠 앞에선 평소처럼 행동해야 하는 거 알지?”
“당연하지! 나 관찰 금지 애청자야!”
스튜디오에서 관찰 영상을 틀어 놓고 토크를 하게 되는데 재밌고 생생한 리액션이 나오려면 ‘자연스러운’ 영상이 기본이었다.
예전에 작위적인 영상을 방영했다가 한동안 시청률이 뚝 떨어지고 ‘관찰 금지’도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선지 그 후로는 리얼함을 예민하게 따진다고 했다.
“리허설하는 셈 치고 카메라 좀 들고 다녀야겠어!”
어디선가 한숨이 터졌다. 아무래도 홍오란이겠지.
“스케줄 확정되고 나서 준비해도….”
“그럼 늦어! 못 먹어도 고해야지! 관찰 금지 출연시켜준다고 하면 단식기도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한 트럭일걸!”
맛있는 음식에 진심인 멤버들이 모인 그룹이라서 그런지 단식에 비유하니 쉽게 이해해버렸다.
“그럼 최대한 리얼하게 가는 쪽으로 하고 숙소 대청소부터 해볼까?”
며칠이면 원래 상태로 돌아올 테니 지금 하는 청소는 리얼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거다.
* * *
테오라는 휴식기를 가지는 중이고, 다른 스케줄은 유연성 있게 조정할 수 있는 것들이라 ‘관계자 외 관찰 금지’ 촬영 일정을 조절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금세 스케줄이 픽스됐고, 촬영도 가깝게 잡혔다. 다른 스케줄을 쳐내면서 정규 앨범 준비에 정신을 쏟았더니 ‘관찰 금지’의 촬영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촬영에 들어가기 위해 제작진분들이 숙소에 관찰 카메라를 잔뜩 설치해두셨다.
화장실을 제외하곤 사각지대가 있어선 안 된다나?
숙소에는 우리 테오라와 관찰 카메라만 남았고,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긴장한 채로 잠들어선지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꺼풀을 들지 않고 얼굴을 이불에 묻었다.
뭐부터 해야 하지? 우리 팬들이나 우리를 처음 볼 시청자들에게 초췌한 모습을 보일 순 없으니 상태를 정비해야겠지만, 자칫하면 리얼함이 사라질 수도 있다.
기지개를 켜는 척하면서 눈가와 입가를 비비고 이불을 걷으며 일어났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품하면서 서혼 형 침대를 쳐다봤더니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침대 시트와 이불엔 이미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방을 나서자 여느 때처럼 요리하는 소리와 침샘을 자극하는 맛있는 향기가 나를 반겼다.
요리하는 소리로 아침을 시작하던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도 있던데 내게는 그 소리는 엄마가 아니라 ‘지온의 소리’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 집은 아침에 서양식으로 먹은 적이 더 많아서.
“지온, 아침은 쌀국수야?”
“That’s right. 딱 맞추네. 얼른 씻고 와서 앉아.”
“서혼 형은 아직 운동 안 끝났대?”
“요 앞이래.”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요리에 열중하는 지온은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일상이 과연 재밌게 찍힐지 의문이다. 너무 심심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오늘은 바쁜 날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러 스케줄을 여러 개 잡아둔 날이라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관찰 카메라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 결과는 다다음 주 ‘관계자 외 관찰 금지’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튜디오엔 초록 형과 박하, 홍오란만 나갔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자꾸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고정 출연진분들의 센스와 순발력이 빛나는 자리였다는데, 셋의 반응을 봐선는 적어도 노잼일 것 같진 않다.
방송이 얼마나 재밌게 나올지 궁금해진다.
* * *
테오라가 휴식기를 선언하면서 코티지들은 떡밥 가뭄에 시달렸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함현발닦개’도 마찬가지였다.
테오라가 아무런 스케줄도 잡지 않고 쉰 건 일주일밖에 되지 않지만, 그 전에 워낙 활발한 활동을 했던 터라 그 격차가 극심했다.
자고 일어나면 떡밥이 새로 샘솟는 풍족한 환경에 길들어진 팬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잔뜩 늘어난 위에 다이어트식을 정량으로 넣는 격이었다.
테오라 멤버들의 건강을 생각하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지독한 갈증이 이성과 감성의 싸움을 일으켰다.
마치 머릿속에서 싸우는 천사와 악마처럼 치열하게 다퉈댔다. 테오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은 별개인 걸까.
갈증과 허기를 해소할 수가 없었다.
드문드문 나오는 떡밥으로 목숨을 연장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
“이제 더는 못 참아!”
푸념이라도 늘어놓으며 떠들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접속했건만, 정작 팬카페는 풍악을 울리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테오라에게 인생을 배팅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팬카페이니 그에 비하면 정보가 느릴 수밖에 없긴 하다. 그렇지만 하루 사이에 이렇게 팬카페가 들썩거릴 일이 뭐가…?
“관계자 외 관찰 금지?! 미쳤다! 테오라 한방에 탑급으로 올라가나요!”
그간 테오라 멤버들이 보여준 활약들을 돌이켜보면 관찰 금지에서 레전드를 만들어내고도 남는다.
솔직히 얼굴만 나와도 재밌어서 입이 찢어지겠지만.
“하! 어떻게 기다리냐….”
그래도 희망도 꿈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리고 대망의 금요일 밤 11시.
오프를 뛰면서 친해진 코티지들과 함께 불금을 불태워보려고 작정하고 파티룸을 빌렸다.
숙박비가 저렴하진 않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평소에 꾹꾹 눌러뒀던 팬심을 방출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니까.
뭐, 사실은 평소에도 비계에 팬심을 조금씩 풀어놓고 있긴 하지만.
그 취미용 비계가 코티지 사이에서 네임드가 되어 버린 건 비밀이다.
작은 테이블에 테오라의 포토 카드를 비롯한 굿즈들을 신성하게 모셔두고, 커다란 테이블엔 파티 음식을 펼쳐뒀다.
맛집에서 엄선해서 포장해온 폭립과 모둠전은 식긴 했어도 맛있는 냄새가 물씬 났다.
“언니들, 저 왔어요! 아직 방송 시작 안 했죠? 지각한 벌로 디저트 사 왔는데~!”
배운 사람은 어딘가 달라도 다른지 덕질 메이트는 두 손 무겁게 선물을 들고 왔다.
“얼른 앉아. 시작하겠다.”
‘관계자 외 관찰 금지’ 인트로가 나왔다가 광고가 이어졌다. 그중에는 테오라가 찍은 에르메 치킨 광고도 있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야식을 흡입해야만 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히는 금요일 밤, 치킨 광고는 사기였다.
게다가 광고 모델이 다른 누구도 아닌 테오라. 멤버들 전부 복스럽게 잘 먹는다는 ‘그’ 테오라다.
CF에서는 먹는 장면을 압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짧은 장면에 담긴 리얼함은 은연중에 대중을 자극했다.
테오라 치킨 CF만 보면 입안에 군침이 돈다는 증언들이 속출한 데엔 그럴만한 근거가 있었다.
“에르메 치킨으로 시켰지?”
“그럼요! 테오라 뱃지까지 야무지게 챙겨왔어요.”
멤버 개인 컷 여섯 가지에 단체 컷 네 가지, 총 열 가지의 뱃지를 전부 모아서 인증하면 특전으로 한정판 포토북을 배송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치킨 업체의 상술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울면서 에르메 치킨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게 팬들의 운명이었다.
“단체 치킨 버전 뱃지로 나와라!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님 천지신명이시여!”
치킨 닭 다리를 하나씩 들고 있는 단체 컷이 들어간 뱃지는 희귀템이어서 다들 눈을 벌겋게 뜨고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포장지를 뜯어 안에 있는 뱃지를 확인하는데 이게 뭐라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제발!”
“언니….”
먼저 뱃지의 귀퉁이를 확인한 동생이 슬픈 목소리를 냈다. 오늘이 성덕이 될 날은 아닌 모양이었다.
교복을 입은 버전의 단체 컷이 담긴 뱃지가 나왔다.
“누구 가질 사람? 난 이미 두 개나 있어서.”
“저요. 하나 있긴 한데 한 세트 더 모으려고요. 동생이 요즘 박하한테 빠져서요.”
“박하도 좋지~.”
박하 에피소드를 꺼내려다가 광고가 전부 끝난 걸 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목욕재계하고 영접하지는 못하더라도 정갈하게 테오라를 맞이해야 했다.
팬들과 시청자들의 실시간 반응을 보기 위해 태블릿과 휴대폰도 켜뒀다.
한 손에는 맥주캔, 다른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었다. 준비는 완벽했다.
테오라가 등장하기 전에 얼른 입안에 핫 마늘 치킨을 넣고 맥주로 목을 축였다.
“크~!”
“안주가 나오기 전인데도 술이 맛있네요. 안 그래요, 언니?”
그 안주가 진짜 안주가 아니라 테오라의 미모를 뜻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자린고비처럼 테오라 한 번 보면서 입맛을 돌게 하면, 치킨 맛이 아니라 천상의 맛이 날지도 모른다.
가볍게 허기를 달랜 후에야 테오라 멤버들이 나왔다. 멤버들 전부 나오지는 못했고, 리더인 남초록, 오란, 박하가 나왔다.
다인 그룹은 일반적으로 두 명이나 세 명만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하니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전부 나왔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오디오 다 잡아먹혔겠지? 흐흐.”
“애들 매력은 완전체일 때 시너지가 나는데! 영상으로 잘 잡았길 바라는 수밖에요.”
“언니들 이제 시작이에요. 쉿!”
애들 목소리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 숨죽이고 화면을 응시했다.
[기다리셨죠? 예고했던 대로 데뷔한 해에 앨범 세 개를 내고 신인상을 휩쓸어버린 대단한 자체제작돌 테오라 여러분을 모셨습니다!]아나운서 출신 MC가 테오라를 소개하고 안부를 묻는 시간이 끝나고, 영상이 나오기 전에 테오라 멤버들이 각오를 밝혔다.